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780
외전 130화. 운명으로 (5)
우우우웅!
머리가 아파 온다.
양쪽 관자놀이에서 찌르고 들어오는 울림에 뒷골이 깨질 것 같았다.
‘위험해.’
홍오가 고개를 숙였다.
파아앙!
머리가 있던 자리를 통과한 권풍에서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온몸에 마기를 두르고 있지 않았다면 뒤쪽 머리카락 수백 가닥이 뜯겨 날아갔을 것이다. 그 정도로 위력적인 권압이었다.
파바바박!
쌍도와 하나가 된 양팔의 옷깃이 사납게 펄럭였다.
피바람을 부르는 두 자루 칼은 그 이름답게 날카롭고 무자비했지만, 쌍도를 피해 내는 이천상의 움직임은 혈풍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절묘했다.
‘대단한 보법이다.’
보법만 대단한 게 아니었다.
뿜어내고 있는 마기의 질 자체가 뛰어났다. 초일류의 마공을 안정적으로 익힌 절정고수의 마력이었다.
양질의 마기를 갖고 있음에도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마인들은 수도 없이 많다. 명검으로 푸줏간 고기를 썰어 대는 격이랄까.
이처럼 자신이 지닌 기운을 완벽하게 운용할 줄 아는 고수는, 적어도 저 나이 대에서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마인의 능수능란한 공방.
넘치는 재능에 초일류의 마학을 익혔다. 누구라도 상대하기 버거울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홍오의 위기 감지 능력이 싸우는 도중에도 울리고 있을까.
‘아직 어려.’
그래도 홍오는 자신이 있었다.
저 기괴한 암살자 때문에 수하들이 다 죽어 가고 있었지만, 이 두 녀석만 잡는다면 다시 부대를 편성해 쫓아갈 수 있다.
물론 지금 당장 이 젊은 고수를 죽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죽이려면 죽일 수야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팔 하나는 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당연히 임무는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중요한 건 임무지 싸워서 승리하는 게 아니니까.
‘이미 한 번 오판을 내렸다. 더는 추태를 부릴 수 없지.’
쩌저정!
빠져나갈 구석을 찾으며 칼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래도 이 젊은 고수의 무공은 감탄을 안 할 수가 없다.
‘쉽게는 안 되겠군.’
그때, 머리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경종이 한순간 강해졌다.
어찌나 강렬한지 순간적으로 입이 저절로 벌어질 정도였다.
‘빌어먹을.’
파바박! 퍼엉!
고수는 한순간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법.
무공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이천상은 상대와의 거리를 재고 빈틈을 보는 능력이 누구 못지않았다.
홍오의 기도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순간 좌측방으로 파고든 이천상이 상단 각법을 후려쳤다.
퍼엉!
칼날을 교차해 막았는데도 마기의 압력 때문에 아무런 상처를 주지 못했다.
오히려 밀린 것은 홍오였다. 상대의 무공을 받아 주며 빠져나갈 궁리를 했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정말 힘에서 밀려 버린 것이다.
자세를 가다듬는 홍오의 오른발이 움찔하는 걸, 이천상은 놓치지 않았다.
‘중심이 흐트러졌군.’
파아아악!
곧장 달려들려던 이천상은 순간, 칼날과 장포 사이로 번뜩이는 홍오의 눈빛을 보았다.
투웅!
직선으로 치고 나가던 그가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쌍장을 뿜었다.
파바박!
피하지 않고 쌍도술로 장력을 분쇄한다.
빠르고 강하다. 홍오의 도법은 군더더기가 없었으며 어떤 상황에도 올바르게 대응할 만큼 숙련되어 있었다.
파팡!
분쇄된 장력의 파편을 밟고 홍오의 뒤로 넘어간 이천상.
홍오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번쩍!
회전하며 내지른 쌍도의 횡참.
두 자루 명도가 베고 지나간 허공 너머 제법 굵직한 나무가 동강 나 쓰러졌다.
홍오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예측했다고?’
훅!
하단에서 치고 올라온 이천상의 발끝이 홍오의 턱을 후려쳤다.
빠각!
“큭!”
스스로 창안한 마공, 혈혼공(血魂功)의 마기는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부지불식간 내친 일격이라 이천상의 각법 역시 제 위력을 살리지 못했다. 그래서 홍오는 살았다.
