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45
외전 195화. 자줏빛 벼락 속 (5)
구슬이 깨지며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를 본 공무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천상이 정말로 구슬을 깨트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놈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이제부터는 다 죽게 될 것이다.
공무외의 심박수가 최고조로 치솟았다.
“미친놈아!”
쾅!
폭음과 함께 의자가 부서지며 바닥이 푹 꺼졌다.
깜짝 놀란 공무외가 반사적으로 내공을 끌어 올릴 때, 이미 이천상은 그의 측방에 있었다.
이천상의 폭발적인 속도에 탁자까지 부서져 날아갔다.
공무외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실전을 겪어 본 지가 언제이던가. 갑작스럽게 깨진 구슬로 인해 허둥대는 와중 이천상이 의자와 탁자까지 부숴 가며 접근하자 그의 당혹스러움은 극에 달했다.
공무외의 왼팔이 이천상의 머리 쪽으로 날았다.
자세조차 잡지 못하고 반사적으로 휘두른 주먹이었다. 형법당주답게 강력한 내공이 실려 있었지만, 투로를 예측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상체를 사선으로 숙여 주먹을 피한 이천상이 공무외의 오금을 걷어참과 동시에 벼락처럼 마혈을 짚었다.
“끄아아아악!”
고작 마혈을 짚었는데도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공무외.
‘조절이 안 되는군.’
어떠한 마공도 없이, 그저 순수한 내공만을 이용해 움직였다.
익숙한 마공 구결을 따르지 않으니 자연스레 내공력과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혈을 짚으며 쑤셔 넣은 내공 역시 섬세하지 못했다.
공무외가 비명을 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혈도가 찢어지는 고통에 온몸의 털이 곤두설 것이다.
‘역시 부족해.’
이천상은 공무외의 마혈을 세 번 더 짚었다.
짚을수록 고통이 사라진다. 동시에 신체 말단부부터 확실하게 마비되기 시작했다.
‘…….’
공무외를 사로잡은 이천상은 불현듯 의아함을 느꼈다.
‘칠보군림?’
의자를 부수고 일어나 이동한 보법, 그것은 분명 칠보군림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마공도 개방하지 않은 채로는 처음 펼쳐 보았다. 애초에 마공 운용 없이 순수한 내공만으로 펼칠 수 있는 기예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알아서 몸이 움직였다. 이천상으로서도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개새끼가!”
공무외가 버럭 소리쳤다.
“감히 나를!”
슥.
이천상의 커다란 손이 공무외의 목덜미를 쥐었다.
순간 공무외는 뒷골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다란 손가락 다섯 개가 목덜미를 쥐고 있는데, 그 악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수틀리면 곧장 부러트릴 기세였다. 공무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이천상이 작게 속삭였다.
“곧 환희원주가 이곳으로 찾아올 거다.”
“……!!”
“일전, 서필 부각주를 몰아넣으려고 증거를 조작했던 행위에 대해 다 보고하겠지. 당연히 네놈이 도왔다는 증거를 환희원주는 가지고 있다.”
“이, 이놈!”
“잘 알다시피, 그 사람은 내일을 살지 않아. 한번 눈이 돌아가면 모두가 파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방에 폭탄을 터트릴 사람이다.”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구하기 위해, 백골신마는 교주전으로 갔다.”
공무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알겠나? 지금 네놈의 상황이 어떤지?”
“……꿀꺽.”
마른침을 삼킨 공무외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환희원주가 왜 너 같은 놈에게 휘둘리는 것이냐?!”
“그녀는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아. 상황을 보고 환희원의 수장으로서 나서야 한다고 판단하면, 뒤끝 없이 움직일 뿐이다. 그때도 그러지 않았나?”
“…….”
“차라리 광혈 쪽에 붙었다면 이해라도 했을 거다. 하지만 총군사에게 붙다니, 네놈은 선을 넘어도 지나치게 넘었어. 왜 서 부각주를 박살 내려고 마왕과 환희원주가 나섰는지 이해하지 못했군.”
