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08
외전 158화. 종마회(從魔會) (2)
익히겠다.
저 대답이 나올 것 같기도 했고, 안 나올 것 같기도 했다.
백골신마가 물었다.
“위험하다고 하는데, 어찌 별다른 고심 없이 익히겠다고 하는가?”
강한 무공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것이 무림인이다. 그중 마인은 더하다.
그러나 난해한 무공은 대체로 수준이 높기 마련이다. 해석도 어렵고, 체화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하물며 제대로 체화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하니, 아무리 장로가 주는 마공이라도 쉽사리 받아 익히겠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다.
이천상의 대답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백골신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가 원하고 바라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나아가야 한다. 무엇이 올바른지를 알았다면, 더더욱 세상과 드잡이질을 해야 한다. 그가 이천상에게 건네준 깨달음이었다.
이천상은 그것을 잘 생각했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지금은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군.’
자식에게는 그럴듯한 애정을 주지 못했다. 손주에게도 죽은 자식의 얼굴이 보여 어색함에 다가가지 못했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은 그저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늙은이로 전락했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이런 놈이 나타나 이 고즈넉한 외로움을 밀어 내고 위험천만한 두근거림을 안겨 줄 줄이야.
두근거림을 안겨 줄 줄이야.
‘주군.’
백골신마는 전대 교주를 떠올렸다.
참백마존. 엄하고도 인자했던, 천마지경에 도달하지는 못했으나 누구보다도 믿고 따를 만했던 최고의 교주.
‘주군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 강제로 떠맡게 된 운명이, 또 이렇게 이어지나 봅니다.’
과연 십검(十劍) 쪽은 어떨까?
그럴듯한 놈을 찾기는 했을까? 광혈은 또 어떨까?
‘부질없다.’
자신의 운명은 끝나지 않았다. 비록 젊은 날처럼 열혈의 마음으로 살아가진 못하지만, 늙은이에게는 늙은이 나름의 역할이 있는 법이다.
‘내가 과연 웃으며 죽을 수 있을는지.’
백골신마는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십대마왕이 앞에 있는데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놓고 책장을 넘기는데, 한순간에 집중한 듯 두 눈에 흔들림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었다.
이천상의 눈을 보던 백골신마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와 백골도에 닿았다.
백골신마가 이천상의 기도에 더 놀란 것은 저 백골도 때문이었다.
백골도는 예기가 없는 칼이었다. 백골도의 모든 힘을 끌어낸다면 가품으로서의 자신을 벗어던지고 전설로 추앙받던 진짜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그 ‘진짜’는 평범한 마인이 감히 휘두를 수 없는 물건이었다. 지금의 백골신마도 긴장하며 쓸 만한 진짜 마병(魔兵)이요, 살병(殺兵)이었다.
말하자면 백골도의 외피는 신교 역사상 손에 꼽히는 마력과 살기를 차단할 정도로 엄청난 봉인력을 지녔다. 그런 칼을 휘두르면서도 도검을 손에 쥔 무사처럼 기도가 변했으니, 이천상의 재능은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것이다.
‘만약 네가 그 칼을 제대로 다룬다면, 깨달음의 벽을 뚫고 나아갈 때 스스럼없이 자신을 보여 줄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아깝지만 회수할 수밖에.’
먼 미래의 일이다.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니리라.
백골신마가 입을 열었다.
“이왕 왔으니 배나 채우고 가게나.”
“질문이 있습니다.”
“음?”
이천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두 권의 책자 안에 있는 무공들……. 하나하나가 전혀 다르면서도 묘한 공통점이 있군요.”
“……?!”
“모두가 원류(原流)에서 갈라져 나온 무공들입니까?”
백골신마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와는 반대로,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천하 모든 무공은 최초의 하나에서 시작되었네. 시대가 변하고 발전하면서 본질을 잃은 것들도 많지만, 어느 분기점에서 공통점이 발견되어 합쳐지고 분해되다가 더 수준 높은 무공으로 성장하길 반복하지.”
