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97)
성황의 아이들-97화(97/469)
097. 로건 (4)
이전부터 마왕 놈은 헤르나와 가데스, 두 쌍둥이에 대해 퍽 궁금해했었다.
놈이 오러 폭풍에 휘말려 차원의 경계까지 튕겨 나갔을 때, 그 아이들은 성진에게 접근하여 마왕의 존재를 알고 있음을 넌지시 내비쳤었다. 꿈의 마왕과 불의 마왕에 대한 인형극을 보여주기도 했었고.
그래서 그들을 만나게 되면 이것저것 물어보라며 시끄럽게 떠들어댈 거라 예상했는데.
그런데 막상 쌍둥이를 만나고 나니, 마왕 놈은 뭔가를 고심하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한참이 지나 겨우 묻는다는 것이 이것이었다.
[그 꼬맹이들… 인간이지? 설마 마물은 아니겠지?]…뭐?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걔들이 인간이 아니면 뭔데?’
그렇게 멀쩡하게 생긴 마물이 어디 있냐.
만약 있다손 치더라도 마물의 기를 감지하지 못할 헌터 이성진이 아니지.
그리고 그것은 게헤나의 마왕, 본인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어 그래, 생각해 보니 마물은 아니겠다. 알고는 있어. 있는데…….]어이없어 하는 성진에게 잠시 주저하던 마왕이 설명했다.
헤르나와 가데스, 그 쌍둥이의 머릿속에서 염상 결정이 빛나는 것을 봤다고.
크기와 모양이 제법 멀쩡한 것이, 둘은 거의 확실하게 채널링 능력자라는 것이었다.
‘어쩐지…….’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성진은 그제야 뭔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 쌍둥이와 만나고 나면 피곤함이 몰려옴과 동시에, 언제나 드는 묘한 기시감이 있었다.
주제를 우회하며 빙빙 도는 화법이라던가, 저 좋을 대로 마구 건너뛰는 화제라던가.
샤론 경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둘 역시 그리 정신이 멀쩡한 애들로 보이지는 않았지.
‘근데 염상 결정이면 결정이고, 채널링 능력자면 능력자지, 갑자기 마물이 왜 튀어나오는 거야?’
무려 신성 제국의 황자, 황녀다.
설마 걔들이 마물이겠냐?
[아니… 그게 뭔가, 위치가 좀 이상해서.]마왕이 보기에 그 둘은 선천적인 채널링 능력자였다.
섬세한 모양의 염상 결정이 정해진 위치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 그런 경우는 제법 고도의 채널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나.
[그 얼뜨기 단장 놈의 것과는 격이 다르지. 우발적으로 발생한 염상 결정은 그런 매끈한 모양이 될 수도 없고.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능력에 한계가 생기게 마련이거든.]차이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브루노 단장의 경우 전두엽 인근에, 샤론 경의 경우 시상하부 부근에 있는 것과는 달리, 쌍둥이의 염상 결정은 대뇌의 후두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보통 인간에게 있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
후두부에 생기는 염상 결정은 채널링을 하는 군집 마물들의 특징이었다. 바로 후두부 신경계에 위치하는 바르토시처럼.
[그런 형질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거야. 혹시 걔들 엄마는 뭐 하는 사람이래? 설마 그쪽이 마물…….]‘야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측을 하고 있냐?
쌍둥이의 어머니는 비록 황비로 책봉된 것은 아니지만, 수도 번화가에서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고 들었다.
‘걔들이 아버지를 닮았을 가능성은?’
성진은 오히려 그쪽이 유력하다는 생각이었다.
성황은 영혼을 볼 수 있고, 영혼만을 움직여 차원의 경계를 오가기도 하는 사람이다. 채널링 능력자가 아닌 게 오히려 말이 되질 않잖아?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다음에 만났을 때 그의 머릿속을 뒤져 염상 결정을 찾아보면 되겠지.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마왕 놈의 반응이 이상했다.
[네 아버지한테서 염상 결정을 찾아보라고? 아하하하!]놈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가능할 것 같아? 네 아버지는… 그저 빛이야. 빛! 마치 항성처럼 자체 발광하는 거대한 신성력의 광원이라고! 그 영혼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염상 결정이 구별되겠냐? 되겠어?]차라리 용암에 떨어진 촛불을 찾으라고 그래. 태양으로 뛰어 들어가 캠프파이어를 찾으라고 하라고! 그럼 적어도 영혼이 소멸할 위험은 없을 거 아냐?
