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Rune Book 3: Bloodied RAW novel - Chapter (4)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4화(4/143)
4화.
공녀와 탐정 (4)
로랑의 외침이 울리자 샤를로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깐 생각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추론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전 상황에서 두 단계를 넘어가는 생각은 위험천만하다고 수없이 들었지만 샤를로트가 가장 자주 하는 실수가 이것이었다. 저도 모르게 추론으로 돌입해버리는 것이다.
로랑은 샤를로트 앞으로 뛰어나오며 막 입구 윗벽에 부딪혔다가 돌아오는 기묘한 새떼를 향해 왼손을 쭉 뻗었다. 흰 광채가 얼음 결정 모양으로 번지며 자라나더니 굳어졌다. 흐릿하게 비치는 벽 너머로 새떼가 수없이 부딪히고 밀려나는 것이 보였다. 로랑의 특기인 ‘결정 방벽’이었다. 에투알은 마법사가 아니었지만 마법사들이 실용적으로 주문을 압축해 만든 마법 특기를 하나씩 익히게 되어 있었다.
샤를로트는 얼른 돌아섰다. 결정 방벽을 등진 맞은편에 미처 지나가지 못한 새들이 둥글게 모여드는 중이었다. 이미 다른 수련병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둘은, 두 무리로 나뉜 새들 사이에 고립되어 있었다.
상황을 깨달은 순간 샤를로트가 소리쳤다.
“죄송해요!”
“소리는 안 쳐도 되고! 준비, 돌파한다!”
새들의 정체는 아직 몰랐지만 추론보다 빠른 행동이 나을 때가 있었다. 다행히 결정 방벽 너머에 많은 새가 갇혀서 앞에 남은 새들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로랑과 샤를로트는 당연한 것처럼 똑같은 자세, 에투알의 기본자세 1번을 취했다. 로랑은 왼손잡이, 샤를로트는 오른손잡이여서 마치 거울상처럼 완벽한 대칭 자세였다. 직후, 검을 뽑으며 달려나갔다.
로랑은 샤를로트의 발검이 자기보다 약간 빠른 것을 깨닫고 움찔했다. 비록 수련병에게 지급되는 검이 약간 가볍긴 하지만 샤를로트는 최종심에 도전해본 적도 없는 수련병인데?
로랑은 오른쪽, 샤를로트는 왼쪽, 일부러 맞춘 것 같은 짝이었고 실제로도 호흡이 잘 맞았다. 함께 연습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똑같은 판단으로 벽을 걷어차고 뛰어오르며 적의 밀도가 낮은 허공을 택하고, 검은 아래를 베어갔다. 놀랍게도 자연스럽게 가벼운 엇박자를 택해 서로의 검이 얽힐 소지마저 피했다. 상대가 수련병이라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의 감각이었다. 이런 건 미리 지시를 해둬도 맞추기 힘든데?
로랑은 내심 감탄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외쳤다.
“먼저 가!”
“제가 왜요!”
검이 스쳐가자 새들이 피하며 사방팔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살려는 의지가 있는 걸 보니 단순한 마력체는 아닌가? 둘 다 옷깃과 머리가 조금씩 탔지만 돌파가 목적이었으므로 그 정도면 충분했다. 위험 구간을 지나온 둘은 거의 동시에 착지하며 돌아섰다. 로랑은 샤를로트 쪽을 보지도 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라니까! 위험하잖아!”
“호위는 저예요!”
“그건…… 그 뜻이 아니잖아!”
공녀가 보통 고집쟁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로랑은 말씨름을 포기하고 한 발짝 나서며 가까이 온 새를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에투알의 검에는 마력이 부여되어 있다. 저 새들이 마법으로 만든 존재라면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파르륵!
날개가 타올랐다. 본래도 타고 있었지만 하얗게 변하며 흡사 햇빛에 지져지는 듯했다. 이어 포도알만 하게 줄어들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샤를로트는 등을 맞대고 반대쪽을 엄호했다. 수련병의 검에는 마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언뜻 막무가내인 것 같았지만 합리적인 판단도 할 줄 알았다.
“뒤로.”
“제가 신호할게요.”
한 발짝씩 물러났다. 샤를로트는 나아가며 자신이 확보한 걸음 수를 외쳤다.
“셋!”
로랑은 조그마한 돌멩이처럼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새들의 움직임을 빠르게 포착해서 베며 세 걸음 뒷걸음질쳤다. 둘! 로랑이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수련병의 지시를 다 받아보고 말이야.”
둘만 남은 이상 당연한 역할 분담인 줄은 알지만 그걸 수련병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럴 일이 있을 거라는 상상도 못 해봤다. 점차 모퉁이가 가까워지고, 새들은 바닥에 떨어져갔다. 샤를로트가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둘! 다음은 왼쪽으로 들어가요!”
