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02
외전 152화. 피에 젖다 (2)
“괜찮을까요?”
흑안마의 물음에 사면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둡다. 일각 안에 끝낸 후 루주를 따로 만나면 그만이야.”
물론 우리가 만나는 건 아니겠지만.
“그럼 이대로 돌입해도 되겠습니까?”
사면귀는 잠시 말없이 자미루를 둘러보았다.
‘인기척이 거의 없군.’
일 층에도 그렇고, 특히 중상층에는 아예 사람이 없다.
그걸로 충분하다. 자미루는 내성에서도 제법 유명한 주루였다. 특히 밤에는 뇌물을 주고받는 권력자들이 줄을 지어 서느라 언제나 만원이었다.
그러나 동이 트기 직전, 어두운 새벽에는 아무도 없다.
사면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물만 제거해야 한다. 그와 연관된 사람들이 다치면 안 돼. 뒷일이 피곤해진다.”
“알겠습니다.”
“기물 파손도 최소화해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위험한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주변 신경 쓰지 말고 날뛰어도 좋다.”
“예.”
“그럼.”
사면귀가 검을 뽑아 들었다.
“황각우와 회운견(灰雲犬), 은도해(銀刀亥)는 퇴로를 막아라. 우리 둘이 먼저 진입한다.”
사삭!
소, 개, 돼지의 가면을 쓴 고수 셋이 흩어지며 자미루를 둘러쌌다.
동시에 사면귀가 자미루의 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위험!’
문이 열리자마자 사면귀가 고개를 숙였다.
퍽!
뒤를 따라 들어오던 흑안마의 목이 낫 모양으로 꺾여 버렸다.
“……!!”
사면귀의 눈이 흔들렸다.
즉사였다.
묵직한 무형의 장력에 강타당한 흑안마는 그 일격으로 목이 부러져 죽었다.
‘반대로 기습을 해?!’
순간 은밀하게 다가오는 한 줄기 살기가 느껴졌다.
쩌어어엉!
사면귀가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힘이……!?’
강하다.
어느새 돌진하여 사면귀를 밀어붙인 사람은 이천상이었다. 탁한 우윳빛 도신에는 은은한 금빛 마기가 일렁였고, 대지를 버티고 선 두 발 주변으로 작은 회오리가 뻗어 나왔다.
“으아악!”
“헉!”
자미루 내부에서 비명이 울렸다. 일 층 숙수와 점소이들이 지르는 비명이었다.
이천상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사면귀는 등골이 오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쩌정!
강력한 도압을 유지한 채 내리긋는다. 신속하게 물러나 도를 쳐 냈지만, 검병을 쥔 손아귀부터 팔꿈치까지 강렬한 진동을 느꼈다.
파아악! 퍽!
창밖으로 튀어 나간 허필의 주먹이 은도해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필과 함께 나간 홍산은 순식간에 황각우에게 달려들었는데, 불안정한 기도와 달리 살기만큼은 압도적이었다.
쩌저정!
황각우의 원앙월(鴛鴦鉞)을 연검으로 쳐 내는 홍산의 검결은 눈부셨다.
사면귀가 외쳤다.
“이놈들, 이미 알고 있었던가!”
“그렇게 대놓고 살기를 피워 대는데 모르기가 어렵지.”
번쩍!
백골도가 사면귀의 목덜미를 스쳤다.
기가 막힐 정도로 빠르고 날카로운 도법이었다. 딱히 어떠한 형식을 갖추지 않았지만, 칼을 제대로 다루는 달인의 위세가 느껴졌다.
양수로 잡은 백골도를 머리 위로 올리며, 이천상이 말했다.
“연관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는 주지 마라.”
이천상이 힘차게 칼을 내리쳤다.
쩌어어엉!
사면귀의 몸이 삼 장이나 뒤로 밀려 나갔다.
‘강하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힘 자체가 강했다.
와중에 단순히 힘만 믿고 내리친 일격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밀었다 당기듯 휘두르면서도 압력은 고스란히 유지한, 본인의 힘을 십 할 다 담은 멋들어진 일도(一刀)였다.
단순하지만 빠르고 강하다. 그러면서도 도무지 단순하지 않다. 칼날에 실린 경력도 그렇거니와, 어딘지 모르게 독특한 투로를 밟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슉!
낮은 자세로 돌진한 이천상이 사면귀에게 달려들었다.
