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62
외전 212화. 칠십이마장(七十二魔將) (2)
서둘러 이천상의 거처로 달려간 백골신마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이 기운은?’
말 그대로 벼락처럼 번뜩이다가 사라진 기운.
강렬하고 아련한, 더할 나위 없는 위엄으로 가득 찬, 어느 하나의 기질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의 실체.
덜컹!
거칠게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느새 이천상은 일어나 가부좌를 튼 채였다.
“…….”
백골신마는 이천상의 표정과 분위기를 살폈다.
이천상의 얼굴은 평온했다. 언제나처럼 이렇다 할 표정이라는 게 없었다. 다만 그간의 피로는 모두 씻어 낸 듯 조금의 그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착각인가?’
백골신마는 속으로 자문(自問)했다.
조금 전, 이천상의 거처에서 치솟은 혹은 내리꽂힌 그 힘은 백골신마가 아주 어렸을 적 한 번 느껴 보았던 힘이었다.
그때 그 힘의 분출이 얼마나 인상적이었으면 지금 이 나이 먹도록 기억하고 있을까?
심지어 그 힘을 느꼈던 사람은 그 하나만이 아니었다.
‘주군.’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저승으로 가 버린 그의 주군.
주군 역시, 그 힘을 얻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하지만 그분은 실패했다. 그 힘으로 구현할 수 있는 수많은 무공 중 하나만을 겨우 익혔을 뿐, 천마(天魔)는커녕 천마로 향하는 길 위에도 올라서지 못했다.
‘착각인가? 아니, 착각일 리가 없어. 나는 분명 어렸을 적 보고 느꼈던 그 절대적인 힘의 잔향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번져 나온 힘에서 어릴 적 느꼈던 그 힘과 유사한 것을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떨리는 눈으로 이천상을 보던 백골신마는 문득, 이천상의 앞섶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건?’
백골신마는 안력을 키웠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이천상의 가슴에서 빛나는 기묘한 도형이 그의 두 눈을 가득 채웠다.
‘……!’
백골신마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꽃피웠단 말인가.’
이천상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완전한 도형이라기보다는 ‘어떠한’ 도형의 일부였다.
‘지나친 현묘함 때문에 이승의 법칙으로는 존재할 수 없어, 사람을 매개로만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저승의 진(陣)이 드디어 힘을 발휘한 것인가.’
백소담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천상이 유진(幽陣)의 일부를 가져갔다는 것을.
유진에 대해서는 백골신마도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다만 그 진법은 교주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로, 어떤 신묘한 공간을 창조해 내는 무형의 무가지보(無價之寶)를 여는 열쇠라 하였다.
‘도형의 일부만으로, 너는 그 보물을 열어 버린 것이냐?’
그때였다.
번쩍!
이천상의 눈이 뜨였다.
순간적으로 발출되는 안광이 너무나도 맑고 깊어서, 백골신마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릴 뻔했다.
“장로님?”
“…….”
“무슨 일입니까?”
백골신마는 대답 없이 이천상을 내려보았다.
가만히 그를 올려보던 이천상은 문득, 문밖에 유상천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십…….”
저도 모르게 익숙한 호칭으로 부를 뻔했다. 이천상은 고개를 작게 저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유상천.”
“각주님.”
이천상과는 달리 유상천에게 그는 여전히 각주였다.
“내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유상천이 백골신마를 힐끔거렸다.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긴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뭔지 모르겠지만, 장로님께서는 아시는 듯했습니다.”
두 사람이 백골신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말없이 이천상을 응시하던 백골신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몸은 어떤가?”
“괜찮습니다.”
“그게 끝인가?”
“예?”
“뭔가…… 새로운 깨달음이라도 얻었나?”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변화의 시기를 맞은 것은 분명합니다.”
“설명해 주게.”
평소의 백골신마라면 쉽게 하지 않을 말이었다.
이천상 역시 그의 반응에 의아했지만, 언제나처럼 단조롭게 답했다.
“꿈에서 나 자신을 보았습니다. 신기했지요. 내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또 그중에서 보고 싶은 것을 내 마음대로 볼 수 있게 된 신기한 꿈이었습니다.”
백골신마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리고?”
“무명무공의 구결을 따라 진기가 흐르는 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
“다섯 가지 무공, 아니 총 일곱 가지의 무공이 그리는 지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 지도들을 보며 무명무공들이 결국 하나의 밭을 근간으로 한 무공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일곱 가지?”
“아.”
이천상은 자신을 습격했던 한 여인에 대해 설명했다.
백골신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폭혈마공을 구사했다고?”
“그렇습니다.”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연등…….’
자소대마 연등에게는 무명무서가 가지 않았다. 적어도 백골신마가 알기로는 그러했다.
‘손을 잡았구나. 아니, 손을 잡은 게 아니라 밑으로 기어든 것인가.’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연등이 정말로 그런 구도를 그렸다는 것이 착잡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그 여아의 무공을 훔친 것인가?”
“훔치려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알아서 보이더군요.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건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면, 조금 전의 그 기운은?”
“제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기운을 풍겼던 모양인데, 저로서는 알 길이 없군요.”
백골신마가 미간을 조였다.
“모르겠다는 건가?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우우웅.
