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sen by the Hero King, the Second Life of the Illegitimate Child RAW novel - Chapter (26)
26화. 무기 (3)
사고가 유연해진다.
긴박한 상황이 다가오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태극신무(太極神武)」 속에서 들었던 목소리였다.
“무량수불 생각의 사고를 항상 유연하게 유지하게나.”
어째서 지금 그 목소리가 생각나는 걸까?
“세상의 흐름은 언제나 똑같구나. 윗물이 아랫물을 밀어내고 아랫물은 항상 고이는구나. 어찌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할꼬…..”
여성의 검이 나를 죽이려 몸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태극(太極)”
기억 속의 노인은 서서히 팔을 휘저었다.
그러자 대지에는 태극을 상징하는 원이 그려졌다.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는 원 안에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떨어진다 할지라도, 저 노인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음을 인지했다.
인지하고 깨달아라.
내 몸은 「태극신무(太極神武)」에 적응하면서 ‘진동’이라는 걸 깨달았다.
상대의 공격을 몸에 순환하며 대지에 퍼트린다.
반대로 상대의 몸에 가격한 고통을 진동시켜 신체에 퍼트린다.
‘마치 잔잔한 연못에 떨어진 돌이 파장을 일으키는 느낌이었지.’
상대의 몸이 연못이고 돌이 내 공격이었을 때 상대의 몸에 퍼지는 파장이야말로 태극(太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생각이 달라졌다.
“태극…..”
다가오는 검을 보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몸을 향하던 검을 살짝 틀어 내 몸을 향해 다가오는 레이피어를 향해 휘둘렀다.
-통~!
검과 검이 부딪쳤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
가면 속에 숨겨진 여인으로부터 당혹감이 느껴진다.
쨍그랑!
몸에 둘렀던 오러가 마치 유리 깨지듯 소멸하였다.
-퍼엉!
‘마나가…. 부서졌다고?’
사라진다도 아니다, 소멸된다도 아니었다.
바위가 터져서 모래가 되는 것처럼 몸에 흐르던 모든 마나가 부서져 주변 공기에 흩어졌다.
-솨아아아아아아…..
공기에 흩어진 마나가 관중들의 사이를 지나 퍼졌다.
오싹!
압축된 마나를 느낀 관중들은 오싹함을 느꼈다.
퍼진 마나가 이 정도인데 저기 앞에 서 있는 당사자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아.’
주변에 모래가 퍼져 나가는 걸 보니 여성의 몸 안에 있던 마나가 주변에 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적응」 때문인지 마나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라인 브레이크.
로크는 알지 못했지만 방금 상대의 기맥에 흐르는 마나를 무효화시킨 것이 바로 라인 브레이크였다.
오러를 사용하는 자들은 기맥에 흐르는 마나라는 것 자체가 단단하다는 느낌이 있었고, 로크는 태극(太極)을 이용해 상대 몸 안에 자신의 기운을 진동시켜 퍼트린 것이다.
단단하기에 로크가 퍼트린 진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찰나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단 일순간이지만 상대의 오러가 무력화되자 로크는 서둘러 들고 있던 검을 여자의 가면을 향해 휘둘렀다.
“……어?”
시야가 바뀐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시야가 서서히 아래로 향한다.
-푸욱!
어깨에 박히는 상대의 검.
풀썩
-도련님!
서서히 잠기는 눈에 황급히 다가오는 콜로렌스가 보였다.
***
콜로렌스도 그녀한테서 나오는 살기를 눈치챘다.
관중들 중 콜로렌스만 유일하게 그녀의 살기를 눈치챘을 만큼, 그녀의 행동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날카로웠다.
‘흐음….’
콜로렌스는 나설까 하다가 이내 그녀의 행동을 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들고 있던 검 하나를 로크한테 던져주던 것.
‘흠. 도련님이 기권하지 못하게 검도 준비했다라.’