‘이럴 수가.’
재빨리 마기를 집중해 어지러운 시야와 흐트러진 방향 감각을 바로잡았다.
이천상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파파팡! 퍼엉!
금강마권, 야차혈장, 다시 금강마권으로 이어지는 이천상의 백타술은 강하고 묵직했다.
권법이든 장법이든, 육장에서 뿜어내는 마기의 질이 너무 대단했다. 애초에 수준이 다른 마공을 익히고 있는바, 한번 밀린 홍오는 때를 읽고 몰아치는 이천상의 파상공세를 떨쳐 내기 어려웠다.
펑!
우도(右刀)를 올려 쳐 수도(手刀)를 막으려 했지만, 칼날을 비껴가 내려온 수도는 어느새 혈장(血掌)이 되어 홍오의 팔뚝에서 터졌다.
홍오의 눈이 흔들렸다.
팔꿈치가 부러질 듯 꺾였다가 본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 일격으로 관절과 신경이 상했음을 알 수 있었다. 찌를 듯한 고통에 오른팔이 마비되는 듯했다.
‘위험!’
쉭!
이천상의 볼에 자상이 생겼다.
휘둘러 베는 데에 적합한 외날의 도로 숙련된 검사처럼 자격(刺擊)까지 행한다.
행위 자체야 어려울 게 없지만, 문제는 그 속도와 날카로움이 검사의 그것처럼 뛰어났다는 것이다. 도를 단순한 병기로 휘두르는 게 아니라 진짜 제 팔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게 가능한 달인의 솜씨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달인이더라도 한쪽 팔이 마비되고 반 박자 호흡을 놓친 상대를 두고 이천상이 실수할 리가 없었다.
얼굴 옆을 지나간 좌도(左刀)를 따라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힌 그가 좌측 어깨와 턱 사이로 홍오의 왼 팔뚝을 잡아 끼웠다.
빠각! 퍽!
이천상의 우권이 홍오의 팔꿈치를 부숨과 동시에 홍오의 좌각이 그의 복부를 후려쳤다.
비틀거리며 물러난 두 사람.
제아무리 이천상이라도 홍오의 각법을 맞고 곧장 움직이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홍오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치링!
왼손에 쥐고 있던 혈풍도 한 자루가 떨어졌다.
‘제길!’
왼팔 팔꿈치가 역으로 부러졌다. 팔이 부러지며 저절로 펼쳐진 손 때문에 칼을 놓쳤다.
홍오 인생에 이만큼 수치스러운 일은 또 없을 것이다. 칼싸움에서 패배한 적은 있어도 타의에 의해 칼을 놓은 적은 없던 그가, 자신보다 한 수 뒤지는 상대에게 이런 모욕을 겪게 된 것이다.
화아악!
홍오의 몸에서 뿜어진 살기가 이천상의 몸을 휩쓸었다.
쿠르릉!
홍오의 눈이 또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강풍처럼 휘몰아치는 살기를, 해일과 같은 기도로 쏟아 내 분쇄해 버린다.
우우우우웅!
이천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 마기는 마치 지옥의 악졸을 소환하기 위한 어느 사교도들의 화형 기도를 보는 듯했다.
그 정도 살기로는 어림도 없다. 이천상의 기도는 그렇게 외치는 듯했다.
“절대 도망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홍오에게 날아든 이천상의 무덤덤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홍오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것을 느꼈다. 임무 때문에 이러는 거지만, 하수 앞에서 들을 만한 얘기가 아니었다.
‘이!’
자세를 낮추고 마기로 애써 정상화시킨 오른팔을 접어 우도(右刀)로 공격하려던 홍오는 다시금 주춤했다.
섣불리 감정에 휩싸여 공격하다가 치명상을 입으면 임무가 날아간다. 그 하나의 사실이, 걱정이 그를 자꾸만 움찔거리게 한다.
‘애송이처럼 화를 낼 때가 아니다. 놈도 한 방 먹었어. 위치도 괜찮아. 조금씩 공방을 주고받다가 빠지면…….’
그때, 또 한 번 머리가 띵하고 아파 왔다.
위험을 알리는 경종. 흠칫하여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이천상의 기습은 없었다.
‘뭐야?’
