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Rune Book 3: Bloodied RAW novel - Chapter (102)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103화(103/143)
103화. 추리극장의 배우들 (30)
“그런 셈이잖아. 그럼 그 이상 뭘 바랐는데? 이제 와서 내가 생초보 붙들고 검이라도 가르쳐 줄 것 같았어?”
이스핀이 한쪽 입술을 올리며 피식 웃는 바람에 막시민은 자존심이 상했고, 모르는 체하며 옆방 쪽으로 걸어간 이스핀은 캐비닛을 발로 밀어내고 문을 열어주었다.
“됐어. 이제 나와.”
청어절임이 얼른 고개를 내밀더니 물었다.
“야아, 누가 이겼어요? 이긴 쪽 편들자.”
“이기긴 뭘 이겨. 전쟁 났어? 그럼 난 간다.”
이스핀이 입구로 척척 걸어가자 청어절임이 다시 고개를 뺐다.
“그냥 가요? 무슨 볼일 있어서 왔던 거 아니에요?”
이스핀은 문을 열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한 손만 번쩍 들어 흔들었다.
“공주님 안전한 거 알았으니 볼일 끝났어. 내일 보자.”
쾅, 문이 닫혔다.
이튿날은 아침 9시에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모두 자고 있던 셋은 누가 대신 일어나지 않나 고개만 살짝 들고 두리번거렸지만 당연한 것처럼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 아침에 찾아올 사람이라고는 이스핀밖에 없을 것 같았다. 펠그레이브 저택에 가보기로 했으니 오긴 와야겠지만 왜 꼭두새벽부터(다시 말하지만 9시였다) 이렇게 부지런한 거냐고 투덜대며 억지로 일어난 막시민은 잠시 머리를 싸쥐고 있다가 얼굴을 몇 번 문지르고는 입구로 걸어가 물었다.
“아 네, 누구십니까?”
“여기가 플레상스 경이 계신 곳이 맞습니까?”
이건 또 뭔가 싶어진 막시민은 옷을 갈아입기도 귀찮아 코트만 집어 걸치고는 문을 조금 열었다. 처음 보는 늙수그레한 남자가 서 있는 걸 보자 저절로 ‘넌 또 뭔데?’ 하는 표정이 튀어나왔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물었다.
“안녕하신가요? 여기가 305호 맞죠? 건물이 말이야, 구조가 이상해가지고. 옆방인가 하고 두드려봤는데 거긴 비었더라고요?”
“그래서 플레상스 경한테 무슨 볼일이슈?”
“그야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문득 졸음이 달아나며 정신이 돌아왔다. 잠깐, 이 사태는 뭐야. 설마…….
막시민이 미간을 팍 찡그린 채 어느 뻔뻔스러운 인간의 실실 웃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는데 상대는 어느새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안쪽의 망가진 가구 모음전을 보고는 어리둥절해져서 주위를 두리번대다가 이스핀이 새로 사 온 의자와 테이블을 발견하고는 냉큼 거기에 앉았다.
“아니, 누가 거기 앉으랬습니까?”
“아니, 그럼 여기 말고 어디 앉아요?”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
아침부터 깨운 것도 짜증나고, 새로운 손님은 안 받는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못 들은 체한 놈도 짜증나고, 그래서 찾아왔다는 인간이 뭐 맡겨놓은 당당하게 구는 것도 짜증나고 하여튼 모든 게 짜증났으므로 막시민은 문을 활짝 연 다음 말했다.
“나가세요.”
“응, 왜?”
“9시니까.”
그런 다음 의자 등받이를 잡고 질질 끌어당겨서 복도 앞에서 뒤쪽만 살짝 세우는 방법으로 짐짝 내놓듯 그놈을 내쫓았다. 도로 문을 닫고 잠근 뒤 막시민은 천상의 잠을 선사해주는 의자형 침대로 돌아가 한 시간쯤 더 잤다. 그사이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던 것 같지만 이번에는 그냥 무시했다.
그런 식으로 한 시간쯤 더 자고 10시경에 슬슬 일어나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고 있을 때였다. 또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때쯤에는 데보라와 청어절임도 일어나 있었으므로 막시민은 기막힌 눈빛으로 그들을 돌아보며 한탄했다.
“대체 이놈의 방은 3층에 있는데 길가 노점이나 되는 것처럼 별별 놈들이 기웃대는 이유가 뭐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 방 앞으로 지나가는 새 길이라도 났냐?”
“그런 길이 났다면 우리 방을 통과해서 저 창문으로 뛰어내리기라도 해야 하는 모양이죠.”
데보라가 중얼대면서 일어나 창문을 열러 갔다. 이번에는 청어절임이 문 앞으로 가더니 마치 막시민처럼 말했다.
“여기 노점 아니고, 길 묻는 데도 아니고, 창문으로 뛰어내리려는 사람도 취급 안 하니까 그 외의 볼일이라면 말을 하든가요.”
“여기 플레상스 경이라고 계신가요? 전해드릴 게 있어서 가져왔는데요.”
아, 하며 청어절임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밖에 서 있던 세 명의 사람들과 차례로 눈이 마주쳤다. 그중 맨 앞에 선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달걀 꾸러미를 내밀었다. 청어절임이 물었다.
“이게 뭔데요?”
“플레상스 경에게 빌렸던 달걀입니다. 정확히 열두 갠데, 세어보시든가요.”
건네줬으면 볼일이 끝났을 텐데 그렇다고 가지도 않았다. 청어절임은 달걀 꾸러미를 갖고 들어가 막시민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열두 개래요.”
“뭐가 열두 개야?”
“달걀요.”
“그러니까 달걀이 왜…….”
그러는 사이 세 사람은 어느새 안으로 들어오더니 또다시 이스핀이 적절히 마련해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그들은 마치 일행이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잡담을 주고받았는데 마치 다 함께 문밖에서 한 시간쯤 대기하기라도 한 것처럼…… 설마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