오로지 공격만을 위한 돌격이었다. 의도가 빤히 드러나는 돌진이었지만 무시할 수가 없다. 뿜어져 나오는 기파가 워낙 강해서, 쉽사리 피할 수도 없을 듯했다.
‘받아 주지.’
이왕지사 싸움이 벌어진 것, 전력을 다해 죽이면 그만이다.
십이지신의 이인자인 그의 무공은 홍산을 뛰어넘는다. 원래라면 십이지신 중 첫째인 쥐의 무공이 가장 강해야겠지만, 그 규칙을 깨 버린 것이 호면귀와 사면귀였다.
다시 말해 유일하게 호면귀와 제대로 된 합을 나눌 수 있을 만한 고수가 바로 그였다.
사면귀의 검이 기괴한 선을 그리며 쏘아졌다.
한 마리 뱀이 꿈틀거리듯 나아간다. 치명적인 독니를 품은 독사의 아가리가 사람을 통째로 삼킬 만큼 거대하다. 사면귀의 독문무공, 포식사검(捕食蛇劍)이었다.
이천상의 백골도가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회전했다.
쩌저저저정!
허공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천상은 손목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기습으로 밀려 나갔지만, 사면귀의 본 실력은 굉장했다. 평생 검을 다룬 그의 검리(劍理)는 독특하면서도 위력적이었다. 검이라는 병기의 목적성에 부합하는 움직임을 구사하면서도, 마치 무게감 있는 중도(重刀)의 압력을 뽐냈다.
쩌어어엉!
이천상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버틸 수 있었지만, 그랬다간 하반신 관절들이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북천마혜보로 속도를 더해 절반 이상의 검압을 흐트러트렸다.
사면귀의 눈이 번쩍였다.
‘대단한 놈이구나!’
이 몸놀림 한 번으로 청아서와 홍모후가 왜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무공의 경지가 높은 이들은 무섭지 않다. 진짜 무서운 것은 바로 이런 놈이다.
눈이 좋고 감각이 예민하다. 만약 자존심에 버텼다면 포식사검의 사복일섬(蛇伏一閃)이 놈의 뱃가죽을 갈라 버렸을 것이다.
그것까지 예측하고 물러난 것이다. 싸움에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감각이 예민하며, 찰나지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전투 감각이 엄청나게 뛰어나군.’
이런 놈들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자신보다 두 수, 세 수 이상의 고수도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고 잡을 만큼 기량이 뛰어난 놈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사면귀 역시, 단순히 무공 경지만 높은 검객이 아니었다.
파아아악!
탄력 있는 보법으로 접근한 사면귀가 순간 몸을 멈추더니, 그 탄력을 이용해 휘두르는 검압에 힘을 더했다.
그야말로 막강한 일검. 이천상이라도 감히 맞받기 힘든 일격이었다.
그런데도 이천상은 하단에서 상단으로 백골도를 휘둘렀다. 정면으로 받아 보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사면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죽어라.’
그때였다.
쩌르르릉!
허공에서 터진 진동음이 기괴한 울음으로 변해 팔방으로 새어 나갔다.
사면귀의 눈이 번쩍 뜨였다.
되받아 쳐 올라간 백골도가 사면귀의 검에 부딪히는 순간 힘을 잃고 검압에 딸려 내려갔다.
힘이 부족한 게 아니다. 일부러 힘을 뺀 것이다.
권법에 능한 고수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섬세한 움직임, 손가락과 손목의 유연성이 타 고수들과는 격이 다르다.
‘이런!’
퍽!
사면귀의 검이 땅에 박혔다.
쿵!
이천상의 팔꿈치가 사면귀의 가슴을 후려쳤다.
후속타를 예상하여 몸을 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순간 호흡이 멎을 만큼 강력한 일격이었다.
서걱!
그냥 맞고 물러나지 않는다. 사면귀의 검이 이천상의 팔꿈치 위를 베고 지나갔다.
‘예리하군.’
그간 여러 고수와 싸워 봤지만, 적어도 일대일에 있어서 이렇게 감각 좋은 검객은 없었다.
실력이 대단하다. 이천상은 느낄 수 있었다. 상대 역시 자신과 비슷하다. 단순히 힘과 이룬 성취만 믿고 날뛰는 고수가 아니라, 적을 죽이기 위해 어떤 방식이라도 써먹겠다는 생각을 한 살인귀였다.
‘일대일이라면 말이지.’
파아악!
이천상이 재차 사면귀에게 달려들었다.
사면귀가 이를 악물며 포식사검을 전개했다.
