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49
외전 199화. 자줏빛 벼락 속 (9)
“으아아아!”
기를 쓰고 내공을 운용하던 공무외는, 기어이 혈도가 찢어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마혈을 풀었다.
아니, 위험을 감수했다기보단 분노로 눈에 뵈는 게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무리한 내공 운용으로 입에서는 피가 왈칵 솟았고, 목덜미부터 등판까지 모조리 작살난 듯한 고통이 덮쳐 왔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며 거칠게 집무실을 나선 공무외가 그대로 일 층으로 뛰어내렸다.
쾅!
그래도 두 다리 쪽으로는 내공을 쏟아부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복부와 등허리 전체가 부서질 것처럼 아팠지만, 이성을 잃은 공무외에게는 그조차도 사소한 일이었다.
퍼어어억!
공무외의 옆, 형법당 본당의 외벽에 붉은 전포의 마인이 처박혔다.
놀라서 바라보니, 이미 마인의 눈은 풀려 있었다. 눈을 뜨고 기절해 버린 것이다.
공무외가 다시 싸움터로 눈을 돌렸다.
펑! 펑!
폭음이 한 번 울릴 때마다 마인이 날아가고, 날아간 마인은 수비 대형의 일각을 무너트렸다.
어느새 이천상의 손에는 장도(長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특이하게도 도갑에서 빼내지 않은 채였다.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공무외가 외쳤다.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얼른 죽여 버리지 않고!”
대주의 명령은 아니었지만, 혈마대 역시 이천상과 도헌을 죽이기 위해 강하게 압박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퍽! 퍼벅!
도갑째 휘두르는 장도의 투로가 실로 기기묘묘했다.
직선인 듯한데 곡선이고, 곡선인 듯하면 원형이다. 원을 그리다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기도 하며 느닷없이 한 점을 찔러 일격에 뼈를 부순다.
칼이 그리고 있는 길만 보면, 분명 유려했지만 단순했다. 한데 그 단순한 춤사위에 압박하려 다가가는 마인들이 속수무책으로 튕겨 나갔다.
만약 칼집에서 뽑힌 채였다면 이미 이십여 명의 사상자가 났을 것이다. 도법 자체의 수준도 엄청났고 그 도법을 살리는 보법 역시 신묘했다.
촤르륵!
거대한 방진이 순식간에 여섯 개로 쪼개졌다.
쪼개진 방진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몹시 빠르고 경쾌했다. 이천상이 땅을 박찼다.
훅!
벼락처럼 움직인 그가 순식간에 도헌의 곁으로 다가왔다.
쩌저정!
멀리서 날아온 화살들이 도갑의 도풍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도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아무리 나라도 이놈들을 다 상대할 수는 없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튼 이천상이 칼자루를 휘둘렀다.
빠각!
다가온 당원 하나가 벌러덩 쓰러졌다. 칼자루 끝으로 턱을 맞으며 의식이 날아간 것이다.
‘다 상대할 기센데.’
위급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대놓고 휘파람까지 불었을지 모르겠다.
갑자기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었는지 이천상의 무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내공량이 증가했다거나 질적 향상이 이뤄진 건 아니다. 한데 느닷없이 신묘한 보법으로 적을 농락하는가 싶더니 이해가 불가능한 장법과 도법으로 혈마대원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아니, 검법과 유사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이상한 기분이었다.
분명 다급한데, 이천상이 날뛰자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측방 조심하시오.”
휘익! 파악!
다가오는 당원 하나를 각법 일격으로 날려 버린 도헌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내 내공도 쓸 만해지는군.”
두 사람이 공터 중앙으로 이동했다.
완벽히 포위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제아무리 이천상이라도 육대급 부대 하나를 상대로 이길 순 없다. 어떻게 칠보군림에 만압금마장, 나아가 지옥도(地獄刀)까지 구사하긴 했지만 무공 자체의 수준으로 밀어붙이고 있을 뿐, 혼자서 맞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당연히 멀쩡한 상태의 도헌이 껴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쪽은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 위해 힘 조절까지 해야 했다.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라 차라리 형법당의 성벽을 뛰어넘거나 부숴서 탈출하는 게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해.’