왜 자꾸 경종이 울리는 거지?
파아아앙!
틈을 읽고 벼락처럼 달려든 이천상이 쾌속한 연환권을 날렸다.
풍부한 마기로 가득한 주먹은 천하의 명도라도 상처를 낼 수 없다. 홍오는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이천상이 말했다.
“생각이 많군.”
“닥쳐라!”
서걱!
우도가 이천상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과감하게 치고 들어간 일격이 오히려 이천상의 육신에 상처를 주었다.
그러나 과격한 공격은 큰 동작이 필요하고, 큰 동작은 필연적으로 빈틈을 만드는 법.
이천상의 좌각이 홍오의 왼쪽 안다리를 후려쳤다.
콰득!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은 자존심 때문일까,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일까.
이를 악물며 무너지는 자세 그대로 칼을 휘둘렀지만, 어느새 자세를 낮춘 이천상이 그의 좌도를 들어 올려 치고 있었다.
쩌어엉!
이천상은 양손으로 쥐어 올려 쳤고, 홍오는 힘을 주기 어려운 자세에서 한 손으로만 내려쳤다.
결과는 자명했다. 익힌 마공도 우월한 마당에 힘까지 달린 상황이니, 홍오의 오른팔이 제멋대로 튕겨 나갔다.
회전하며 거리를 좁힌 이천상이 칼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홍오가 눈을 부릅떴다.
유달리 날카로운 도법도, 뛰어난 초식도 아닌 시기적절한 틈을 타 내리친 일도가 자신의 우측 어깨를 파고들었다.
빠르고 과격한 칼싸움으로 단련된 홍오의 눈은 의복을 베고 어깨를 지나 겨드랑이로 빠져나오는 칼날의 아름다움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왜지.’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지? 실력만 본다면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나와야 하는데?
휘리릭!
홍오의 오른팔이 떨어지기도 전, 방향을 바꾼 이천상의 혈풍도가 그의 옆구리를 지나 명치까지 올라왔다.
벼락처럼 빠른 칼질이었지만 홍오의 눈에는 느리게 보였다. 느리게 보였지만,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무리했군. 오른팔을 날렸으니 한 박자 쉬고 덤벼들면 안정적으로 승률을 높여 갈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다급하게 날 베는 거지?’
촤아악!
우측 옆구리로 들어간 칼이 좌측 어깨를 뚫고 빠져나왔다.
홍오는 이천상의 눈을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눈빛만은 그렇지 않았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는 것만 생각하는 도살자의 눈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 생각도, 아무 목표도 없다.
‘……빌어먹을.’
그제야 홍오는 깨달았다.
자신의 위험 신호가, 빠져나갈 궁리를 할 때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울려 댔던 이유를.
싸워야 했다.
퇴로를 모색하는 것보다, 팔 하나를 잃더라도 목숨 걸고 싸워서 이기는 편이 생존에 유리했다. 그의 감각은 그것을 알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홍오는 신호를 무시하고 빠져나가려 했다. 괜히 감정에 사로잡혀 싸우다가 임무에 실패하는 게 싫었으니까.
상대는 나보다 하수였고 심지어 젊기까지 했다. 당연히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상하군.’
평생 이 신호를 무시한 적이 없는데, 오늘만 몇 번 무시하고 일을 진행한 건지.
홍오는 시야가 서서히 기우는 것을 느꼈다.
‘내가 신호를 무시한 게 아니야.’
젊은 마인의 몸도 덩달아 기울기 시작한다.
상대가 기우는 게 아니라, 내 몸이 기울고 있다는 걸 상반신이 땅에 떨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홍오의 눈이 흐릿해졌다.
‘저놈이 무시하게 만든 것이다.’
죽어 가는 상황에서도 실소가 나왔다.
‘내게는 과분한 능력이었군.’
그 능력 덕분에 지금껏 살아왔는데, 그 능력 때문에 빈틈을 보였고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홍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대로 싸웠다면 너 따위는…….”
주르륵.
홍오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죽었다. 눈과 코, 입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어두운 땅을 더 어둡게 물들였다.
이천상이 칼을 휘저어 핏물을 날렸다.
온전히 싸움에 집중하고 나니, 이제야 삭신이 쑤셔 왔다.
“힘들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