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90)
성황의 아이들-90화(90/469)
090. 이계 묵시록 (5)
이단 재판부 감옥을 조사하기로 결정한 후, 전담반 사무실을 나서는데 마사인이 묘한 소리를 했다.
“이단 재판부에 발을 들이려니 아직은 조금 걱정이 됩니다만, 폐하께서 이제는 괜찮을 것이라 확답을 주셨으니까요.”
“……?”
마치 얼마 전까지는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는 투였다.
“왜? 이단 재판부에 뭔가 문제라도 있어?”
성진의 물음에 마사인이 웃는 건지 뭔지 애매한 얼굴을 했다.
“…아닙니다. 이제는 어떻든 좋을 일이지요. 제가 괜한 소리를 했습니다.”
뭔가 더 물을 새라 황급히 시선을 피하더니, 그는 마차를 불러오겠다며 그 길로 사라져 버렸다.
음, 어딘가 미심쩍은데.
찜찜한 것은 또 있었다. 행정부 건물 앞에서 마차를 기다리며 향수 냄새를 털어내고 있는데, 아까부터 잠잠하던 마왕이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로페룸의 알에만 신경을 쓰다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그야, 로페룸의 알이 사람에게 기생하고 있으니 그걸 신경 쓰는 거잖아?’
[이걸 성공적인 기생이라고 할 수 있으면 몰라. 어차피 죽을 놈을 뭐 하러 심느냐는 거지.]정말로 마물이 직접 알을 깠을 가능성은 아예 없는 걸까? 성진의 의문에 마왕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말했잖아? 로페룸은 인간처럼 체온이 높은 동물에게는 다가가지 않아. 거기다 놈들의 산란관은 의외로 작아서 그런 큰 상처가 생길 수가 없어. 이건 어느 정도 알껍데기가 단단해진 후 옮겨 심은 거라고 봐야 해.]그렇군. 거기다가 심어진 위치가 항상 일정한 것도 좀 이상한 일이긴 했다.
흉골의 바로 위쪽. 잘은 모르지만 거기가 그나마 로페룸의 알이 최대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인 것은 아닐까.
대화는 거기서 잠시 중단되었다. 곧 마차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성진은 마사인과 함께 마차에 올랐다. 물론 향수를 털어가며 창문을 활짝 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상하단 말이야. 왜 알을 일부러 사람의 몸속에서 죽이지? 왜지?]마차 안에서도 마왕은 계속 고민을 거듭하며 끙끙거렸다.
고민할 게 있나? 일단 이단 재판부에서 알 심는 놈을 찾아 족치면 되는 거 아냐?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마왕이 발끈했다.
[이건 게헤나의 마왕인 나도 알지 못하는 로페룸의 다른 생활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아니겠어? 알을 심은 놈은 그걸 안다는 거지? 이건 이미 그놈과 나의 자존심의 대결이라고!]아, 그래.
성진은 대충 대꾸하고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이단 재판부에 도착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생각처럼 일이 간단하게 풀리지는 않았다. 성진 일행은 이단 재판부 입구에서부터 성 마르시아스의 기사와 경비병들에게 가로막혔던 것이다.
“이단 재판부는 외부인의 사사로운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깐깐해 보이는 건장한 기사가 성진의 앞을 막아서며 눈을 부라렸다.
“황자님은 이단 재판부 소속이십니까? 아니면 사건의 참고인이나 피고인이십니까?”
그 어느 쪽도 아님을 잘 알면서 괜히 으름장을 놓는 것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묘한 적의마저 느껴지는 태도였다. 어쩐지 그가 디고리 사건 때 진주궁을 포위했던 기사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사인이 그의 앞으로 나섰다.
“황궁의 안위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에 대한 조사요. 그러니까 경은…….”
“인퀴지터 패리스입니다.”
“그래, 패리스 경. 이것은 마물 전담 대책부가 맡은 조사의 일환이니 협조를 부탁하오.”
하. 마물 전담부!
마사인의 말에 기사가 코웃음을 치더니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렇다면 공식적인 협조 공문을 가져오셨습니까?”
“그…….”
마사인의 말문이 막혔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애초에 성회에서 마물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도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담부의 업무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었고, 조사 자체도 성진이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다였으니까.
‘하지만 좀 괘씸한걸.’
성진이 가만히 그 패리스라는 성기사를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이단 재판부 로비 안쪽을 지나가다가 입구의 성진을 발견하고는 움찔 놀랐다.
그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달리듯 다가오더니, 곧 패리스 경의 옆에 서서 성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는 사제복을 입고 커다란 경전을 손에 든 홀쭉한 중년의 남자였는데,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어 있었다.
