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80)
성황의 아이들-80화(80/469)
080. 책임 (1)
수도 경비대에서 구해낸 여남은 명의 회색 역병 환자들은, 황궁 부속 의료원으로 옮겨져 바로 적출 수술을 받았다.
행색이 추레한 환자들이 밀려들어 오자 의원들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무려 황자씩이나 되는 자가 지키고 서서 지긋이 노려보고 있었더니, 마지못해 다른 일을 제쳐두고 환자들을 시술해 주었다.
환자들이 깨어날 때까지 제대로 보살피라 의원에게 거듭 당부하긴 했지만, 사실 성진은 그들의 회복 여부에 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대부분의 머릿속에 이미 염상 결정이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
초기에 발견되어 비교적 머리가 멀쩡했던 아카데미 학생들조차 아직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미 염상 결정으로 뇌가 망가진 사람이 쉽게 의식을 차릴 리가 만무했다.
“어제 진주궁으로 데려온 환자는 어때?”
“닌니아스 의원이 치료 중에 있습니다만, 아직은 별 차도가 없는 듯합니다.”
칼멘 경이 데려온 환자는 현재 진주궁에서 닌니아스 의원의 집중 치료를 받고 있었다.
어젯밤 실려 오자마자 바로 알을 적출하는 시술을 받았지만, 아직은 깨어나기는커녕 제대로 약도 삼키지 못하는 중이란다.
하긴, 이미 가망이 없을지도 모른다. 마왕 놈의 말로는 머리가 골고루 망가져 있었다고 하니까.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치료하는 시늉이라도 해야겠지.
무려 성진이 직접 진주궁의 ‘손님’이라고 선포한 자였다. 거기다 칼멘 경의 태도나 쿠르트 경의 반응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어째 그 환자가 과거 모레스의 개망나니 행적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하고.
“병세가 제법 진행된 후라 뭐라 장담을 드릴 수 없습니다. 회색 역병 환자들은 사제들이 아무리 신성력을 퍼부어도 반응이 없다고 하더니 정말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미 건강이 너무 쇠약한 상태였던지라.”
진주궁으로 돌아와 치료실에 들른 성진에게 닌니아스 의원이 설명했다.
시녀들이 보살펴 준 모양인지, 환자는 처음보다는 한결 말끔해진 행색이었다.
그러나 뼈가 드러나 보이는 깡마른 몸이며 주름 가득한 얼굴, 푸석푸석 부스러지는 머리털을 보건대,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 못하며 지낸 지 제법 오래된 것으로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에게서는 오러 활성도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생명 반응이 미약하다는 말이다.
과거 근위대 기사단장이었다면 분명 오러 유저였을 텐데, 그런 자가 대체 왜 저런 꼴이 되어버린 걸까.
“단장님…….”
어제부터 유난을 떨던 칼멘 경은 아예 환자 옆에 딱 붙어서 밤을 샌 꼬락서니였다.
타박상으로 퉁퉁 부은 얼굴에 한쪽 팔에는 부목까지 하고서, 그는 제 꼴은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환자 보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쉬지 않고 물수건으로 환자의 얼굴이며 팔다리를 닦는 폼이, 물을 삼키지 못하면 모조리 피부로라도 흡수시키겠다는 기세다.
“칼멘 경과는 각별한 사이였나 보군. 딱하게 되었어.”
혈연으로는 보이지 않아 무심코 한 말이었는데, 옆에 있던 쿠르트 경이 물었다.
“혹시 저하. 저분에 대해서 기억나시는 것은…….”
아, 이런.
정말로 모레스 놈과 뭔가가 있는 사이인가 보다.
“유감스럽게도 생각나는 바가 없어.”
“…역시 그렇군요.”
조금 가라앉은 듯 보이는 쿠르트 경의 얼굴을 바라보며, 성진은 전날 기사단 숙소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예전 그 일 때문에 칼멘 녀석은 아직도 2기사단에 고개를 못 들고 다니는데…….
-쿠르트 경이 문제라니까. 그 양반도 2기사단 출신이면서 은근히 황자를 챙긴다고.
