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sen by the Hero King, the Second Life of the Illegitimate Child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헤르시아 (2)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하지만 로크는 자신만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고 느꼈다.
그건 미래에 봤던 인연들을 만날 때마다, 그리고 그 인연들이 성장이 덜 된 채로 만날 때마다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헤르시아 또한 마찬가지다.
“한 수 가르쳐 주세요.”
블루 기숙사 개인 연무장으로 오라는 말에 일단 오긴 왔지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걸 허니 버드가 눈치챘다.
[조금의 거리낌도 없군.]백골이 말에 나도 동의했다.
내가 실력자인 것도 있기에, 자기보다 강한 자한테 가르쳐 달라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동년배인 나한테 나름 모욕적인 말을 들었음에도 거리낌 없이 바로 올 줄은 몰랐다.
“지금 당장요.”
그리고 지금 당장 요구할 줄도 몰랐다.
영웅왕님도 왠지 모르지만 마음에 들어 하셨다.
***
코하리트 제국은 나머지 3대륙 중에서도 특이한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무가 제도였다.
마법이든, 검술이든, 무투든 간에 코하리트 제국들은 강한 이들이 망명하여 가문을 건립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무술로 돈을 벌 수 있는 도장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실력이 뛰어나고 이름 높은 무가에서는 사람들이 줄지어서 입문하려고 하였고, 돈과 인맥으로 귀족이 된 이들도 후계자가 아니면 무술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십성 가문 때문이다.
오직 강함만으로 오를 수 있는 십성 가문에 오르기라도 한다면, 3대 아니 살아생전 가문의 영광에 오를 수 있었다.
반대로 너무 많은 도장이 만들어졌기에 제대로 된 무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실력과 기회를 잡지 못해 묻히는 가문도 있었다.
헤르시아 또한 그랬다.
평민으로서 가문이 멸문하고 자신한테 남아있는 거라곤 검술서 하나뿐이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련과 일을 병행하며 해왔지만 그런 그녀한테 가르침을 줄 강자는 없었다.
하지만 하늘은 무심하기도 하면서 아예 아무것도 베풀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의 뛰어난 재능은 코하리트 제국에서 선별하는 아카데미로 보낼 평민에 충분히 뽑힐 수 있었다.
‘강해져야 해.’
가문을 다시 일으키려면.
한때 로하트리오 가문과 함께 태초의 십성 가문이라고 불리었던 가문을 일으켜 세우려면 강해져야 했다.
그것이 무슨 방법이든 간에 말이다.
코하리트 제국에서 보내는 평민이다 보니 같은 레드 기숙사의 학생들도 차별을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강해져야만 했다.
교수들한테 잘 보이려고 하였음에도, 교수한테 평민이란 그저 일을 시키기 좋은 수준일 뿐이었다.
어차피 이곳을 졸업한 평민이라도 아카데미 졸업장과 함께라면 어디 가문에서 자리 하나쯤은 얻을 수 있기에, 대부분의 평민들은 그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헤르시아는 아니었다.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선 일단 자신이 강해져야 한다.
‘이번 권유를 놓칠 수 없어.’
가문을 일으키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비록 같은 학생이지만 그 실력은 교수들 또한 두려워했다.
아니, 그의 가문과 더불어 첫날부터 제국의 황태자를 죽이기 직전까지 팬 그를 오히려 가까이 두기 꺼렸다.
그렇다 하여도 그의 힘은 놀라웠기에 그의 권유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가지?’
블루 기숙사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에 앞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화이트 기숙사도 레드 학생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마치 지저분한 벌레가 들어온 것처럼 난리를 치는데, 푸른 피가 흐른다는 의미를 가진 블루 기숙사 영역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걱정은 곧 풀릴 수 있었다.
마치 ‘진짜 왔네?’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로크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한 수 가르쳐 주세요.”
그 말에 로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는 그저 귀족이 재미 삼아 했던 말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헤르시아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요.”
귀족한테 너무 많은 말을 했기에 혹여나 호통이 내려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불과 얼마 전에 검을 휘둘렀던 헤르시아였지만 지금은 위치가 다를 뿐인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따라와.”
잠시 말이 없던 로크는 이내 그녀를 연무장으로 데려가려고 하였다.
블루 기숙사 전용 연무장으로 들어가는 게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크의 앞에 블루 기숙사를 순찰하는 경비원들이 나타났다.
말이 경비원이지 기사 그 이상의 실력자들이었다.
“이곳에 레드 기숙사 학생이 들어가….. 시,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로크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둘러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런 반응이 그는 익숙하기라도 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뭐 해? 안 따라오고.”
헤르시아는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
아직 아모리 황녀한테 이렇다 할 대답을 받지 못한 지금.
내가 할 거는 지금까지 얻은 능력들을 제대로 다루는 것, 그리고 그랜드 마스터에 발을 디디는 것.
이 두 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실습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런 상대를 제대로 구하려면 역시 적과의 싸움이 많아야만 했다.
‘기숙사에 있는 나를 아탈리네 황녀는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겠지.’
현재 이 아카데미에도 나를 제외한 몇 명의 은룡들이 지내고 있었다.