당황한 것은 성진 일행만은 아니었다. 패리스 경이 의외의 사태에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헤이즈 형제님. 어쩐 일로 그러십니까?”
그러나 헤이즈라 불린 그 사제는 패리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뭔가에 홀린 듯 성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을 뿐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마사인이 반사적으로 그와 성진 사이를 가로막자, 남자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성진을 향해 물었다.
“…이리 직접 행차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모레스를 아는 자인가?
성진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남자가 말간 눈동자를 하고서는 재차 그에게 물어왔다.
“드디어 때가 된 것입니까?”
“……?”
영문을 모를 소리였다.
그러나 남자의 눈에서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열기를 느낀 성진은, 어쩐지 그를 이대로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는 묘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응.”
성진은 남자와 시선을 맞춘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먼 훗날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진정 마음을 굳히셨습니까?”
“……?”
에라, 일단은 잘 모르겠으니 긍정을 하고 보자.
“그렇다.”
그러자 마치 조용한 호수에 작은 파문이 이는 것처럼, 그의 얼굴에서 서서히 미소가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고요하면서도 한편으로 지극히 격정적이라, 순간 패리스 경조차도 멍청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정도였다.
“아아……!”
그는 눈을 감으며 나직하게 한탄했다.
“오랜 기다림이었습니다. 드디어 이 모든 인고의 과정이 끝을 고하는군요.”
남자는 자리에서 한걸음 물러나더니 성진을 향해 공손하게 읍하며 말했다. 어쩐지 대단히 홀가분해 보이는 태도였다.
“모든 것이 명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휑하니 몸을 돌려 이단 재판부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버렸다.
…뭐였지, 방금?
“저하, 혹시 아시는 자입니까? 방금 저자와 무슨 말씀을 하신 겁니까?”
마사인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으나 성진이 딱히 대답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단지 그냥 보내면 뭔가 중요한 단서를 놓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을 뿐.
역시 이전의 모레스와 뭔가 연관이 있는 자인 것일까?
남자에게서 뭔가를 느낀 것은 성진뿐만이 아니었다. 한동안 잠자코 있던 마왕이 슬그머니 그에게 속삭였던 것이다.
[야, 기분 탓인가 모르겠는데, 저놈 좀 이상한데?]‘어디가?’
[대단히 옅긴 하지만 뭔가 익숙한 기척이 느껴지는데? 꼭 마물 같은…….]‘…설마?’
저놈인가? 혹시 저놈이 그 알을 심은 놈이었나?
성진이 뒤늦게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으나, 이미 헤이즈 사제는 이단 재판부 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
[음, 놈에게서 로페룸의 알이나 다른 마물의 기척을 느낀 건 아니야.]마왕은 말을 이었지만 어딘지 자신감 없는 목소리였다.
[그저 저자에게서, 아주 옅게나마 마계의 기척이 느껴져. 왜일까?]‘…….’
당장이라도 그 사제를 쫓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여전히 패리스 경과 경비병들이 눈을 부릅뜨고 성진 일행을 경계하고 있었다.
역시 지금은 무리인가? 저 헤이즈라는 사제가 퇴근하는 시간을 노려야 할까?
성진이 이단 재판부 건물을 가만히 쳐다보며 궁리하고 있자니, 마사인이 재차 그에게 물어왔다.
“저하, 저자가 저하에게 무슨 명령을 들은 겁니까? 무엇을 하겠다는 겁니까?”
“나도 잘 몰라.”
“예?”
눈이 동그래진 마사인을 향해 성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냥 그래야 할 거 같아서 적당히 대답한 거야. 뭐, 별거 있겠어? 저자가 해봤자 무엇을…….”
그러나 성진은 말을 미처 끝내지 못했다.
콰아아앙!
무언가가 박살 나는 굉음과 함께 이단 재판부 건물 한 귀퉁이가 폭삭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
성진 일행은 물론, 패리스 경을 비롯한 입구의 경비병들 역시 갑작스러운 사태에 그저 입을 쩍 벌리고 위쪽을 쳐다보았다.
어라?
곧이어 작은 폭발음이 연달아 일어났다.
쾅! 우르르! 쾅! 쿠앙!
이단 재판부 건물이 충격으로 흔들거린다. 무너진 벽 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딱 봐도 안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꺄아아악!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
곧이어 재판부 건물 밖으로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허둥지둥 달려 나온다.
“으아아아아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왜 이 소란인가!”
패리스 경이 달려가는 사제 하나를 잡고 물었으나,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도리질을 칠 뿐이었다.
“이거 놔! 놔주시오! 지옥이, 지옥이 열렸소! 주신이시여…….”
“그게 무슨……!”
패리스 경이 이를 악물더니 성진 일행에게 말했다.
