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91)
성황의 아이들-91화(91/469)
091. 이계 묵시록 (6)
게헤나 사태 초기, 한창 인류의 반격이 시작되던 무렵의 파주시 전선.
6일 밤낮 계속되는 전투로 헌터들 대다수가 녹초가 되어 뻗어 있을 때, 그것이 나타났었다.
파고 네필라.
성진의 초기 동료 대부분을 앗아간 저주스러운 거미 새끼.
* * *
우르르르르! 쿠웅!
이단 재판부 건물 바닥을 뚫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낸 마물은 그때의 그 거미만큼 거대했다.
길고 거친 가시들이 털처럼 빼곡하게 덮인 통통한 몸체는 마치 보랏빛의 타란툴라처럼 보였다. 단지 크기가 어지간한 대형 화물트럭보다 크고, 몸체에 비해 긴 다리들이 걸어 다니는 중장비처럼 묵직할 뿐.
철판을 두른 듯 단단하고 길쭉한 마디 끝에, 거대한 발톱이 흉흉한 주홍의 광택을 흘리며 돋아나 있다.
끼익. 끼익. 불길한 빛을 발하며 사방을 응시하는 여덟 개의 눈이 이내 목표물을 찾아낸다.
따다다다닥.
놈의 온몸을 빼곡히 덮고 있는 가시들이 일제히 떨리며 저주파의 소음을 만들어냈다.
“저하!”
마사인의 절규를 뒤로 한 채 성진은 어느새 거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바닥의 구멍으로부터 몸을 완전히 빼내느라 놈이 굼뜨게 움직이는 사이, 성진은 재빠르게 가시 돋친 다리들을 지나쳤다.
그리고 방적돌기가 앞으로 채 향하기도 전에 놈의 배 중앙에 도달해, 있는 힘껏 검으로 베어 들어갔다. 핵이 있는 위치였다.
카가가각.
거칠게 오러를 휘감은 호두까기는 용케도 딱딱한 놈의 외피를 갈랐다.
‘…얕아!’
거미가 완전히 몸을 일으키기 전, 미끄러지듯 아래로 파고든 성진이 한 번 더 같은 위치를 가로로 올려 그었다. 카각!
그러나 그 거대한 몸통 깊이 검을 박아 넣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적어도 단칼에 2미터 이상의 깊이를 파고들어야 할 터인데.
실패를 깨닫자마자 성진은 미끄러지던 그대로 몸을 굴려 일어나, 곧바로 놈의 몸을 축으로 하여 반시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완전히 몸체를 끌어올린 거미 새끼가, 유리알처럼 붉은 눈을 번들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놈의 머리가 성진을 잠시 따라오나 했더니 다시 몸을 돌려 전방을 향한다. 마사인이 무서운 기세로 정면에서 검을 들고 돌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하!”
아마도 저쪽의 인간을 경계하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마사인의 검에 맺혀 있는 금빛의 외기는 마물이 보기에도 상당히 위협적이었으니까.
놈이 위턱의 독니를 따닥따닥 부딪치는 것을 본 성진이 마사인을 향해 소리쳤다.
“피해, 마사인 경! 독침 뱉는다!”
“…예?”
마사인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성진이 재빨리 놈의 꽁무니 앞쪽의 방적돌기 하나를 검으로 내리찍었다. 완전히 망가뜨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거미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게 만들 수는 있었다.
투학. 거미의 입에서 다량의 점액질이 애먼 로비 바닥에 흩뿌려진다.
곧 치직 소리를 내며 로비의 카펫이 녹아내리자, 아슬아슬하게 그 산성침 세례를 옆으로 피한 마사인이 기겁을 했다.
“헉! 이게 뭡니까!”
“정면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일단 움직여! 마사인 경!”
다급한 외침에 마사인은 곧 정신을 차리고 성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쿵! 쾅! 쿵! 놈이 단단한 발톱으로 바닥을 찍으며 그를 따라 몸을 돌렸지만, 노련한 기사단장은 그를 향해 박혀드는 거대한 다리를 잘도 이리저리 피하며 달려왔다.
심지어는 날아드는 중간 다리의 마디 하나를, 잠시 형상화한 길쭉한 오러 블레이드로 베어내기까지 했다. 역시 성진의 검술 선생은 실력 하나는 제법 든든한 인간이다.
그는 성진의 뒤를 쫓아 둥글게 달리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곧 근위대 기사들이 출동할 겁니다, 저하! 일단은 자리를 피하시는 것이……!”
“아냐, 마사인 경! 우리가 놈을 이 자리에 묶어둬야 해!”
마사인이 저놈의 기동성을 잘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놈이 건물을 부수고 나가서 날뛰기 시작하면 피해는 아마 걷잡을 수 없이 커지리라. 저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도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며 헌터들을 학살했던 놈이니까.
