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53
외전 203화. 일원만화(一元萬化) (3)
우우우웅.
유상천의 몸에서 이는 마기가 다소 위태로워졌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감은 눈이 눈꺼풀 아래에서 마구 흔들렸다.
‘가자.’
흑고루마공이 다음 단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본래 다음 단계까지 갈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한데 어인 일인지, 오늘 아침부터 불현듯 마기가 왕성해졌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마공 자체가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유상천도 알지 못했다. 근래 들어 유독 다급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인해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고 유추해 볼 뿐이었다. 마공은 여느 신공보다 감정에 강한 영향을 받으니까.
결과적으로 그는 온종일 운공에 힘썼고, 결국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직전의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 벽을 부숴야 한다.’
부술 수 있다. 그 정도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이 벽을 부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만약 끝까지 진행해도 부수지 못하면 오히려 마공이 퇴보할 수도 있을 테다.
이천상을 돕기 위해 조부의 거처까지 들어온 그였다. 여기서 만약 마공이 퇴보한다면, 그는 정말 큰 좌절에 휩싸일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아. 발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변화라고 했다. 설령 퇴보한다 한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유상천이 입술을 깨물었다.
깨문 입술이 찢어지며 핏물이 흘렀다.
‘가자!’
콰르르릉.
흑고루마기가 파도치며 벽을 두들겼다.
순간 등허리가 부러질 것처럼 휘어졌다. 정말 눈앞이 아찔해질 만큼 고통스러웠다.
유상천은 연신 입술을 깨물었다. 찢어지고 터진 입술이 금세 너덜너덜해졌다.
‘한 번 더!’
쾅!
이번에는 몸이 오그라졌다.
순간적으로 가부좌까지 풀어질 뻔했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고통스러울 수 있나 싶었다.
유상천은 끝까지 정신을 부여잡았다. 다음 단계로 간다는 것은 곧 전신의 모든 혈도와 세맥이 타통된다는 것을 뜻했다.
단순히 일 성(一成)을 올리는 셈이지만, 몸의 변화는 뿌리부터 바뀐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무력은 몇 계단을 올라갈 것이다.
‘죽어도 뚫는다!’
다시, 흑고루마기가 파도처럼 쏟아졌다.
콰앙!
유상천의 코와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벽에 금이 갔다. 동시에 몰아치던 흑고루마기가 산산이 흩어졌다. 실패한 것이다.
‘안 돼! 다시, 다시……!’
조각난 마기를 어떻게든 다시 모으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의지로는 수습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마기가 흩어지는 속도가 더더욱 빨라졌다.
‘빌어먹을! 이대로 끝나는 거냐?!’
그때였다.
후우우웅.
알 수 없는 기운이 머리에서부터 흘러들었다.
극히 작은 기운이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유상천은 그 기운을 포착했음에도 그게 뭔지 인지할 수가 없었다.
훅!
들어온 기운은 순식간에 흑고루마기를 집약시켰다.
그 즉시 유상천의 정신도 온전히 돌아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마기를 운용했다.
콰릉!
파도처럼 밀고 들어가는 마기가 거대한 벽을 부쉈다.
순간 유상천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다가 전신에 시원한 바람이 깃드니, 황홀지경이 이러한가 싶어질 정도였다.
울컥! 울컥!
모든 혈도가 뚫리니 호흡 한 번에 들어오는 자연기의 밀도도 달라졌다.
쏟아져 들어오는 기운의 양도 달랐다. 한 번 호흡으로 이 정도 양이라니, 양과 질의 상승이 너무 대단해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정신 차려!’
재빨리 탁기를 불사르고 마기화하여 차곡차곡 단전에 쌓았다.
새로운 마기는 기존의 마기보다 훨씬 더 질이 좋았다.
질 좋은 마기가 들어오니 기존의 마기 역시 질적 향상을 이루었다. 그 마기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단전이 저절로 크기를 키워 넉넉한 그릇을 만들었다.