“함부로 여기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경비병들을 이끌고 후다닥 이단 재판부 건물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저하.”
퐁퐁 솟아오르는 연기를 넋이 나간 듯 멍하니 바라보던 마사인이 문득 중얼거렸다.
“제가 언제 저하께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시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던가요?”
아니, 그러니까 내가 뭘!
물론 아까 헤이즈라는 자에게 한 대답이 화근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은 있지만, 그렇지만…….
성진은 대단히 억울했다.
그리고 곧 마왕이 낮은 소리로 그에게 경고를 해왔다.
[이성진, 마물이다. 마물들이 온다!]성진도 금세 그 익숙한 기척을 느꼈다.
스르릉. 어느덧 그는 이미 손에 익은 호두까기를 오른손에 쥐고 있었다.
부우우웅. 부웅.
곧이어 귀에 거슬리는 시끄러운 날갯짓 소리와 함께, 대형견 크기의 수많은 마물들이 부서진 건물로부터 날아올랐다.
일견 거대한 호박벌처럼 보이지만 몸통에는 털 대신 뾰족한 녹색의 가시가 가득하고, 거대한 겹눈은 기묘한 붉은 광채를 흩뿌리는 대단히 불길하게 생긴 마물이다. 꽁지에는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크기의 새까만 독침을 흔들고 있었다.
“저게… 저게 뭡니까! 저하!”
마사인이 옅은 금빛으로 빛나는 검을 뽑아 들며 다급한 목소리로 성진에게 물었다.
마사인 경, 디고리 저택에서도 그랬지만 왜 내가 모든 사건 사고의 전말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안타깝게도 이번 역시 성진은 답을 알고 있었지만.
“베스파 호박벌이라고 불러! 게헤나의 마물이야! 날아다니는 데다 너무 재빠르게 움직여서 은근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이지.”
보통 인간에게 그리 공격적인 마물은 아니었다.
물론 먼저 공격하는 일은 드물다는 거지, 적대적인 인간에게는 당연히 반격을 했다. 저놈의 독침은 어중간하게 강화된 헌터 정도는 단번에 살상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한데 놈들은 건물 위에서 높이 날아올라 한동안 붕붕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주위를 뱅뱅 돌더니, 곧 수도의 번화가를 향해 휭 하고 날아가 버렸다.
예전의 성진이었다면 높이 뛰어올라 주먹의 충격파만으로 놈들을 바닥에 떨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놈들이 하늘 저 멀리 사라지는 것을 멀뚱히 보고 있어야 했다.
뭐지? 뭔가 목적지가 있는 듯 거침없이 날아가는데?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성진은 다시 이단 재판부 건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쿠아앙! 쿠앙! 으아아악!
안에서는 여전히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뭔가가 여전히 안에 남아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거다.
“저하…….”
마사인이 불안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성진이 무엇을 하든 말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성진은 그의 얼굴을 잠시 일별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이단 재판부 건물을 향해 달렸다.
[이성진! 저 안에 여러 종류의 마물들이 있어! 거미들과 개미들! 그리고 말벌들!]머릿속에서 마왕이 흥분한 듯 소리쳤다.
[이제 알았어! 몰려온 마물들의 공통점을 알았어!]건물 로비에 들어서자 피투성이가 된 경비원들이 절뚝거리며 성진을 지나쳤다. 사제 몇몇을 부축한 성기사들 또한 그를 힐끔 보고는 그대로 입구로 달려 나간다.
콰아앙!
곧이어 바닥이 무너지고, 시커먼 가시가 흉하게 박힌 딱딱한 절지 마물의 다리가 튀어나온다. 마디 하나가 거의 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다리다.
그것이 바닥을 짚더니 이내 우르르르 구멍을 넓히며 몸을 위로 끌어 올렸다. 붉은 유리구슬 같은 여덟 개의 눈이 쑤욱 고개를 내민다.
곧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이단 재판부의 넓은 로비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거대한 마물이었다. 몸을 다 일으키면 로비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체고가 높고, 체장은 적어도 7미터는 넘어 보였다.
따다닥. 따다닥.
놈이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내는 그 마찰음을 성진이 잊을 리 없었다.
예전 파주시 전선에서 그의 동료들을 수없이 도륙내던 그 거미 새끼를.
아하하하하.
성진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웃고 있었다. 이것이 분노인지 반가움인지는 성진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손발이 간지러운 듯 저리기 시작하고 온몸의 피가 끓어올랐다.
뒤따라온 마사인이 거미를 보고는 핼쑥하게 질린 얼굴로 검을 곧추세우는 순간.
“저하!”
타악.
성진은 마사인의 절규를 뒤로 하고 바닥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