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799
외전 149화. 일어나는 불씨 (7)
“후우.”
쭉 밀려 나간 연기가 달빛에 닿아 흐려졌다.
사면귀(蛇面鬼)는 생각했다. 정말이지 답답한 냄새라고.
중원에 연초를 피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무림인이 연초를 피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조금이라도 강해지기 위해 영혼도 팔 수 있는 놈들이 무림인이란 족속들이다. 마인 역시 무림인이니, 몸에 좋은 것이라곤 없는 연초를 피우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호면귀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그를 봤을 때부터 연초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도 그는 강했다.
내공으로 체내의 불순물을 외부로 뽑아내는 것은 소위 절정고수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 절정고수 수준까지 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인데, 호면귀는 서른이 되기도 전에 절정고수가 되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자니, 연초를 피우는 게 오히려 마공 연마에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 해도 절대 안 피우겠지만.’
그때, 호면귀가 말했다.
“늦는군.”
“곧 오겠지요.”
“후우.”
곰방대를 툭툭 터는 모습이 그야말로 어느 시골 촌장의 그것과 같다.
사면귀의 눈이 깊어졌다.
가면을 머리 위로 젖힌 채 피우는데도, 이상하게 호면귀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인상적이지 않다고 할까? 연기 때문인지,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인상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는 호면귀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머릿속에서 그 얼굴을 그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직접 보고 있는데도 인상이 흐릿한데 오죽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적어도 예전엔 떠올리고자 하면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었다.
함께했던 동료였는데, 더는 함께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더 답답한 건지도 모르겠다.
‘괜한 생각이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분위기를 환기하고 싶어, 사면귀는 물었다.
“위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맨 똑같은 소리지.”
호면귀가 피식 웃었다.
웃음소리에 섞여 튀어나온 한 뭉텅이의 연기가 또 한 번 달빛에 스러졌다.
“아직 멀었다고 하더군.”
사면귀가 눈살을 찌푸렸다.
가면을 써서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눈매가 일그러진 것만큼은 확실히 보였다.
“정말이지 알 수가 없군요. 어디까지 진행해야 하는 건지…….”
“까라면 까야지. 솔직히 말해서, 싫으면 이곳에서 나가면 그만이야. 누구도 붙잡은 적 없잖아?”
“…….”
사면귀는 침묵했다.
호면귀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의 말마따나, 이 일에 함께하고 싶지 않으면 나가면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기를 포기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가면 죽는다.
지금껏 이곳에 속해 있다가 나간 이들은 하나같이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이 사고사나 원한에 얽힌 죽음, 혹은 실종 처리가 되었다.
암살자에게 당했다거나 형법당으로 이송되어 고문당한 것도 아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사유로 죽어 간다. 짧으면 탈퇴한 그날, 늦어도 사흘 안에는 목숨을 잃었다.
‘이곳’에 속한 마인들은 바보가 아니다. 죽여서 입을 막는 것만큼 확실한 비밀 유지 방안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즉,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음으로써 탈출하면 되는 것이다.
누가 있어 나가려 할까?
호면귀가 곰방대를 털며 말했다.
“어차피 밖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머저리들이 태반이야. 그래서 온 거 아닌가? 한 번의 기회라도 더 준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해. 그것조차 싫었다면 애초에 들어왔으면 안 됐지.”
“……맞는 말씀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틀렸다.
사면귀가 물었다.
“호면은 여기 왜 들어온 겁니까?”
호면귀가 뜻밖이라는 얼굴로 사면귀를 돌아보았다.
정면으로 보는데도 인상이 흐릿했다. 사면귀의 심경이 가일층 복잡해졌다.
“몰라서 묻나? 최고가 되고 싶어서 왔지.”
“…….”
“본교의 마인으로 살면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기껏해야 내전 삼원 소속의 조장급이나 될까? 실력 좋고 눈치 좋으면 원주급 휘하에서 놀 수도 있겠지. 애초에 이궁이부는 운이 아니면 들어갈 수조차 없어.”
