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Rune Book 3: Bloodied RAW novel - Chapter (111)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112화(112/143)
112화. 차고 달고 쓴 동전 (5)
2. 5천 엘소짜리 영업
994년이 시작되면서 켈티카의 로크리 구에는 고민거리를 가진 남녀노소의 모임에 새롭게 추천되는 소박한 장소가 생겼다.
슈트루델 거리 9번지 3층 305호, 좀더 간단하게는 ‘망한 카페 3층’이라 불리는 그곳이다.
그런 추천에 그 방에 산다는 플레상스 경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 방의 진짜 주인인 베네트 씨의 의지만으로 벌어진 일 또한 아니었다. 혹시 그 방에 얹혀 사는 두 사람의 의지가 개입되었는가 하면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 방에 가끔, 아니 자주 들르곤 하는 은둔 남작의 비서는 논평 대신 이렇게 말했다. “누구의 의지였든 그런 일은 생각한 그대로 굴러가는 법이 없지.”
12월 말에서 1월에 걸친 며칠 동안 벌어진 일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오전 11시. 남의 집을 방문하기에 더없이 예의 있는 시각에 베네트의 사무실에서 건네받은 쪽지를 들고 나타난 아주머니는 얼어붙어 미끄러운 슈트루델 거리를 끝에서 끝까지 두 번 왕복한 끝에 카페 플로레종의 폐허 옆구리에서 9번지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아주머니는 건물을 한 바퀴 돌며 입구를 찾았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먼지 쌓인 카페 안에 찍힌 발자국이 아주머니의 눈길을 끌었다. 앞서간 자들이 남긴 표지였다.
아, 이 정도 추리력은 있어야 탐정님을 만나 뵐 수가 있는 거군.
그렇게 생각한 아주머니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 3층으로 가는 좁다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단이 너무 가파르고 본 게임에 이르기도 전에 거리를 두 번이나 왕복하는 바람에 근성이 바닥난 아주머니는 씨근덕대다가 마침 문패가 떨어지고 없던 301호의 문을 두드려댔다.
작업실로 쓰겠다며 방을 빌렸지만 왜인지 잠도 거기서 자고 있던 301호 남자는 늦잠을 방해받아 신경질을 내면서 이 건물에 천재적이고 점잖으면서 상담료도 저렴한 탐정이 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때 마찬가지로 늦잠을 잔 305호의 남자가 등장했다. 막시민은 아침나절에 팔다 남았을 빵을 싼 값에 사냥하러 길 건너 빵 가게에 가려던 참이었다.
막시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품을 하며 두 사람의 곁을 지나쳐 아래로 내려갔다. 아주머니의 바구니에 갓 구워 맛있는 냄새를 솔솔 풍기는 막대기 빵 두 개가 꽂힌 것을 곁눈질하면서.
등뒤에서는 천재적인 탐정이란 작자들은 여기처럼 싼 맛에 사는 망한 카페 3층 따위가 아니라 치안청 근처의 번듯한 집에 살고 있을 거라는 말이 약간의 삿대질과 함께 들려오고 있었다.
잠시 후, 빵 사냥에 실패한 막시민이 빈손으로 돌아왔을 때 3층 복도는 조용했고 아주머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막시민은 만족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며 305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테이블 앞에 앉은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이보쇼?”
그런 다음 어슷하게 자른 막대기 빵에 치즈와 돼지 뒷다리햄을 얹어서 먹고 있는 두 인간을 쳐다봤다. 그들은 콩 자루 속에서 발견된 생쥐처럼 코끝을 움찔대면서 막시민의 빈손을 힐끔거렸는데 아마도 막시민의 사냥 실패를 예상했다는 뜻인 것 같았다.
어쩐지 빈손으로 올 것 같은 냄새가 십 분 전부터 나더라고요.
막시민은 팔짱을 끼며 둘을 노려봤다.
“빵 드신 분들끼리 상담도 알아서 하시지?”
“아니 잠깐 그게 말이죠. 들어보니 사연이 참 안타깝고…… 빵도 맛있고…….”
