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Rune Book 3: Bloodied RAW novel - Chapter (35)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35화(35/143)
35화.
공녀와 탐정 (35)
그들이 조금 전까지 있던 식당에는 그들 외에 한 명밖에 없었다. 막시민이 나올 때까지 자고 있던 녀석들인데, 일어나자마자 식당 말고 어디로 갔을까?
“아침 산책이라도 하러 갔나 보지. 하여튼 이게 그 편지야. 받아.”
티치엘이 편지를 받아들자 막시민은 곧장 침실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옆 빌라에 사는 셸리가 문을 열고 내다보더니 티치엘을 발견하고 싱글대며 알은 체를 했다.
“헤이, 티치엘 안녕? 그런데 막시민 네가 웬일로 아침부터 나갔다가 들어오냐? 어젯밤에 빌라에 오긴 했었냐? 술 처먹고 딴 데서 잔 거 아냐?”
그러면서 둘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이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 싶은 듯 했다. 막시민은 눈을 가늘게 뜨며 대꾸했다.
“아침해가 떴으면 일어나서 아침을 처먹어야지. 너도 가서 해장에 끝내준다는 팬케이크 세 장 챙겨 먹어라. 우라지게 맛있으니까.”
“이 빌어먹을 놈이, 넌 감자나 처먹어라?”
손동작까지 해 보이려던 셸리는 티치엘이 ‘너 제정신이니?’ 하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자 대충 마법 수인인 척 무마했다. 티치엘을 화나게 하면 무조건 화나게 한 인간의 잘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근데 아까 연구생 선배들이 너네 빌라에 들이닥친 거 아냐? 엄청 요란하게 문을 걷어차던데.”
“연구생? 연구 과정 선배들 말이야?”
티치엘이 되묻는 사이 막시민은 갑자기 잠이 번쩍 깼다. 연구생?
“응. 선배들이 뭔 일인지 엄청 화가 났더라고? 그래서 보리스랑 루시안이랑 지금 연행돼 갔다?”
티치엘은 막시민을 봤다. 막시민은 복도 맞은편 벽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보는 건 아니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구생 선배가 아침부터 화가 나서 쫓아와? 이 방으로?
막시민은 그제야 복도를 두리번거려 보고 빌라로 돌아가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활짝 열린 루시안의 침실에 팽개쳐놓은 잠옷이 보였다. 급히 뛰어나간 기색이 역력했다. 도로 나온 막시민은 문을 확 밀어 닫다가 문틀에서 이탈시키는 바람에 간신히 도로 맞춰 잠가놓고는 셸리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어디로 갔는데? 지도실?”
7. 킵더스트
그리하여 지도실은 갑자기 붐비게 되었다.
지도실을 담당하는 브리짓 콜러 교수는 조교 노릇과 부교수 노릇을 도합 십오 년이나 한 끝에 드디어 정교수가 되었다는 인내심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어딘가 약간 망가진 것 같은 인물이기도 했다. 깡마른 몸에 핀 십여 개로 떠받친 헝클어진 곱슬머리는 곧 무너질 것처럼 보였지만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었다. 이렇듯 외모와 이름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 학생들은 모두 그녀를 ‘브로콜리 교수’라고 불렀다.
막시민과 티치엘이 뒤늦게 도착했을 때, 먼저 가 있던 마리사와 연구생들은 콜러 교수에게 용건을 다 설명한 뒤였다.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어젯밤 10시에서 12시경에, 마리사와 엘제 둘이 쓰는 까마귀 빌라에서 마리사의 약초학 논문이 사라졌다.
그 논문은 마감 시한이 닷새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새로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흔치 않은 마법 물질’의 흔적이 까마귀 빌라로부터 도토리 빌라까지 이어져 있다.
그러므로 도토리 빌라의 누군가가 논문을 가져간 것이 틀림없다.
콜러 교수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런가? 그거 참 완벽한 주장이군. ‘임페라토르(Imperator) 조’가 썼다가 버린 시나리오처럼 말이야.”
임페라토르 조는 992년에 입학한 네냐플의 4대 불가사의 중 한 명인 조슈아 폰 아르님의 별명이었다. ‘임페라토르’는 조슈아가 직접 각본, 연출, 작사, 작곡, 제작을 맡았던 공연의 제목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비현실적으로 어마어마한 별명을 보면 알 수 있듯 근처에 얼씬대다가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되는 상대로 악명이 높았다. 이 년 동안 희생자가 이미 다섯 명을 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종자들은 여전히 많았는데 놀랍게도 콜러 교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 말을 들은 막시민이 발끈해서 말했다.
“걔가 이런 시시한 걸 썼겠습니까?”
“나도 그런 뜻에서 한 말이야.”
그러자 이번에는 마리사가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뜻이세요, 교수님? 제 얘기에 허점이 있다는 건가요?”
“허점이 없어서 곤란하다, 그 말이야. 너무 완벽해. 자, 그럼 이 아이들의 빌라에서 논문을 찾아내긴 했나?”
콜러 교수의 말은 종종 임페라토르 조 같은 데가 있었다. 즉,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듣는 사람의 이해력이 모자라서라고 인정하고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리사는 짜증을 누르며 대꾸했다.
“아뇨, 아직 수색은 못했어요. 교수님께서 허락을 해주시면 지금부터 찾아보려고요.”
그 말을 들은 막시민의 직감이 움직였다.
