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32
외전 182화. 피바람 속의 공허 (7)
“허억! 허억!”
기어이 최정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체력의 문제, 내공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심리의 문제였다.
‘귀신…….’
검은 칼을 들고 다가오는 붉은 안개의 귀신.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파탄 나는 것 같다. 뼈와 살에 밴 호흡법은 어디로 갔는지 일정하지도, 깊지도 않은 호흡 때문에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뭐야?!’
옆구리를 만진 최정은 목덜미에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제대로 베였다. 내장에 닿지는 않았지만, 움직임에 제약이 걸릴 정도는 되었다. 그런 걸 떠나서 이렇게 깔끔하게 베인 도상은 처음이었다.
깔끔하게 베일수록 치료도 쉽다. 하지만 이 정도로 깔끔하게 베여 버리니, 절단면이 과연 붙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정도로 무서운 공격이었다.
결정적으로.
‘도대체 뭐였지? 그 도법은?’
한 줄기 벼락과도 같은 움직임.
최정은 이천상의 그 일도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뭔가 흐릿하다 싶은 순간 불벼락이 터졌고, 본능에 따라 움직여 겨우 이 정도 피해로 끝냈다. 진짜 정면으로 부딪쳤다면 지금쯤 상체 절반이 날아갔을 것이다.
그때, 이천상이 중얼거렸다.
“제대로 안 되는군.”
알 수 없는 말인데도 최정은 등줄기가 축축해지는 공포를 느꼈다.
“공격용이 아니야. 공격으로도 충분하지만,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려면 이렇게는…… 아니, 그것도 아니군.”
“……!”
“뭔가가 빠졌어. 지금의 나로서는 제대로 구사할 수가 없는 무공이야.”
최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설명이나 해 보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깨닫는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설명 따위를 원하는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구사 자체가 가능하다면 다른 것도 가능…… 그래, 가능하겠지. 그러나 그것이 진체라고는 생각할 수가…….”
“이 새끼!”
최정의 몸에서 다시 활화산 같은 광기가 피어올랐다.
마음의 뿌리까지 건드리는 공포를 기어이 이겨 낸다. 적인 자신을 눈앞에 두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이천상의 모습이 또 한 번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최정의 정신력도 실로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눈을 뜬 흑색 마병의 살기는 초절정고수의 상단전조차 흐트러트릴 수 있다. 하물며 그 살기를 받아들여 혈강기까지 깨운 이천상의 마기는 최정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래도 눈을 치뜬다. 불같은 성격, 고고한 자존심으로 본래의 자신을 되찾았다. 툭하면 부하들을 죽이고 폭행하는 폭군인 그녀를 백헌이 아끼는 이유는, 바로 이 꺾이지 않는 투지 때문이었다.
“하수 새끼가 어디서 감히 여유를 부려!”
카앙!
애병을 집어던진 최정, 어느 순간 그녀의 피부가 점점 먹물처럼 검어졌다.
이천상의 나른한 눈은 대번에 그녀의 변화를 포착했다.
“죽어라!”
파아앙!
대지를 박차고 쏘아지는 최정의 몸에서 엄청난 파공성이 터졌다.
파산대마력의 묵철마체(墨鐵魔體)였다. 파산대마력 최고의 비기로 일순간 모든 마기를 신체 말단까지 퍼트려 고정, 만년한철보다 강해진 육체로 치고받는 것이 바로 최정이 지닌 최후의 패였다.
애초에 그녀의 주무공은 맨손 백타술이었다. 잔혹한 성품과는 달리 뛰어난 재능으로 철퇴까지 자유자재로 다루기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철퇴를 마음에 들어 한 것도 사람 뼈마디 부수는 소리가 좋았기 때문이지, 철퇴술 자체를 따로 배운 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최정의 시커먼 주먹이 이천상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빠르고, 당연하지만 강했다. 주먹이 닿기도 전인데 엄청난 풍압에 얼굴 가죽이 다 뜯겨 나갈 것 같았다.