공무외의 눈이 흔들렸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역시 그랬나.”
짐작하고 있었을 뿐, 확신은 아니었다. 공무외의 발언으로 비로소 확실해졌다.
공무외가 이를 바득 갈았다. 너무도 당황스러운 현실에 애송이들도 안 걸릴 함정에 빠졌다.
그렇다. 놀랍게도 공무외를 회유한 사람은 마왕이 아니라 총군사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왕 중 대외적으로 가장 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건 광혈이었지만, 실제로 그 못지않게 그림자 속에서 칼을 갈고 있는 이들이 더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마왕이었다. 교내에 내 사람들을 만들고 보이지 않는 지파까지 형성했지만, 공식적으로 형법당주보다 높은 직위를 추천하는 걸 넘어 확정까지 지을 수 있는 사람은 교주와 총군사뿐이었다.
다른 자리라면 몰라도, 공무외가 들어갈 백뇌각의 각주 자리는 마왕들도 넘볼 수 없는 자리다. 당연히 총군사일 수밖에 없었다.
“환희원주가 곧 이곳으로 올 거다. 그녀는 이미 네가 총군사가 내민 줄을 잡은 걸 알고 있어.”
“……!”
“직접 대면 후 확인이 끝나면, 그녀는 네놈과 합작으로 서필 부각주를 묻어 버리려 했던 걸 만천하에 공개할 것이다.”
형법당주는 누구보다 엄격하고 올곧아야 했다.
물론 지금의 신교에서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공개적으로 공표가 되느냐, 마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정쟁을 치렀던 이들끼리의, 말하자면 승부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은 관계자들의 암묵적인 허락하에 일어나곤 한다. 적당한 명분은 필수다. 권력자들 간의 힘겨루기란 물밑에서 시작하고 끝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데 그 지저분한 과정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면? 당연히 교내가 떠들썩해질 것이다.
안 그래도 신교에 반감을 지닌 마인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법을 다뤄야 하는 형법당주가 비리에 적극 협조하여 한 사람을 묻어 버리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른 사람은 다 괜찮아도 공무외는 파멸이다. 교내 수뇌부들 역시 이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공무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워 지옥으로 보낼 것이다.
공무외가 이를 악물었다.
“내가 뭘 하면 되지?”
결국 그는 치욕스러운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하나 살리자고 함께 파멸의 길을 걷기에는 그간 이뤄 놓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다 뭐로 들었나?”
공무외를 움켜쥔 그대로, 이천상은 당원을 바라보았다. 당원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엉거주춤 서 있을 뿐이었다.
“도헌을 풀어 줘.”
“…….”
“오해로 인한 구금이었다고 공표해라. 이 사태를 주도한 자를 특정 지어 주지는 않겠다. 거기까지 건드리면 네놈의 숨구멍도 막히지 않겠나.”
공무외는 혈압으로 눈알이 핑핑 도는 걸 느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이놈의 출신지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외전, 그중에서도 최하급 인생들이 바글거리는 투마장. 그곳의 투마였던 놈이, 친척뻘이라고는 하나 역대 비궁주들과 피를 나눈 자신을 겁박하고 협박하며 깔아 보고 있다.
오랜 세월 정쟁으로 단련된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당장 기절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등허리가 축축한 것이, 벌써 몸살이라도 난 듯했다.
스윽.
치 떨리는 분노가 단박에 경각심으로 바뀐 건 전적으로 이천상의 손아귀 때문이었다. 제대로 힘을 주진 않았지만 언제든 꺾어 버릴 수 있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무시무시한 손아귀.
공무외가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번 일이 끝나면…… 너희는 정말 내 손에 죽을 것이다.”
꾸욱!
“개 같은!”
공무외가 당원을 노려보았다.
“도헌을 풀어 줘라.”
“……예?”
“미친 새끼야! 넌 명령 불복종으로 파면이야! 당장 꺼지고 다른 놈 불러!”
“죄, 죄송합니다! 죄인을 풀어 주겠습니다!”