그때였다.
터어엉!
엄청난 탄력이었다.
직선으로 달려 나가다가 한껏 자세를 낮춘 뒤 좌측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속도가 빨라 예상보다 더 깊숙이 들어간 이후 방향을 전환했다. 덕분에 포식사검에 맞아 어깨에 절상이 생겼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사면귀는 놀란 눈으로 이천상을 보았다.
어느새 방향을 꺾고 달려 나간 이천상은 홍산과 전투를 치르는 황각우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황각우!!”
놀란 황각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때, 이미 이천상의 백골도는 그의 머리통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서걱!
황각우도 보통 고수는 아니었다. 재빨리 자세를 낮추고 몸을 틀어 머리통이 날아가는 걸 피했다. 그러나 상반신에 꽤 깊은 상처를 입었다.
홍산이 외쳤다.
“이놈은 내가 맡는다!”
이천상은 홍산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파바박! 퍽!
물러나는 황각우에게 달려들어 좌수 삼권으로 원앙월을 튕겨 내곤, 곧바로 돌진해 백골도로 흉골을 깨부쉈다.
황각우의 가면 밑으로 피거품이 일었다. 심장이 꿰뚫리진 않았지만 좌측 폐가 뚫려 버렸다. 앞뒤 갈비뼈가 쪼개진 건 덤이었다.
푸화악!
칼을 뽑은 이천상이 기다렸다는 듯 뛰어든 사면귀를 향해 일도를 휘둘렀다.
쩌어어엉!
사면귀의 검압은 여전히 강했다.
또다시 북천마혜보로 검압을 흐트러트린 이천상이 아직 죽지 않은 황각우에게 달려들어 목을 밟았다.
콰직!
허무한 최후였다. 목이 부러진 황각우는 그대로 즉사했다.
사면귀의 눈이 충혈되었다.
“너!”
쩌저정!
연검이 휘청휘청 사면귀의 강철검을 때려 댔다.
“청아서.”
“빌어먹을!”
홍산이 이를 악물며 연검을 휘둘렀다.
자신의 상대를 앗아 간 이천상에 대한 분노와 싸움에서는 그게 당연한데도 화를 내 버린 제 모자람, 그리고 자신을 죽이러 온 사면귀에 대한 살심이 어우러져 난폭한 검결을 그려 냈다.
쩌저저저정! 터엉!
홍산의 연검은 사면귀의 검법보다 훨씬 더 뱀 같았다.
하지만 사면귀의 검법 앞에 홍산은 점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실력 차이도 있었지만, 이천상에게 당한 상처가 다 낫지도 않은 판국이었다. 잠시나마 밀어붙인 것만으로도 대단한 선전이라 할 수 있었다.
쩌어엉!
사면귀의 검이 홍산의 연검을 중간부터 부러트렸다.
내공으로 단단해진 그 순간을 노렸다. 굉장한 안목이었다.
충격에 밀려 난 홍산은 사면귀의 검이 제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포식사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단 일격에 목숨을 삼켜 버릴 것처럼 난폭한 자격(刺擊)이었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일격.
‘젠장, 이렇게 죽는다고?’
쩌어어엉! 피슉!
홍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측면에서 날아온 한 줄기 권풍이 사면귀의 검로를 방해했다. 일직선으로 돌진하던 검로가 틀어지며 홍산의 목에 작은 생채기를 냈다.
그게 전부였다. 홍산은 죽지 않았다.
쩌저저저정!
질풍처럼 달려든 이천상이 사면귀를 붙잡았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홍산은 은도해를 상대하던 허필에게 달려드는 회운견을 보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파아악! 쿵!
측면에서 공격해 회운견을 밀어 낸 홍산이 숨을 몰아쉬었다.
‘죽지 않았군.’
그렇다. 죽지 않았다.
그리고 죽으러 온 길도 아니었다.
어중간한 선택은 목숨을 위험하게 한다. 홍모후의 말마따나 신교에서 산다는 것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절벽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살기 위해 왔다.’
살려면 싸워야 한다. 비겁하고 비참한 꼬락서니를 보일지언정 어떻게든 싸워 이겨야 한다.
바로 조금 전, 이천상이 자신의 싸움에 거리낌 없이 개입했듯이.
홍산의 두 주먹에 불그스름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좋아, 어디 한번 끝까지 살아 보자고.”
파아아아앙!
회운견에게 힘차게 달려든 홍산의 주먹에 단호함이 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