상대의 무기는 레이피어
여행을 다니는 콜로렌스조차 레이피어를 사용하는 고수는 몇 번 만나보지 못했다.
효율이 좋다고 말할 수 없는 무기였다.
얇고 가볍다.
상대의 허점을 찌르거나 베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귀족밖에 없었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병사, 기사, 용병들은 리치가 길거나 혹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애용한다.
레이피어처럼 얇은 무기는 찌르기에 특화되어 있다 보니 몬스터를 잡기가 어렵고, 무엇보다도 이가 금방 나간다.
귀족들이나 사용하는 무기였다.
‘귀족이라…. 흠.’
혹시 로크 도련님한테 차인 여자일까?
‘사교계에 나오지 않는, 아니 존재 자체가 부정당했던 도련님한테 여자가 있을 리는 없을 테고.’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처음 보는 무기 사용자에 오러를 사용할 줄 아는 강자.
강자와의 싸움은 하나하나가 교육이 되며 언젠가 자신이 사용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직 명확하게 자신의 실력을 모르는 도련님한텐 저런 상대가 알맞기도 하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도련님은 밀리기 시작했다.
‘흐음. 재능이라는 것에 부러워한 적은 없다만….. 저건 정말 부럽군.’
상대의 살기에 주눅 들지 않는 것도 놀랍지만, 저 몬스터도 부러워할 ‘직감’은 정말 놀라운 재능이었다.
숱한 전쟁에서 살아온 노병의 ‘직감’보다도 뛰어난 육감을 도련님은 가지고 계셨다.
이는 노력으론 얻을 수 없는 재능이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곤 있지만….. 역시 기초가 문제인가.’
놀라운 분이다.
재능의 한계를 확인하기 위해 결투장에 데려온 거지만, 오직 재능만으로 결투장의 톱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오러에 발을 디디려는 상대들을 만나면 기초라는 부실한 나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라잔 검법을 알고 계시기에 어느 정도 기초가 있을 줄 알았는데….. 흠.’
콜로렌스는 멍하니 결투를 바라보고 있다 이내 표정이 감탄에서 경악으로 바꾸었다.
-벌떡!
“왜, 왜 그러세요?”
갑자기 일어나자 베르아는 당황했지만 그걸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콜로렌스의 얼굴엔 경악이 서려 있었다.
‘라인 브레이크를…. 저런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진동.
검이 부딪쳐서 나오는 진동을 활용해 상대의 연공법을 일순 완화시킨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콜로렌스는 눈을 부릅떴지만 이내 다급해졌다.
-푸욱!
도련님의 어깨에 상대의 검이 꽂히자마자 콜로렌스는 빛의 속도로 관중석에서 벗어났다.
“도련님!”
***
콜로렌스는 베르아와 함께 기절한 로크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어딜 가는 건지 말씀이라도 해주세요.”
로크를 신전이나 의료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 하자 베르아는 약간 불안감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을 겁니….”
콜로렌스는 말을 하다 말고 자리에서 멈춰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까 보았던 여우 가면을 쓰고 있던 여성이 서 있던 것이다.
“…….”
“……”
콜로렌스와 여성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인 이는 뜻밖에도 여성이었다.
“결례가 많았습니다. 콜로렌스경.”
콜로레스는 그녀의 자세와 목소리로부터 기사임을 눈치챘다.
“누구의 사주였는가?”
“그건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혹여 아이젠 공작님의 자제분이신가?”
“…..그것 또한 마찬가지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허어.”
그제야 콜로렌스는 누가 그녀를 보냈는지 대충이나마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대의 주인한테 보고하러 가면 될 것을 어찌하여 우리의 앞길을 막은 것인가? 혹여나…..”
로크를 안고 있는 상태로 콜로렌스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제 주인의 뜻을 전하기 위해 잠시 앞길을 막은 것입니다.”
“출혈이 심각하니 상황에 따라선 나도 그에 대처할 걸세.”