그 위험천만한 순간, 이천상의 눈이 핏빛 안광을 뿜었다.
서걱!
시뻘건 핏물이 허공을 적셨다.
베는 소리가 한 번 났는데, 최정의 몸에는 두 줄기 도상이 났다. 그만큼 이천상의 도법이 빨랐다는 뜻이었다.
최정의 눈이 흔들렸다.
촌각을 다투는 생사의 간극, 파산대마력을 다시 강하게 조이며 이천상의 하단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이천상으로서는 칼을 휘두르기도, 방어를 하기도 힘든 각도였다. 몸이 베였음에도 적의 사각을 본능적으로 노린다. 눈이 부신 전투술이었다.
퍼어억!
이천상의 대응 역시 대단했다. 최정의 정강이에 발을 가져다 대면서 모든 관절에 힘을 빼 충격을 분산하고 후방으로 날아갔다.
절정에 이른 유공(柔功)이었다.
이건 마병의 힘도, 혈강기의 힘도 아니었다. 감당키 힘든 적과 상대할 때를 상정한 이천상만의 깨달음이었다.
최정의 얼굴에 또 한 번 놀라움이 어렸다.
‘이화접목?!’
정확히 이화접목은 아니었다. 진정한 이화접목은 적의 힘을 받아 더 강한 힘으로 돌려주는 술수로 사량발천근(四量發千斤)의 깨달음과 함께한다.
그러나 이처럼 빠른 속도로 날린 극강의 공격을 무마시킨 것만으로도 이천상의 깨달음은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된다.’
땅에 내려선 이천상이 곧장 최정을 향해 달려 나갔다.
‘지금이라면 가능해.’
유공이 가능한데도 최정을 상대로 써먹지 못했던 이유는 그의 몸과 마기가 최정만큼 연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괜찮다.
구결 자체가 상단전을 염두에 두지 않은 탓에 광기에 사로잡혀 생명력까지 끌어다 쓰는 혈강기를, 지금의 이천상은 안정적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생명력을 끌어 쓰지 않아도 운용할 수 있다. 상단전이 파탄 나지 않는다. 그 강력한 힘으로 신체의 모든 부분에 벼락과도 같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최정과의 거리가 일 장이 조금 안 남았을 때.
훅!
최정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
그녀의 외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무영공신?!’
일순간 이천상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척조차 없었다.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감도 잡을 수가 없었다.
‘뒤인가!’
재빨리 몸을 회전한 그녀가 외측으로 몸을 빼 후방이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없었다. 이천상은 귀신처럼 사라져 있었다.
‘위?!’
고개를 쳐들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없었다. 정말 귀신이라도 된 듯 이천상의 모습도, 기척도 없었다.
그처럼 강력한 마기를 발산하는 것도 놀랍지만, 그만한 마기를 한순간 제어해 기력 자체를 숨기는 것은 묵철마체를 베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어디 있어!!”
그때, 최정의 몸이 움찔했다.
“여기다.”
어느새 그녀의 등에 이천상의 손이 닿았다. 손이 닿고 있는 와중에도 반응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최정은 깨닫는다. 이천상이 자신의 후방으로 물러났음을.
물러났지만, 회전하는 그녀를 따라 함께 움직였을 뿐이다. 그처럼 빠른 움직임을 똑같이 따라 하며 끝까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몰랐던 것이다.
‘이런 괴물 놈이……!’
최정은 재빨리 자세를 낮추려 했다. 상체를 낮추고 팔꿈치를 하단에서부터 올려 쳐 이천상에게 일격을 먹이려 했다.
하지만 어인 일인지,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확 조여져야 할 복근은 움찔거리기만 했다. 구부러져야 할 무릎은 뻣뻣했고, 회전해야 할 견갑골은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마혈?!’
아니다. 마혈은 짚이지 않았다. 혈도 어느 곳도 막힌 곳이 없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도망칠 수 없는 곳에서 절대적인 천적을 맞이한 가련한 사슴처럼.
“그렇군.”
