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Rune Book 3: Bloodied RAW novel - Chapter (42)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42화(42/143)
42화.
벨벳을 씌운 초대장 (3)
막시민은 두 손을 오므려 대충 크기를 전달한 다음 말을 이었다.
“캭캭 비명도 질러대고 이리저리 날뛰는 것이 제가 보기엔 그냥 불타는 곡마단 원숭이?”
“원숭이?”
“불타는?”
그들이 위대한 마법사들임을 감안할 때 자못 애들 장난처럼 들릴 이야기였건만 네 교수의 얼굴은 심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반면 막시민은 대체 어떻게 하면 그게 별것이 아니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하느라 심각한 얼굴이 됐다.
“네, 대체로 무해…… 하다고야 할 수 없지만…….”
호이오크 교수가 물었다.
“혹시 말은 안 했고?”
“물론이죠! 하여간 오렌지 벅은 겁쟁이라 달아나버렸고, 그놈을 대충 때려잡았더니 재가 풀풀 날렸는데…….”
로렐딘 교수가 놀란 얼굴을 했다.
“때려잡아? 어떻게? 너 아는 주문 없을 거 아니야? 전 과목 낙제잖아?”
그야 물론 사실이지만 이런 데서까지 확인당하니 기분이 별로네.
“프라이팬으로 때려서 화덕에 처넣었거든요?”
교수들은 서로의 얼굴을 흘낏거렸다. ‘이런 애가 재학생이라니 네냐플의 미래는 괜찮은 걸까…….’
킨 교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막시민, 그놈은 프시키가 틀림없다. 프시키는 음…… 너야 처음 들어볼 테지만 하여간 프라이팬으로 때린다고 해결되는 존재는 아니라는 걸 알아둬라.”
프시키?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막시민은 반색을 했다.
“아, 프시키라면 에너지가 모인 곳에서 불규칙하게 관찰되는 에너지 생명체 아닌가요? 조그맣고, 말은 안 통하고, 마법으로 제거하면 먼지라는 게 나오고, 그걸로 다양한 마력 에너지원을 만들 수 있다는 그거죠?”
“…….”
막시민은 어제 저녁에 룸메이트 녀석에게 받은 속성 과외로 네냐플의 수준을 걱정하는 교수들을 약간이라도 안심시켜주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교수들은 오히려 혼란에 빠져 불편한 표정이 되었다. 특히 호이오크 교수가 그랬다. 이 자식이 초급 마법학 시험지에는 ‘지난밤 음주의 필연성에 대한 변(辯)’같은 거나 써 놓고 나간 주제에…….
킨 교수가 말을 이었다.
“크흠, 그래, 웬일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구나. 그런데 그날 프시키는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거지?”
“그야 물론 에너지가 모인 곳에서…….”
“아니 그거 말고, 직접적 계기가 있었을 거 아냐? 혹시 네가 불러냈어?”
“그럴 리가 없죠! 그날 술집에서 처음 만난 어떤 녀석이 있었는데…… 자기가 내년에 반드시 입학할 거라고 우겨대다가…… 걔가 발끈해서 램프를 땅바닥에 내던졌더니 갑자기 그게 튀어나왔습니다.”
막시민은 내용을 약간 생략했다. 권총 얘기를 여기서 꺼냈다가는 왠지 아무 맥락 없이 참고 자료로 압수당할 것 같은 예감이 확실하게 들었던 것이다.
“그 녀석이 누구야? 이름이 뭔데?”
“이름은 이스핀 샤를이라고 했는데…….”
거기까지 말하다 말고 막시민은 오늘 3시에 이스핀과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참 일찍도 떠올린다 싶을지 몰라도 어제저녁부터 지금까지, 막시민이 감당한 이례적 사건들을 감안한다면 제법 빨리 생각해낸 셈이었다. 슬슬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이스핀 샤를? 이런 이름을 들어 보셨습니까?”
