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33
외전 183화. 피바람 속의 공허 (8)
우웅! 우우웅!
연신 무지막지한 살기를 뿜어내던 흑도가 불안정한 떨림을 발했다.
사아악!
유형화될 정도로 밀도가 높은 살기도 거칠게 꿈틀거리며 힘을 잃어 갔다.
그것은 이천상의 마기도 마찬가지였다. 상단전에서 내려와 전신에 막강한 힘을 주던 혈강기가 순식간에 불안정해졌다.
혈강기가 불안정해지니 시야가 더 붉어진다. 정신까지 아득해졌다.
이천상은 순간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통제를 상실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번쩍!
극한의 집중력으로 상단전 외벽을 찢으려는 혈강기의 움직임을 통제했다. 마병의 도움으로 일깨워졌다고는 하나, 제어한 것은 그의 의지였다. 한 번의 경험이 혈강기의 폭주를 안정적으로 막을 수 있게 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
이천상은 부러진 왼팔 상박을 바라보았다.
마치 작은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팔이 부러졌다. 끔찍한 고통이 일었다.
그러나 고통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이 이천상을 궁금케 했다.
찌익!
왼팔이 끝이 아니었다.
이천상의 몸이 휘청거렸다. 어떻게든 자세를 바로 세우려 했지만, 오른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근육이 찢어졌다.’
우측 허벅지 근육이 길게 찢어졌다.
뼈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통증은 탈골 못지않았다. 순식간에 허벅지가 퉁퉁 붓는 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우둑! 찌이익! 퍼억!
왼손 손가락 두 개가 부러지고 등 근육 몇 군데가 찢어졌다. 이마 오른쪽 부분의 살점이 터지며 대량의 출혈을 일으켰다.
이천상은 본능적으로 혈강기를 버리고 금강야차마공을 끌어 올렸다. 내 몸을 돌보지 않고 적을 말살하는 혈강기나 다른 마공들과 달리, 금강야차마공은 신체를 강인하게 통제하는 데에 특출한 힘이 있었다.
화아아악!
금빛 마기가 몸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오른팔에 가해지던 부하가 점점 가라앉았다.
‘그렇군.’
이천상은 깨달았다.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구사해선 안 되는 무공이었다.’
칠보군림, 그리고 압경장. 거기에 뇌도일식까지.
그 세 가지 무공은 지금 이천상의 몸으로 구사하기에는 지나치게 파괴적이고 막강한 무공이었다.
초식만 휘둘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건 전문적으로 무공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구사해도 상관이 없다.
진짜 문제는 초식을 운용하는 데에 필요한 내공 구결에 있었다.
‘알맞은 내공심법이 아니었다.’
한 가지 도법, 한 가지 보법, 한 가지 장법.
이 종류가 다른 무공들을 아우르는 내공심법이 존재한다. 직접 몸으로 구사해 보니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꼭 맞는 내공심법도 아닌 마공으로, 그것도 아직 한참이나 연마가 부족한 심신으로 구사했기 때문에 몸이 과부하를 일으키다가 폭발한 것이다.
화아아악!
오른손에 쥔 흑도가 연신 기괴한 울음을 토하고, 이내 뿜어내던 살기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살기를 뿜지 않는 흑도는 백골도처럼 아무런 특색도 보이지 않는 칼이 되었다.
마병의 살기가 사라지니 혈강기도 본래대로 돌아갔다. 이천상의 통제에도 연신 뛰쳐나오려 애쓰던 혈강기가 상단전 바깥을 둘러싸며 안정적인 방어벽을 형성했다.
“쿨럭!”
이천상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했다.
왼팔과 손가락이 부러지고 우측 허벅지와 등 근육이 찢어졌다. 이마가 터져 오른쪽 시야를 다 가릴 만큼의 출혈상도 입었다.
심지어 이 상처가 나기 전엔 최정의 공격에 상당한 내상을 입은 채였다. 하늘에라도 닿을 듯 철저하게 무장시켰던 강력한 힘이 사라지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무력감을 느꼈다.
당연하게도, 지금 쓰러지면 안 되었다.
사아아아악!
