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789
외전 139화. 거인의 그림자 (6)
이천상의 눈이 살짝 떨렸다.
우우웅! 우우우우웅!
착각일까?
쌍면의 도환, 두 해골의 텅 빈 눈에서 어두운 청록색 광채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칼 자체에 강력한 마기가 깃들어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느낌일 뿐, 실제로 마기가 깃들지는 않았다. 이천상이 보기에 그러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다.’
살벌한 위용, 죽음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외형.
뽑는 것만으로도 모두의 시선을 잡아챌 만큼 독랄한 외형이었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모양만 칼이지 칼다운 특성은 없었다.
놀랍게도 보도(寶刀) 특유의 예기조차도 없다. 이질감에 칼날을 찬찬히 살피던 이천상은 백골마도의 칼날이 뭉툭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오랫동안 쓰인 도끼날처럼 무뎠다. 일부러 날을 뭉툭하게 만든 것 같았다.
첫인상, 보자마자 느꼈던 위압감과 달리 실제로는 수상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처음 보면 그 독특한 외양에 시선을 뺏기게 되지만, 인상은 흐릿해서 기억에 남지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신병이기(神兵異器)가 맞는군요.”
백골신마의 눈이 반짝였다.
“신병이기라고?”
“그렇습니다.”
“나는 자네에게 그것이 신병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네. 신병을 만들 능력이 있는 장인이 힘을 빼고 만든 칼이라고 했을 뿐.”
“그래도 이 칼은 신병입니다.”
백골신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천상의 대답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백골마도를 신병이라고 믿는 듯했다.
‘아는 것인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럴 수가 없다.
백골마도는 당대 교주인 자전신마도 구경 한번 해 보지 못한 칼이었다. 애초에 저런 칼을 갖고 있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 이 칼은 전대 교주가 백골신마에게 직접 하사한 물건이었다.
전대 교주, 그리고 백골신마와 그의 지인 몇몇만 알고 있던 비밀 아닌 비밀.
‘아니면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인가.’
이천상의 눈은 칼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초절정고수가 보아도, 아니 극마에 이른 고수가 봐도 독특한 외양을 지닌 단단한 명도(名刀)라는 생각만 할 뿐, 이 칼의 값어치를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장 백골신마도 이 칼의 진면목을 제대로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아니, 한 사람이 있긴 했지.’
백골마도의 비범함을 한눈에 알아봤던 비범한 천재가 하나 있었다.
‘무담.’
과거 신교의 분타 하나를 공격했다가 멸문해 버린 당권문(撞拳門)의 말단 행정가.
대산으로 잡혀 온 후 비범한 능력과 대나무 같은 성정을 증명해 내, 십 년도 채 되지 않아 교주에게 발탁되어 총군사로 성장한 입지전적인 인물.
무재(武才)가 유별나게 뛰어났음에도 무공을 익히기엔 늦었다고, 머리로 성공해 보겠다며 호탕하게 웃어 댔던 남자는 멍청했던 당권문주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미로 그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스스로 개명하였다.
전대 총군사 황인악(黃仁岳), 그가 바로 무담이었다.
백골마도의 진면목을 알아본 사람은, 교주를 제외하고 오직 그뿐이었다.
‘재미있군.’
이 젊고 어딘가 뒤틀려 있는 천재가 어디까지 알아봤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진면목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느끼기는 한 모양이었다. 눈빛만 봐도 상념에 젖거나 고위 간부의 선물에 감동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에 드시는가?”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칼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자네가 느끼는 대로 신병이라면 누가 써도 좋지 않겠나?”
“신병…….”
잠시 말끝을 흐리는 이천상.
백골신마가 술을 따르며 그를 곁눈질했다.
칼에서 시선을 뗀 이천상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신병은 신병입니다만 사실상 마병(魔兵)이라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신병이되 동시에 마병이다.
겉모습만 보고 마병이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백골신마는 이천상의 생각이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다루기 어려울 게야. 고생 좀 할 걸세.”
“예.”
“칼도 칼이지만, 앞으로 자네를 주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야. 자네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천상의 눈이 빛났다.
주시하는 사람이 많아질 거라는 것은 곧 백골신마의 정적들이 예상보다 많다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별로 긴장하는 기색이 없군.”
“그렇습니까?”
곧장 요대에 백골마도를 건 이천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칼 잘 받았습니다.”
얻을 걸 얻었으니 이만 가겠다는 것이다.
백골신마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이 젊은이가 그간 보아 왔던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는 것을.
청장년에 국한된 게 아니다. 남녀노소 통틀어서 이렇게나 흥미로우면서도 예측이 안 되는 인물은 없었다.
곧장 떠날 것 같은 이천상을 향해, 백골신마가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자네에게 말했네. 스스로 옳다 여기는 것을 설명도 못 하는 판국이니 아직 멀었다고 말이야.”
“기억합니다.”
“그전에 자네는 내게 말했지.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개인이라면 모르겠으나 수장으로서는 어떠한 뇌물도 받을 수 없다고.”
“예.”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 가다가 헤어진 후, 결국 오늘이 왔군. 자네 나름대로 갈 길을 정했다고 봐야겠지.”
“…….”
“묻겠네. 자네가 보는 옳은 길, 올바른 도(道)는 무엇인가?”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그런가.”
“미래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 그리 생각하나?”
“올바른 길이라는 게 하나로 정의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백골신마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확실히 나아졌군.”