마리사는 논문을 되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어야 했다. 마감이 임박했다고 하니까. 그런데 도토리 빌라가 봉쇄된 것도 아닌데 여기부터 쫓아와 앉아 있다. 그 사이에 누군가가 논문인지 뭔지를 빼돌려버리면 어쩌려고?
다시 말해 문제의 논문을 찾는 것보다, 그걸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더 집중하는 것 같은데?
그리고 돌이켜보면 어젯밤 마리사는 그 논문을 태워버리려 했었다. 하지만 호이오크 교수의 포도주 파티에 가느라고 잠시 유보됐던 것뿐이다. 그런 논문이 밤새 잘도 사라졌다. 미움을 받아서 울며 도망이라도 갔단 말이야?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이런 말을 벌써 할 수는 없었다. 그러려면 막시민이 지난밤에 그 빌라에 들어갔다고 제 입으로 털어놓아야 하니까. 물론 그 모두는 쥬스피앙 때문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은 쥬스피앙을 끌어들 이지 않고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쥬스피앙은 지난밤에 필멸의 땅에 갔던 일에 대해 비밀을 지키라고 했다.
좋다. 어쩌나 조금만 더 보자고.
그래서 막시민은 상황 설명을 하고 보리스와 루시안을 돌려보내는 대신 나란히 앉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쪽을 택했다. 오해를 받게 된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중에 로글랑탱 파이라도 한 개씩 사주면 되겠지.
처음에 루시안은 막시민을 미심쩍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런 설명이 없자 자신도 막시민의 표정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간 루시안이 익힌 생활의 지혜에 따르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를 때는 막시민의 반응을 따라하는 것이 제일이었다.
이어 보리스가 둘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을 때 콜러 교수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자네들이 말한 ‘흔치 않은 마법 물질’ 말이야. 대체 뭐지?”
“그게 좀 말씀드리기가 곤란한데요…….”
“뭐가 곤란해? 너희가 말한 증거가 그건데, 뭔지 밝히지도 않고 이 문제의 진위를 판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마리사가 엘제를 돌아봤다. 엘제가 어쩌겠느냐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킵더스트입니다.”
그 순간 콜러 교수의 표정이 싹 달라졌다.
“뭐라고?”
막시민, 보리스, 루시안은 그게 뭔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교수의 반응을 본 마리사와 엘제는 쩔쩔매면서 서로를 마주봤다. 콜러 교수는 방금 전까지 얘기하던 문제 따위는 다 잊어버린 것처럼 마리사와 엘제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게 왜 너희 빌라에 있었지?”
“모, 모르죠. 저희가 어떻게 알아요? 저희가 그걸 가져온 것이 아니라, 단지 증거일 뿐이니까…….”
“그럼 너희는 연구생도 아닌 저 애들이 어디선가 킵더스트를 구해다가 교정에 흘리고 다녔다는 거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콜러 교수는 어느새 똑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 명을 돌아보더니 명령했다.
“너희는 방으로 돌아가. 이 문제는 종결됐다.”
“교수님!”
마리사가 벌떡 일어나려다가 겨우 자제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콜러 교수의 표정은 냉담했다.
“킵더스트가 일반 과정 학생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헛소리를 더 하고 싶으면 가서 유급 신청서나 써라, 마리사 베델라. 난 너희가 미제출 논문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서 그걸 너희 빌라에서 저 녀석들 빌라까지 골고루 뿌려 놨다는 쪽이 훨씬 더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너희가 하필 왜 저 아이들을 노려서 희생양으로 삼고 싶어 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야. 혹시 내가 그 점을 파헤치길 바라나?”
마리사는 눈가가 빨개진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즈음 막시민은 친구들에게 슬슬 가자고 손짓했다. 셋은 대충 인사를 한 다음 지도실에서 퇴장했다.
지도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티치엘이 얼른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벌써 나오다니?”
“끝났어. 가래.”
“뭐, 정말? 조사 종결이란 말이야?”
루시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응! 다 끝이야. 역시 정의는 우리 편이라니까! 정의는 이긴다!”
보리스가 루시안을 흘끗 보더니 중얼거렸다.
“그게 그런 문제였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티치엘뿐이 아니었다. 연구생 팀과 셉티무스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끝났다고? 그럼 논문은?”
그러자 루시안이 우쭐대며 대꾸했다.
“그야 제 발로 걸어서 난로 속에라도 갔나 보죠! 하여간 우린 이제 궁금하지가 않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런 다음 의기양양하게 복도를 빠져나갔다. 나머지 셋은 루시안처럼 명쾌한, 그러니까 단순해서 행복한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소 조심스럽게 인사 비슷한 것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지도실이 있는 남탑을 나와 각자의 기숙사로 헤어지기 전, 티치엘이 말했다.
“난 방에 가서 조사를 좀 해볼게. 이따가 점심 때 식당에서 만나자. 너희 셋 다. 12시에. 알았지?”
막시민이 나쁜 의미로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넌 그렇게 먹고도 세 시간 뒤에 또 먹을 게 들어가냐?”
“응, 세 시간 동안 할 일이 엄청 많거든! 네 덕택이야!”
티치엘이 동탑으로 들어가고 나자 막시민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거, 빈정대는 건가? 설마 티치엘이?”
이 년 동안 같은 학교를 다니다 보면 서로에게 배우는 게 있기 마련이었다. 어쨌든 막시민과 보리스는 북탑으로 올라갔다. 도토리 빌라 앞에 다다른 막시민이 문고리로 손을 뻗는데 보리스가 불쑥 말했다.
“무슨 일이 있긴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