마병의 살기가 사라지자 낯설고도 익숙한 살기가 치솟았다. 이천상은 충혈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살형방벽을 이루었던 이십여 명의 마인들이 서서히 접근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장인 최정이 허무하게 죽었다. 압도적인 마병의 살기와 혈강기에 겁을 먹어 움직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흉포했던 기운이 사라지니 그들 역시 정신을 차렸다. 마음에 새겨진 두려움은 없애지 못했지만, 움직일 수 있다는 현실이 그들에게 명령을 떠올리게 했다.
‘안 좋군.’
마병의 힘과 혈강기, 벼락처럼 떠오른 깨달음으로 최정이라는 난적을 물리쳤으되, 결과적으로 바뀐 것은 없었다.
오히려 더 안 좋았다. 무리해서 펼친 무공 때문에 본 실력의 절반도 내보이지 못하는 상태다. 이런 상태로 저들과 붙는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실수했다.’
찰나지간, 이천상은 자기답지 않은 선택을 내렸음을 깨달았다.
최정과의 승부에서, 그는 그녀를 이길 수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확신을 주었고, 확신 가득한 의지 아래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쟁취했다.
그래선 안 되었다.
적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해도, 그 힘을 두르고 이 방벽부터 깨부숴야 했다. 어떻게든 이성을 차려 이 상황 자체를 무너트리려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적장과 싸워 손수 목을 취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 불확실한 힘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면서, 힘에 취해 이성을 잃은 것이다.
‘아직인가.’
백골신마 쪽에서라면 슬슬 반응이 와야 했다. 자책하면서도, 이천상은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사정이 있거나, 나를 버렸거나. 둘 중 하나.’
손을 잡기는 했지만, 그는 언제든 자신을 쳐 낼 수 있는 사람이다. 이천상은 그 가능성을 잊지 않았다.
환희원주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와는 그럴듯한 신뢰 관계도 쌓지 않았다. 도우러 오지 않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형법당까지.’
형법당주 공무외는 자신을 좋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사감 때문에 일을 그르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뭐가 되었든, 자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아.’
도우러 올 때까지 버티는 게 아니라, 맞서 싸워 생존을 도모한다.
이천상의 마기가 다시 불을 일으켰다.
화아아악!
다가오던 이십여 명의 마인들이 움찔했다.
금강야차마기는 충분히 대단한 무공이었지만, 혈강기의 압도적인 기파에 비하면 순한 양과 같았다. 거기에 내상까지 입은 이천상은 야차마기조차도 완벽하게 개방하지 못했다.
번쩍!
마인들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대장을 상대했을 때의 기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기운이 나온다.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전투 의지를 맹렬히 북돋웠다.
살기라도 뿜었다면 모르되, 이천상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를 뿜을 수가 없었다. 아직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는, ‘진심’으로 적을 죽이겠다는 살기를 뿜을 수 없었던 것이다.
파아아악!
돌진하는 마인들.
사방을 에워싸고 돌진하니, 그들 사이에 흐르는 살기의 구름이 호흡조차 무겁게 했다.
이천상이 움직였다.
터어엉!
칠보군림을 구사하지 않는다. 몸도 몸이지만 다시 펼치려 해도 어떻게 펼쳤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그의 첫걸음은 북천마혜보였다. 단 한 걸음으로 서북쪽 적의 코앞까지 돌진한 그가 금강마도를 휘둘렀다.
쩌정!
이천상이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 빠른 속도로 움직여 내리쳤는데도 튕겨 나간 건 그였다. 정작 흑도를 막아 낸 마인은 주춤거리는 게 다였다.
힘이 너무나도 떨어졌다. 힘 대 힘의 승부로는 답이 없는 것이다.
번쩍!
돌진하던 마인들이 순식간에 좁은 포위망을 형성, 제각기 도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정! 푸확!
그런 상황에서도 이천상의 반응은 눈부셨다.
회전하며 쳐 내는 금강마도로 십여 개의 칼날을 막았지만, 등을 베는 도격 하나는 막지 못했다. 다행히도 도상은 옅었다.
쩌저정! 서걱! 티이이이잉!
몇 번의 칼질, 몇 번의 상처, 몇 번의 후퇴.