게다가 지금이야 좁은 공간이라 제대로 겨냥을 못 하고 있지만, 놈이 한번 거미줄을 광범위한 범위로 내뿜기 시작하면 상대하기가 상당히 골치 아파질 거다.
저런 마물을 상대한 경험이 없는 기사들은 대부분이 달라붙어 손도 써보기 전에 당해 버릴 터.
‘그러니까 좁은 공간에서 빙빙 돌게 만들 수 있을 때 최대한 두드려야 해!’
물론 놈이 건물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만큼, 성진과 마사인 역시 움직임에 제한이 생긴 것은 마찬가지였다. 놈이 건물 바닥에 큰 구멍을 뚫고 기어 나온 덕분이다.
콰아앙!
거대한 크레인 같은 다리 하나가 마치 포탄처럼 빠르게 쏘아져 벽에 틀어박힌다. 재빠르게 몸을 낮춰 구르자 그 앞은 막다른 벽.
카가각. 뒤이어 날아든 다리의 마디를 힘껏 베어내며, 성진과 마사인은 그 반동을 이용해 가까스로 방향을 틀었다. 마침 그 옆으로 벽체가 완전히 내려앉은 복도가 드러나 있어, 그들은 재빨리 코너로부터 몸을 빼낼 수 있었다.
따다다닥! 몰이에 실패하자 불쾌한 듯 가시를 한차례 떨어댄 거미 놈이 이내 쿵쾅쿵쾅 발톱으로 찍어가며 그들을 쫓아온다. 발톱의 일부가 무너진 돌바닥 근처에 박히며, 다시 구멍의 가장자리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끄아아아아! 챙! 챙!
뚫린 바닥 아래쪽으로부터도 심상치 않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단 재판부 지하에 있는 감옥에서 들려오는 것들이다.
비명 소리,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까득까득 뭔가 씹히는 듯한 불길한 소리.
감옥 안쪽에서도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이단 재판부 대부분의 병력이 지하로 몰려간 것 같았다. 사태의 원흉이 저 감옥 안쪽에 있다는 의미이리라.
‘역시 게이트가 열린 건가?’
성진이 쏘아져 오는 거미줄을 피해 옆으로 구르며 생각했다. 그 외에는 갑자기 나타난 이 많은 마물들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정황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 헤이즈라는 사제가 의심스럽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게이트를 멋대로 여는 거지?
[내가 살펴보고 올까?]마왕 놈의 들뜬 목소리를 들은 성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언제부터인가 할 일이 생기면 놈이 부쩍 기뻐하는 것이 느껴져 조금 딱하기도 하고.
‘부탁해!’
[알았어. 너도 적당히 몸을 사려!]마왕이 곧 뿅 하고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성진은 묵묵히 호두까기를 휘두르며 생각했다.
어쨌든 건물 지하에 정말 게이트가 열렸다고 한다면, 안쪽 상황이 정리되기 전에 성 마르시아스 기사단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리라. 황궁의 다른 기사단이 최대한 빨리 이 사태를 알아차리고 달려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 사이 성진은 여러 개의 방적돌기 중 하나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데 성공했고, 마사인은 놈의 다리 마디 둘을 더 베어낼 수 있었다.
물론 그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운신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가운데 곡예 하듯 아슬아슬하게 움직이고는 있지만, 과연 이런 위험천만한 대치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푸하학. 놈이 마구잡이로 뿜어낸 거미줄이 또다시 바닥에 엉겨 붙는다.
로비는 이미 끈적거리는 거미줄로 엉망진창. 서둘러 처치하지 않으면 발 디딜 바닥도 점점 여의치 않게 될 것 같았다.
2층으로 이어진 계단 또한 이미 놈의 독액으로 범벅이 되어 무너진 지 오래.
치이이익. 연기를 내며 녹아내리는 난간을 확인한 성진이 혀를 찼다. 상황을 봐서 위층에서 놈의 머리로 뛰어내려 보려 했더니만.
“놈의 핵을 부숴야 해, 마사인 경!”
쿵! 성진이 옆으로 날아오는 다리를 호두까기로 비스듬히 가르며 소리치자, 마사인이 뒤에서 그 반쯤 갈라진 마디를 검으로 완전히 베어내며 외쳤다.
“그 핵이라는 게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저하?”
아마도 디고리 저택의 애벌레를 떠올리고 성진의 말을 바로 이해한 듯 보였다.
“내가 놈의 배 아래쪽에 칼집을 내놨어! 거기를 가르면 될 거야!”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는 반트라 모스 애벌레와는 달리, 파고 네필라의 핵은 언제나 정위치에 있는 편이니까.