그렇다는 것은, 쿠르트 경은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모레스에게 별다른 앙금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의미일 터. 아마도 그라면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법 객관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성진은 그에게 가볍게 눈짓을 했다.
“쿠르트 경. 괜찮으면 저 사람에 대해 따로 얘기 좀 하지.”
뒤에서 마사인이 당황한 듯 숨을 들이켜는 기척이 느껴졌다.
뭐, 얼마 전까지 2기사단의 단장이었으니 그도 어느 정도는 아는 바가 있으리라.
하지만 본인이 황가의 일원이라는 사실도 성진에게 굳이 밝히지 않는 양반이다. 모레스가 알 필요 없는 일이라고 판단한다면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 있겠지.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마사인을 일별하고, 성진은 쿠르트 경과 함께 치료실 밖으로 나왔다.
“저분은 브루노 단장님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7~8년 전쯤일까요, 황궁 기사단장이 되어 근위대를 이끄셨던 분이죠.”
복도 창가에 기대서서 성진은 쿠르트 경의 설명을 들었다.
브루노 그린.
그는 오르토나의 난민 출신으로, 황궁 기사단에 입단한 이후 크고 작은 공을 세워 그린이라는 성을 받았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다 평민으로는 드물게 기사단장의 자리까지 오른 자였다.
유명 무가의 자제들이 어릴 때부터 오러 연공에 매진하는 것을 생각하면, 늦은 나이에 검을 잡았음에도 타고난 재능 하나로 출세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치세 초기 성황이 교단을 통일할 무렵에는, 그의 바로 곁에 서서 검을 휘두르며 용맹을 떨쳤단다.
“…아버지의 측근이었다고?”
성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자신의 측근이 저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다니 성황답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래도 그 양반, 자기 사람들을 제법 살뜰하게 챙기는 편 아닌가?
“예, 당시 폐하께오서는 브루노 단장님을 무척 아끼셨습니다. 출신 성분 때문에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던 그분을 발견하고, 출셋길을 열어주신 것이 바로 성황 폐하시니까요. 직접 성을 하사하시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죠.”
성황의 비호를 등에 업은 브루노 그린은 그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결국에는 데카론 나이트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성황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황궁 기사단장으로 임명해 버렸고.
평민 출신의 기사단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무관들의 반발 역시 단번에 일축해 버렸다. 일각에서는 지나친 편애라는 불만이 터지기도 했을 정도라나.
근위대 2기사단 단장.
오랜 시간 일선에서 구르던 보잘것없던 한 평민 기사가, 어느새 대륙 제일의 기사 발타자르 경 다음으로 인정받는 지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당시 남부 전선을 오가며 공사가 다망하던 발타자르 경 대신, 브루노 단장이 황자들의 검술 수업을 봐주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오호라, 모레스 놈과의 접점이 거기였나.
“수업 중에 뭔가 마찰이라도 생긴 건가.”
성진의 추측에 오히려 쿠르트 경이 난처한 듯 시선을 피했다.
“…마찰이라기보다는, 그저 운이 없었던 겁니다.”
브루노 단장의 검술 수업은 한동안은 평화로웠다.
당시 수업을 받은 것은 로건과 모레스였는데, 로건 황자는 워낙에 얌전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심지어는 하나를 알려주면 스물을 깨치는 검술의 천재라, 막상 단장이 가르칠 것이 많지 않았다고.
또한 모레스는 땡땡이치느라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는 나날이 허다했기 때문에 오히려 사건 사고가 생길 틈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 막 제자를 키우는 재미를 알아가던 브루노 단장은 새로운 제자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가 살던 동네에서 제법 싹수가 보인다 싶던 평민 소년이었다.
“그 제자가 바로 칼멘 경입니다.”
거기서 칼멘이 엮이는 거군.
브루노 단장은 어린 칼멘을 애지중지 달고 다녔다고 한다. 업무 중에는 먹거리와 함께 집무실에 앉혀 두기도 하고. 검술 수업 시간에는 로건 황자의 곁에서 나란히 목검을 휘두르는 칼멘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띄기도 했다고.