“그럼 이만.”
“하나 더 묻지.”
“…….”
“그 칼을 받는다는 의미를 모를 리는 없을 것이야. 사실 야차사령의 각주 따위가 내 거처에 왔다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이지. 자네가 마음을 먹은 그 순간, 염왕(閻王)의 차사들 역시 움직일 준비를 마쳤을 거라네.”
“…….”
“그런 위험천만한 선택을 내린 이유가 무엇인가?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자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단순히 그게 전부인가?”
“그렇습니다.”
“충분히 만족하지 않으면 교주위까지 노려 볼 수 있다고 말했네. 하면,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이군.”
“필요한 많은 것 중 하나입니다.”
“그 하나가 없으면 필요한 걸 얻을 수 없으니 결국 그게 전부라고도 할 수 있겠지.”
“…….”
“무엇을 원하나?”
간결하지만, 이 질문 하나에 이천상의 선택을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원하는가.
올바른 길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도 알고 권력이 필요한 것도 알겠다.
그래서 올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강력한 권력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는 것인가?
이천상의 대답 역시 간결했다. 간결할 수밖에 없었다.
“지옥을 마도(魔道)로 바꿀 겁니다.”
“……!”
백골신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옥은 지금의 신교를 말함이다. 즉, 지옥 같은 지금의 천마신교가 진정한 마도를 걷도록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발언이었다. 마인에게 천마신교는 국가나 다름없다. 이천상은 지금 국가를 바꾸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위험한 말을 잘도 하는군. 내가 자네의 말을 외부로 퍼트리면, 어찌 될지 알고는 있나?”
“이런 말을 뱉지 않아도 원하신다면 어떤 죄든 뒤집어씌워 형법당에 보내 버릴 수 있을 만한 권력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
“진정한 마도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그런 짓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면 될 듯합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천상을 보던 백골신마가 피식 웃었다.
“말은 좋구먼. 자네는 아직 본교가 품고 있는 악(惡)에 대해 몰라. 그저 표면만 훑었을 뿐이지.”
“표면만으로도 이 정도라면 더더욱 바꿔야겠지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네.”
백골신마의 눈이 깊어졌다.
“많이들 원했지. 원하고 바라 왔고 시도했었네.”
“…….”
“그러나 성공한 사람은 없었어.”
“그렇습니까.”
“자네가 성공시킬 수 있겠나?”
“성공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오늘 이천상에게 들은 말 중 이 발언이야말로 백골신마의 마음을 가장 크게 뒤흔들었다.
백골신마가 씩 웃고는 잔을 비웠다.
“재미있는 친구로군.”
“말이 나온 김에 저도 하나 묻겠습니다.”
“뭔가?”
“장로님 말씀대로 저는 새로이 만든 야차사령 소속의 각주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외성에 거하고 있으니 권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
“인연을 느꼈다거나 혹은 단순한 흥미 때문에 이 정도 마병을 건네주신 건 아닐 텐데요.”
“그리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백골신마가 이천상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이천상은 느낄 수 있었다. 백골신마의 눈은 자신을 보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것을.
백골신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가시게.”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던 이천상이 포권을 취하며 몸을 돌렸다.
이천상이 떠난 뒤, 다시 잔을 채운 백골신마는 정자 옆 작은 호수를 바라보았다.
물이 맑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물고기 한 마리 살지 않았다.
백골신마는 그 안에 물고기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다.
밑엣것들이 아름다운 잉어들을 가지고 오면 먹이를 주었지만, 또 며칠 지나면 잉어들은 사라져 있었다. 자신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흥미가 떨어졌다고 생각한 하인들이 몰래 치우기 때문이었다.
백골신마는 하인, 시비들에게 왜 내 허락도 없이 치웠느냐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쩌면 나야말로 본교에서 가장 이질적인 인간인지도 모르지.’
생각해 보면 밑엣것들에게 딱히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그렇게 변했을까? 백골신마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안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과거는 과거대로 두되 앞으로는 조금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거기 있느냐.”
“예.”
하인 하나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하인을 보며 입을 열려던 백골신마는 순간 움찔했다. 항상 보면서 사는 하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정확히는, 이름을 물어본 적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거기 있느냐, 하면 왔고 뭔가를 시키면 했다. 백골신마에게 아랫사람들은 그저 손과 발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
가만히 하인의 얼굴을 보던 백골신마의 입꼬리가 찬찬히 올라갔다.
‘그래, 이제 기억이 나는구먼.’
자신이 왜 아랫것들에게 관심이 없었는지,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아무 관심도 두지 않았던 이유가 뭐였는지 지금 막 떠올랐다.
떠올랐기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 웃음은 한 줄기 깨달음이 되어 자신이 왜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까지 설명해 주었다.
“다른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예?”
느닷없는 질문에 화들짝 놀란 하인은 곧장 자신의 실수를 인지한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다들 저마다 일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거처가 어디였지?”
“저희는 출하관 삼 관에서 숙식하고 있습니다.”
고분고분 답하는 하인의 목소리에서 숨길 수 없는 당황이 묻어났다.
백골신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는 모두 삼 관으로 가서 쉬도록 하라.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아, 알겠습니다!”
허둥지둥 답한 하인이 쏜살같이 물러났다.
백골신마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호수에는 잉어 한 마리 살지 않았지만, 하늘에는 구름 조각들이 참 많았다.
“누구부터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