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sen by the Hero King, the Second Life of the Illegitimate Child RAW novel - Chapter (98)
98화. 깨달음 (2)
‘이 인간은 뭐지?’
11호는 인간의 육신이 나약하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수많은 행성을 다니며, 그중에서 인간이 주인이 된 행성을 몇 번이나 멸망시켜봤다.
인간은 나약하다.
경지를 이룬 것들은 모르겠지만, 그들조차도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며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수없이 많이 봤다.
‘이 인간은 대체 뭐냐.’
꼬리를 휘두르고, 발톱으로 할퀴어도 이 작은 인간의 몸은 멀쩡했다.
웬만한 인간이라면 그저 단번에 산산조각이 날 터인데, 작은 인간은 그 힘을 대지에 보내버리며 버티고 있었다.
심장이 계속 요동치며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오싹!
그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공포에 11호는 발을 주춤거렸다.
그한테서 느껴지는 공포가 아닌, 생물의 한계를 맞이하고도 그걸 이겨내는 경이로움에 공포가 느껴진 것이다.
-스윽…..
아무리 몸의 형태가 유지된다고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아니 생물인 이상 몸을 움직일 리가 없었다.
몸의 뼈가 전부 부서지고, 피가 흘러넘쳐 죽은 시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녀석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대체 무엇이냐……]“……”
작은 인간은 말없이 옆에 떨어진 검을 들어 올렸다.
[대체 어떻게….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냐! 너는 대체 뭐냐!]인간은 이미 몸이 죽어 있었다.
하지만 눈동자만큼은 아직까지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죽어가는 몸과 다르게 눈동자에 깃들어 있는 강한 의지는 자신의 몸을 중압감으로 짓눌렸다.
‘아니……’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고작해야 눈을 본다고 이 정도 중압감을 느낄 리가 없었다.
공간 전체가 마치 저 작은 인간과 호응하듯 자연의 기운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47호!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공간의 주인은 스모크 레빗의 힘을 사용하는 47호였다.
아무리 공간에 많은 생물들이 들어와 약해졌다고 하지만, 고작해야 토지신과 힘이 약해진 71호와 싸우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11호는 47호한테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스릉
서서히 들어 올리는 검으로부터 날카로운 예기가 공간을 날카롭게 베어내기 시작했다.
제공권.
작은 인간의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검의 공간 속에서 시간은 서서히 느리게 흘러갔다.
[그건….. 뭐냐.]11호의 눈에 똑똑히 보이는 검에 들려있는 무색의 기운.
너무나 정순한 아름다운 기운을 보자마자 몸 안에 있던 요괴의 영혼이 요동치는 게 보였다.
마치 저 기운을 본받아야 한다고 소리치는 것 같은 꺼림직한 기분이었다.
이 꺼림직한 기분은 곧 11호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지금 내 가슴속에 있는 왠지 모를 ‘동경’에 더 이상 관심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저 저 인간을 죽이고 토지신을 가로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제6 꼬리.]11호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꼬리를 펼쳤다.
그러자 나머지 5개의 꼬리가 각각의 자연의 기운을 띠며 서서히 빛을 뿜어냈다.
[무령의 술.]작은 인간이 가지고 나온 것과 같은 무색의 기운이 6개의 꼬리에 맴돌았다.
다만, 완벽한 무색이라고 보기에는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꼬리이기에 약간의 푸른 기가 돌았다.
“……미흡해.”
피가 눈에 들어가 시야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인간은 6번째 꼬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5개의 속성으로…… 그저 걸러낸 것뿐이야. 저건 자연의 힘을….. 다루는 게 아니야.”
[…..뭐라 지껄이는 거냐.]“…..더욱 간결하게. 빠져나가는 힘없이, 유연하게.”
작은 인간은 더 이상 남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정도의 충격이다. 고막이 파손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하아……”
작은 인간은 조용히 검을 아래로 내렸다.
검사들이 흔히 하는 기수식이라는 행위가 아닌, 마치 상대를 깔보는 듯이 검을 내려 그저 평온하게 서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취하지 않은 자세.
하지만 11호는 그런 작은 인간을 보며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네가 자초한 일!]고작해야 저런 작은 인간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는 사실에 치욕을 느꼈다.
11호의 꼬리가 활짝 펼치며 하얀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던 공간 속에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여우몰이!]수십, 아니 수백에 이르는 푸른색을 띤 여우들이 꼬리로부터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전부 오러 블레이드와 비견될 정도로 강력하게 자연의 기운이 압축되어 있지만 로크는 멍하니 여우들을 바라보며 검을 두 손으로 잡아들었다.
‘모든 것이….. 어차피 똑같은 기운일 뿐.’
자연의 힘 중 극히 일부를 빌리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소한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로크는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자연신검(自然神劍) 제 일식 – 무색의 길」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천천히 뻗어나간 검으로부터 무색의 유형이 해일처럼 굽이쳐나갔다.
사방으로 뻗어가는 굽이친 무색의 기운은 곧 모든 것들을 산산조각 내기 시작했다.
-사사사사사사사삭-!!!
11호는 갈라지는 시야 속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작은 인간을 바라봤다.
수십 갈래로 갈라진 몸뚱이는 아무리 재생능력이 뛰어난 푸른색 보석을 지닌 이들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재생될 리가 없었다.
[바보 같은 녀석.]그런 11호의 얼굴 옆으로 하얀색 털뭉치가 다가왔다.
[71호…..?]앙증맞은 양손에는 푸른색 보석이 하나 쥐어져 있었다.
묻지 않아도 그게 47호의 몸에 이식되어 있던 보석임을 알 수 있었다.