형법당의 성벽은 그 어떤 조직보다도 두껍다.
높이도 무려 이 장에 가깝고 그 위에는 섬뜩한 철망이 가득 펼쳐져 있다.
당연히 철망도 그냥 철망이 아니었다. 철망 하나하나에 마비독이 발라져 있어 자칫 뛰어넘으려다가 긁히기라도 하면 그 즉시 사로잡힐 것이다.
그렇다고 성벽을 부수기 위해 이동한다면, 그 즉시 당원들의 화살 세례가 날아올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형법당의 수백 당원들이 줄을 지어 달려오고 있었다.
도헌이 외쳤다.
“어쩌자고 여기로 왔어?!”
“구석에 몰려 고슴도치가 될 순 없잖소.”
“어차피 여기에 있으면 둘러싸여서 죽어!”
“뚫어 봅시다.”
“미친!”
그때였다.
공무외가 다시 소리쳤다.
“이 새끼들 왜 이렇게 느려! 발재간이 느리면 화살이라도 퍼부어, 이 머저리 같은 놈들아!”
당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달려오던 당원들이 제각기 속도를 줄이며 두 사람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그들의 활은 마치 어린 소년들의 장난감처럼 작았지만, 사거리가 백 장이 넘어가는 특제품이었다.
조장들이 외쳤다.
“쏴라!”
“놈들을 죽여라!”
피피피피피피핑!!
수백 개의 화살이 하늘을 날았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내 뒤로!”
척하면 척이다. 도헌이 단숨에 이천상의 등 뒤로 이동해 혈마대원들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이천상은, 날아오는 화살 세례를 맞이하며 지옥도를 휘둘렀다.
쩌저저저저정!
수십 개의 화살이 도풍(刀風)에 휩쓸려 부서져 나갔다.
단순한 칼 바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정립된 투로에 따른 섬세한 내공 운용, 나아가 강력한 내공 소모로 인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수백 개의 도기가 바람처럼 회오리쳤다.
도기 하나, 하나가 새끼손톱보다도 작지만 뭉쳐서 바람을 일으키니 그야말로 살벌한 위력을 뽐낸다.
‘강하다.’
지금까지는 상대를 죽이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내공으로 투로만 살려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달랐다. 일순간 아랫배가 허해질 정도로 내공을 쏟아부어 지옥도 특유의 도풍을 일으키니,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위력이 나왔다.
심지어 이조차도 본래의 위력은 아니었다. 지옥도를 제대로 구사하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내공이 필요했다.
“저게 뭐야?”
살기로 젖은 공무외의 얼굴이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원들은 물론 혈마대원들까지 모두 입을 떡 벌렸다.
단 한 수에 불과하지만, 이천상의 일수는 이곳에 모인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저 정도 위력은 초절정고수 정도는 되어야 구현할 수 있다.
공무외가 다시 외쳤다.
“쏴! 계속 쏴라!”
당원들이 다시 시위를 당겼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기회다.’
피피피피피핑!
시위가 놓인 순간, 그가 몸을 돌렸다.
파아악!
도헌보다 먼저 치고 나간 이천상이 혈마대 선두를 향해 도갑을 휘둘렀다.
앞서 엄청난 무력을 봐서일까? 혈마대원들이 본능적으로 방진을 중앙으로 모았다.
이천상이 몸을 돌린 순간 도헌 역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애초에 중앙으로 모였을 때부터 뭔가 방법이 있어서 온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이천상과 도헌이 기다렸다는 듯 땅을 박찼다.
터어엉!
혈마대원들의 어깨를 박차고 날아오른 두 사람이 허공에서 몸을 돌려 칼을 휘둘렀다. 혹시 잔여 화살이 날아오면 쳐 낼 셈이었다.
다행히 잔여 화살은 없었다.
