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Rune Book 3: Bloodied RAW novel - Chapter (3)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3화(3/143)
3화.
공녀와 탐정 (3)
당연히 대공도 그리 탐탁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러나 샤를로트의 의지가 워낙 확고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샤를로트는 계승권과 거리가 먼 존재였다. 대공의 맏아들이자 모든 면에서 흠 잡을 데가 없는, 베르나르 대공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공도 어린 딸의 고집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적당히 하다가 힘들면 그만두어도 된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이면서.
대공은 어린 딸의 고집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몰랐던 것이 틀림없었다. 열다섯 살이 된 샤를로트는 그간 네 번의 시험을 통과하고 최종심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최종심은 수년에 걸쳐 되풀이해 응시한 끝에 통과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어쨌든 이제 와서 포기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 버렸다.
그리고 오를란느에는 이제 베르나르 대공자가 없었다.
지난여름, 의문의 실종 사건이 벌어지며 베르나르 대공자는 사라졌다. 대체 왜인지, 누가 연루됐는지, 흔적도 남지 않은 말 그대로의 실종이었다. 두 달에 걸친 대대적인 수색 끝에 발견된 것은 찢어진 머플러 한 조각과 두 동강이 난 칼집뿐이었다.
시체를 찾지 못했기에 아직 장례는 치러지지 않았다. 청천벽력 같은 사태로 충격에 빠진 대공에게 누구도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라고 권하지 못했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난 지금, 대공자가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1순위 계승권자는 당연히 샤를로트였다.
아직껏 대공위 계승자가 에투알이었던 예는 없다. 에투알은 본래 근위대였고, 따라서 지켜야 할 대상이 소속될 필요는 없었다. 샤를로트가 대공녀가 된다면 에투알 최종심에 도전할 것이 아니라 에투알의 충성 서약을 받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대공이 베르나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다음 계승자 문제를 처리하자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샤를로트는 아직도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누구도 ‘샤를로트 공녀가 에투알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 말은 곧 ‘베르나르 대공자는 죽었다’와 같은 뜻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임무를 수행할 순서가 왔고, 예외를 허락하지 않는 단장이 그대로 수행을 명해 샤를로트는 공녀로 살았다면 일생 올 일이 있을까 싶은 북방의 섬까지 따라왔다. 그것도 누구의 호위도 받지 못하는 수련병 자격으로. 로랑은 쓴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갑작스레 사랑하는 오빠를 잃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대공녀가 되느냐 마느냐, 에투알을 그만두느냐 마느냐, 그런 중대한 결정들이 들이닥치고 누구도 판단을 도와주지 않았기에 이런 곳까지 와 있는 열다섯 살 소녀의 머릿속은 어떨까.
동굴이 끝이 났다. 저만치 물이끼로 번들거리는 계단과 돌문이 보였다. 안내인 두 명이 먼저 계단에 올라섰다. 한 명이 횃불을 건네받고, 빈손이 된 나머지 한 명이 돌문을 바라보더니 두 팔을 벌려 춤 비슷한 동작을 느릿느릿 취했다. 동시에 무어라 중얼거렸다. 마법 주문일지도 모르지만 로랑도 크루파드도 알아듣지는 못했다. 이곳 사람들은 공용어를 쓰지 않았다. 통역을 통하지 않으면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기에 로랑은 버릇처럼 문을 살펴봤다. 모양을 보니 우측으로 열릴 테고, 닳은 흔적이 없는 걸 보면 자주 여닫는 것 같진 않았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동굴은 해안과 섬 내륙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도 조금 불편했지만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곳에 있는 문이라면 날마다 사용해서 닳아 있는 것이 보통 아닐까?
심지어 손잡이도 없는 걸 보면 수동으로도 열지 못하는 듯했다. 뭘 감추자고 이런 거창한 문을 만들어 달아놨을까? 아니, 여기가 유일한 통로라는 말부터가 사실일까? 아니라면, 왜 이런 데로 굳이 인도했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문이 느리게 열리기 시작했다. 로랑의 추측대로 오른쪽으로. 먼지와 돌가루가 흩날렸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빛이 흘러 들어왔다. 지금이 3시 즈음이던 가? 그렇더라도 왜 이렇게 밝지?
문이 반쯤 열렸을 때, 안쪽에 있던 자들은 사실상 시각이 마비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모두 수그려!”
크루파드의 외침이 울리는 것과 함께 수련병들은 일제히 몸을 낮추었다. 그 외침보다 조금 빨리, 로랑은 샤를로트를 껴안다시피 하며 벽 아래의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그 직후 머리 위로 수백 마리쯤 되는 작고 검붉은 것들이 날아 지나갔다. 눈이 아릿해서 형체가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그때 크루파드가 다시 명령했다.
