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Rune Book 3: Bloodied RAW novel - Chapter (103)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104화(104/143)
104화. 추리극장의 배우들 (31)
“자, 잠깐, 그런 법이 어디 있나! 기다려봐! 이 날씨 좋은 오후 1시 멀쩡한 대낮에 대로변에서 칼부림이 말이 되나! 금화는, 그러니까…… 난 그저 중개 및 알선을 하는 사람일 뿐이야! 중개 수수료는 높아봤자 1할이라고!”
막시민이 대꾸했다.
“그건 당신이 중개란 걸 할 때 얘기지. 당신이 한 건 중개가 아니라 직접 처리하기 귀찮은 일을 나한테 떠넘긴 것뿐이잖아?”
베네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중개가 본래 그런 건데?”
이러니 소리를 지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니다, 이 베네트 같은 놈아!”
“첫 번째!”
“살려줘!”
이스핀이 한 손을 짚으며 몸을 솟구쳐 책상 위에 올라서자 베네트는 사무실 구석에 놓인 옷걸이 밑으로 도망쳤다. 그런 채로도 계속해서 웅얼댔다.
“그러고 보니 중개 수수료는 중개인이 떼야지 왜 피중개인이 받아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거기다가 나는 방도 빌려줬고 그 방을 원래대로 세를 놓으면 월 300엘소는 받아야 되고 손님이 한 명당 30엘소를 낸다 쳤을 때 그걸 모아서 월세를 충당하자면 정확히 열 명인데…….”
드디어 본심이 나왔다. 저런 인간이 공짜로 뭘 줄 리 없다 싶으면서도 이런 계획을 세웠을 줄은 예상 못 했는데. 나름대로 계산도 정확히 해서 하루 만에 본전을 뽑으려 했다는 것이 더 어처구니없었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왔던 손님들한테서도 최소한 1할씩 수수료를 떼어 갔을 테고 이게 바로 창조적 영업의 세계네. 어차피 창고로나 쓰던 방에 문만 따주면 알아서 가구 틈에 끼어 자다가 청소도 해놓지 비품도 사다 놓지, 거기다가 소문만 조금 퍼뜨려주면 수수료까지 술술 벌어다주는 마법이라니.
중개업자도 마법사의 일종이라고 왜 지금까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거냐?
거기까지 생각한 막시민은 눈썹을 찡그리며 옷걸이 밑을 향해 손짓했다.
“이봐. 그만 기어나와서 똑바로 된 얘기를 해봐. 이런 짓을 해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그게 말이야……. 당신은 보기 드문 인재잖아. 그런 재주를 가졌으면서 놀고먹으면 쓰나? 물론 놀고먹는 게 아니라 당신 할아버지를 찾을 거지만 그 어르신이 그렇게 쉽게 가실 분이 아니라서…… 뭐 그렇게까지는 걱정이 안 되는…… 그런 분이잖아? 그리고 어차피 기다리고 있으면 저쪽에서 다 알아서 접근해올 거 아니야?
그사이에 시간도 남는데 용돈벌이 좀 하면 뭐가 어떻게 되냐고. 그 뭐냐, 아들 녀석이 가출했다는 양반이랑, 품삯 후불이라 해놓고 선불이라면서 이미 줬다고 우긴다는 사람이랑 그런 거, 당신이라면 몇 마디로 해결해줬을 거 아니야?”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열두 살 먹은 애가 닷새째 집에 안 들어오는데 왜 그걸 가출이라고 보냐고 한마디했다가 그 애가 이유 모를 가출이 벌써 세 번째라는 말을 듣고 몇 가지 따져본 결과 가출도 실종도 아니고 새벽에만 집에 들어왔다가 나가고 있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주었고, 품삯 시비중이라는 식당의 조리 보조에게는 다음달 품삯을 선불로 달라고 해서 받은 다음에 잠적해버리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이 모두가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던진 말이었지만 상대방은 그럴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고 막시민에게는 40엘소가 생겼다. 날마다 이런 식이었다면 플레상스 경은 일지에도 기록할 필요가 없는 시시한 조언 팔이로 꽤 살기가 좋았을 듯했다. 그래서 집도 그렇게 멀쩡했던 모양이지. 아참 지금은 아니지만…….