당원이 헐레벌떡 움직였다.
씩씩거리던 공무외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은 내렸다. 이제 그만 풀어라.”
“…….”
“이 손 놓으라니까!”
“조용.”
이천상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흥분도, 경계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헌이 풀려나기 전까지, 너는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 * *
“…….”
백소담이 착 가라앉은 눈으로 백골신마를 바라보았다.
백골신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만 가 보겠네.”
“장로님.”
“말씀하시게.”
백소담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도대체 왜죠? 왜 이천상이라는 작자를 위해 이렇게까지 무리하시는 거죠?”
“그러는 자네는 왜 그랬나?”
“저는 제 신념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나도 그렇다네.”
백골신마가 쓰게 웃었다.
“이용이든 신뢰든, 나는 지금 녀석과 함께 걷고 있다네.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녀석은 이 살벌한 신교에서 동행하기에 나쁘지 않은 인재야.”
“…….”
“자네의 판단을 믿네.”
백소담이 고개를 저었다.
“장로님께 드릴 말씀은 아닙니다만, 이번 경우는 상당히 불쾌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느닷없이 찾아와 이천상이 형법당주를 협박하러 갔다고 한다. 심지어 환희원주의 이름을 들먹이겠다고 당당하게 말한 후 출발했다고 한다.
정작 백소담 자신과는 아무런 상의가 없었다. 누구라도 불쾌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하여 내가 직접 사과하기 위해 찾아온 거 아닌가.”
마왕의 이름값이면 한 번은 넘어가 줄 만하지 않으냐.
백골신마의 말은 그러했다. 그래서 놀라웠다.
얼마 전 당당히 정쟁에 나서겠노라 선포하기 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는 직위를 걸고 무언가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성격이 그러했다. 백골신마는 자신이 이룬 위치에 자부심이 있다. 그 자부심 때문에라도 직위를 걸고 일을 처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일에는 선후가 있는 법입니다.”
“자네의 그 신념은 기분에 좌우될 만큼 가벼운 것이었나?”
“……!”
“공무외는 총군사가 내민 줄을 잡았다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요.”
“구 할에 가까운 확률이지. 자네도 알 텐데?”
“…….”
백소담이 입을 꾹 다물었다.
백골신마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네, 지금 내 말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자네 앞에서 신념을 들먹일 일은 아니었어.”
“…….”
“이천상 그놈은 목숨을 걸고 갔네.”
“네?”
“내가 자네를 설득하지 못하면 자네는 움직이지 않겠지. 만약 그놈이 공무외를 인질로 삼은 후, 자네 이름값을 팔아 도헌을 구출한다 해도 홀로 그곳에서 뭘 하겠나?”
“……?!”
“공무외를 풀어 주자마자 형법당의 공격을 받게 될 걸세. 그놈, 도헌 하나 구하자고 제 목숨을 걸었다는 걸세.”
백소담의 눈이 흔들렸다.
환희원에서 움직이는 낌새가 없다는 보고를 받는 즉시 형법당은 움직일 것이다. 당연히 이천상은 그 마수를 피해 갈 수 없다.
즉, 파멸이 목전이라는 것이다.
“나는 말일세, 이 나이 먹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봐 왔네. 하지만 전대 교주님께서 살아 계셨을 때도, 혈육도 아닌 내 사람을 위해 조직을 이 정도로 뒤집어 놓은 사람을 본 적이 없네.”
“…….”
“그놈의 행동은 곧 그놈의 가치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야. 그래서 내, 그놈을 가만 놔둘 수가 없네.”
백골신마가 몸을 돌렸다.
백소담이 입을 열었다.
“하면 장로님께서 직접 가서 돕지 않으시고요?”
“나는 지금 교주전으로 가네.”
“……!!”
“교주전에 가서 자네가 과하게 움직여도 건드려선 안 된다고 충언을 올릴 생각이야.”
백골신마가 백소담을 돌아보았다.
“이것이, 내가 지금 시대를 살아가며 깨달은 일의 선후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