그렇게 황궁 사람들은 브루노 단장의 곁에 칼멘이 붙어 있는 모습에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아직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암묵적으로 단장의 정식 종자 취급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그러한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황궁 정원에 홀로 서서 단장을 기다리던 칼멘의 앞에 리자베스 황비와 모레스 놈이 나타난 것.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곧 두 아이 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당시의 상황은 저도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목격자라고는 황비님과 시녀들이 다였는데, 하나같이 칼멘이 먼저 불경죄를 저질렀다 진술했다더군요.”
당시 칼멘의 편은 하나도 없었군.
뭐, 빤하지 않을까. 멋모르는 평민 소년이 높으신 분들에게 다짜고짜 덤벼들었을 리는 없고.
아마도 지나가던 두 사람이 괜히 칼멘에게 시비를 건 것이 아닐까 성진은 추측했다.
문제는 그 싸움이 두 아이의 몸에 뚜렷한 외상을 남겼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리자베스 황비가 보는 앞에서.
“소동을 알게 된 근위대가 도착했을 때, 황자님의 얼굴에는 이미 생채기가 나 있었고, 칼멘의 이마는 칼에 베여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모레스 놈은 칼을 휘두른 거냐!
“그리고 황비님께서 칼멘의 즉결 처분을 명하셨습니다.”
“뭐? 어린애를?”
“그것이, 황자님께 조금이나마 상처를 입힌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그럼, 상대가 칼을 휘두르는데 그 정도 대응도 하지 말라고? 그냥 죽으란 말이야?”
성진이 하도 어이가 없어 대꾸하자, 쿠르트 경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어쨌든 책임자인 브루노 경이 그 자리에 불려 왔고, 분기탱천한 리자베스 황비는 단장에게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고귀한 황자의 몸에 해를 입힌 저 천한 것을 단장이 그 자리에서 직접 베어 단죄하라 명한 것이다.
“…….”
와, 어린 제자를 직접 베라니, 그건 좀.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브루노 단장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했으나, 황비의 태도는 단호하기 짝이 없었다고.
단장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칼멘의 목숨을 살리는 대신, 기사단장직을 내놓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오러 층을 완전히 파괴해 버려야 했던 것.
데카론 나이트의 경지에 있던 자가 오러 한 줌 모으지 못하는 폐인이 되다니, 과연 무인으로서는 죽음이나 다름없는 처사였다.
그렇게 오러 층이 박살 난 브루노 단장은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반쯤 죽은 꼴이 되어 황궁 밖으로 내쳐졌다. 그리고 단장이 몰락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칼멘은, 2기사단 사이에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빌어먹을 자식이 되어 아직까지도 서먹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참혹한 내막에 한참 말을 잇지 못하던 성진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는? 그때 아버지는 뭐라고 하셨지?”
“저희가 감히 폐하의 깊은 의중을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쿠르트 경이 대충 얼버무렸지만, 성진은 알 수 있었다.
성황은 당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아꼈다던 브루노 단장이 폐인이 되어 내쳐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슬쩍 손만 대도 손쉽게 기적을 일으키는 양반이 변변한 치료조차 해주지 않았다니.
대체 어째서?
“어쨌거나 단장이 저렇게 된 건 결국, 모두 내 잘못이군.”
성진은 두통이 이는 것을 느꼈다.
이거야, 칼멘 경이 매번 불손하게 노려보던 것도 이해가 가다 못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얼굴 볼 때마다 한칼 푹 쑤셔주고 싶었을 거 같은데,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다지?
성진이 이마를 부여잡자, 옆에서 마사인이 허둥거리며 외쳤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저하! 처벌을 요구한 것은 저하가 아니시지 않습니까? 저하는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어렸다고 해서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마사인 경.”
성진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처음에는 칼멘 경의 얼굴을 봐서 하는 데까지는 도움을 주자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 단장을 치료해야 하게 생겼다.
