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782
외전 132화. 운명으로 (7)
‘강하다.’
마치 신세계를 본 듯한 기분이었다.
‘저런 경지가 있다니.’
사람마다 무공에 대한 재능의 차이가 존재한다.
당연히 해석도 다르고 몸으로 풀어내는 방식도 다르다. 그래서 무공지로(武功之路)에는 끝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다만, 저마다 밟아 가는 구간이 다르더라도 거의 모든 무인이 공통으로 겪는 지점, 특이점이라고 할 만한 구간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 구간을 설명하기 위해 명칭을 정하고 특성에 대해 논의하며 단계를 설정했다. 그것이 일류니 절정이니 하는 구분의 시작이다.
그중 모든 무인이 입을 모아 불가해, 불세출, 불확정의 경지라고 외치는 경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조화로운 경지라 하는 조화경(造化境), 짧게 화경이라 하며 마도무림 쪽에선 마의 극치에 이른 경지, 극마(極魔)라 한다.
그 경지에 오른 자는 손가락질 한 번으로 집 한 채를 날리고 고함 한 번으로 숲을 무너트리며 한 줌 살기로 수십 명을 즉사시킬 수 있다고 했다.
말 그대로 신의 경지다. 사람의 육신으로 오를 수 있는 경지를 넘어, 무의 한계를 초월해 도달한 그 경지는 어떤 천재의 안목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차원이 다르다는 게 바로 이런 건가.’
저 거인은 필경 극마에 다다랐을 것이다.
그 경지에 든 무인을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확신할 수 있었다.
‘엄청나군.’
마곡의 눈이 깊어졌다.
“홍오와 휘하 마인들을 고작 자네들 둘이서 잡은 겐가?”
유이상은 말이 없었다. 죽음을 직감한 와중이다. 긴장도 했지만, 그렇다고 칼질 한 번 못 해 보고 죽는 것은 사양이다.
죽음을 각오했기에 더더욱 상대의 빈틈을 보려 한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천상은 반대였다.
“그렇다.”
칼날처럼 유지되던 유이상의 집중력이 한순간에 흐트러졌다.
그가 놀란 눈으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은 여전히 무심한 얼굴이었다.
마곡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이름은?”
“통성명이 필요한가?”
“…….”
“목적이 명확하면 칼부터 뽑아라.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면, 왜 이곳에 왔는지 본인부터 설명하라.”
완고하다 못해 질릴 만큼 단단한 어조였다.
놀랍게도 마곡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상대의 그러한 모습이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였다.
“도적들의 칼에 난장판이 되었대도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중에 좋은 원석 한둘은 꼭 있는 법이지.”
“…….”
“무사다운 이의 손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적어도 치욕적인 죽음을 겪진 않아 다행이다.”
철컹.
마곡이 멘 거도는 칼집조차 없었다. 애초에 그 큰 칼날을 집어넣을 칼집을 만드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도환(刀環)에 주조한 걸쇠를 등판에 솟은 고리에 매다는 형식이었다. 칼날 자체도 날이 서 있지 않아, 베는 것보다는 분쇄해 버리는 형식의 무식한 거병이었다.
‘……!’
이천상과 유이상의 기도가 출렁였다.
그저 칼을 뽑았을 뿐이다. 마기의 흐름도, 기세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단순히 고수의 존재감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나도 확연한 변화였다. 칼을 손에 쥔 순간부터 사람이 또 변해 버린 듯했다.
‘신도합일(身刀合一).’
신검합일, 신도합일.
병기와 내가 하나 됨을 뜻하는 경지였다.
그 경지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지만, 경지에 오르고 끊임없이 성장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법이다.
마곡은 신도합일을 완성한 자였다. 더 강한 마공, 더 강력한 초식 따위에 목을 매는 것보다 도객으로서의 자신을 완성하는 데에 주력한 진짜 무인이었다.
“내 이름은 마곡이다.”
마곡.
