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65
외전 215화. 칠십이마장(七十二魔將) (5)
백골신마는 확실히 배포가 큰 사람이었다.
그는 서필을 절대 믿지 않았지만, 서필이 이천상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임시로 객당을 내주었다.
만약 서필이 허성관의 명을 받고 왔다면, 백골신마는 자신의 거처에 독 묻은 비수 한 자루를 들인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진정 서필이 그런 사람이라면, 그는 조만간 큰 위험에 처할 것이다.
하지만 백골신마는 이천상을 믿었다. 그의 능력, 그의 안목을 신뢰했다. 서필에게 검은 마음이 있었다면 이천상이 받아 주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이천상을 믿을지라도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닌바. 유상천은 백골신마의 일말의 고민도 없는 결정을 보며, 조부에 관한 애증과 별개로 거인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백골신마의 거처는 이전과 달리 묘한 북적거림을 자랑하게 되었다. 적어도, 그 혼자 지낼 때보다는 그러했다.
* * *
서필과 대화를 끝낸 후 거처로 들어온 이천상은 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 명상에 잠겼다.
창가로 스며드는 햇빛을 보며,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확실히 이 구결들은 무명무공의 근본이 되는 마공 구결의 일부다.’
백여덟 글자로 이뤄진 구결. 이름 모를 마공 구결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적게 보면 일 할, 많게 보면 서푼도 안 되는 양이다.
구결 글자가 적다면 적은 대로 난해한 것이고 많으면 많은 대로 복잡하다. 차라리 이천상은 이 마공 구결이 엄청나게 길기를 바랐다. 수많은 외가무공의 근본이 되는 내공심법의 구결이 적다면 그것을 해석하기 위한 방대한 정보와 해석력, 안목 등이 필요하므로.
‘뭐가 되었든 간에.’
백여덟 글자의 짤막한 구결을 해석해 본 이천상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이 마공은 불가 무공과 관련되어 있다.’
어쩌면 불가 무공에서 떨어져 나온 마공일 수도 있다. 또한, 그 반대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거기서 이천상은 천마신교가 숭배하는 마라 파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순(波旬)이란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을 다스리는 신(神)으로 석가의 수행을 마지막까지 방해했다던 마귀다.
결국 석가의 깨달음 깊은 일갈에 도망치고야 말았으니, 신학적 해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파순은 석가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저 마귀들의 왕일 뿐, 석가의 위대함 앞에서는 그조차 먼지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즉, 마라 파순은 악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이, 불교에는 명확한 선악의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마라 파순 즉, 천마(天魔)는 그저 번뇌의 일부일 뿐이다. 불법을 닦는 이들, 그리고 불도를 따르는 이들에겐 세상 모든 개념이 번뇌가 될 수 있고, 그러한 번뇌를 떨쳐 내는 과정 자체가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이다.
말하자면 불교적 입장에서 천마는 적(敵)이 아닌 것이다. 무수히 많은 종교에서 악(惡)의 존재를 명확히 하지만, 불교에는 악의 실체가 없다.
‘그렇다면 천마신교에서 보는 부처는 어떠한 존재인가. 천마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단순히 모시는 신(神)에 불과한가? 그게 아니라면 저 불교가 석가를 대하는 것처럼,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으로서 존재할 뿐인가.
거기서 이천상은 한 가지 희극적인 요소를 발견했다.
‘나는 천마에 대해 모른다.’
입교를 늦게 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아마 나처럼 천마에 대해 모르는 자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입교했을 당시 천마신교에 대한 이천상의 해석은 그저 마도(魔道)를 따르는 초거대 무림 집단이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림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생각과 일치할 것이다. 무림과 연관이 없는 관부와 민간 사이에서도 천마신교는 그저 악랄하고 거대한 무림 문파일 뿐이다.
‘이해할 수 없다.’
천마신교에도 경전을 해석하고 신학을 공부하는 부서가 존재한다.
천마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어떤 조직보다도 방대하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정작 그 부서는 크기만 클 뿐 사람도 많지 않다. 대단히 높은 확률로 경전 해석이 아닌 경전 관리가 주 업무일 것이다. 이천상 역시 그러한 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 뿐, 조직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했다.
‘백골신마는 알고 있을까.’
백소담은? 다른 마왕들은?
정작 교주가 된 자전신마 조백천은 천마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도가 일반 교도들 정도는 될까?
‘마(魔)를 이해하지 못하면 마공에 대한 이해도 결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자란 학문의 시작이요, 끝이다. 마공(魔功) 역시 마찬가지. 신공이 아닌 마공이라 부르는 것은, 단순히 역천의 기운을 담아내서가 아닐 것이다.’
또한 마(魔)란 단순히 마귀, 마졸 같은 의미만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마라 파순, 천마 역시 마졸이며 마귀다. 예로부터 그런 식으로 해석되어 왔다는 것이다. 즉, 마공이란 단어를 고대의 해석으로 하면 천마(天魔)를 이해하는 공부라고도 볼 수 있다.
‘단순히 이 이름 모를 마공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이천상은 크게 깨달았다.
‘마공이라는 체계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전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서, 이 무명의 마공이 불가 무공과 연관되어 있다면 결국 신교의 정통 마공 전부가 불가 무공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내가 익힌 진마공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진마공과 마환공은 신교 정통 마공의 뿌리다.