저 사람이 빈민가에서 구르다가 회색 역병에 걸리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모두가 모레스의 패악질이 원인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치료하지?
뇌가 완전히 맛이 가버린 사람은 현대 의학으로도 소생이 불가능하다.
생각나는 단 하나의 가능성이라면 성황의 도움을 구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인데…….
‘이전에도 그렇게 철저하게 외면했다는데, 지금이라고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뭐, 내가 그 양반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분명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나는 아버지를 만나서 얘기를 해보겠다. 두 사람은 여기서 닌니아스 의원을 도와줘. 단장이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정한 성진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드는데, 갑자기 쾅 하고 치료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애써 신경 쓰는 척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다 소용없는 짓이니까요!”
돌아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칼멘이 무서운 눈초리로 성진을 쏘아보고 있었다.
“저하 앞에서 이 무슨 무례한 언사…….”
얼굴을 굳힌 마사인이 한걸음 앞으로 나섰지만, 칼멘이 분통을 터뜨리며 그의 말을 잘랐다.
“왜요? 제가 못 할 말 했습니까? 다들 모른 척, 걱정하는 척 가식 떨지 마십쇼! 어차피 단장님은 이제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들 있잖아요! 이대로 조용히 묻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아닙니까?”
칼멘의 두 눈은 짙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다 못해 숫제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저놈 지금 열받아서 눈에 뵈는 게 없는 거 같은데?
“불쌍한 놈 적선하듯 동정하면 누가 고마워할 줄 압니까? 늦었습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칼멘 경…….”
“당신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그렇게 황궁에서 내쳐진 뒤에도 단장님이 늘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폐하의 곁에 잠시나마 설 수 있었던 것이 무한한 영광이라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버릇처럼 늘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입니다! 한데 이게 뭡니까! 평생을 델크로스를 위해, 폐하를 위해 몸을 바친 대가가 저런 처참한 죽음이라니, 저는, 저는…….”
몸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말을 잇지 못하는 칼멘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쿠르트 경이 재빨리 그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
“칼멘 경, 일단 진정하게. 저하께서도 단장님의 치료를 위해 애써 주신다니…….”
“웃기지 마, 쿠르트 경! 당신들 2기사단도 다 마찬가지야!”
목소리를 높인 칼멘이 절규하듯 외쳤다.
“그때 누구 하나 단장님을 위해 나선 단원이 있었나? 2기사단은 단장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평민 출신이라고 매번 무시하면서 흰 눈을 뜨고 보더니, 막상 비참하게 내쳐지니 그제야 너도나도 불쌍하다고 떠들어대는 꼴이란! 개망나니 황자라고 욕할 것 없어! 니들도 다 똑같은 놈들이야!”
이놈 이러다가 정말로 선을 넘겠는데?
성진이 미간을 찌푸리는데, 분노의 화살이 다시 이쪽으로 돌아왔다.
“당신도 말 잘했습니다! 그래요? 모두 당신 잘못이라고요? 어려도 책임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요? 마음에 없는 소리 하지도 마십쇼! 그래봤자 어차피 당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잖아!”
“…야.”
“기껏 한다는 것이 폐하와 의논을 하는 겁니까? 왜요? 어차피 그 인간도…….”
퍼억!
칼멘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성진이 앞으로 내지른 주먹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깔끔하게 기절해 버린 것.
“…….”
마사인과 쿠르트 경의 황당해하는 얼굴을 마주하며, 성진은 허둥지둥 변명했다.
“어, 미안. 이럴 생각까지는 아니었는데, 이대로 두면 정말로 불경죄를 제대로 저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모르긴 몰라도, 황자에 대한 불경과 성황 폐하에 대한 불경은 그 무게가 다르지 않을까?
피곤해서 제정신이 아닌 거 같은데, 이참에 좀 쉬라고 하지.
그렇게 얌전히 브루노 단장 옆에 누워 있게 된 칼멘 경을 보며 성진은 생각했다.
그나저나 칼멘 놈도 은근히 다혈질이란 말이야.
어쩌면 황비의 주장처럼 놈이 먼저 불경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하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