마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겨눴다. 그러나 곧 낭패한 기색이 되었는데, 그들을 따라 빙글빙글 움직이던 거미 놈이 어느새 바닥에 뚫린 구멍 바로 위로 위치를 옮겼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아래로 파고들 수 없지 않은가.
두 사람은 마침 날아온 발톱을 피해 훌쩍 뒤로 물러났다. 놈이 나타난 후 처음으로 길게 간격을 벌린 것이다.
“위쪽에서부터 가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마사인이 거세게 마찰을 일으키는 위턱을 경계하며 성진에게 묻는다.
“힘들 거야. 핵은 배 아래쪽에 가깝게 붙어 있으니까. 거기다 등의 외피는 곱절로 딱딱하다고!”
혹시 마사인의 오러 폭사 정도라면. 성진의 전성기 주먹질과 맞먹을 정도의 위력을 가진 그 공격이라면, 아마도 등 쪽에서 베는 걸로 핵을 파괴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결정적인 순간 잠깐씩만 꺼내드는 걸로 보아, 마사인에게는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데 조금 제한이 있는 듯 보였다.
거기다 저렇게 날뛰는 놈의 등 위를 어떻게 점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앞에서 머리가슴부터 베어 들어가려니, 저 거대한 덩치가 단번에 핵까지 베이지는 않을 테고.
일단은 기회가 올 때까지 그냥 정면에서 조금씩 기력을 깎아 나가는 것밖에는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어느새 거미 놈과 대치하던 두 사람은 이단 재판부 건물 입구까지 밀려 있었다. 주변 바닥이 온통 끈적한 거미줄투성이가 되어 이제는 마구잡이로 뛰어다니는 것도 무리였다.
아직도 멀쩡히 남은 두 개의 방적돌기가 그들을 겨냥하며 꿈틀거린다.
치이이이. 놈의 엄니에서도 역시 심상치 않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언제든 독액을 뿜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
바로 그때, 흰 정복을 입은 한 무리의 기사들이 우르르 이단 재판부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옷에 아로새겨진 금빛 사슬과 검은 검. 성 마르시아스 기사단의 일원들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인가?”
선두에 선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불행히도 그 외침이 거미의 주의를 끌었다.
노인의 말이 끝난 것과 거미 놈이 준비하고 있던 대량의 독침을 쏘아낸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모두 피해!”
성진은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재빨리 노인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미처 그 독침을 피하지 못한 성기사 세 사람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녹아내렸다.
살아남은 나머지 기사들도 멀쩡하지는 못했다. 독액이 튀어 화상을 입은 채 비틀거리거나, 겁에 질려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성진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그와 함께 바닥을 굴렀던 초로의 기사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방금까지도 자신의 뒤에 서 있다 지금은 한 줌의 핏물이 되어 바닥에 고여 버린 기사들을 망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지금 그렇게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대가 단장이지?”
성진이 호두까기를 고쳐 쥐고는 거미를 향해 겨누며 외쳤다. 이제 놈은, 마사인의 유인에 이끌려 그들로부터 몸을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저 마물을 빨리 어떻게 하지 않으면 피해가 더 늘어날 거라고! 어서 부하들에게 명령해! 돕지 못할 거라면, 적어도 멍청히 한자리에 서 있지는 말라고!”
“…모레스 황자…….”
그제야 성진을 알아본 노인, 듀란드 경의 두 눈이 갑자기 새파란 분노로 타올랐다.
“모레스 황자! 그럼 그렇지! 언젠가 당신이 본색을 드러낼 줄 알고 있었어!”
뭐?
예상치 못한 반응에 성진이 당황하고 있는데, 와락 하고 달려든 듀란드 경의 두 손이 덥석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내 부하들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잠깐…….”
“이런 짓을 하고도! 주신의 성국에서, 주신을 섬기는 기사를 해하고도 감히 네가 무사할 줄 아느냐!”
“아니, 노인장! 지금 이럴 때가…….”
성진이 그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노인네의 손아귀 힘이 여간 센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번뜩이는 기이한 광채. 충격 때문인지 몰라도 지금은 도저히 말이 통할 상태가 아닌 듯 보였다.
“이 삿된 것아! 네놈은 대체 이 델크로스에서 무엇을 꾸미는 거냐!”
“뭐……!”
지나치게 맹목적인 그의 분노에 미처 성진이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이.
“저하! 피하십시오!”
멀리서 마사인이 비명처럼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고.
순간 휘익 뒤에서 날아든 딱딱한 거미의 다리가 두 사람을 동시에 건물 벽으로 메다꽂는다.
쿠아앙!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는 덤프트럭에 받힌 듯한 충격과 함께, 삽시간에 성진의 눈앞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