없을 수밖에 없었다. 당원들과 혈마대 사이에 두 사람이 있었고 당원들은 두 사람을 노리고 화살을 쐈다.
그 화살은 땅 아니면 혈마대를 향할 수밖에 없는 것, 혈마대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막아!”
퍼버버버버벅!
혈마대원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이천상의 무공에 놀라 방진을 조인 게 피해를 더 키웠다. 제각기 도검을 휘둘러 치명상을 피한 이들이 많았지만, 족히 오십이 넘는 부대원들이 순식간에 사살당했다.
공무외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하필이면 마침 그때, 만압금마장을 맞고 날아간 제웅단이 본당 일 층에서 나오고 있었다.
“뭐, 뭐야?!”
제웅단의 눈이 쭉 찢어졌다.
“이 미친 새끼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곰이 울부짖는 것 같았다. 당원들이 당황해서 공무외를 바라보았다.
공무외 역시 기겁했지만, 지금 그에게 있어 중요한 건 혈마대원들의 죽음 따위가 아니라 이천상과 도헌이었다.
파아악!
혈마대원들을 뛰어넘은 두 사람이 거대한 성문으로 돌진했다.
두껍고 튼튼했지만, 이천상의 그 엄청난 도법이라면 충분히 뚫고 갈 만했다.
공무외가 악을 질렀다.
“막아! 놈들을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게 해라!”
제웅단이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다! 왜 혈마대를 공격한 거야!”
제일 당황한 건 당원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어쩌지?!”
“돌진해! 어떻게든 잡아라!”
“어어, 밀지 마!”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죽지 않은 혈마대원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팔다리에 화살을 맞았다. 팔다리에서 느껴지는 강한 통증은 곧 분노가 되어 당원들을 향했다.
혈마대원들이 제웅단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을 막아야 했고 지금 이 사태가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냥 덮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많은 대원이 죽었다. 오십이 죽었다면 이 할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셈이다. 적과 싸워서 죽었으면 말도 안 한다. 형법당 화살에 반응도 못 하고 즉사했다.
그 말도 안 되는 현실이 혈마대를 주춤하게 했다.
제웅단이 공무외를 향해 외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니까! 왜 내 새끼들을 공격하는 거냐고!”
“닥치지 못해! 부대장이라는 놈이 딱 보면 몰라! 저놈들의 술수에 놀아난 거 아니야!”
“미친놈아! 뭔 술수에 놀아나면 저렇게 화살을 많이 맞아?!”
“이 새끼! 너 죽고 싶어? 지금 누구한테 미친놈이라고 하는 것이야!”
제웅단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 눈을 본 공무외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안 그래도 신교에 불만이 많은 제웅단이었다. 능구렁이 같은 면모도 있지만 한번 화가 나면 앞뒤 안 가리는 놈이 저놈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공무외가 서둘러 외쳤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충분한 보상을 해 주마! 내가 미쳤다고 일부러 혈마대를 지우려 들겠느냐!”
“혈마대 전원 공격 진형으로!”
화아아악!
분노의 마기를 뿌리며, 혈마대가 진형을 바꾸었다.
삼각뿔처럼 변한 그 진형은 누가 봐도 형법당원들을 향해 있었다.
공무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미친놈아! 너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알기나 해?!”
“닥쳐, 시발 놈아! 우리 독기밖에 안 남은 놈들이야! 캐낸 정보나 넙죽넙죽 받아먹는 병신 새끼가 감히 혈마대를 건드려?!”
퍼어억!
제웅단이 가까이 있는 당원 둘을 쳐 죽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상황은 극단적인 혼란,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뚫어! 다 죽여 버려, 시발 놈들!”
공무외도 질 수 없었다.
“반역자들이다! 혈마대를 사살하라!”
그때였다.
끼이이이익!
성문 열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모두 멈추세요.”
울림 넘치는 목소리가 형법당 일대를 에워쌌다.
압도적인 내공이 담긴 초절정고수의 목소리.
백소담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