마왕은 그렇게 훌쩍거리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내가 진짜… 네 아버지 옆에만 가면 그저 타죽을까 봐 없는 염통이 다 쫄깃해진다고!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겠냐? 어? 크흐흑!]아.
최근 꼬박꼬박 성황의 얼굴을 자주 보기는 했지.
마왕 놈도 알게 모르게 그간 스트레스가 제법 쌓였나 보다.
* * *
다음 날 아침.
닌니아스 의원으로부터 수련을 재개해도 좋다고 허락받은 성진이 신이 나서 연무장으로 달려갔다. 늘어난 오러를 시험해 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으니까.
마침 최근에 엮고 있는 것은 황실 표준 검술 5식.
호쾌한 찌르기 위주의 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분명 검술을 펼치는 데에도 뭔가 가시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가 되었다.
“…으음?”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급발진하듯 툭툭 튀어 오르는 근육 덕분에 동작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마치 처음 무의식적으로 오러를 엮다가 동작이 뚝뚝 끊어졌던 그때와 같은 느낌이다.
되도록 부드럽게 움직이려 애쓰며 진땀을 빼고 있는데, 이를 지켜보던 마사인이 조심스레 제안했다.
“오러가 너무 단번에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늘어나긴 했습니다. 차라리 1식부터 다시 차근히 펼치며 오러를 재조정해 보시는 것이 어떨지요?”
아아, 또다시 지겨운 1식이다.
그래도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가장 익숙한 식을 반복하며 성진은 곧 오러의 흐름을 통제하는 감각을 되찾아갔다.
그런데 한창 조정에 열중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연무장의 공기가 평소보다 어수선했다. 상주기사들이 한쪽 구석에서 뭔가를 의논하며 수군거리고 있었던 것.
성진의 의아한 시선을 느낀 마리아 경이 슬그머니 다가와 귀띔해 주었다.
“[릴리움]이 곧 수도에 도착한다 합니다.”
성대한 개선식을 할 예정이라 상주기사 일부가 차출되고, 근무표도 덩달아 조정될 거란다.
근데 릴리움? 그게 뭔데?
“성 바스티안 기사단의 별동대입니다. 해수 토벌을 위해 조직된 정예부대죠.”
옆에 있던 마사인이 눈치 빠르게 성진에게 설명해 주었다.
성 바스티안 기사단.
[용서]의 성인 바스티안의 유지를 받들어 [관대함]을 미덕으로 삼는 기사단이다. 뭐, 그런 미덕을 모토로 하는 것치고는 깐깐하기가 성 마르시아스 기사단과 쌍벽을 이룬다는 평을 받는 것이 아이러니이지만.성 바스티안 교회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그들은 정교회의 수족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기사단에서 대 해수 별동대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
“탄신연을 앞두고 로건 황자님이 돌아오시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마사인의 얼굴에서 희미하게 기뻐하는 기색이 비쳤다.
델크로스의 2황자, 로건.
성황의 뒤를 이을 검술 천재라 불리는 어린 성기사.
-너한테만 살짝 가르쳐 줄게. 이건 아무도 모르는 내 비밀이야.
꿈속에서 작게 비밀을 속삭이던 소년.
-내가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예전에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
그 말이 단순히 조기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터.
설마 하고 생각하지만, 그가 그저 보통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예를 들어, 성진처럼 누군가의 영혼이 빙의해 있는 상태라던가…….
‘…어라, 잠깐! 그거 제법 가능성이 높지 않나? 나 같은 케이스가 하나라고 어떻게 장담하지?’
머릿속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면 꿈속에서도 그 나이 또래치고는 지나치게 조숙한 느낌이 들지 않았던가.
“로건 황자님은 어린 시절부터 참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분이셨죠.”
2황자에 대해 알고 싶다는 성진의 물음에, 마사인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어린아이의 탈을 쓴 나이 지긋한 기사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성진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진짜로?
“검술도 그랬습니다. 마치 아는 것을 다시 되새기는 것처럼 수월하게 배우셨거든요. 스승이라고 붙어 있긴 했습니다만, 실제로 제가 뭘 가르치긴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옆에서 브루노 단장이 말을 보탠다.
“대륙의 내로라하는 검사들을 여럿 만나봤지만, 아직까지 로건 황자님만 한 재능을 본 적은 없습니다. 어쩌면 동부 최강의 검, 가엘 장군을 넘어설지도 모른다고 종종 생각했었죠.”