흔하다면 흔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천마신교의 마인들에게 있어서 마곡이란 이름은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는 이름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태산처럼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신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둘조차도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대력신마 마곡.”
“그렇다.”
유이상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어렸다.
죽음을 각오한 건 맞지만, 상대가 대력신마라고 하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대력신마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지극히 호의적이었다. 상부가 그를 어떻게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반 마인들에게 대력신마는 올곧은 마도의 표상이었다.
그런 사람과 이런 자리에서 만났다. 재밌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마인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대력신마의 성격이 진정 소문과 다르지 않다면, 그런 사람조차 버티지 못하고 떠날 정도로 지금 신교가 막장이라는 소리였다.
세상을 바꾸려 들었건만, 자신은 애송이였다. 저 강대한 마인조차도 버티지 못해 나가 버린 이 세상을, 지금의 자신이 바꿀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그 안일함에, 그 막막함에 웃음이 나왔다.
이천상은 달랐다.
“아무 죄 없는 성인 남녀를 잡기 위해 대력신마까지 나설 줄 몰랐다.”
마곡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래도 그의 음색은 차분했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자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지.”
“그중 여인은 임부였다.”
“…….”
“그대들은 임부를 잡아 두고 있었음에도 음식과 물을 제한했다. 그러다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기세였지.”
마곡의 표정이 돌변했다.
이천상의 담담한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가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당신들이 어떤 이유로 교를 나갔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당신네가 모인 조직에 상식은 없다는 걸 알았다.”
“…….”
“이제 시작해 볼까?”
차원이 다른 강자를 앞에 두고도 주눅 든 기색이라곤 없다.
실제로 이천상은 혈풍도 한 자루를 뽑아 마곡을 겨누었다.
진지해질 필요도 없이, 마곡이 적당한 한 수를 내치면 이천상은 그 한 수조차 감당할 수 없다. 두 사람의 무공 격차는 그렇게나 컸다.
사신(死神)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상대를 앞에 두고도 당당히 칼을 뽑으니, 이는 적을 앞두고 물러나지 않는 무사의 도(道)다.
마곡이 침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혈향검이 임부를 그냥 두었다고?”
“…….”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한편 그러고도 남는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우리도 멀었구나.”
마곡이 탄식을 토했다.
“진심이든 필요에 의해서든, 사람이 사람의 도를 넘어서면 그땐 짐승만도 못한 잡귀가 된다고 누누이 말했거늘.”
“…….”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잡설은 여기까지다.”
“걱정하지 마라. 그들을 잡는다 해도 죽이거나 못살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 대력신마 마곡의 이름을 두고 약속한다.”
“…….”
“일 어렵게 만들지 말고 그들의 소재지를 말하라. 하면 자네들은 고이 보내 주겠다.”
그때, 유이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목숨을 살려 줄 테니 임무를 포기해라?”
“이보게.”
“당신이 나간 천마신교라는 조직의 마인들은 다 그런 놈들이었소? 아니면 그런 조직이었으니 당신도 나간 거요?”
“…….”
“미안하지만 우리는 꽉 막힌 놈들이라, 이미 죽음을 각오했소이다. 살 생각이 있었다면 진즉 무릎부터 꿇었겠지, 안 그렇소?”
마곡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면, 지금 자네들이 내 앞에서 그런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자네들을 일도에 베어 버릴 실력이 없어서 이러고 있다고 보나?”
“…….”
“자네들을 모욕할 생각은 없어. 그저 제안했을 뿐이다. 다만, 진정 죽음을 각오했다면 나 역시 더는 두 사람을 모욕할 생각이 없도다.”
우우우웅!
마곡의 거도에 시퍼런 마기가 일렁였다.
청색의 마기. 지닌 내공의 밀도가 높아 육안으로 그 색이 보일 정도로 연마한 무사들은 꽤 많지만, 도신(刀身) 전체가 가려질 정도로 깊은 색을 내는 경우는 절대 흔치 않다. 솔직히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릴 정도였다.
