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sen by the Hero King, the Second Life of the Illegitimate Child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질서
500년이나 흘렀다.
그건 이 행성의 기준이고, 그 시간은 그녀의 기준에서는 조금 더 짧았다.
기껏해야 100년하고도 몇여 년이라는 시간이었다.
길다면 긴 시간. 하지만 행성의 기준으로 보자면 찰나의 시간이었다.
인간이라면 무척이나 긴 시간, 기억이 잊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이 기억은 뭐지?’
로크에 귀속되면서 백순이의 머리에 새로운 기억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쓸모없는 기억이라고 생각했지만, 혼자 있을수록 그 기억은 서서히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뭘까.
따스하면서도, 차가우면서도, 외로우면서도, 슬프면서도…..
잊으면 안 됐던 가장 중요한 것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할 때마다 너무도 손쉽게 그 기억이 떠올랐다.
‘…..대체.’
영웅왕한테 굴복하면서 부서진 검은색 보석.
결국에 뭐가 됐든 간에 그 보석은 세뇌에 가장 중요한 보석이었다.
실비아 같은 경우는 노란색 보석까지 사용했지만, 세뇌가 완료된 백순이한테 이미 제거되었다.
노란색 보석은 영혼의 전이, 세뇌가 완료된 백순이한테 더 이상 붙어있을 수는 없던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백순이는 기억을 되찾았다.
“…..엘리아.”
엘리아 로드 고아탄.
황제의 자손의 증거라는 ‘로드’의 이름이 중간에 들어간 그녀.
과거 그녀의 삶을 연장시키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는 제국을, 나라를, 행성을 배신했다.
“아아…..”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그녀는 서서히 침체되었다.
***
“그거 아세요?”
어느 날 아탈리네 황녀한테 그런 말을 들었다.
아마 실비아 때 이후로 내가 고아탄 제국에 흥미가 생겨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았다.
“뭐가요?”
“고아탄 제국이 제국을 이루는 방식이요.”
“알죠.”
이미 아이젠으로부터 질리도록 들었다.
잔혹하기는 하지만 이해는 되는 방식이었다.
“그럼 고아탄 제국의 혈통질서라는 걸 아시나요?”
“혈통질서?”
“네. 고아탄 제국은 500년 전쯤인가? 특이한 위계질서가 생겼거든요.”
혈통질서라는 것은 이러했다.
우선 황태자가 정해지면 두 번 다시 황태자의 직위가 바뀌지 않는다.
황태자가 정해지면 나머지 밑에 있는 동생 혹은 형, 누이들은 오직 제국에 충성해야 했으며, 황제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
황태자는 오직 황제만이 정할 수 있었다.
“반란이나 그런 건 없나요? 처지가 너무 가혹한데요?”
“없진 않았지만, 애초에 고아탄 제국은 약육강식이에요. 속국이라고는 프라츠 왕국밖에 없으니 세외에서 힘을 끌어와야 하지만 그 또한 불가능하죠.”
너무나도 혹독한 고아탄 제국에 견딜 병사는 적었다.
거기에 황태자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힘이었다.
쉽사리 반란을 일으킬 수 없는 환경이고, 쉽사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실제 황태자의 자리를 놓고 반란이 일어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정도로 하찮은 수준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 혈통질서라는 건 뭡니까?”
“원래 없던 건데 500년 전 황제가 갑자기 넣었다고 하더라고요.”
“…..예?”
“혈통질서는….. 말 그대로 이거예요. ‘이후 황제가 되는 자는 언제든지 황제의 자리를 내놓을 수 있으며, 그 대상은 혈통에 따른다.’라는 거죠. 즉, 선조인 황제가 나타난다면 지금 앉아있는 자리에서 곧바로 비켜야 한다는 거예요.”
“뭔가 조금….. 억지네요.”
“맞아요, 억지. 하지만 그런 데는 이유가 있어요. 500년 전 황제는 이미 황태자….. 아니 후계자를 생각해두고 있던 딸바보였거든요.”
“딸바보?”
“딸이 미친 듯이 천재였거든요. 그도 그럴 게 사용할 수 있는 실버 블러드의 힘이 30개가 넘었으니까요.”
“…..30개나?”
실버 블러드의 힘은 혈통당 하나만 가질 수 있는 힘이라고 들었다.
30개라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게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하긴, 너무 많죠.”
“아뇨. 30개는 맞아요. 제가 말한 건 그 이상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예요.”
“……”
“역사의 기록이 30개라고 말해주고는 있지만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고 적어뒀으니까요. 아무튼 그 여인은 그 때문인지 몸이 좋지 않았고 결국 황제는 그 여인을 후계자로 임명한 뒤 그들과 모종의 계약을 했어요.”
“그들이라…..”
“맞아요. 로크가 생각하는 이들.”
“……실비아가 처음이 아니었군요.”
“맞아요. 그 이후로 사라졌거든요. 후계자가.”
처음 치고는 어딘가 많이 익숙하기에 그냥 그들이 많이 사용하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을 듣고 나니 그들은 애초부터 이 행성에 그러한 방식으로 사람을 납치한 것이다.
“그래서 고아탄 제국은 그러한 법을 만들었죠. 너무 어처구니없는 법이지만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해요.”
“왜죠?”
“500년 전 황제의 능력이 뭔지 아세요?”
“당연히 모르죠.”
아탈리네 황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미래시.”
“……!”
“혈통 마녀처럼 범위가 엄청 넓거나 하지 않고, 거기에 여러 제약이 있지만 그가 본 미래는 반드시 맞는다고 하죠. 희귀함으로 따지면 실버 블러드 역사상 처음 있는 능력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아탄 제국은 그 말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고 있죠.”
미래를 예측했다.