가엘 장군이 누구냐는 성진의 질문에 그는 당대 최고의 천재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안타깝게도 오르토나 내전으로 전사했지만, 검재로 따지면 대륙 최고라고 평해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전무후무한, 그야말로 기사 중의 기사였죠.”
그러자 마사인이 옆에서 헛기침을 했다.
“대륙 제일의 기사는 발타자르 님입니다, 브루노 단장.”
“물론 발타자르 님이 제일의 기사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분의 업적은 이미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릴 만하니까요. 그러나 대륙 최연소 소드 마스터로 기록된 것은 바로 가엘 장군 아닙니까? 단지 제가 오르토나 출신이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닙니다.”
뭐, 그 기록도 곧 깨질 것 같습니다만, 하고 브루노 단장은 말을 이었다.
“이대로라면 로건 황자님은 아마 대륙에서 가장 어린 소드 마스터가 되실 겁니다. 성황 폐하께서 언제 소드 마스터가 되셨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두 분은 아예 검술을 시작한 나이가 다르니까요. 어쩌면 폐하보다 훨씬 빠르게 경지에 오르시지 않을까요?”
소드 마스터는 오러 연공과 검술의 극의를 동시에 이룬 경지.
소드 마스터가 아닌 데카론 나이트는 있을 수 있으나, 데카론 나이트가 아닌 소드 마스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경지에 로건 황자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도달하리라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했지. 자신이 잘하는 이유는 예전에 배웠기 때문이라고.
“…….”
어째 로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가 빙의자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그저 단순한 가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진이 눈썹을 슬쩍 찡그리고 생각에 잠겨 있자니, 뭔가를 오해했는지 마사인이 달래듯 덧붙였다.
“물론 저하께서도 대단하십니다. 오러를 쌓는 속도 하나는 정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는군요. 그 로건 황자님도 하루 만에 오러 층을 이렇게 늘리지는 못하셨습니다.”
오러 6층에서 7층 언저리로의 급격한 변화.
그러나 다행히도 성진의 몸 상태는 크게 이상이 없다고 마사인이 확답해 주었다.
주위의 오러 활성이 안정적인 것을 보면, 갑자기 늘어난 오러가 전혀 신체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나.
그는 하루 만에 오러를 비약적으로 쌓아온 성진을 보고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성황이 또 뭔가를 했나 보다 생각할 뿐이었다. 성진을 치료할 때 성황의 주위에서 한동안 오러의 소용돌이가 머물렀다고 하니, 아마도 그 양반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근데 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는데, 왜 발타자르 경을 대륙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하는 거야? 아무리 봐도 난 발타자르 경보다는 아버지 쪽이 강한 거 같은데.”
성진의 물음에 마사인과 브루노 단장이 동시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야 성황 폐하가 아니십니까?”
“폐하는 폐하십니다.”
…아, 성진은 깨달았다.
이 두 사람에게 성황은 이미 인간의 범주가 아니구나.
어쨌든 성진은 조금 안심하고는 명상에 돌입했다.
뭐,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로건에 대해 고민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곧 황도로 돌아온다니, 나중에 그를 만나보면 뭔가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성진이 한참을 집중하고 있으니, 살랑살랑 그를 감싸고도는 바람이 주위의 기사들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뚜렷해졌다. 이제는 대부분의 상주기사들이 황자가 보여주는 이 기이한 광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다.
“명상만 하면 오러가 실체화되는 지경이니 저렇게 빨리 층을 쌓는 거겠지?”
마리아 경이 혀를 내두르자, 옆에서 검을 손질하던 쿠르트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에 오러를 흡수하고 순환하는 양 자체가 다르다는 거다. 역시 성황가의 핏줄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거겠지.”
비단 모레스뿐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 창술의 대가 딤로스 부관으로부터 보기 드문 재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멜리아 황녀.
대륙에서 가장 어린 소드 마스터가 되리라 여겨지고 있는 로건 황자.
그리고 처음 입궁 당시에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최근 남부 전선에서 괴물 같은 무위로 명성이 자자한 오웬 황자까지.
“음… 뭔가 갑자기 의욕이 사라집니다.”
하벤이 시무룩하게 말하자 일순 연무장 전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황궁 기사단에 입단했다는 것은 어디서도 검술 재능으로는 크게 밀리지 않는다는 의미.
그러나 아무래도 저런 천재들의 앞에서는 그들도 한없이 작아지고 마는 것이다.
“…수련이나 하자.”
“에휴…….”
그들은 털레털레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