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72
외전 222화. 염색(染色) (6)
백골신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전에도 한 번씩 하늘을 보는 게 취미였다. 그러다가 일이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아 땅만 보며 살았는데, 다시 또 이렇게 하늘을 보는 날이 많아졌다.
서녘으로 지는 태양의 강렬한 주홍빛은 어느 미친 화공이 뿌린 염료처럼 강렬한 색감을 발했다.
어둠으로 넘어가는 저 태양이 마치 지금의 신교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만큼 오래 자신은 저 아름다운 노을을 즐길 수 없었다. 차마 보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볼 수 있었다.
‘바뀌고 있다.’
신교를 바꾸려는 시도는 수년에 걸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일어났다.
그 시도 대부분이 더 나은 신교가 아닌, 더 강한 권력을 얻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했다. 백골신마는 변화라는 단어에 어떤 종류의 호감도 가질 수 없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변화의 첫 시작은 조백천이었다.
신교 역사상 후계를 두지 못하고 급사한 교주가 몇몇 있었지만, 그럴 땐 장로들이 모여 섭정 체제를 꾸리고, 어울리는 인재를 찾아 키워 새로운 교주로 옹립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조백천은 스스로 교주직을 손에 넣었다. 심지어 그는 천마지학(天魔之學)을 연성하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천마신교는 저 범용한 강호의 문파들과 똑같은 조직으로 변질되었다.
‘그게 문제였지.’
조백천의 가장 큰 죄는 천마지학을 익히지 않은 것도, 폭정을 일삼은 것도 아니다. 선례를 남긴 것이다.
천마지학을 익히지 않아도 권력을 쥐기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그로서 신성하기 그지없는 신좌에 앉을 수도 있다는 선례.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조백천은 순수한 정치적 능력만으로 마왕들을 구워삶았고 반대파를 숙청, 혹은 무시로 일관하며 스스로 신이 되었다.
능력이 없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능력이 오롯이 권력만을 향해 있어서 문제일 뿐.
결국 지금 신교가 어지러워진 것도, 조백천의 폭정이 유달리 심해서가 아니라 그가 남긴 선례 때문에 마인들의 욕망이 기괴하게 뒤틀렸기 때문이다. 적어도 백골신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우후죽순처럼 올라오는 변화의 시도가 있었고 그 모든 변화는 성공하거나 실패했으며, 신교는 썩어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
비로소 백골신마는 느끼고 있었다. 썩어 빠진 천마신교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걸.
폭정으로 신음하며 교세가 갈수록 줄어들고 마인들의 삶이 피폐해지기 짝이 없는 이때, 고요하게 불어온 돌풍은 무척이나 신선했고 미래를 향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한 발이라도 떼어 보는가.’
이 변화가 진정 신교에 새로운 길을 열어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건 이전과 다른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것도 강렬하게, 적극적인 형태로.
‘죄를 짊어져야 한다면, 결국 나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신교가 이 지경이 된 것을 방관했다. 정확히는 미래를 위해 참고 살아온 세월이지만, 그로 인해 고통받은 마인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백번 죽어 마땅한 중죄라 할 수 있었다.
백골신마는 그 죄를 다 안고 갈 작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금평아.’
하나뿐인 아들.
‘요하야.’
며느리라는 이름의 딸.
자기 의지로 아들과 딸의 죽음을 방기했다. 두 사람이 그것을 원하기에 피눈물을 흘리며 그리했다. 언제고 자신도 그리될 테니까.
이 모든 것이 신교를 위해서라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은 그 어떤 글로도, 말로도 형용할 수 없다.
아비를 따라 함께 교에 충성을 바친 아들과 며느리다. 두 아이는 위대한 미래를 위해 아비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여겨, 웃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
백골신마의 눈이 흔들렸다.
점점 눈물이 차올랐지만, 그는 끝내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이 눈물은 자신이 죽을 때, 신교가 바뀔 때, 진정 새로운 미래가 다가오리라는 확신이 들 때. 바로 그때를 위해 아껴 둘 것이다.
“장로님.”
크게 숨을 들이쉰 백골신마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순위는 어떻게 되느냐.”
귀신처럼 알아맞힌 조부의 말에 유상천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삼십오마장입니다.”
“삼십오라…….”
백골신마가 눈을 감았다.
“네 나이에 삼십오마장이라면, 훌륭하다 아니 말할 수 없다.”
“……!!”
유상천이 놀란 눈으로 조부의 등을 바라보았다.
두 조손간에 잠시 침묵이 어렸다.
반 각이 넘는 침묵을 깬 사람은 조부 쪽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안주하지 말라. 순간의 크나큰 발전이 미래의 나를 담보할 수 없는 법. 지금의 성취에 만족하여 열정을 상실하는 순간, 미래는 없을 것이다.”
“…….”
“이만 가 보아라.”
“장로님.”
“더 할 말이 남았더냐?”
뭔가 말하려다 말고, 유상천은 이내 침을 꿀꺽 삼켰다.
백골신마가 담담하게 말했다.
“할 말이 없다면, 네가 있을 자리로 돌아가거라.”
“……많이.”
“……?”
“많이 배웠습니다.”
자식들의 죽음을 떠올리며 끝끝내 참았던 눈물이 다시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백골신마는 이를 악물었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는 손주를 사랑했다. 이 세상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사랑했다. 어린애를 남겨 두고 간 두 자식이 눈에 밟혀 더더욱 애틋하고 사랑스러웠다.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좋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성정이, 살아온 길이 그렇게나 저주스러울 수 없었다.
그러나 백골신마는 끝내 침묵을 택했다.
미안함, 죄스러움, 안타까움.