킨 교수가 다른 교수들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킨 교수가 다시 막시민을 봤다.
“정말로 네 또래였단 말이야?”
“저랑 동갑이라고 주장했으니 열아홉 살 언저리 아닐까요?”
교수들은 아리송한 표정이 됐다.
“그런 나이에 마법사로 인정을 받은 사람이라면…… 두세 명밖에 없지 않나요?”
“게다가 프시키를 불러낼 정도라니 시시한 수준이 아니잖아요?”
교수들은 프시키가 우연히 튀어나오게 됐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했다. 역시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의가 전부는 아니었다. ‘불규칙하게 관찰되는’이라는 말에는 많은 정황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은 막시민의 생각도 같았다. 그의 기억상 그날 이스핀은 램프를 던지면 뭐가 나올지 미리 알았던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그 애가 마법사다 그거야? 그것도 매우 뛰어난?
그때 레오멘티스 교수의 입가가 미심쩍게 비틀렸다.
“자네가 한 이야기에서 뭔가 세부 사항이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막시민은 흠칫했다. 설마 권총을 생략한 걸 알아챘나?
“자네가, 처음 만난 또래와 티격태격하다가 그 학생을 화나게 했고, 그래서 그 학생이 프시키를 불러냈다는 말까지는 믿는다 치자. 자네는 그러고도 남을 인재니까.”
칭찬 한번 꺼림칙하게 하시네.
“하지만 프라이팬으로 때려 화덕에 처넣는다고 해서 프시키가 소멸되지는 않아.”
아하? 막시민은 재빨리 소리쳤다.
“그 부분은 제가 빠뜨렸네요? 사실 프시키는 화덕 문을 부수고 탈출했었죠! 그래서 그 이스핀이라는 녀석이 도로 없앴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저야 모르겠고, 그냥 눈으로 보기에는 동그란 빛을 만들었다가 그게 번쩍, 하고 터지더니 사방에 불꽃놀이 같은 게 일어나고, 그러다가 모조리 빨려들면서 없어졌거든요?”
교수들은 진정 놀란 표정이 되었다. 로렐딘 교수가 커다랗게 뜬 눈을 깜빡거리다가 다른 교수들을 돌아봤다.
“저건 프시키를 없애는 과정과는 전혀 다른데요? 저런 얘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처음 들어봅니다.”
킨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제가 소환술 마스터라서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 설명은 어딘가 소환술 취소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역방향 소환 말입니다. 하지만 프시키는 소환수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평범하게 존재하고 있단 말이죠. 혹시 막시민이 봤다는 존재가 프시키가 아닌 건 아닐까요?”
호이오크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프시키가 아니라면, 메타모르포시가 일어난 부분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프시키가 소멸될 때 나온 먼지와 킵더스트가 합쳐졌을 때만 발생하는 일이니까요.
하여튼 저도 막시민이 만났다는 소년이 뭘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시다시피 가나폴리의 멸망 이후로 사라져서 민간으로 숨어버린 마법이 워낙 많지요. 저희가 모르는 마법이 언제든지 발견될 수 있다고 학장님께서 말씀하시던 생각이 나는군요. 그나저나 그 술집도 폐쇄가 필요해 보이네요.”
호이오크 교수는 기초 마법학을 가르치는 교수답게 다양한 분야의 마법에 광범위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모르겠다고 한다면 정말로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마법이라는 뜻이 되었다.
호이오크 교수의 마지막 말을 들은 킨 교수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이미 폐쇄하 도록 지시해놓았습니다. 뒤늦었지만요.
어제 오후에 저는 그 술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신고를 듣고 그곳에 가보았지만 남은 흔적이 거의 없다 보니 그만 별것 아니라고 생각해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제가 막시민을 찾아내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확인을 해두었더라면 오늘의 이 사태는 없었다고 봐야겠지요. 모두 제 잘못입니다.”