유이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익힌 마공보다 마곡이 연성한 마공의 수준이 훨씬 더 높았으며, 와중에 이룬 경지조차 비교가 안 된다.
겁을 먹고 안 먹고를 떠나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린다. 마공의 먹이 사슬 관계에서는 하늘이 내린 인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천상은 달랐다.
화아아악!
혈풍도에서 피어오르는 금빛 마기.
내공 소모가 극심한 상황에서도, 이천상의 마기는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다. 상대의 강력한 기세 앞에서도 그의 중단전은 활성화될지언정 흔들리지 않았으며, 무섭게 기능하는 상단전은 이 와중에도 상대의 빈틈을 파악해 내고 있었다.
상단전과 중단전이 어느 때보다 날 서 있으니, 그에 맞물린 하단전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강한 상대 앞에서 더 강한 힘을 피워 낸다. 그것은 이천상이 익힌 마공 때문이 아니라, 이천상이라는 사람 자체가 지닌 천성과 닿아 있었다.
마곡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실력을 떠나 기세에 잡아먹히지 않고 오히려 강력한 전투 의지를 불태우는 이천상의 존재는 그에게도 크나큰 놀라움이었다.
‘정신력인가? 모르겠구나. 신교에 언제 저런 인재가 들어왔단 말인가.’
하지만.
“미안하구나. 이대로 성장한다면 대산의 중추가 되어 역사를 바꿀 만한 인재들이거늘, 이런 상황에 마주하게 되었으니 나라고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숨을 푹 내쉰 마곡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목숨을 건 무사에 대한 예우만큼은 확실히 하겠다.”
온다.
유이상이 이를 악물며 마공을 개방했고, 이천상 역시 금강야차마공의 기운을 계속 끌어 올렸다.
그때였다.
‘……!’
이천상은 순간 세상이 붉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시뻘건 피의 파도가 느릿하게 하강하며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건?’
순식간에 이 기운의 정체를 파악한 이천상.
‘혈강수.’
혈강수의 혈강기(血罡氣)가 움직였다.
그간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게 잠자고 있던 혈강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성화된 상단전으로 인해 함께 깨어나고 있었다.
화아아아아아악!
금빛 마기를 잡아먹는 핏빛 마기.
혈화마공의 핏빛과는 또 다른, 죽어 가는 사람의 피처럼 혼탁하고 검붉은 핏빛이 이천상의 혈관을 타고 흘러가 야차마기를 변색시키려 했다.
이천상의 벼락과도 같은 변화를 마곡 역시 깨달았다.
‘이 마기는?!’
쿠르르르릉!!
대지가 진동했다.
그 순간이었다.
콰앙!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온 한 줄기 발경이 세 사람 사이에서 폭발했다.
훅!
폭발하며 번져 나가는 강력한 기운에, 이천상의 혈강기가 단숨에 스러졌다. 그뿐 아니라 그와 유이상의 몸을 삼 장 뒤로 밀려 나가게 할 만큼 강력했다.
마곡이 고개를 들었다.
“분명 이 근처라고 듣기는 했는데 도통 알 수가 없었지. 다행히 자네의 도기(刀氣)를 느끼고 찾아왔네. 어디 갔나 했더니만 여기에 있었군.”
후우우우웅!
불어오는 바람이 옷깃을 휘날린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처럼,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헤치고 하강하는 두 명의 노인이 있었다.
두 노인 모두 새하얀 의복을 입고 있었다.
한 명은 그 풍모가 신선과도 같아 보기만 해도 탄성이 나올 정도였고, 다른 한 명은 인자한 웃음으로 가득해 어떤 상황에서도 표정이 굳지 않을 것 같았다.
마곡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선풍도골의 노인, 백골신마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오랜만일세, 대력.”
웃는 상의 노인, 자소대마가 말했다.
“잘 지내셨소?”
운명처럼 나타난 신교 최강의 고수들.
현역 십대마왕 중 둘과 전대 십대마왕 중 하나가 대치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