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30
외전 180화. 피바람 속의 공허 (5)
튕겨 나오는 이천상의 몸에서 허연 연기가 났다.
주르륵.
금강야차마공의 반응 속도를 최대한 이용, 북천마혜보로 물러나며 최정의 권력(拳力)을 흐트러트렸지만 그러고도 내상을 입었다.
수준의 격차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한 수였다. 그간 싸웠던 고수들과는 달리, 타점에서 폭발하는 경력이 내부로 침투하는 속도가 두 배는 더 빨랐다.
‘역시 무력으로는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상이 깊지 않다는 것, 그리고 흉골은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최정의 눈이 번뜩였다. 자신이 일권을 다 흘리지 못하고도 멀쩡한 상대의 체력에 놀란 것이다.
“쥐새끼 같은 놈.”
파바박!
최정의 몸이 갈지자를 그리며 이천상에게로 접근했다.
빠르고 탄력적인 몸놀림이었다. 남녀 구분을 떠나, 상당히 장대하다고 볼 수 있는 몸으로 이처럼 쾌속한 체중 이동을 보여 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이천상이 칼을 휘둘렀다.
금강마권의 회전 발경을 실은 도법, 딱히 이름이 없어 금강마도(金剛魔刀)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칼질이 최정의 목덜미와 빗장뼈 사이를 노렸다.
최정이 무심하게 왼팔을 휘둘렀다.
쩌엉!
칼과 팔뚝이 만났는데 쇳소리가 터진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칼을 타고 오르는 진동에 손가락뼈부터 손목까지 충격이 왔다.
‘완력이 강해.’
초절정고수의 내공력이라면 맨손으로도 보검을 부러트릴 수 있다. 당연히 자신의 일도를 막은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힘은 정말이지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충돌의 반탄력은 이천상만이 아니라 최정에게도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곧장 달려들었다. 이천상에게는 부담이었지만, 최정에게는 부담이 아닌 것이다.
그 하나의 차이가 경지를 가른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정면 승부로는 절대 꺾을 수 없는 고수였다.
북천마혜보를 극성으로 펼치며, 이천상이 또 한 번 금강마도를 전개했다.
최정이 귀찮은 얼굴로 철퇴를 휘둘렀다.
쩌저정!
무지막지한 공명이 사위를 뒤흔들었다.
터져 나오는 음파에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이것은 단순히 충격파 때문이 아니라, 충돌하는 순간 내력을 이용해 무형의 경파(勁波)를 퍼트린 최정의 내공술 때문이었다.
광인처럼 살기를 피워 대지만 고급의 내력 싸움을 운용한다. 그것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단순히 경지만 높은 게 아니야. 백전(百戰)을 치른 경험이 녹아 있다. 힘, 반응 속도, 내공, 살법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어.’
이천상은 금강야차마기를 두부(頭部)로 끌어 올렸다. 이명을 통해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공격을 상쇄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최정의 움직임이 돌변했다.
쉬익!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와 비슷했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신형.
이천상의 눈이 흔들렸다. 신법도 신법이지만, 사라진 찰나 기척까지도 없어져 버렸다.
‘어디?’
기척이 없으니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이천상은 벼락처럼 빠른 사고력으로 최선의 길을 찾았다.
번쩍!
최정이 사라지는 순간, 사라진 그 위치로 질풍처럼 달려 나가며 회전 후 금강마도를 전개했다.
쩌어어어엉!
금강마도까지 전개한 그 한 수가 이천상을 살렸다. 칼로 쑤시듯 찌르고 들어온 단봉 철퇴를 백골마도의 칼날이 막았다.
“쿨럭!”
이천상의 코와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금강마도를 전개하지 않았다면 등판이 터지고 척추까지 으스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막아도 문제다. 물보다 훨씬 밀도가 높은 액체의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온몸에 살벌한 통증이 올라왔다.
최정의 눈이 살짝 커졌다.
“요것 봐라? 무영공신(無影空身)에 일첨추(一尖椎)까지 막았어?”
무영공신이라는 이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신법이었다. 일순간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도 모자라 기척까지 지우는 무공, 그야말로 인상적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천상의 판단은 빨랐다.
아니, 평소 그의 사고력을 생각한다면 빠르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천상 역시 무공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최정 하나 어찌하지 못하는 실력이다. 심지어 주변에는 이십여 명의 고수들이 산개하여 영역 일대를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었다.
이길 생각은 애초에 버렸다. 이 싸움은 버티는 싸움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정도로는 안 돼.’
이천상은 깨달았다. 제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나는 달라졌어.’
신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지금의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순히 무공이나 소속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달라졌다. 아직 멀쩡한 사람과 같지는 않지만, 감정 없는 괴물에서 감정이 뭔지 이해하기 시작한 반인반수(半人半獸)가 된 것이다.
과거와 달라졌는데도 과거와 같은 식의 사고 회로를 기반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하였다. 과거의 것을 간직한 채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했다.
쩌어어어엉!
철퇴의 위력은 여전히 살벌했다.
아니, 기세를 탄 듯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위력을 발휘했다.
이천상은 또 한 번 피를 토했다. 피를 토하면서도 두 눈은 끝까지 최정을 주시했으며 방어 후 모든 내공을 보법에 쏟아부어 최정의 접근을 막아 갔다.
최정의 눈이 한층 강한 살기를 발했다.
“그 표정이 마음에 안 들어.”
이 정도 실력 격차라면 마땅히 두려움이나 자책, 망연자실한 모습이 보여야 한다.
한데도 이천상의 표정은 미동도 없다. 두 눈은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이 무심했으며, 온몸이 삐걱거리는 고통으로 가득할 텐데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과 싸우는 것 같았다. 본디 광기란 상대의 감정적인 모습에 더 강한 자극을 받는 법. 최정에게 있어 이천상은 놀라운 적이되, 싸울 맛이 안 나는 상대라 할 수 있었다.