그렇게 반 시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후우우.”
가볍게 숨을 내뱉은 유상천이 눈을 떴다.
번쩍!
두 눈에 매서운 광채가 일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손을 내려다보았다.
‘엄청나구나.’
조금만 힘을 줘도 양손에서 시커먼 불길이 일어날 것만 같다.
내공이 달라지니 몸도 달라진 것 같았다. 실제로 마기의 변화는 육체의 변화도 꾀한다. 그의 몸은 서서히, 수일에 걸쳐 더 유연하고 강인한 근골로 변화할 것이다.
유상천의 얼굴에 순수한 기쁨이 어렸다.
“운이 좋았구나.”
“그래, 운이 좋았지.”
깜짝 놀란 유상천이 몸을 돌렸다.
작은 바위 위에서 백골신마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 달을 올려다보며 자작을 하는 모습이 마치 신선 같았다.
유상천의 얼굴이 곧장 굳어졌다.
백골신마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흑고루의 제골(製骨)에 이르렀느냐.”
“…….”
“느리다고 해야 할지, 여유가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유상천이 차갑게 말했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이 객당까지 내 집이다. 내가 내 집에서 술 한잔한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이냐?”
“…….”
“백골수의 성취는 어떠하냐?”
“궁금해서 물으시는 거라면 답하겠습니다.”
백골신마가 쓰게 웃었다. 유상천이 선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백골수는 뛰어난 절학이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다채로운 해석이 가능한 수공(手功)이니라.”
“…….”
“어디 너처럼 어설픈 재능을 타고난 아이가 얼마나 그럴듯하게 성장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적어도 장로님의 명성에 똥칠까지는 안 할 겁니다.”
“말은 잘하는구나.”
조부가 아니라 장로라 부른다. 그럼에도 백골신마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가만히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유상천이 몸을 돌렸다.
그때, 백골신마가 말했다.
“이 각주가 도착했다.”
“……?!”
“정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 자리를 빌려줬다. 가서 인사나 하거라.”
유상천이 대답도 없이 정자로 달려 나갔다.
혼자가 된 백골신마는 다시 달을 올려다보았다.
크고 맑은 달 속에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었다. 젊고 영준한 얼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를 띤 얼굴.
백골신마의 눈이 흔들렸다.
‘이놈들아, 그만 좀 나타나라. 내 살아 봤자 얼마나 더 산다고 자꾸 재촉들을 하는 거냐.’
그는 알고 있었다. 저 두 아이가 자신을 재촉하지 않으리라는 걸.
오히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다가 오기를 바란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또한, 백골신마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죽어도 두 아이와는 다른 곳에 떨어질 거라는 걸.
다만 지옥으로 가는 줄이 너무 길어서, 잠시나마 두 아이를 보고 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지옥의 염왕이 그 잠깐의 시간만 준다면, 정말이지 더 바랄 것이 없었다.
한참 동안 달을 올려다보던 백골신마가 다시 훌쩍 잔을 비웠다.
“……크으, 취한다.”
* * *
쉬익!
흑색 칼날이 허공을 베고 지나갔다.
‘이런 느낌이었다.’
지옥검, 아니 지옥도법.
아마 이 도법 역시 나름의 이름이 있을 것이다. 이천상은 굳이 그것을 알려 하지 않았다. 알려고 해 봤자 알 방법도 없거니와, 지금의 그에게는 지옥도로 족했다.
‘바람.’
그때의 칼바람을 기억한다.
수많은 화살을 일격에 부숴 버렸던, 자신이 펼치고도 놀라 버릴 만큼 막강한 위력의 칼 바람을.
‘허공에 강한 진동까지 일으킬 만큼 강력한 도풍이었다. 단순히 칼 바람으로 적을 갈아 버리는 게 아니야. 그 진동으로 적에게 또 다른 공격을 가할 수도, 나만의 영역을 공고히 할 수도 있었다.’