[너희는….. 아니, 우리는 인간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단지 그뿐이다.] [……그런가.] [애초에 우리는 약탈자다. 남을 괴롭힌다면 남 또한 우리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너흰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71호는 앙증맞은 손에 들려있는 푸른색 보석을 볼 안에 숨겨두며 11호의 떨어진 육신 속에 숨어있는 보석을 찾았다.
[나와 이 인간은 고작해야 10~15m 떨어져 있을 뿐. 만일 너희가 우리를 더욱 신경 썼다면 쓰러져 있는 건 우리였겠지.]육신에 붙어있는 푸른색 보석을 제거함과 동시에, 11호의 육신은 서서히 분해가 되기 시작했다.
[…..저 인간의 이름을 알고 싶다.]그 말에 백골이는 11호의 보석을 볼에 가득 채워 넣으며 입을 열었다.
[로크. 내가 만난 가장 정신 나간 인간이자, 이 행성의 작은 영웅이다.]그 말을 마지막으로 11호의 영혼은 소멸되었다.
***
아모리는 무너져 내려가는 공간 속에서 서둘러 쓰러져있는 로크한테 다가갔다.
-골골(미치겠군)
“라, 람쥐야! 이 남자 어떻게 해야 해?”
-골골골골(람쥐라고 부르지 마라! 하다못해 다람쥐라고 불러라)!
“……미안한데 나는 쥐 말을 몰라. 이 남자 곧 있으면 죽을 것 같은데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자신과 다람쥐는 비교적 약했던 적을 상대한 것에 반해, 이 남자는 본래 힘을 그대로 가진 적과 싸우며 부상을 당했다.
“온몸의 뼈가 전부 부서졌어. 피도 너무 많이 흘렀고, 근육뿐만 아니라 장기도 손상이 심하셔…..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야.”
-고올….. 골골골골골골(아무래도….. 지금까지 몸에 비축해놨던 에너지가 몸을 간신히 유지시키고 있는 것 같군)
“살릴 방법 있어?”
-골골(음식을 먹여라)! 골골골골(비싼 음식이면 좋지만, 애초에 넌 내 목소리도 못 듣지 않느냐)!
“응? 음식을 먹이라고요? 비싼 음식?”
-……골(뭣)?
아모리는 백골이의 말을 알아들었다.
정확히는 아모리가 들은 것이 아닌, 그 옆에 연기처럼 떠다니는 거대한 검은색 뱀이 혀를 낼름거리며 백골이의 말을 해석해 준 것이다.
“아, 아포라스님! 죽어가는 사람한테 음식이라니요! 최후의 식사가 아니라고요! 제발 진지해 주세요!”
-골골 골골 고고고고고골!(어이, 거기 있는 뱀. 내 목소리가 들리나)?
백골이는 아모리 몸을 감싸고 있는 뱀을 바라봤다.
뱀은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골골골골골골(그럼 이 여자한테 말해라. 이 남자의 몸은 특수해서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나, 식재료를 먹으면 자동적으로 치유된다고.)
끄덕!
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모리를 보며 혓바닥을 낼름거렸다.
“아 좀! 제발 분위기 좀 챙기세요! 지금 사태가 심각한 거 안 보이세요?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 입에 음식을 먹일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낼름낼름.
“쥐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요? 진짜예요?”
-낼름!
“명예를 건다고요? 그런데 아포라스님한테 걸 명예가 있어요?”
-내, 낼름! 낼름낼름!
“……그렇게까지 말하니 믿어볼게요. 근데 어떻게 먹여요? 그보다 맛있는 음식이 있나…..”
아모리는 품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이내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낼름!
“초, 초콜릿 조금 정도는 가지고 다녀도 괜찮잖아요? 그보다 살찐다니요! 어떻게 레이디 면전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나참 어이가 없어서.”
아포라스라는 뱀과 아모리의 대화를 보다못한 백골이는 몸을 직접 움직였나.
-골골(사태가 심각한데 뭔 짓거리야)!
그러더니 주머니에 있는 것을 빼앗아 로크의 입안으로 강제로 넣었다.
-골골골(그보다 이거 먹을 수가 없네)…..
“아. 괜찮아요. 고급 초콜릿이라서 우유가 들어갔거든요. 금방 녹을 거예요.”
잠시 후 초콜렛은 입 안에서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대륙의 남부에서 아주 적은 양만 구할 수 있다는 초콜릿이기에, 몸 안에 흡수되자마자 바로 반응을 보였다.
“지, 진짜 치유된다고요? 이, 이 남자 대체 뭐예요? 괴물이에요?”
-낼름!
“사람한테 괴물이라고 하지 말라니요! 음식을 먹고 몸을 치유하는 인간이 세상천지에 어딨어요!
-골골 골골(둘 다 조용히 하고, 조금 더 내놔라)!
아모리는 가지고 있는 초콜릿을 최대한 손으로 녹인 다음에 로크의 압으로 계속해서 주입시켰다.
피를 철철 흘렸던 몸이라 몸이 재생된다고 해도 피가 부족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몸을 치료시켰다.
-쿠구구구구구구구-!!!!!
47호가 사라짐과 동시에 공간은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로크의 생명만 어떻게든 붙여놓으면 어찌 됐든 간에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쨍그랑!
무너지는 공간 속에서 갑자기 게이트가 열렸다.
그곳에 아탈리네 황녀와 피를 흘리고 있는 몇몇이 보였다.
“공간이 무너지기 전에 빠져나와야 해요! 이쪽으로 오세요!”
공간이 무너지면 아모리 황녀와 지금 이 상황이 밖으로 노출된다.
혼란을 예기할 수 있기에, 아탈리네는 서둘러 47호의 공간왜곡을 뚫고 작은 게이트를 만든 것이다.
“아포라스님!”
-사악!
아포라스는 로크의 몸을 물어서 게이트로 향했다.
-우루루루루루루루!
그들이 게이트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