“…….”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게 맞겠지. 다만 천하 모든 무공은 원류를 따질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 형상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해. 그것부터 통달해야 과거가 보이고, 또한 미래가 보이는 것이야.”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게. 아랫것들이 없어서 시간이 좀 걸릴 게야.”
“밥은 괜찮습니다.”
“배가 든든해야 칼질에도 힘이 붙을 텐데.”
“제 사람들이 굶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인간적인 생각이군. 자네가 멀쩡해야 자네 사람들도 사는 거야. 정 뭣하면 먹고 남은 음식 싸 가도록 하게.”
그 또한 맞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천상은 백골신마가 차려 준 음식 절반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백골신마를 신경 쓰지 않았다. 식사 중에도 책을 펼쳐 놓고 읽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밥을 다 먹었을 때쯤, 두 권의 책자들을 두고 남은 음식을 챙겨 떠났다.
백골신마는 이천상이 놓고 간 상권과 하권 두 책을 매만졌다.
왜 가져가지 않느냐는 물음에, 다 외웠다는 대답을 듣고도 놀라지 않는 걸 보면 이천상이라는 놈에 대해 그새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다시 찾아오게 될 게다.’
다 외웠다는 이천상의 말은 허세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무공들은 단순히 구결과 법문을 외운다고 전부가 아니다.
같은 글자를 보고, 또 보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다른 무공들은 몰라도 특히 장법과 보법만큼은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이다.
책을 다시 보자기에 싼 백골신마가 차를 홀짝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과연 죽기 전, 저곳까지 올라가는 마(魔)를 볼 수 있으려나.”
* * *
“왔습니까.”
자신을 반겨 주는 허필에게 보따리를 건넨 이천상이 적표단주를 바라보았다.
“이게 뭡니까?”
“음식이다.”
“오?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저놈은 아직 자고 있나.”
“자는 게 아니라 기절한 거죠. 본인이 직접 혈을 짚었으면서.”
“이렇게까지 오래 의식을 잃을 줄은 몰랐다.”
“그러게, 내공 반 푼을 줄이라고 했잖습니까. 반 푼, 아니 반의반 푼만으로도 상대 실력에 따라 의식을 잃는 시간부터 마비 시간까지 전부 달라진다니까요.”
이천상 역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내공을 반 푼 줄이기도 했다.
‘내 계산이 틀렸나.’
점혈법은 여느 무공과 달리 구결을 외우고 반복 학습으로 체화한다고 성장하지 않는다.
특히나 착점살수처럼 수준 높은 점혈법은 끊임없이 상대와 자신의 힘을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 당연히 전투 중에 써먹으려면 반복 숙달을 넘어 무의식적으로 힘의 크기와 밀도를 잡아낼 정도로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다른 무공들은 몰라도, 이 착점살수는 이천상 역시 제대로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내 입은 입이 아니냐.”
조용히 쉬고 있던 홍산이 허필에게 말했다.
보따리를 열어 삶은 고기를 씹던 허필이 눈살을 찌푸렸다.
“거 생명의 은인한테 말버릇 좀 보소.”
“난 나보다 약한 놈에게 존대하지 않아.”
“누가 존대하래? 말투라도 곱게 고치란 말이야. 그리고 말이야 바른말이지, 내가 왜 너보다 약할 거로 생각하냐?”
“자신 있으면 붙든가.”
“여기서? 제정신이냐?”
“그러니까 말투 갖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 수틀리면 목 따 버린다.”
“우리 각주님이 칼 쓰지 말라고 했던 거 벌써 잊었나?”
“목 따는 데 굳이 칼이 필요하겠나?”
“싸가지 없기는.”
허필이 투덜거리며 바닥에 보따리를 활짝 펼쳤다.
홍산이 엉금엉금 기어와 흙 묻은 손으로 고기를 퍼먹었다. 허필은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차마 뭐라 하지는 못했다.