이천상의 혈안(血眼)이 깊어졌다.
“구결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 싶었더니…… 과연 금술(禁術)의 능(能)이 있었어.”
그게 무슨 개소리야!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최정은 입도 열 수 없었다.
점차 신체의 자유가 박탈당한다. 그녀는 위기를 느꼈다.
화아아악!
광기로 얼룩진 파산대마력이 더 올라가지 않을 수준까지 개방되었다.
부르르르!
최정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등에 닿은 이천상의 손은 가히 절대적인 제어력을 발휘했다. 마(魔)의 공부를 익힌 자라면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강철의 그물을 드리웠다.
하지만.
“……으아아아!!”
극한의 정신력으로 기어이 마기의 통제력을 되찾은 그녀의 몸에서 폭음이 터졌다.
쾅!
이천상의 장력과 최정의 마기가 부딪치며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은 최정에게 상당한 내상을 안겨 주었지만, 동시에 움직임의 자유를 보장했다.
피를 토하며 몸을 회전한 최정이 묵철마체를 운용, 단숨에 이천상의 머리를 향해 팔꿈치를 휘둘렀다.
서걱!
잘려 나간다.
번개와도 같은 흑색의 도격이 최정의 오른팔을 어깻죽지부터 날려 버렸다.
우수의 참경(斬勁), 좌수의 쾌공이다. 최정의 오른팔을 날린 후, 이천상은 단숨에 그녀의 목을 움켜잡았다.
최정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또 한 번 몸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이천상의 장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뜩한 마기가 기이한 구결대로 움직이며 그녀의 마공을 뿌리까지 묶어 버렸다.
칠보군림(七步君臨)의 첫걸음인 일보좌궁(一步座穹)에 압경장(壓勁掌)을 펼쳤다.
칠보군림의 일보를 어떻게 구사했는지는, 정작 자신이 펼치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해 보라면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압경장은 달랐다.
‘완전하지 않아.’
완벽하게, 완전하게 펼쳐진 게 아니지만.
그래도 구사는 가능했다.
“덕분에 좋은 공부가 되었다.”
이천상의 권태로운 목소리를 들은 최정은, 그가 자신을 상대로 그간 펼쳐 보지 못했던 무공들을 시험했다는 걸 깨달았다.
최정의 입에서 허연 거품이 일었다. 꽉 막히는 숨통, 치솟는 분노에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자존심이 먼저다. 갈기갈기 찢긴 그녀의 자존심 조각조각이 죽음보다도 더한 수치가 되어 정신을 난도질했다.
이천상이 흑도를 들었다.
“가라.”
푹!
흑도가 단숨에 그녀의 심장을 갈랐다.
최정의 외눈에 서서히 힘이 빠졌다. 힘이 빠지는 그 순간에도 그녀는 이천상을 노려보았다.
털썩!
허공에서 떨어진 그녀의 몸에서 자욱한 연기가 일었다.
우우웅! 우우우웅!
흑도가 제멋대로 도명을 발했다.
피 맛을 본 마도(魔刀)다. 적의 심장을 갈라 죽음이라는 결과를 일으키니, 휘몰아치는 사기(死氣)에 기쁨의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혈강기를 운용해 흑도의 도명을 제어하려 했다. 하지만 흑도의 도명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강한 진동으로 오랜만에 나온 세상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흑도를 내려다보던 이천상이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
살형방벽을 이루던 마인들의 얼굴에 질린 기색이 떠올랐다.
상관이 죽었는데도 복수하려 들지 않는다. 목표물이 앞에 있는데도 공격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불처럼 일어나는 이천상의 마기와 마병의 살기에 압도당해서.
‘어쩔 수 없군.’
싸울 의지가 없어도 적은 적이다. 언젠가 싸울 수밖에 없는 사이라면, 지금 다 죽이는 게 나을 것이다.
이천상이 흑도를 들어 올렸다. 단숨에 달려들어 목숨을 취할 작정인 것이다.
그때였다.
콰드득!
그의 상박 뼈가 부러져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