포위망을 형성했음에도 그들은 이천상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상처 입은 짐승이 얼마나 사나워질 수 있는지 그들도 잘 알았다.
말하자면 차륜전이다. 도검이 부딪치며 이천상의 내상은 조금씩 깊어졌고, 한 번씩 몸을 할퀴는 도검에 출혈량도 늘었다.
이천상의 눈이 점점 힘을 잃었다.
‘떠오르지 않는다.’
상처 입은 늑대를 공격하는 들개들.
심각한 내외상이 내공은 물론 체력까지 저하시켰다. 마기를 운용하여 출혈을 막으려 해도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공격 탓에 불가능했다.
다량의 출혈은 체력을 넘어 이성까지 빼앗아 갔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쌩쌩하게 돌아가던 그의 머리가 무척이나 무거워졌다.
정신이 멍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관성적으로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멍한 와중에도 그의 눈은 마인들의 눈과 표정을 읽었다.
절제된 표정. 임무의 성공을 눈앞에 두었음에도 희열이나 긴박감이 없다.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지금의 이천상으로서는 이들을 물리칠 수 없었다.
‘이렇게 끝이 나는가.’
이천상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쁘지 않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선했으니까.’
신교로 들어와 도헌을 만나고 양백호를 만났다.
양건과 주연교를 만났으며 허필과 단리우, 유상천과 위찬도 보았다.
그 외에 많은 야차, 백골신마에 환희원주까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할 사람들과 연을 맺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그 감정이 뭔지 이해는 했지만, 진정으로 와닿지는 않았다.
어쩌면, 알고 있는데도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이 운이 좋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평생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사람들과 연을 맺었다는 것은, 분명 산중 생활을 할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푸화아악!
이천상의 몸을 스치는 도검이 허공에 피 보라를 만들었다.
더 이상의 고통은 없었다. 흐린 시야 너머 점점이 흩어지는 핏방울들을 보며, 이천상은 처음으로 안락함과 공허를 동시에 느꼈다.
죽어서 시체가 되면 훗날 대지의 양분이 되어 공허로 돌아갈 것이다. 그 공허가 주는 안락함은 분명 긍정적인 감정인 것 같았다.
나의 피로 드리워진 장막 속에서 어둠을 느끼는 반인반수.
그렇게 이천상의 흑도가 멈추었다.
“…….”
마인들의 눈이 흔들렸다.
눈을 감고 흑도를 치켜든 자세 그대로 멈춰 선 이천상.
일순간 그의 마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가 그들을 움찔하게 만든 것이다.
“……죽은 건가.”
마인들의 수장, 변조가 검으로 이천상을 겨누었다.
“심장을 찌른 뒤 목을 베어라.”
명이 떨어지자마자 가장 가까이 있던 마인이 이천상에게 검을 휘둘렀다.
푸욱!
한 자루 장검이 너무도 쉽게 이천상의 가슴을 뚫었다.
그것으로 끝이다. 심장에 구멍이 나면 누구라도 죽을 수밖에 없다.
변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 지독한 놈이 드디어 죽은 것이다.
“목을 베어라.”
이천상의 심장을 뚫은 마인이 검을 당겼다.
“……어?”
마인은 당황했다.
“뭐 하고 있는 거야? 목을 베라니까.”
“아, 아니 검이…….”
“검이 뭐?”
“안 빠집니다.”
“뭐?!”
그때였다.
콰르릉!
변조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안개처럼 흐르고 있던 살기의 방벽이 무너지며 엄청난 굉음을 냈다. 그 굉음은 방벽 안에 있는 이들만 느낄 수 있었다.
“뭐, 뭐야?!”
쾅! 콰르르릉!
기어이 무너진 살형방벽.
그 너머에서 수십 명의 마인들이 돌진하고 있었다.
마인들의 선두에는, 귀신처럼 일그러진 얼굴의 중년 사내가 폭발할 것 같은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광마대주 도헌!!”
그 순간.
감겨 있던 이천상의 눈이 뜨였다.
흰자위까지 검게 물든 그의 눈은 혈강기의 핏빛 안광보다도 기괴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