홍산은 환자다. 빠르게 낫고 있긴 하지만, 아직 정상은 아니다.
그런 놈이 흙 묻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걸 보면 정신이 다 아득해질 지경이지만, 거기까지 관여하고 싶진 않았다.
허필이 애써 시선을 피해 우물거리며 이천상에게 물었다.
“백골 어르신은 뭐라십니까?”
“별말 안 했다.”
“정말요?”
“그래.”
“거 진짜 살벌한 분이시네. 사부님이 그렇게 좋은 분이라고 칭찬하셨는데.”
말을 해 놓고 허필은 움찔했다. 저도 모르게 사부 소리가 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홍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사부가 누군데?”
“알 거 없어.”
“……어디 보자.”
홍산의 눈이 깊어졌다.
“너 점혈법이 착점살수라고 했었지? 그거 전대 호법원주의 무공이라던데.”
순간 허필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혓바닥 똑바로 놀려. 전대 호법원주‘님’이다.”
“흐음.”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네 대장이 반쯤 구겨 버린 놈 주둥이에서 들었다.”
“반쯤 구겼다고?”
“팔다리가 아주 살벌하게 오그라지더군. 더 놔뒀다간 동그랗게 말려서 끔찍하게 죽었을 거다.”
허필이 놀란 눈으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각주님 설마, 백해파절수(百骸破節手)를 쓰신 겁니까?”
“잘 안되더군.”
허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섬세함만 좀 부족하지, 이미 칠 성까지는 익히신 것 같은데요?”
이천상이 큼직한 나무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한 시진 뒤에 움직인다. 먹고 푹 쉬도록 해.”
그 말을 끝으로 이천상은 곧장 상념에 접어들었다.
‘대단한 무공들이었다.’
앞으로의 일을 되짚어 보든, 아니면 생각을 비우고 푹 쉬든 둘 중 하나를 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이천상은 백골신마가 준 책의 내용들을 떠올렸다. 억지로 잊으려 해도 불쑥 튀어나와 머리를 어지럽히니, 아예 작정하고 집중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금강마권, 야차혈장보다 훨씬 상위의 무공들이야. 일정한 형식은 없는 듯하지만, 그래서 더 어렵고 위력적이다.’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면 오히려 파국을 맞게 될 거라는 백골신마의 말이 너무나도 잘 이해가 되었다.
당장 구결을 안다고 펼칠 수도 없다. 보는 눈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펼칠지 감도 오지 않아서 그렇다.
무공을 접한 시간은 짧았지만, 이런 무공들은 처음이었다. 필시 신교 최고급을 논해도 이상하지 않을 무공일 것이다.
‘금강야차마공보다 훨씬 더 어려워. 따로 형식이 없어서 더 그렇겠지만,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수준이 달라.’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무공 명칭조차도 적어 놓지 않아서 더 막막했다. 무공의 명칭이란 곧 그 무공의 존재 의의 혹은 추구하는 방향을 압축시킨 중요한 단서다. 명칭이라도 알았다면,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단 익히려면 가명이라도 지어 놔야겠군.’
생각을 거듭하던 이천상은 구결과 법문의 중요한 부분들을 끄집어 와, 간단한 가명들을 지었다.
두 가지 검법은 혈풍오식(血風五式)과 지옥검(地獄劍).
한 가지 도법은 뇌도일식(雷刀一息)이라 지었으며 장법은 압경장(壓勁掌), 나머지 보법은 칠보군림(七步君臨)이라 하였다.
막상 구결과 법문에서 따온 부분들을 요약해 무공 명칭을 만들자, 자연스레 각 무공이 추구해야 하는 끝 지점이 미세하게나마 보였다.
‘이 정도로 해 두자. 조금이라도 쉬어야 해.’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해가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을 무렵.
“이놈, 아직 안 깨네요. 어지간히 세게 짚으셨네.”
“허필. 적표단주를 깨워라.”
이천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보를 다 뽑아낸 후,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