로랑도 모퉁이 옆의 공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크루파드와 다른 수련병들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셋! 뒷 걸음질치던 로랑이 왼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샤를로트가 뒤를 따랐다.
2. 호위
크루파드는 이 사태의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떠오른 가능성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물론 반역이다. 계승권자가 불분명한 상황을 노린 누군가가 공녀를 납치하거나 죽인 뒤 대공의 혈족 누군가를 내세워 계승권을 노릴 개연성은 충분했다. 궁정 암투가 심한 오를란느에서 그런 짓을 할 만한 후보도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에투알의 임무 일정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또한 단장을 비롯한 모두가 대공자가 실종되자마자 공녀의 안전 문제가 중대하다는 것을 깨닫고 공녀의 거취에 대해 철저히 기밀을 유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런 채로 석 달이나 흘렀으니 집요한 누군가가 공녀가 이곳으로 온다는 정보를 캐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다.
거기까지는 말이 되었지만 여기가 사과의 섬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다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사과의 섬은 기껏해야 음산한 전설이 많기로 유명한, 야담 책에나 자주 등장하는 지명일 뿐이었다. 인구는 고작 백여 명. 오를리 궁정 사람들은 날개를 달고 다닌다고 해도 곧이들을 것 같은 이런 시골 사람들을 끌어들여 반역이라니, 개연성을 떠나 이만저만 까다로울 것 같지가 않았다.
몽타뉴와 결탁했다고 보려 해도 몽타뉴의 반란 자체가 오십 년도 넘은 옛일이었다. 사과의 섬은 몽타뉴 지방에 포함되기는 해도 당시 반란에 가담하지도 않았다. 아마 말이 통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만이 쓴다는 말은 ‘섬 방언’이라고 불리곤 했지만 실은 방언이 아니라 아예 다른 언어였다. 하지만 그 언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서 정체를 잘 모르다 보니 그냥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사과의 섬 사람들이 바다 너머 다른 땅에서 왔기 때문에 말이 다른 거라고들 했지만 크루파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바로 몽타뉴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사과의 섬과 맞닿은 몽타뉴 지방에는 섬 방언과 비슷한 단어나 지명이 꽤 있었다. 오래된 것들일수록 그랬다. 즉, 예전에는 섬사람들이 몽타뉴 지방에도 퍼져 살았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차츰 수가 줄어들며 섬으로 건너가 고립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단순히 일이 꼬여 발생한 오해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럴 가망은 사라져갔다. 문을 열자마자 안내인들이 사라지고 미리 설명을 듣지 않았던 낯선 존재들이 밀어닥친 것이 단지 실수라면, 지금쯤 누구든 달려와 사과하는 수습하는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타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 번째는…….
그때 로랑과 샤를로트가 막 입구로 들어왔다. 크루파드는 생각을 털어내고 로랑을 향해 손짓했다.
“호위는 잘 했냐?”
로랑과 샤를로트, 둘이 동시에 크루파드를 쳐다보자 크루파드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로랑이 인상을 썼다.
“잘할 수가 있었겠어요? 아주 골치 아프니까 빨리 정정해주시죠.”
“뭘 정정해? 에투알이 수련병을 호위하는 편이 좋겠다고?”
로랑은 바로 대꾸를 못하고 입술만 움찔거렸지만 의외로 샤를로트가 입술을 오므리며 슬쩍 웃었다. 바로 알아챈 로랑이 샤를로트를 돌아봤다.
“너 알고도 이랬냐?”
“전 대장님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날 좀 그만 괴롭혀. 아니, 너 진짜, 이건 사람 하나 공중에서 줄타기 시키는 거야. 난 오래 살고 싶어. 교수대 같은 건 질색이야.”
교수대라는 말에 샤를로트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며 로랑을 보았다. 마주친 눈빛은 진지하다기보다 엄숙해서 로랑은 순간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이어 다시 크루파드를 쳐다본 샤를로트가 말했다.
“대장님. 오늘 여기서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크루파드는 느긋하게 대꾸했다.
“그야 언제는 아니었겠어?”
“감사합니다.”
샤를로트가 다시 로랑을 봤다. 조그마한 입술이 고집스럽게 다물렸다가, 열렸다.
“반드시 지켜드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지켜줄 필요가 없다니까 그러네?”
“그건 모를 일이죠.”
로랑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상대가 수련병이긴 해도 실은 공녀인지라 적당히 접어주며 대화하고 있었지만 이건 아무래도 심했다.
“수련병 샤를로트. 그 말은 날 믿지 않는다는 뜻이 되는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