퇴로를 찾지 못한 부채는 이미 고이고 고여 가슴 곳곳에 물때를 남겼다. 벗겨 낼 길이 요원하니 썩게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말없이 손자를 보내 준 백골신마.
잠시 후 석양이 자취를 감추었다.
어둠만이 가득한 곳에서, 백골신마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 * *
거처가 필요해진 이천상은 자미루주에게 직접 금자를 건넸다. 자미루에서 오 년은 족히 묵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금이었다.
야차사령에서 받은 월봉이 그렇게까지 많진 않았다. 그가 루주에게 이만한 거금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백소담 덕분이었다.
저번 적표단주 건으로 거대한 자금을 손에 넣은 그녀는, 감사 조로 이천상에게 큰돈을 주었다.
사양하는 이천상에게 그 돈은 원주 개인 금고에서 나온 돈이며 종마회를 위해 쓰는 돈이기도 하니 생각이 있다면 그 역시 종마회에 들어 신교를 위해 달려 보라고 하면서.
아직 종마회에 들진 않았지만, 그런 이유까지 들어서 돈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이천상과 서필, 유상천은 각기 일 년 동안 지낼 거처를 마련했다.
자미루주는 감사하다며 술을 제외한 식대는 받지 않겠노라고 말했다. 이천상이 그 자리에서 금자를 더 얹자, 술값까지 받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세 사람은 자미루 최고 별채 한 곳에서 좋은 술과 안주를 즐길 수 있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서필은 한 잔의 술도, 고기도 입에 넣지 않았다.
“저는 내일 곧장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살아 돌아올 자신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천상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
서필은 곧장 말을 이었다.
“저는 저대로 움직이면 되는데, 문제는 주군입니다. 주군과 유 마장의 직위는 특수합니다. 두 분이 마장이 되었지만, 주군께선 몇 달 동안 내전을 휩쓴 분이고 유 마장은 십대마왕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백골 장로님의 손자이십니다.”
“…….”
“섣불리 도전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반대로 말하면 잔가지를 제외한 위험한 인물들이 다가올 겁니다.”
유상천이 물었다.
“이를테면?”
“많지요. 가장 위험한 이들이라면 역시 총군사 휘하 마인들과 마왕 휘하 병력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유상천의 얼굴에 살짝 긴장이 감돌았다.
얼마 전 흑고루마공의 큰 성취를 이루었지만, 내전의 진짜 강자들과 붙게 된다면 십중팔구 패배할 것이다.
패배는 곧 죽음. 유상천 역시 마장이 되며 본인의 목숨을 던진 것이다.
“물론 쉽게 움직이지는 않을 겁니다. 특히 군사부가 그렇지요. 그들은 문제를 제거하기보다는 사전에 차단하는 쪽을 선호합니다. 사전에 차단하지 못하고 기습당했으니, 당분간 사태를 지켜볼 겁니다.”
“그럼 마왕만 신경 쓰면 되는 겁니까?”
“그게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서필의 눈이 깊어졌다.
“군사부가 직접적으로 건드리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괴롭힘이 있을 수 있지요. 괴롭힘 또한 그 사람의 반응을 볼 좋은 방법이니까요.”
“방법이라면……?”
그때,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교외 임무.”
“정확하십니다.”
서필이 깍지를 꼈다.
“실제로 제가 백뇌각 부각주로 있던 시절, 많이 써먹었던 방법입니다. 일단 교내에서 떨어트려 놓고 뒷조사를 하든, 어려운 임무를 처리하는 방식을 보든 하는 것이지요. 명분은 명분대로 있고 다각도로 관찰하기에도 딱 좋으니,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마왕들은 직접적으로 움직일 테지만, 군사부는 작전을 통보할 겁니다. 두 시기가 맞물리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요.”
유상천이 인상을 찡그렸다.
“맞물리지 않고 차례대로 공격이 들어오면 최악이군요.”
“그렇습니다.”
서필이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주군의 재능은 최고입니다. 모시는 분이라서가 아니라, 고금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속도로 강해지셨지요. 앞으로 십 년만 지나면 능히 마왕에 어울리는 힘을 손에 넣으실 거라 믿습니다.”
유상천이 깜짝 놀라 서필을 바라보았다.
십대마왕. 그 이름은 단순히 상징적인 것이 아니었다.
멋대로 교를 나간 마왕들까지, 당대 십대마왕은 지금의 신교를 만든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그 엄청난 경험에 놀라운 재능으로 극마에 도달한 그들의 무력은 하나하나가 재앙급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데 십 년 만에 이천상이 그와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니? 제아무리 유상천이라도 쉽게 믿을 수 없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당장입니다. 주군께 십 년의 시간이 있다면 좋겠지만, 당장 내일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요. 무력의 부재가 뼈아픈 상황입니다.”
“그렇군.”
“다행히 야차사령주가 티 나지 않게 지원군을 보내 준다고 했다지만, 설령 야차사령이 통째로 내전에 들어온다 한들 작정하고 나서는 마왕과 군사부를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야차사령이 아니라 호령, 나아가 내전 육대가 전부 나서도 두 조직을 감당키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 상황에서도 유 마장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작정하고 척지지 않은 이상, 백골 장로님의 손자를 멋대로 공격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유상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서필이 이천상에게 물었다.
“따로 가실 곳이 있으신지요?”
“있소.”
서필의 눈이 반짝였다.
“어딥니까?”
이천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골신마 장로님을 뵙고 와야겠소.”
느닷없는 발언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나온다고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했소. 그간 진 빚이 있으니, 인사는 드려야지.”
그 말을 끝으로 이천상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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