이천상의 몸에서 은은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백골신마의 눈이 흔들렸다. 한차례 쓰러진 후 다시 깨어났을 때 이천상은 너무나도 투명하여 어떠한 개성조차 없는 무속성의 마기를 풍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건…….”
“진마공(眞魔功)입니다.”
진마공.
마환공과 함께 정통 마공의 기반이 되는 신교의 기초공으로, 위력은 약하지만 마기의 운용력이 어떤 무공보다 뛰어나다.
마기 운용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무공이 지닌 구결과 해석이 지극히 유연하고 다채롭다는 뜻이었다. 어떤 무공과 합쳐도 안정적인 출력을 자랑하며, 순수하기로는 마환공과 함께 신교 최고를 달린다.
다만, 기초공인 고로 축기의 속도가 지극히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일곱 무공은 하나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운기(運氣)의 그림들을 교차 검증해 본 결과 백여덟 글자의 구결을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구결을 뽑아냈다고?!”
백골신마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뽑아냈다고는 하나, 광대한 산맥의 일부를 가져왔을 따름입니다. 하물며 그 내용도 정돈되지 않아서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보통 내공심법과 외가무공은 철저하게 분리된다. 하지만 일류 무공 중에는 간혹 내공심법과 외가무공이 결합한 것들도 존재한다.
그런 무공은, 연결된 내공심법을 익히지 않고서는 외가무공의 위력을 제대로 낼 수가 없다.
무명무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펼칠 수는 있지만, 밭이 되는 내공심법 없이는 본래의 위력을 내기 힘들다. 형(形)은 펼칠 수 있지만, 형 안에 녹아 있는 깨달음과 현묘함까지 살리긴 어렵다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폭혈마공과 폭혈마검의 관계가 그와 같다. 폭혈마검의 형과 투로는 그 자체로 초일류라 할 수 있지만, 폭혈마공으로 쌓은 내공이 실리지 않으면 그저 난폭하고 사나운 검법으로 끝나는 것이다.
지금 이천상은, 폭혈마검을 펼치는 데에 필요한 내공 구결을 거슬러 올라가 폭혈마공의 구결 일부를 깨우쳤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 하였고 일원만화(一元萬化)라 하였다. 만 가지 길은 종내 하나로 귀결되며, 또한 하나의 근본은 만 가지로 분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강호 무림에서 흔히들 나도는 말이지만, 진실로 그러한 경지에 든 고수는 수천 년 무림사에서도 손에 꼽힌다.
당연히 이천상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 경지의 일부분을, 타고난 감각과 천재성으로 손에 넣었다는 뜻이 된다.
‘이놈은 정말이지…….’
백여덟 글자의 구결이 어떤 내용인지는 모른다. 알 필요도 없고, 안다고 한들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천상이, 그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진정 욕계마왕의 축복을 받았든지.
“어쨌거나 몸은 괜찮아지셨다는 뜻이로군요.”
“그래.”
유상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너는 괜찮나?”
“예?”
“조장직에서 해임되었을 텐데.”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령주님이라도 자네부터 해임시켰을 테니까.”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나 때문에 어렵게 들어간 야차사령에서 해임되었으니, 볼 낯이 없다.”
유상천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어차피 저를 뽑아 준 사람도 각주님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각주가 아니야.”
“아, 그렇군요.”
고개를 주억거리다, 유상천은 문득 생각난 바가 있어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
드물게 말을 흐리는 이천상을 보며, 유상천이 말을 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각주님께서 내전으로 들어오신 순간부터 야차사령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게 된 셈입니다.”
“각주가 아니다.”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니 일단 각주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각주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상황입니다. 각주님께서 내전으로 들어오신 이유가 있을 것이며, 목숨 걸고 지금까지 버틴 이유도 있을 겁니다.”
“있지.”
“지금까지 해 오셨던 대로 행동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천상이 이천상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면, 유상천 역시 평소의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언을 했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다. 다만, 야차사령의 각주직에서 해임되었으니 그럴듯한 직함도 없이 내전을 돌아다니는 것은 확실히 부담스럽다. 해임 전에는 휴가라는 명목이 있었지만, 지금은 일반 마인이 되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교내 모든 마인은 제각기 소속된 조직이나 부여된 직위에 걸맞은 일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한 사람과 만난 후 정해 보도록 하게.”
중간에 끼어든 백골신마는, 어느새 본래의 신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서필 부각주가 자네를 찾아왔네. 기척이 느껴지는군.”
“서필이라면?”
군사부의 최중요 조직인 백뇌각의 부각주. 지닌 무공은 이천상을 넉넉히 상회하며, 권모술수에 능해 총군사 허성관의 총애를 듬뿍 받았던 작자였다.
“그자, 아직 살아 있었군요.”
“따로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 같았지. 그래, 그는 살아 있네. 꽤나 비참한 꼴이 되었지만.”
“총군사가 그를 쳐 낸 것입니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기는 하네. 만약 쳐 내지 않았다면, 그 녀석이 아득바득 나를 찾아와 자네를 소개해 달란 말까지 꺼내진 않았겠지.”
“소개…….”
“직접 만나 보게. 나로서는 달리 해 줄 말이 없군. 선택은 자네 몫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