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Rune Book 3: Bloodied RAW novel - Chapter (85)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85화(85/143)
85화. 추리극장의 배우들 (12)
“그런데 가보니까 플레상스 경도 없더란 말이지. 그제야 당황해서 도로 카페로 달려가 그 손님을 찾아봤겠지만 역시 만나지 못했고. 11구에서 플레상스 경의 집까지 한나절이 걸린다는 네 주장대로라면 네가 카페로 돌아간 건 적어도 다음날, 사실상 다다음날.
일이 이렇게 됐으니 그 사람은 네가 답장을 갖고 잠적했다고 생각했을 테고, 널 만나면 한번 손봐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으려나?
네가 겁내는 게 그건가? 네가 중요한 편지를 봉랍까지 뜯어서 봐버렸다는 걸 알면 반응이 아주 재밌을 테니까. 자, 네가 두려워하는 상대가 그자야?”
말문이 막힌 청어절임은 입만 뻐끔거리고 있다가 간신히 말했다.
“저, 저, 저한테 왜 상대 같은 걸 찾으시는지…… 물론 당신들은 무섭지만…….”
막시민이 봉투로 테이블을 탁탁 두드렸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내가 너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건 하나뿐이야.
넌, 너 자신이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했어. 왜냐하면 어제 널 반쯤 죽일 뻔한 우릴 아무렇지도 않게 뒤따라왔거든. 적어도 우리보다 무서운 뭔가가 있었다는 거지.
하지만 네가 한 이야기 속에는 네가 그렇게까지 겁낼 만한 상대가 보이질 않아. 그게 내가 첫 번째로 이상하게 생각하는 점이야.
다시 말해 네 얘기는 꽤 그럴듯했지만 내 첫 전제와 맞질 않는단 말이야.”
“…….”
청어절임은 여전히 입을 약간 벌린 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막시민의 미간에도 세로주름이 잡혔다.
“자, 문제의 무서운 놈은 누구일까. 편지를 준 그자가 아니라면 네 집에 들었다던 도둑? 단순히 도둑이 들었다고 가난한 사람들이 제 집을 놔두고 친척집까지 피신을 가겠어? 내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거든.
그러니 진짜로 무서운 놈이라 식구들한테까지 피해가 갈까 봐 따라가지 않고 빈집에 숨어 있으려 했다, 일이 위험해진 것 같으니까 편지 내용이 뭔지도 알아야겠다 싶어서 뜯었다, 거기까진 말이 돼.
그럼 그 도둑은 누구지? 머리 잘 굴리면서 어리숙한 척, 모자란 척 그만하고 똑똑히 말해봐. 청어절임이라고 불러주세요? 페터 바우어도 본명이 아니지?”
청어절임의 입에서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자 이스핀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네 별명이 왜 청어절임이 됐는지 잊었어? 어제 상황으로 되돌리는 데 내가 십 초 이상 걸릴 것 같니?”
조금 전 같았으면 이런 말을 듣자마자 금세 벌벌 떠는 시늉을 하며 횡설수설 지껄였을 텐데 청어절임은 묘하게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때 데보라가 입을 열었다.
“네가 답장을 가져다주기로 했다는 11구의 카페 말인데.”
청어절임은 그때까지도 데보라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으나 다음 말이 나오자 목덜미가 움찔했다.
“혹시 ‘베고니아’라는 곳인가?”
“…….”
청어절임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시선은 데보라를 향해 있었다. 입술이 잠시 떨리다가 열렸다.
“어제 당신이 한 얘기에 사실이 좀 들어 있었나 보네.”
어조부터가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는 꾸며낸 가벼움이었다면 실제 목소리는 훨씬 낮았다.
이어 웅크린 채로 고개를 쳐든 청어절임은 고개를 한쪽으로 천천히 기울이며 희미한 비웃음을 띄웠다.
“두 분, 예상대로 꽤 똑똑해. 하지만 역시 젊어서 그런지 데보라가 오빠가 어쩌고 한 얘기만은 천진난만하게 곧이듣는 것 같더군.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어. 왜냐하면.”
청어절임의 시선이 이스핀, 그리고 막시민에게 옮겨갔다. 손가락은 데보라를 가리키고 있었다.
“쇠의 왕이 제 영지로 초대했던 자를 저렇게 고스란히, 뒤쫓는 끄나풀도 없이 풀어놓을 것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