교수, 직원, 학생 등으로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그들한테 아모리 황녀를 지키게 하는 것보다 내가 지키는 게 더 확실하기에 웬만하면 나를 멀리 보내지 못한다.
멀리 보낸다고 할지라도 아카데미 학생인 이상 쉽사리 보낼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실전을 즐기고 적들을 쓰러트리며 가장 확실하게 운명 비율을 바꿀 수 있으려면 역시 적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전까지는 뭐….. 시간 날 때마다 전력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가르치면 되니까.’
그렇기에 난 헤르시아의 미래 모습을 떠올렸다.
「용의 호흡」 속에 있는 모든 검술의 교리와 미래에 사용하였던 헤르시아의 검법을 기억하고 재해석해나갔다.
어쩌면 미래에 헤르시아가 사용했던 검법보다 더욱 강력한 검법이 뇌리에 만들어지자마자 그것을 헤르시아의 눈앞에서 선보였다.
-화르르르르르륵!
설사 상대가 가문 고유의 마나 하트를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었다.
자연의 기운을 정순하게 뽑아낼 수 있는 나한테는 모든 마나 하트가 동일했다.
레드 스타라 불리었던 그녀의 붉은색 검도 나한테는 그저 뜨거운 검일 뿐이다.
오히려 타오르는 오러 정도만 사용하고, 오러에서 진짜 불을 뿜어내지 못하는 그녀의 검보다 상위였다.
“이걸 해봐.”
“…..”
“어이. 정신 차려.”
“예? 아….. 예.”
그녀는 불이 붙은 것처럼 붉게 타오르는 검을 보고 멍하니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상상으로만 생각하고, 입으로만 들어왔던 가장 이상적인 검이 자신의 손도 아닌 남의 손에 쥐어져 있었으니 멍하니 있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지금 한 것만 똑바로 따라 하라고.”
“미쳤나요?”
‘…..영웅왕님.’
“……”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미안해지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헤르시아는 조금 어설프지만 방금 내가 한 검법을 따라 했다.
“이, 이렇게요?”
“……?”
물론 검법은 너무 형편 없었지만 그 형만큼은 조금 따라 했다.
“역시 이건 미친 짓이에요.”
하지만 이내 헤르시아는 자세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녀는 자신이 형만큼은 따라 했다고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조금만 더 해봐.”
“못 따라 해요. 방금 그것도 겨우 따라 한 거예요. 따라 하다가 몸이 부서지는 줄 알았어요.”
형을 간신히 따라 하기는 했지만 그건 마스터의 신체의 형이었다.
아직 마스터에 오르지도 못한 그녀가 따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계속 시켜볼까 했지만, 아마 그녀의 신체가 먼저 부서지겠지.
“할 수 없네. 그럼 자세 다시 잡아봐.”
“예?”
“검 들고 서보라고.”
그러자 헤르시아는 엉거주춤 자세를 다시 잡았다.
“하체의 힘이 역시 검법의 원천이기는 하네.”
마치 천년을 지탱한 고목처럼.
한 장소에 버팀목이 되어 거대한 중검으로 아름다운 불을 뿜어내는 검법이 헤르시아의 검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하체에 많은 무리가 가기에, 지금 헤르시아가 가진 마나로는 부족했다.
그렇다고 더 무겁게 하면 오히려 하체가 무너질 수도 있으니 천천히 성장을 하게 두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하나.
-쿠웅!
“크읍!”
죽으면서 배웠던 로크한텐 그딴 게 없었다.
“부서지고 회복하는 게 강해지는 거야.”
[그건 아니지.]하지만 헤르시아는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었는지, 주변에 무거워진 마나의 흐름 속에서 나를 똑똑히 바라보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되는 데까지 알려줄게.”
***
아모리 황녀는 로크한테 제안을 받은 뒤로 계속해서 그 일을 생각해왔다.
아탈리네 황녀한테 도움을 요청하지 말고, 둘만의 비밀로 하자는 말에 더욱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결론을 내릴 수가 없자 결국 아모리 황녀가 아닌 아포라스가 선택을 하기로 했다.
-사악!
“해보자고요? 그래도 로크님이 강한 건 알고 있지만 너무 무모하지 않을까요?
-사아아악! 사르악~!
“아포라스님의 감을 믿으라고요? 그런데 아포라스님을 믿을 바엔 그냥 강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사악.
“말이 심하다고요?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아포라스님이 도움이 된 적이 몇 번이나 있는지 말해주시면 사과할게요.”
-사….아….
“갑자기 왜 사과하세요? 하긴, 가슴이 다 파인 옷을 입고 신의 춤을 춰달라고 하는 아포라스님의 말을 애초부터 들을 생각은 없지만요.”
-……사아.
“그딴 게 왜 로망이고 낭만이에요? 아무튼 시끄럽고 가만히 계세요.”
-…..삭.
하지만 계속되는 아포라스 설득에 아모리 황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안전만 확보되면 되긴 하니까요. 알겠으니까 그만 하세요.”
그렇게 그녀는 적의 본거지에 침입하는 것을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