축기의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무림인에게 단점이 될 수 있지만, 애초에 진마와 마환은 강해지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 아니었다. 이천상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진마공의 구결을 풀어 보았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해석하기 쉽다. 글자 역시 삼백육십 자로 마환공의 구결 글자 수와 일치한다.
‘진마공의 구결은 유연하기 때문에 해체와 합체가 쉽다. 즉, 어떤 무공으로도 갈아타기가 쉽다. 나아가…….’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어떤 공부도 마공으로 손쉽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마공은, 마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마공이 될 수 있다. 천하의 신공(神功)이라도 단순한 구결 조합으로 역천의 마기를 담아내는 마공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으니까.
단순히 더 강하고 높은 수준에 이르기 위해 혈안이 된 이들은 알 수 없는, 오직 마공에 대한 이해만을 위해 궁구한 자가 아니면 모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구결도 구결이지만 법문이 흥미로워.’
대개 내공심법들은 구결과 법문이 나뉘어 있다.
하지만 수준이 낮다고 평가되는 심법의 경우 무인들 대다수가 구결만 신경 쓸 뿐, 법문은 배제한다. 당장 구결대로만 연성해도 무공을 익히는 데 아무 문제가 없고, 수준 높은 내공심법으로 갈아탈 준비가 되어 있다면 더더욱 법문에 신경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진마공을 익히는 무사들도 대개 비슷할 것이다.
이천상은 진마공의 구결보다 법문에 더 신경이 쓰였다.
‘탐욕과 악의(惡意)로 잔뜩 젖어 있지만, 행간과 자의(字意)를 반전하면 금강경(金剛經)과 놀라우리만치 유사해.’
이가상단에는 무수히 많은 책이 있었고 그중에는 대중적인 도교 경전과 불교 경전도 많았다. 이천상은 그곳에서 금강경 역시 읽을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당시에 읽었던 모든 경전의 글자와 뜻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불교와의 연관성이 신기하리만치 깊다.’
이천상은 진마공과 함께 정통 마공의 뿌리가 되는 마환공의 구결과 법문을 떠올려 보았다.
‘마환공의 법문도 진마공의 법문과 큰 차이가 없다. 몇 가지 의역이 다르고, 그 의역된 부분이 곧 두 무공이 나아갈 길을 가른다.’
진마공과 마환공.
이제야 비로소 이천상은 두 무공의 다른 근본을 완전하게 이해하였다.
‘진마공이 변화와 수용이라면 마환공은 변화 이후에 마(魔)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진정한 의미의 마공 입문은 진마공이고 마환공은 마공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천상은, 결국 두 무공이 하나이며 동시에 철저히 나눠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변화와 수용. 이는 진마공을 한번 접하면 절대 벗어나지 못하게 오염(汚染)된다는 뜻이다.’
마치 전염병처럼.
‘적에게는 역병과도 같은 공부일 것이다. 반대로, 마에 몸을 담은 자에게 있어서 진마공이야말로 절대마공(絶對魔功)에 가깝다.’
이천상은 진마공을 개방해 보았다.
개방하려는 순간, 그 의지를 타고 순식간에 온몸으로 진마기(眞魔氣)가 흘러갔다.
유연하고 다채롭다. 손쉬우며 여유롭다.
이천상은 팔대마공에 준한다는 금강야차마공과 자신이 창안한 세 가지 마공이 아닌, 진마공을 연마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차후 무명무공들의 구결을 계속해서 분석해, 백여덟 구결을 뽑아낸 것처럼 차근차근 뿌리를 캐낼 것이다.’
그리고 그 뿌리들을 캐내 진마공에 합친다면.
그렇다면 비로소 누구도 알려 주지 않은 또 하나의 절대마공을 연마할 수 있을 것이다.
“주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마침 생각이 정리되자 서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이라는 호칭이 아무래도 어색했지만, 이천상은 서필이 부르는 호칭을 교정하지 않았다. 어쨌든 본인의 마음이 그러할 테니.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고 서필이 들어왔다.
공손히 허리를 접는 그의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요.”
“명상을 좀 했소.”
“주군의 상태는 주군이 가장 잘 아시겠지만, 세상 어떤 고수도 병은 피할 수 있을지언정 피로를 피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으니 주군께선 몸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쓰셔야 할 것입니다.”
언제, 어떤 순간에도 최대의 기량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념하리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침은 생각이 없소. 그러고 있지 말고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이천상의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는 그의 자세에는 아랫사람으로서의 조심스러움이 잘 묻어났다.
이천상은 편히 앉으라 말하지 않았다. 서필이 그것을 원치 않을 것 같았다.
“조식을 건너뛸 생각이시라면, 다소 이르긴 하나 주군의 앞날에 대해 논의를 해 볼까 합니다.”
누가 군사부 출신 아니랄까 봐 아침 댓바람부터 심각한 사안을 잘도 가져온다.
물론 이천상은 서필의 언행에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둘러 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주군께서는, 내전은 물론 외전의 어떤 조직에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소?”
“정확히 말씀드리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조직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잡무를 맡는 곳이라면 가능할 테지만, 사실상 큰 의미는 없겠지요.”
서필이 눈을 빛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조직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조직이라 할 수 없는 ‘무리’이긴 합니다만.”
“어디요.”
“칠십이마장입니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칠십이마장.”
“그렇습니다. 현재 주군께서 가셔야 할 곳, 아니 되셔야 할 존재가 바로 마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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