“건드리지 마라!”
이미 몇 명이나 검을 뽑던 찰나였다. 그러나 명령은 어김없이 지켜졌다. 로랑은 겨우 시선을 내려 품 안의 샤를로트를 보았다. 샤를로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로랑을 빤히 보다가 눈썹을 올렸다.
“이게 무슨 짓이죠?”
귀족들은 아랫사람을 꾸짖을 때 꼭 저런 표정이지, 라고 로랑은 시니컬하게 생각하다가 샤를로트의 말 뜻이 그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샤를로트는 몸을 빼내더니 기다시피 움직여 로랑과 자리를 바꾸었다. 그리고 말했다.
“제가 지켜드리는 겁니다.”
“…….”
로랑보다 키가 한 뼘은 작은 샤를로트가 도사려 앉은 뒷모습을 향해 당혹스런 시선을 보내던 로랑은 다시 한번, 이 황당한 사단을 어찌해야 하느냐는 것처럼 크루파드를 건너다봤다. 크루파드는 그쪽을 돌아보지도 않았지만 뒤통수에도 눈이 있는 것처럼 한 손을 펴 내밀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라고.’
그런 채로 수련병들을 향해 명령했다.
“곧 돌아온다. 준비해라. 신호하면 안쪽으로 달려간다. 첫 번째 모퉁이까지. 가로막는 것은 공격해도 좋지만, 달리는 것을 우선해라.”
안내인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밖은 그야말로 고요했다. 어떻게 된 걸까?
그걸 확인하자면 밖으로 나가보는 수밖에 없겠지만 크루파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어둡고 축축한 동굴 통로를 한참 동안 걸어왔다. 밖은 환하다. 쫓아나가 누구든 붙들고 대체 어떻게 된 사정인지 캐묻고 싶다.
이렇듯 누구든 나가고 싶어지는 순간에는? 나가면 안 되는 법이지.
어느새 빛이 눈에 익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어둠 속을 봐야 했다. 모두가 뚫어져라 동굴 안쪽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오던 통로의 구조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동굴은 창자처럼 구불구불했지만 꼭 세 번 크게 꺾어졌다. 이제 돌아간다면 왼쪽으로 꺾어질 첫 번째 모퉁이 우측에는 입구가 좁고 안쪽이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제법 괜찮은 위치다.
로랑은 벽을 등지고 서서 동굴 안쪽과 바깥쪽, 그리고 눈앞의 공녀를 동시에 주시했다. 그러면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생각해봤다. 물론 답은 없었다. 누구든 설명해주기 전에는. 안내인 놈들을 붙잡았어야 했나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잡았다 한들 말이 안 통하니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졸지에 자기가 한 말대로 위험수당을 타게 되어버린 로랑은 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이 따위 예지력은 전혀 필요 없는데 말이지?”
그때 뭔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크루파드가 신호했다.
“지금이다, 달려!”
준비하고 있던 수련병들이 일제히 달려가고, 맨 뒤에서 크루파드와 로랑, 그리고 샤를로트가 달렸다. 이 와중에도 로랑과 샤를로트는 서로 자기가 맨 뒤에 서려고 다투었고, 로랑은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어도 말할 틈이 없어서 겨우 이 말만 했다.
“더 빨리!”
샤를로트가 코를 찡그리며 소리쳤다.
“지금 느린 게 누군데 그래요?”
그때 어둠 속에서 처음의 검붉은 무리가 맹렬히 날아와 머리 위를 지나갔다. 아까는 너무 밝아서였다면 이번에는 어두워서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샤를로트는 잠깐 속도를 늦추며 재빠르게 뒤를 돌아봤다. 입구에서 너무 멀어지기 전에 빛의 도움을 받아 정확히 봐두려는 생각이었다. 넓게 보고 빠르게 포착하는 에투알의 시야라면 잠깐의 일별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내심 박쥐가 아닐까 싶었는데 실체가 보이는 순간 샤를로트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저건 뭐지?
그건 마치 붉은 비단을 찢어 만든 새 같았다. 하나하나가 딱새처럼 작았지만 끊임없이 너울대며 형태가 변했다. 마치 불꽃처럼. 실제로 날개 끝에서 불티 같은 것이 떨어져 날렸다. 숫자는 대략 백여 마리? 그런데 서로 합쳐졌다가 떨어졌다가 하며 자꾸 변하는 느낌이 드는 게 미심쩍었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존재인가? 그렇다면 마법사가 멀리 있진 않을 텐데?
“샤를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