잠시 후, 청어절임은 찻잔 겸 술잔 겸 물컵을 찾아내어 차 두 잔을 끓여 왔고 막시민은 같은 샌드위치를 씹으며 상담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구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내 아들이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긴 지가 팔 년이거든요. 그 애가 어디에 있는지, 살아 있긴 한지 그것만이라도 알면 소원이 없을 텐데…….”
막시민은 적당히 넋두리를 들어주다가 샌드위치를 다 먹을 즈음에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라고 하며 내쫓을 생각이었지만 몇 마디가 오간 후, 기가 막힌 표정이 되어 먹던 샌드위치까지 내려놓고 아주머니와 다투고 있었다.
주제는 대충 ‘그딴 식으로 하니까 애가 집을 나가지.’
약 한 시간 뒤 막시민은 약간 굳어진 샌드위치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나서 사흘쯤 뒤에 다시 오라고 하고는 아참, 하면서 막대기 빵을 어디에서 샀는지도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도 아참, 하면서 상담료가 얼마냐고 물었고 막시민은 그날 해줄 말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다고 대꾸했다.
사흘 뒤, 아주머니는 막시민에게 200엘소를 지불했다.
아들을 찾았기 때문이다. 아들은 먼 곳도 아니고 아주머니의 집과 고작 서너 블록 떨어진 곳에서 어느새 결혼까지 해서 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죽은 게 아닌가 싶던 아들을 되찾고 며느리를 얻은 데다 귀여운 손자까지 한 명 생겼다.
그리고 막시민에게는 막대기 빵 무료 이용권이 생겼다. 막대기 빵을 파는 가게 주인은 아주머니의 사촌이었다.
아주머니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아니, 신기해했다. 아주머니가 보기에 막시민은 아주머니에게 쓸데없는 질문 몇 가지를 하고, 집에 한 번 와보고, 집 주변 거리를 좀 맴돈 것밖에 한 일이 없었다.
막시민은 아주머니의 옷차림이나 말씨나 지난 일을 회상하는 방식, 집안의 자금 및 상속 문제, 아들이 남기고 간 물건, 동네 사람들의 엇갈리는 의견 등에서 아들이 집을 나간 이유 및 멀리 가지 않을 이유 등을 추측했다고 구구절절한 설명을 해주는 대신 이렇게 대꾸했다.
“아,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이런 일이 소문이 나지 않을 리 없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베네트는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절대로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자기는 첫날 열 명, 둘째 날 일곱 명을 보낸 것 말고는 장부를 뒤져 손님을 창출하는 행동을 완전히 중단했다는 거였다.
그 이유는 플레상스 경의 단짝인 은둔 남작의 무적 비서 콜롱브 군이 잠깐 빌렸던 장부를 이튿날 되돌려주러 들른 김에 친절하게도 장부마다 새 제본용 구멍을 뚫어주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제본은 튼튼했으므로 새 구멍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콜롱브 군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으므로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달까. 비록 그 구멍이 장부 한가운데 뚫린 것일지라도…….
그러므로 305호 앞 복도에 손님이 열 명 가까이 진을 치게 된 데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을 뿐이었다.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입소문.
막시민은 베네트의 멱살을 잡고 이걸 멈춰보라고 윽박질렀지만 베네트는 ‘아니, 내가 나라님도 아니고 켈티카 시민들의 자발적인 이동 및 모임을 어찌 막겠으며 그나저나 앞으로도 일이 잘될 것 같은데 내가 선금으로 5000엘소 정도 챙겨주면 어떻겠는가’라고 말해서 막시민의 말문을 막고 말았다.
5000엘소라니.
막시민이 지금껏 순수한 제 힘으로 벌어본 가장 큰 돈이 막대기 빵 아주머니가 지불한 200 엘소였다. 그런데 5000엘소라니. 누구에게 빌린 것도, 훔친 것도, 적선받은 것도 아닌 5000엘소라니.
그런 돈이라면…… 고향의 동생들에게 보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자그마치 5000엘소라니.