우우우웅.
칠야도에 내공을 쏟아부었다.
여전히 투명한 마기였다. 딱히 익히고 있는 마공이 없는데도 이 무공들을 구사할 때만큼은 지극히 섬세한 운용이 가능했다.
‘아직도 초입.’
어지간한 무공은 실전에서 휘두르기만 해도 순식간에 입문을 넘어간다.
하지만 지옥도와 칠보군림은 아니었다. 그나마 만압금마장은 둘보다 나았지만, 그마저도 입문에서 조금 나아진 수준이었다.
‘정말 어렵군.’
몇 번이나 칠야도를 휘둘러 봤지만 도풍을 제어할 자신이 없었다.
실제로 도풍을 일으켜 봐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도풍을 일으키면, 제어가 안 돼 이곳저곳 초토화해 버리고야 말 것이다.
‘상상이 안 돼.’
결국 이천상은 칠야도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다른 무공도 그렇지만, 특히 이 무공들은 실전에서 오의(奧義)를 깨달을 수밖에 없을 듯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
쓰러지기 전보다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약해지진 않았다.
문제는 내공이었다.
계속 이 상태로 지내다가는 훗날 성취가 있어도 무공을 제대로 펼치기가 어려울 듯했다. 일단 이놈의 내공 제어부터 확실하게 해 놔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안심이라.’
이제는 그런 생각도 하는구나.
이천상은 고개를 흔들며 잡념을 날렸다.
“각주님!”
어느새 정자 앞으로 유상천이 나타났다.
“왔나.”
“괜찮으십니까?”
“그래, 괜찮다.”
이천상의 눈이 반짝였다.
“무공에 성취가 있었군.”
허겁지겁 찾아왔는데 걱정한 사람 무색하게 무공의 성취부터 말한다.
유상천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정말 이 사람은 변한 것 같으면서도 변한 게 없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단순히 운이 좋다고 이만큼 발전하기는 힘든데.”
열심히 노력했다는 말이었다. 유상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 않겠습니까. 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떻게든 잘 처리되었다. 다만, 앞으로가 문제지.”
“또 싸움입니까?”
“모르겠다.”
이천상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만간 휴가도 끝이 난다. 돌아갈 때가 되었어.”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내전에서 이만큼이나 난리를 치고도 용케 살아 계셨어요.”
“아니, 반가운 소리는 아니지.”
“예?”
이천상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값어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그는 충분히 위험인물로 낙인찍혔다. 이 상태 그대로 돌아가 봤자 야차사령만 위험해질 뿐이었다.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군.’
만약 자신이 내전에서 날뛰다가 죽었다면 그 불똥이 야차사령까지 튀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고, 그대로 날뛰었다. 덕분에 나 자신의 한계와 내전의 상황을 선명히 알았지만, 정말 한 걸음만 잘못 디뎠어도 사령이 피를 봤을 것이다.
“령주님을 뵈어야겠다.”
“그래요, 어서 가서 복귀나 하십시오.”
복귀는 없다. 이천상은 그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도헌이 걸려. 그는 지금 날개를 잃었다. 백골신마가 그를 거둘 거라는 확신도 없어.’
이렇게 된 이상, 죽으나 사나 도헌과 함께해야 할 것 같았다.
이천상이 말했다.
“외전으로 가면 사람들의 인식이 야차사령에 쏠릴 것이다.”
“예?”
“자미루에서 기다리겠다. 네가 령주님을 뫼셔 왔으면 한다.”
“령주님을요?”
이 밤중에 양백호를 불러 달라니 의아했지만, 유상천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모셔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유상천이 백골신마의 거처를 나섰다.
“이별인가?”
어느새 담벼락에 나타난 백골신마가 웃으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천상이 달을 바라보았다.
“술 마시고 기억할 사람이 늘어나는 거, 별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