스르륵.
곰방대에서 떨어진 재가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졌다.
“나는 그 정도를 원하지 않아. 더 위를 원한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온 거야.”
“…….”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래서 온 거 아닌가?”
아니다.
사면귀는 호면귀를 따라 들어왔다.단순한 이유였다. 둘은 절친한 친구였다. 삶도 함께, 죽음도 함께였다. 그 정도로 가까웠고 실제로 피를 나누는 형제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온 뒤 그 관계는 깨져 버렸다.
호면귀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무엇이든 빨리 배웠고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다.
그 강한 자신감과 영향력으로 어느 곳에 가도 대장 노릇을 했다. 사면귀는 대장 노릇에 관심이 없었지만, 적어도 호면귀의 그러한 면은 대단하다고 인정했다.
‘이곳’에서도 호면귀는 두각을 드러냈다.
고작 이 년 만에, 전대 호면귀를 죽이고 십이지신(十二支神)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때부터 사면귀는 더 이상 호면귀를 친구라고 부를 수 없었다. 마음으로는 여전히 친구로 대했지만, 어느새 명확한 상하 관계로 굳어져 버렸다.
사면귀는 그것이 못내 아쉽고 서운했으며 싫었다.
“밤이 깊었군.”
곰방대를 다 털고 가면을 쓴 호면귀가 달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는데,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구름이 달 밑을 스치며 차가운 빛을 조금씩 가리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지.”
곰방대를 무성의하게 요대에 끼운 호면귀가 몸을 돌렸다.
“문제가 생긴 모양이야. 나는 먼저 갈 테니까 네가 그곳으로 가.”
그때였다.
툭.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날아온 가면 하나가 땅을 구르다 호면귀와 사면귀 사이에서 멈췄다.
“……!”
사면귀의 눈이 흔들렸다.
끄트머리가 조금 부서진 가면은 바로 홍모후의 가면이었다.
호면귀가 어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명의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스륵.
몇 걸음 걸어온 게 전부인데도 순식간에 삼 장 거리 안쪽까지 접근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은밀한 이동이었다. 그들 정도의 고수들에게는 손 한번 뻗으면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거리이기도 했다.
사면귀의 손이 저도 모르게 움찔할 때.
“괜찮아.”
호면귀가 손을 들어 사면귀를 제지했다.
“공격할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칼을 뽑았겠지. 저자는 우리와 싸울 생각이 없어.”
담담한 목소리였다.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황한 건 아니다. 오히려 나타난 사내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에 은은한 흥미가 인 채였다.
“대단하군. 듣긴 했지만, 소문보다 더 강했던 모양이야. 설마하니 그 둘을 해치우고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어.”
“…….”
“그 둘, 죽어도 입을 열지 않을 성격인데 어떻게 이곳을 찾았나? 형법당의 고문 정도가 아니면 절대…….”
“자소 쪽은 아니군.”
“…….”
“광혈인가.”
무심한 그 목소리는 가히 기습과도 같았다.
사면귀는 호면귀의 몸이 움찔한 것을 보았다. 정곡을 찔린 것이 분명했다.
사내, 이천상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호면귀의 반응, 그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값은 다 한 셈이었다.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놀랍게도, 칼 한번 휘두르지도 않고 볼일 다 봤다는 듯 가 버리려 한다. 적일 수도 있는 상대 둘을 두고도 서슴없이 등을 돌리는 그 행동 자체가 굉장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호면귀의 입이 열렸다.
“이천상, 맞지?”
“…….”
“야차사령 일각의 대장. 광마대주 도헌의 추천으로 야차사령으로 들어간 마인.”
이천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뚜벅뚜벅 다시 어둠으로 돌아갈 뿐.
호면귀의 눈이 짓궂게 휘었다.
“우리는 다시 보게 될 거야.”