하지만 막시민은 그런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런 걸로 쓸데없이 이름이 나선 곤란했다. 심볼리온이 여전히 그를 찾고 있을 게 아닌가? 그자들도 마법사이고 충분히 똑똑하다면 로렐딘 교수가 플레상스 경을 찾아낸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금세 막시민을 찾아낼지 알겠는가?
그래서 막시민은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안 돼. 포기해.”
베네트는 옷걸이 밑에서 호소하듯 움켜쥔 양손을 내밀고 흔들어댔다.
“아니, 왜 안 되는데!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봐. 이름만 듣고 하루에 열 명이나 찾아오는 일거리가 흔해빠진 줄 알아?
켈티카를 우습게 보는데, 여기 얻어먹고 살기 쉬운 곳 아니거든? 처음 켈티카에 올라온 사람이 그 방처럼 버젓한 거처를 구하기까지 몇 년이나 걸리는지 아나?
그러기 전에는 저기 블루엣 강둑에 있는 이가 들끓는 불법 천막이나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잘렸나 안 잘렸나부터 만져봐야 하는 인심 사나운 거리에서 수십 명이 한집에 사느라 침대도 셋이서 돌려쓰거든?
애들은 울고, 싸우고 부수는 소리가 하루 종일 들려오는 그런 데서 사는 사람들이 당신 같은 재주가 있었으면 ‘그건 안 돼’ 같은 소리가 나왔겠어? 왜 그렇게 비싸게 구나 그래? 나한텐 사람 보는 눈이란 게 있고 이걸로 일거리를 찾아주면서 한평생 먹고 살아온 건데…….”
거기까지 말했을 때 막시민과 이스핀은 ‘켈티카가 겉보기만 번드르르하지 속은 심각하게 썩었네’라고 생각하는 외국인 같은 표정으로 베네트를 보고 있었다.
진짜 외국인과 설정상 외국인 모두 실감나게 그런 표정을 지었으므로 켈티카 토박이 베네트는 기분이 상했는지 말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건 그렇고, 플레상스 경을 찾는다고 했는데 그게 뭐, 그리 빨리 될 일은 아니지. 쇠의 왕이 데려갔다면서? 나야 그분을 직접 본 적은 없다만 소문이 아주 사납지 않나? 듣자니 그런 식으로 사라지고 나면 다시는 못 본 인간이 많다면서? 하지만 죽었을 리는 없지. 왜냐면…….”
아까 하던 말과 정반대되는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예의상 계면쩍은 표정도 짓지 않았다. 막시민이 무표정하게 물었다.
“왜인데.”
“당신을 찾고 있잖아. 플레상스 경을 죽이는 걸로 끝나는 일이었으면 손자를 왜 찾고 있겠느냐고. 켈티카 사람도 아닌 당신한테 달리 용건이 있을 리도 없고.”
“베네트 당신, 쇠의 왕이라는 작자에 대해 뭐 더 아는 것 있어?”
베네트가 슬쩍 눈치를 보았다.
“알려주면, 일거리 좀 보내도 되나?”
“아니. 대신 쟤들 퇴근시켜준다.”
막시민이 손가락을 뻗어 두 직원을 가리켰다. 구석에서 웅크린 채 눈치를 보고 있던 그들을 향해 베네트가 소리쳤다.
“야, 얼른들 튀어나가!”
직원들은 들어올 때처럼 쌩하니 달아났다. 베네트가 한숨을 내쉬며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말했다.
“짜게 굴긴……. 아, 아니, 알았어. 좋았어. 근데 내가 들은 건 다 소문뿐이라 근거는 없다는 걸 미리 말해둘게. 재밌는 데부터 해봐야겠지? 그분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얘기 중에 가장 흥미로운 건 나이가 백 살은 넘을 거라는 부분이야.”
“뭐? 그게 말이나 돼?”
막시민이 미간을 찡그리며 쏘아보자 베네트가 옷걸이 밑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내가 재미난 얘기라고 했잖아. 믿거나 말거나 그냥 들어봐. 이름만 들어도 알겠지만 쇠의 왕은 북부 철광지대 사람이야.
거기서 길드로 성공해서 큰돈을 벌었다고 그러는데 알다시피 요즘에는 길드란 게 거의 해체됐잖아? 길드의 시대 자체가 흘러간 옛날이라고. 그럼 그 돈을 벌었다는 때가 대체 언제일까 싶어지잖아.