그리고 황제는 그 미래에 반드시 이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혈통 마녀처럼 범위가 넓지 않지만, 반드시 일어날 일을 보는 것만큼, 디테일은 더 뛰어났다.
그렇기에 고아탄 제국은 기다리고 있다.
그 법이 실현되기를.
“그 법이 500년 전 사라진 황녀를 기다리는 건 확실하지만 과연 언제 나타날지는 모르겠네요. 아니, 어쩌면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 황녀의 이름이 뭐죠?”
“그 황녀는…..”
아탈리네 황녀의 웃음을 마지막으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침대에서 일어나니 눈앞에 백순이가 서 있었다.
“미안하지만 사역마 계약을 한 이름은 바꾸지 못해. 백순아….. 아니, 엘리아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아신 거죠?”
“그냥 옛날에 이야기했던 게 생각나서.”
갑자기 아탈리네 황녀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 이유는, 그녀가 30개 이상의 힘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부터였다.
지금 눈앞에 있는 백순이는 엘리아가 분명했다.
“죽이고 싶은 여자가 있어요.”
“누군데?”
“당신도 이미 알 거라고 생각해요.”
“……그니까 누군데.”
“857호.”
그 말에 옆에서 자고 있던 백골이가 귀를 쫑긋거렸다.
[857호라면….. 나도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역시 8호는 알고 있었나?]“그니까 누군데?”
“영혼에 고결한 힘을 가지고 있는 여자예요. 그녀가 하는 일은 영혼 침식.”
“…..그년인가.”
루나, 실비아의 몸에 들어갔었고, 지금에서는 엘리아를 세뇌시킬 때도 그녀가 있었던 걸로 알게 되었다.
[857호는 영구결번 같은 거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그런 번호였는데 그년이 857호일 줄은 몰랐다.]“그래도 세 자리면 본인 자체적인 힘은 부족하다는 거겠지. 문제는 어디 있냐는 건데….. 알아?”
“네.”
“한 자리 숫자여서 그런가 아는 게 많아서 좋네.”
“다만, 저번에 우리가 있던 외각과 거의 정반대 수준으로 떨어져 있어요.”
“그건….. 좋지 않은데.”
우리가 소환되는 곳은 어디까지나 외각이다.
그 스파이한테 부탁하여 반대까지 차원이동 마법진을 옮기게 할 수도 있었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리고 넌 오늘 못 갈 수도 있고.”
“어제는 오늘 갈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토지신이 부족해.”
아탈리네 황녀를 데려가게 되는 건 어찌저찌 되지만, 그녀까지 데려가는 건 무리였다.
애초에 그녀 자체의 힘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토지신이 감당치 못할 것이다.
“토지신이라면 성녀들을 데려가면 될 텐데요?”
“성녀라는 존재도 알고 있네….. 문제는 우리한테 협력을 하지 않…..”
“아뇨.”
“…..응?”
“혈통질서. 그러니 저는 고아탄 제국의 황녀이자, 황제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그랬지?”
혈통질서가 아직까지도 지켜진다면 그녀는 한 제국의 황제였다.
즉. 고아탄 제국에서 그녀는 황제의 직위에 있으니 성국의 성녀들한테 정당한 방식으로 요청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럼 내가 고아탄 제국으로 가야 한다는 거네.”
“…..일단은요.”
그녀는 나하고 얼마나 떨어질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일단 황제임을 증명하려면 내가 고아탄 제국까지 가야 했다.
“그럼 그렇게 하자.”
[바로 갈 거냐?]“그래야지. 아탈리네 황녀한테 사정을 말한다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
아무튼 갑작스럽게 고아탄 제국으로 가게 되었다.
***
사정을 설명한 아탈리네 황녀는 일단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아탄 제국은 저희 조직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아서 만남을 요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다른 방법을 쓰죠.”
“다른 방법?”
“강행돌파요. 고아탄 제국의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있거든요.”
다른 곳에 링크하여 길을 이동시킬 수 있는 아탈리네 황녀지만, 제국 내부에까지 가는 건 무리라고 한다.
그렇기에 제국에서 조금 벗어난 곳으로 이동한 뒤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실베스타경 아시죠?”
“…..모를 리가 있나.”
“그분이 아직 살아계시거든요. 저희 조직에 들어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분은 재능 때문에 과거부터 제국을 몇 번 들어가신 적이 있으니 도움을 받도록 하죠.”
아탈리네는 실베스타를 금방 불러왔다.
이미 이것을 예견하고 있던 건 아니고, 실베스타가 착용하고 있는 반지는 애초부터 아탈리네가 까마귀로 만들어 준 것이다 보니, 반지를 활용하여 눈앞으로 부른 것이다.
-슈욱!
게이트가 열리며 예전에 잠깐 인연이 있었던 실베스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간만입니다. 로크 도련님.”
“오래간만이야.”
실베스타의 경지는 전보다 조금 더 상승되어 있는 듯 보였다.
조직의 일이 힘든 것인지 어딘가 야위어 보이기도 했다.
“근데 저를 여긴 어쩐일로…..?”
부름에 요청을 하기는 했으나, 어째서 이곳으로 불렀는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해주니 실베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아탄 제국에는 저도 갚아야 할 게 있습니다. 흔쾌히 도와드리도록 하죠.”
“아무튼 바로 출발할 건데….. 아탈리네 황녀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외각까지만 가도록 할게요. 애초에…..”
아탈리네는 힐끗 백순이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어차피 대놓고 쳐들어가도 그 유명한 전설의 황녀를 이길 상대는 없을 것 같지만요.”
이 말에 나도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실버 블러드의 힘이 강할지언정, 그것의 정점에 위치한 백순이를 이길 존재는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자. 가죠.”
그 말과 동시에 우리의 눈앞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