“얼굴 가죽부터 난도질을 쳐 주마!”
최정의 그 외침을 듣는 순간, 이천상은 상대가 어떤 수법을 쓸지 예측했다.
조금 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그 수법, 무영공신을 쓸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이천상은 생각했다.
‘버티지 않는다.’
각오라는 말이 참으로 어색하다. 하지만 그 단어가, 그러한 추상적인 언어가 이천상에게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버틸 생각은 버리고 이길 생각으로 가야 한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번쩍!
최정이 코앞에서 나타났다. 이전처럼 후방을 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압도적인 속도로 돌진한 것이다.
허를 찌르는 신법. 그러나 이천상은 당황하지 않았다.
‘버티지도 이기지도 않겠다.’
최정의 좌권이 우측 턱을 향해 사선으로 올라오는 게 보였다.
‘죽이겠다.’
순간 금빛의 마기가 포천금마공의 푸른 마기로 변화했다.
최정의 좌권이 턱에 닿기 전, 이천상의 경부 근육이 확 조여졌다.
퍼억!
“컥!”
최정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속도 그대로 달려와 아래턱을 날려 버릴 생각이었는데, 그전에 얼굴 한복판을 얻어맞았다.
박치기였다.
이천상답지 않은, 그러나 효율을 중시하는 이천상다운 한 수가 드디어 최정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다.
“이, 이 미친 새끼가!”
코가 부러지고 앞니 하나가 날아갔다. 안 그래도 흉흉한 외모인데 얼굴까지 피투성이가 되니, 그야말로 나찰이 따로 없었다.
사람의 코가 부러지면 눈물이 솟고 일시적으로 사고가 마비된다.
당연히 이천상에게 공격의 기회가 왔다. 그러나 그는 후속타를 날릴 수가 없었다.
최정의 좌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며 살점 일부가 날아갔다. 그 상처를 통해 들어온 침투경으로 오감이 마비되었다.
우우우웅.
포천금마공을 버리고 혈화마공을 운용했다.
날카로운 마기가 단숨에 두부로 올라와 침투경을 찢어 날렸다. 그 순간 시야가 열리고 후각, 청각, 미각이 차례대로 돌아왔다.
“후욱.”
이천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최정의 좌권이 턱이 아닌 목을 쳤을 것이다. 그랬다면 박치기가 닿기도 전에 목이 부러져 즉사했을 것이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 활로를 찾았다.
위이이이잉!!
혈화마공이 사라지고 적봉진명마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붙은 대붕의 환상이 이천상의 백골도 위로 내려앉았다. 분노로 눈이 뒤집힌 최정은 상대의 변화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죽인다!”
쿠르르릉!!
최정의 발밑으로 화염 같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화염처럼 보이지만 열양공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열기가 느껴졌다.
화기(火氣)가 아닌 살기다. 적을 죽이겠다는 절대적인 살기가 지독한 열감을 끌어낸 것이다.
붕산마녀라는, 그녀에게 어울리지만 본인은 정말 싫어하는 그 별호를 만들어 준 상승의 무공, 파산대마력(破山大魔力)이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막강한지, 기세를 개방하는 것만으로도 이천상은 뼈마디가 다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이것이 절정고수와 초절정고수 사이의 격차였다.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이고, 변수에 따라 하수도 고수를 이길 수 있다지만 이 정도 힘 차이를 무시하고 이기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천상의 마음은 고요했다.
최정의 살기와 광기가 느껴졌다. 그녀의 엄청난 기세에 주변을 통제하는 이십여 명의 고수들마저 움찔하며 물러나고 있었다.
활로는 거기에 있다. 도주를 염두에 둔다면, 최정을 더 자극해서 흔들리는 고수들의 틈을 노리고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잉! 지이잉!
백골도가 울음을 토해 냈다.
단순한 도명이 아니었다. 이천상의 고요하면서도 강력한 의지를 이어받은 백골도는, 어서 빨리 저 마녀의 목에 자신을 박아 달라며 울부짖고 있었다.
‘마병이라 이건가.’
병기에게도 의지가 있을 수 있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천상 역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것이고, 손에 들린 백골도 역시 적의 피를 마시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는 것이다.
“이천상!!”
콰앙!
최정이 달려들며 철퇴를 휘둘렀다.
무영공신이 아닌데도 엄청나게 빨랐다. 그 속도와 개방한 마공의 힘까지 실어 내리치는 철퇴는 필시 형용 불가의 위력을 자아낼 것이다.
피해야 한다. 맞받아치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인 일인지 이천상은, 충분히 맞받아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간다.’
적봉진명마공 특유의 강한 진동이 백골마도의 살기를 증폭시켰다.
칼을 휘두르면서, 이천상은 생각했다.
‘이게 뭐지?’
찰나의 찰나를 쪼갠 그 순간.
이천상은 깨닫는다. 자신이 펼치고 있는 도법이 금강마도가 아님을.
정수리에 내리꽂힌 번개와도 같은 깨달음이, 처음으로 느낀 마병의 의지가, 변화한 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각오가, 넘어설 수 없는 적의 존재가.
비로소 운명을 넘어 숙명에 이른 신화(神話)의 길을 열어젖힌다.
번쩍!
푸른 번개가 마른하늘 어딘가에서 날아와 백골도 전체를 에워싸는 듯했다.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와 수백 년의 시공을 넘어 완성된 옛 무공들.
그중 하나가 마침내 이천상의 손에서 펼쳐진다.
단 일 초로 구성된 궁극의 반격 쾌도술.
뇌도일식(雷刀一息)이 최정의 철퇴를 스치고 나아갔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