밑도 끝도 없는 그 말에 이천상이 반응했다.
고개를 돌려 호면귀를 힐끔 보는데, 그 무심한 눈빛이 참으로 두렵게 느껴진다.
이천상이 턱으로 호면귀의 곰방대를 가리켰다.
“아직 부족하군.”
“……?!”
“차라리 정직한 마공을 익혔다면 더 나았을 것을.”
순간 호면귀의 눈이 흔들렸다.
이천상이 다시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그가 사라진 자리에 칙칙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면귀가 물었다.
“가서 잡을까요?”
“…….”
“호면.”
“못 잡아.”
“예?”
“지금 네 실력으로는 저놈을 잡을 수가 없어.”
“……!”
사면귀는 당황했다.
자신의 실력을 폄하해서가 아니었다. 호면귀의 목소리가 떨렸기 때문에 당황했다.
언제 어떤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호면귀였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 왔다.
사면귀가 힘을 주어 말했다.
“어쨌거나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놈 손에 홍모후와 청아서(靑牙鼠)가 당했습니다.”
“먼저 찾아간 건 청아서 쪽이었다.”
“홍모후는 호면의 명령을 받고 갔습니다.”
“내버려 둬.”
“호면!”
호면귀가 몸을 돌렸다.
“다시 만나게 되겠지. 적어도, 지금은 적으로 삼을 만한 놈이 아니야. 상부에서도 원하는지 모르겠고.”
고작 마인 하나일 뿐이었다. 그것도 내전이 아닌 외전의 무사다. 실력이 뛰어난 건 인정하겠지만, 눈치 보면서까지 상대할 자는 아닐 텐데.
사면귀는 자신의 속내를 밝힐 수 없었다. 어느새 상관이 되어 버린 친구는, 한번 정한 바를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그는 따를 뿐이었다.
“가자.”
“……예.”
“예비 후보 중 가장 괜찮은 놈들에게 새 가면을 씌워 줘.”
“알겠습니다.”
* * *
어둠을 쫓아 걷던 이천상은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가면이 벗겨진 홍모후를 둘러멘 홍산이 있었다.
가만히 홍산을 보던 이천상이 다시 걸었다.
그때, 홍산이 물었다.
“우리를 왜 살려 준 거냐.”
“이유 따윈 없다.”
“…….”
“가라.”
“실력 좀 보자고 먼저 덤비긴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아.”
“내 알 바 아니다.”
홍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넌 정체가 뭐냐? 감정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듯한데, 뭔가 대단한 계략이 있어서 우릴 살려 준 것 같지도 않고.”
이천상이 턱으로 홍모후를 가리켰다.
“살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군.”
맞는 말이었다.
홍모후는 이천상 손에 끔찍한 꼴을 당했다. 도대체 어디서 배워 온 점혈법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손끝에서 홍모후의 사지가 제멋대로 오그라지더니 부러지길 반복했다.
어지간히 비참한 꼴을 많이 봐 온 홍산조차도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끔찍한 몰골이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부러져 동그랗게 말린 채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홍산은 처음 보았다.
어쨌든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어떻게든 재활은 가능하겠지만, 본래 기량을 되찾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전쟁터 같은 신교 내에서 기량 저하는 곧 죽음과 이어진다. 차라리 깔끔하게 죽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물끄러미 이천상을 노려보던 홍산이 입가를 씰룩이며 말했다.
“네가 최고인 것 같나?”
“…….”
“오만이다. 교내에는 수많은 천재가 득실거리고 있어. 당장 호면귀만 해도…….”
“나보다 강하더군.”
“뭐?”
“강하지만,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었다.”
“……호면은 분명 대단하지. 그러나 천재는 아니야. 네가 상상도 못 할 괴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 거다.”
이천상에게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홍산이 이를 악물며 몸을 돌렸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자, 이천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달을 다 가렸다. 세상이 훨씬 더 어두워졌다.
“이미 나의 존재를 다 알고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