콜로렌스가 손을 완전히 검에 올리자 그녀는 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제 주인께서 막내 도련님께 한 달 후에 뵙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상처에 대한 사죄는 그 검으로 대신하겠다고 말하셨습니다.”
“….. 호오. 이 검을 말인가?”
“예.”
콜로렌스는 슬쩍 로크의 허리춤에 껴 있는 검을 바라봤다.
가느다란 푸른색 기가 도는 검은 한눈에 봐도 명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겠네.”
“그럼 저는 이만…..”
“잠깐.”
콜로렌스는 다급한 와중에도 궁금증을 풀지 않았다.
“막내 도련님을 죽이려 했던 의도는 뭔가.”
“…. 그 또한 제 주인의 뜻으로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흐음.”
콜로렌스는 그제야 검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그런 이만…..”
여자가 사라지자 옆에 있던 베르아는 다급하게 로크의 상태를 살폈다.
“상처가…..!”
무언가 이상한 걸 발견한 듯한 베르아의 말투에 콜로렌스는 서둘러 로크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검을 쓰지 않은 어깨긴 하지만, 상처가 심해지면 몸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기에 서둘러 치료해야만 했다.
“이건…..”
-치이이이이익…..
아까까지만 해도 피가 철철 흐르던 상처가 서서히 치료되기 시작했다.
연기를 뿜으며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모습에 콜로렌스의 두 눈이 커졌다.
“코, 콜로렌스경?”
“이건….. 고환의 위력이군요.”
“예, 예?”
“흐음. 고환의 힘이면 이해는 간다만은….. 어째서 효과가 바로 발동되는 건지 모르겠군요.”
베르아는 콜로렌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
“으윽…..”
“일어났어~?”
어딘가 나긋하면서도 매혹적인 목소리가 귀에 퍼진다.
‘영웅왕…..님?’
영웅왕의 목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응?”
눈을 뜨자 하얀색 피부와 대조되는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 나태해 보이는 얼굴로 서 있었다.
“신기한 몸이네~ 용의 유전자를 이렇게나 빨리 ‘적응’시킬 줄은 몰랐어~”
‘용의 유전자?’
내가 먹은 드레이크의 고환을 말하는 건가?
“그나저나 당신은 누구……?”
“나아~? 네 상사~”
“…. 조직의?”
“응~!”
여성은 헤헤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름이 뭐야~? 꼬마 친구~?”
“….로크.”
“나는~ 마르가레라고 해~”
‘마르가레…..?’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
‘백설 마녀…..’
미래에서 콜로렌스와 함께 72영웅으로 불리던 ‘연금술사’였다.
그녀의 전장은 콜로렌스의 전장보다도 험악했다.
아니, 어느 의미로는 쉬웠다.
‘싸울 일이 없었으니까.’
‘마르가레는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어요.’
독과 시약.
치료약과 포션, 각성제 등 그녀는 우리들한테 필요한 것을 만들어 주는 것과 동시에 적들의 시체를 가지고 키메라를 만들었다.
그녀의 전장이란 상대의 시체를 모으는 것, 하지만 팔과 다리가 잘리고 내장이 흘러나오는 시체들을 모으는 건 아무리 비위가 좋은 사람이라도 힘들었다.
“무슨 생각해~?”
그녀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자, 나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날 죽이게~?”
“아, 아뇨. 조금 당황해서요. 그나저나 용의 유전자라니요?”
“우웅~? 드레이크의 고환이 몸에 완전히 적응했어~ 그래서 상처를 굳이~ 치료할 필요 없었달까~?”
‘상처?’
그녀의 말에 아까 상대한테 당했던 어깨를 바라보았다.
체력이 전부 소실되어 기절하려던 순간 당해서 그런지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매끈한 어깨만 드러났을 뿐 아무런 흉터 하나 없었다.
‘용의 유전자를 적응했다는 게 이런 말이었나?’
아룡이라 불리는 용족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재생력이 뛰어났다.
그 재생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