그런데 말이지, 우리 할머니 어렸을 때쯤에 있었다던 수상쩍은 사건 얘기가 있거든. 문제의 길드에서 내분이 일어나서 두 파벌이 서로 마주쳤다 하면 칼부림을 벌이는 지경까지 갔는데, 철광에 얽힌 이권이란 게 예나 지금이나 원체 크니까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한쪽 파벌 사람들이 하룻밤 만에 마흔아홉 명이나 몰살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거야. 자연스럽게 적대 파벌이 이권을 모조리 차지하게 됐지.”
이스핀이 참견했다.
“사람이 그렇게 죽었는데 어떻게 적대 파벌은 처벌을 피했지?”
“증거가 없었대! 마흔아홉 명이나 죽이려면 쳐들어간 사람도 많아야 되는데 사람을 움직인 흔적이 있어야지. 침입한 흔적도 없고. 생존자도 없고, 도망 나온 사람도 없고. 심지어 저항한 흔적도 없더래. 마치 한꺼번에 심장마비라도 걸린 것처럼 그냥 다 죽어 넘어져 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광산에서 괴질이 돌았다는 둥 유령이 죽였다는 둥 말이 많았다는데 얼마 뒤에 길드의 수장도 갑자기 죽어버렸지 뭔가? 그러더니 길드 정책이 변해서 외부인이 접근도 하기 어려워지고, 일하던 사람들도 숱하게 일거리를 잃고, 심지어 새 길드장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가 없게 돼버렸어. 폐쇄 길드가 된 거지.
그 뒤로 소문이 수군수군 퍼지길 얼마 전에 길드에 쇳빛 얼굴을 가진 용병이 나타나고부터 그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들…… 그렇게들 말했다네.”
“쇳빛 얼굴?”
이스핀과 막시민 둘 다 똑같은 걸 떠올린 듯 표정이 심각해졌다. 하지만 베네트는 그 별명을 모르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밝혀지지 않은 길드의 수장도 그자일 거라고들 했다는데 뭐 아무도 얼굴을 못 봤으니 추측으로 그쳤지. 하여간 그후로 거의 이십 년이 흐르고서야 길드가 폐쇄 정책을 풀고 다시 제대로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거래선을 다 끊었는데도 그 밑의 광부들이나 기술자들이 조용히 있었다는 것도 이상하고, 길드가 건재했다는 건 더 이상한 일 아니야?
어쨌든 그즈음엔 쇳빛 얼굴 얘기도 잠잠해졌는데 몇십 년 뒤에 또 나오고, 다시 잠잠해지고, 이런 식으로 거의 이십 년 주기로 그 사람 얘기가 나왔다는 거야. 쇳빛 얼굴을 한 남자가 길드를 지배하고 있다고.
그게 다 같은 인물이라면 그자는 대략 칠십 년 전부터 길드를 차지했었다는 얘기가 되지. 당연히 나이는 백 살쯤은 될 거고.”
막시민이 고개를 저었다.
“억측이 심하네. 그냥 소문일 뿐이잖아.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사냐고. 그리고 어떻게든 놀랍게 안 죽었다 쳐도 백 살이면 지금쯤은 의자에서 일어나기도 힘들 지경이어야 되는데 멀쩡하게 자기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건 또 뭔 소리냐고.”
“그 당시 철강 길드에서 사람도 많이 죽고 그후로도 좀 수상쩍은 행보를 보이다 보니 길드장에 대해 괴담이 생긴 거 아닌가 싶은데. 철강 길드의 일이다보니 쇳빛이라는 소리도 나온 거 아니겠어?”
이스핀까지 그렇게 말하자 베네트가 답답하다는 듯 손을 휘저어댔다.
“내가 처음에 말했잖아. 길드라는 조직 자체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유명무실해. 현재 남아 있는 길드는 그냥 친목 모임에 가깝거든?
그런데 그분이라는 사람한테는 늘 ‘철강 길드로 성공했다’는 말이 따라다닌단 말이지? 대체 그게 언제 일이라는 걸까? 내가 얘기한 그 철강 길드도 해체된 지 오래란 말이야. 심지어 막판에는 그냥 흐지부지 얌전하게 왕가에 이권을 넘겨줬어.
근데 그 당시에 역대 길드 운영 기록이나 인명부 이런 게 한 장도 안 나왔다더라고. 마치 유령들이 길드를 지배하다가 사라져버렸나 싶을 정도로 말이야. 당연히 역대 길드장 이름도 밝혀지지 않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