베네트는 이런 추세라면 선금 5000엘소를 갚는 데 두 달도 안 걸릴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두 달이라면…… 그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긴 한데……
심볼리온의 마법사님들은 물론 뛰어나시겠지만…… 드넓은 켈티카 한구석에서 영업을 막 시작한 고상한 신사 플레상스 경이 네냐플에서 도망쳐 나온 낙제생 리프크네라는 사실을 눈치채기에는 다소 모자란 기간 아닐까? 그에 반해 5000엘소란…….
돈이 만들어낸 놀라운 자기합리화와 더불어 5000엘소가 든 주머니가 오가고 고작 사흘 뒤, 막시민은 갑자기 로크리 구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하루를 절반으로 나눠서 오전은 돈벌이에, 오후는 사건 조사에 쓴다는 멋진 계획을 세웠지만 세상 일이 계획대로 풀리기란 쉽지 않은 법이었다.
305호 앞의 복도는 아침부터 세 명이 점거한 상태였다. 그들은 늦잠 자는 막시민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자 했지만 장소가 좁다보니 시선 둘 데가 없어서 그만 쓸데없이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왜 쳐다보느냐고 주먹다짐을 나누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자 서로의 용건을 물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 되었다.
첫 번째로 온 남자는 집을 나간 노모를 찾는다고 했고, 두 번째로 온 여자는 결혼반지가 없어졌는데 며칠 전 집에 초대했던 손님들 중 하나가 훔쳤다고 믿고 있었다. 세 번째는 모닝코트를 차려입은 나이든 신사였는데 어떤 귀한 분의 의뢰로 왔다고만 할 뿐 용건은 밝히지 않았다.
전날 늦은 밤까지 돌아다닌 막시민은 오후 12시가 되어서야 밖이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그러자 어느새 열두 쌍으로 불어난 눈들이 호구 조사와 사연 수집을 뚝 그치고 그를 올려다봤다.
막시민은 배가 고팠고, 머리도 아팠고, 저들에게 할애하려 한 하루의 절반이 이미 거의 날아갔으므로 즉석에서 규칙을 만들어 선언했다.
“아, 상담은 하루에 두 명까지만 받고 있습니다.”
그러자 열두 명이 옥신각신 난리가 났다. 막시민은 그 틈에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어 넘기고, 등뒤에서 청어절임이 주워다 준 재킷에 팔을 꿰다가 문설주에 본의 아닌 주먹질도 하고, 같이 건네진 천조각으로 안경을 닦다가 그게 크라바트임을 깨닫고 목에 대충 감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옥신각신이 그치지 않자 두 번째 규칙을 만들어 선포했다.
“먹을 거 있는 분? 아, 거기. 들어오세요. 예의가 되셨네.”
시나몬 롤과 우유 한 병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1등이 된 남자는 안으로 들어와 앉자 석 달 전에 잃어버린 개에 대해 눈물을 찍어내어 가며 설명했다.
막시민은 시나몬 롤을 순식간에 다 먹고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남자도 막시민을 빤히 보다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담뱃갑을 꺼내 내밀었다.
“그건 됐습니다. 아참, 당신도 피우지 마슈.”
막시민은 열심히 일해서 5000엘소를 빨리 갚을 작정으로 주의깊게 메모를 했다. 남자의 주소와, 시나몬 롤을 어디에서 샀는지와, 개를 마지막으로 본 곳 등도 물어봤다. 그런 뒤 사흘 후에 오라고 했다.
남자가 나가자 그사이에 협의를 마쳤는지 두 번째 손님이 즉각 들어왔다. 그 사람은 종이봉투에서 커스터드 크림 파이를 꺼내 정중하게 테이블 위에 얹어놓았다.
이런 날이 반복되자 상담료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계단 맨 윗단은 내가 사흘 전부터 맡아둔 자리임’ 따위의 말다툼을 날마다 중재해야 할 판이었다.
밤마다 뭔지 모를 예술을 하느라 늦잠을 잔다는 301호의 남자는 복도에서 떠드는 손님들과 다투다가 한 손님과 마주치더니 질겁하며 제 방으로 도망쳤다. 손님은 그에게 계약금을 떼인 출판업자였다.
그래서 막시민은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사건을 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