레오멘티스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막시민을 숨겨주려 하셨군요. 하지만 제 의견은 다릅니다. 그런 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킨 교수는 대답하지 못한 채 바닥을 내려다봤다. 도망치려 한 적도 없었던 막시민도 도망 모의를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시선을 방구석으로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레오멘티스 교수가 말을 이었다.
“막시민의 진술을 정리하자면 킵에 다녀와서 묻은 킵더스트와, 프시키를 소멸시킬 때 나오는 먼지가 한 사람의 몸에 묻은 채 학내 곳곳에 떨어진 결과 메타모르포시가 발생했습니다. 여기까지라면 막시민은 쥬스피앙의 변덕과 이스핀 샤를이라는 소년이 한 일에 휘말려 피해를 본 희생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거야말로 막시민이 하고 싶던 이야기였다. 막시민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자 레오멘티스 교수가 그쪽을 흘끗 보더니 다시 말했다.
“이렇듯 희생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가해자는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쥬스피앙과 그 소년이 이번 문제를 일으키려고 작당을 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이 한 일은 각각 떼어놓고 본다면 그저 조금 위험한 장난에 불과합니다. 그 소년은 공공장소에서 프시키를 불러 냈지만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었고, 쥬스피앙은 네냐플의 보안 마법을 무시했지만 그게 뭐, 하루이틀 된 일은 아니지요.”
그렇게 말하는 레오멘티스 교수의 눈썹이 해묵은 원한 때문인지 약간 꿈틀거렸다.
“예상컨대 그들 둘은 서로가 한 일은커녕 서로의 존재조차 모를 것이고, 그 결과 네냐플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도 모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책임 소재가 아주 곤란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둘 다 이곳에 없고 남은 건 막시민뿐입니다. 심볼리온에서 이 사건을 인지한다면 소환할 사람은 막시민뿐이라는 뜻이지요.”
“…….”
막시민은 최대한 당혹스럽고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건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 심정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생자인 내가 모조리 덮어써야 된다는 말은…… 설마…….
“하지만, 희생자가 문제의 책임을 지는 경우란 없습니다. 그런 불합리한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교수들이 눈짓을 나누더니 일어나 레오멘티스 교수에게 다가갔다. 제일 먼저 킨 교수가 계면쩍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 저는…….”
“킨 교수님 혼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막시민은 레오멘티스 교수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미소처럼. 금세 사라져버렸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막시민에게 잘 들리지 않았지만 대략 몇 마디는 이러했다. 다짜고짜 혼자서…… 다른 아이들 같으면…… 위험하지만…… 그래도 막시민이니까…….
이윽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나자 레오멘티스 교수가 갑자기 일어 나더니 막시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동그란 빛이 덮쳐와 막시민을 감쌌다가 등뒤로 빠져나가며 맞은편 벽에 하얗게 맺혔다. 막시민은 뒤를 돌아보았다. 불길로 그린 듯한 원이 보라색 벽 위에서 숨을 쉬듯 움직이고 있었다.
“저건…… 뭐죠?”
호이오크 교수가 대신 대답했다.
“‘그림자 분리’라고 하는 건데, 그냥 추적을 피하기 위한 거라고 알아 두면 돼. 한 사흘 정도 갈 거야.”
로렐딘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사이에 네냐플에서 가능한 한 멀어져야 해. 강을 이용하는 게 제일 좋겠다. 노아질베르 수운을 타야 하는데 야플리아 강을 통하면 추적당하기 쉬우니까 산을 넘어가서 아모치아에서 출발하는 수송단에 끼어서 노아질베르 강으로 들어가면 될 거야. 거기까지 가는 데 사흘이면 충분하겠지. 너 많이 다녀봤으니까 잘 알지? 그 수운도 이용해봤잖아?”
막시민은 대꾸 없이 눈만 몇 번 깜빡거렸다. 그간 별 교류가 없었기에 로렐딘 교수가 막시민이 입학 전에 한 일들까지 알고 있는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런 부분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어디로 가라는 건데요?”
“켈티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