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75
외전 225화. 염색(染色) (9)
“……!”
백골신마가 형형한 안광을 발했다.
‘드디어.’
무신(武神)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지를 이룬 백골신마.
마기와 외기를 통틀어 이 정도로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는 마왕 중에도 백골신마뿐이었다. 그와 동급으로 취급받는 광혈신마도 이 정도로 광범위하고 섬세한 기공 능력은 없다.
즉, 백골신마의 상단전은 신교 최고를 논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며 덕분에 철저히 연마된 상단전은 그의 눈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꿔 버렸다.
백골신마의 눈에는 보였다. 이천상의 칠야도 주변에서 들끓는 시커먼 아지랑이가.
그것은 마기가 아니었다. 그 시커먼 아지랑이는 제멋대로 꿈틀대다가 점차 작은 형상들을 만들어 냈다.
지옥의 악귀였다.
사람들이 막연히 상상하던 악귀들이 킬킬대며 칠야도를 둘러싸고 있었다.
‘고작 진마공의 마기로 저만한 기세를 담아낼 수 있단 말이냐.’
백골신마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칠야도에 서린 진마기는 이천상의 경지가 충분히 대단하다는 걸 알려 주고 있지만, 백골신마는 그 이상을 보았다.
백골신마의 두 눈에 보이는 악귀의 형상은 지옥기(地獄氣)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었다. 그토록 악랄한 기운을 넉넉히 받아 내는 진마공의 수용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고작이 아니구나. 저것이야말로 우리가 몰랐던 진마공의 진짜 능력이다.’
백골신마의 절대적인 기공 능력을 보며 이천상이 큰 깨달음을 얻었듯, 백골신마 역시 이천상의 공부를 보며 세상이 모르는 진마공의 실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사제지간이란 단순히 일방적인 가르침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다.
스승 역시 제자를 가르치면서, 제자의 깨달음을 보면서 크게 발전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더 깊고 높은 경지를 체감할 수 있는 관계, 그것이 바로 사제지간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백골신마와 이천상은 누가 뭐래도 스승과 제자였다.
비록 본인의 절기를 가르치지 않았으나 이천상에게 마인의 삶과 초상승의 마공을 던져 준 백골신마.
무너지고 바스러져 생의 목적조차 희미해졌던 백골신마에게 새로운 미래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 준 천재 이천상.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오직 그들만이 마음으로 이해한 사제지간의 영향력이 서로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끌어내는 이 순간.
바로 이때, 두 사람의 관계는 완성(完成)되었다.
“오라!”
콰아앙!
직선으로 달려오는데도 순간적으로 마기의 흐름을 놓쳤다.
백골신마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천상의 몸은 보였지만, 그가 풍기는 마기가 팔방으로 뻗치며 기감을 교란했다.
‘보법!’
칠보군림(七步君臨)이었다.
무공의 난해함 때문에 십(十)의 삼(三)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펼쳐지는 순간 천하의 백골신마조차도 당황했을 만큼 고도의 능력을 보여 주는 신(神)의 발걸음.
한순간 당황했지만, 백골신마의 눈과 기감은 빠르게 마기의 흐름을 잡아냈다. 이천상이 어디로 향할지, 어떤 곳을 노릴지 벼락처럼 깨달았다.
그래서 놀랐다.
‘전부 노리는구나.’
일 장 앞까지 다가온 이천상이 칠야도를 휘둘렀다.
부아아아앙!!
공기가 찢어지고 불타오르는 듯했다.
한 자루 흑색 칼날이 이끄는 대군의 행렬이다. 수천, 수만의 악귀들이 폭소를 터트리며 뛰어드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천지를 가르는 일도(一刀)가 악귀의 폭풍과 함께 백골신마의 빗장뼈를 노렸다.
백골신마의 좌수가 벼락처럼 움직였다.
새하얀 마기가 어느새 살점 하나 없는 인간의 두개골 형상을 그려 냈다.
콰앙!
이천상은 눈앞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광경이 하얗다. 두 귀는 먹먹했고 엄청난 압력으로 인해 혈관이 터진 코에서는 핏물이 쭉쭉 나왔다.
화아아악!
응축되었다가 폭발한 공기가 시원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 순간, 이천상은 자신이 허공을 날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파파팡!
정신이 듦과 동시에 그의 몸은 본능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허공을 밟아 가는 두 발, 칠보군림의 이보(二步)가 작은 경파(勁波)를 뿜어 이천상을 또 한 번 돌진하게 해 주었다.
백골신마의 얼굴에 환희가 어렸다.
‘저것이다.’
목전에 이르렀다고는 하나 아직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마인이, 순간적으로 허공답보의 비기를 펼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신의 무공.
천양지차의 무공을 구현하는 고수가, 잠시나마 반응이 늦었다면 육신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위력을 자아내는 악마의 공부.
‘저것이야말로 본교의, 천하의 정점에 이른 파순(波旬)의 무(武)로구나!’
벼락처럼 휘둘러진 칠야도가 광풍을 담은 지옥도법(地獄刀法)을 펼쳤다.
주인의 힘이 약해 제 위력을 다 내지 못하니, 사방의 외기(外氣)까지 끌어다가 강제로 참격을 증폭시킨다. 한번 펼치면 일대를 죽음의 땅으로 만드는 나락(奈落)의 칼춤이었다.
백골신마의 쌍수가 불을 뿜었다.
콰쾅! 콰아앙!
수백 줄기의 참격이 산산조각으로 분해되었다.
무지막지한 무공이지만, 백골신마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걸 알기 때문에 이천상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공격했다.
그리고 백골신마는 희대의 천재가 그려 내는 잊힌 과거를, 그러나 신세계(新世界)가 될 것이 분명한 삼생(三生)의 역사를 받아 주었다.
쾅! 콰콰쾅!
칠야도의 움직임이 갈수록 빠르고 격렬해졌다.
그 넓은 후원의 외벽 곳곳에 칼자국이 새겨졌다. 부서지고 튕겨 나간 도기가 끝까지 소멸하지 않고 기어이 외물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세상천지에 이런 무공은 없다. 오직 군림(君臨)밖에 모르는 마(魔)의 지존만이, 이런 상리에서 벗어나는 무공을 펼칠 자격이 있다.
쾅! 쾅!
지옥도법의 힘이 갈수록 강해졌다. 백골신마의 방어와 반격 역시 갈수록 완벽해졌다.
어느새 이천상은 칠공으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실핏줄이 터진 두 눈은 피눈물을 뽑았고 코와 입으로도 진한 핏물이 쏟아졌으며, 두 귀 역시 실처럼 가느다란 핏물을 냈다.
그럼에도 백골신마는 봐주지 않았다.
아니, 봐줄 여유가 없었다.
이천상이 강해서라기보다는 백골신마 역시 파순무(波旬武)의 압도적인 강렬함에 매료되어 버린 탓이 컸다. 그는 조금이라도 더 파순의 그림자를 느끼고 싶었고, 그 공부를 구사하는 이천상의 모습에서 극한의 쾌락과 환희를 느꼈다.
그곳에 미래가 있음을 직감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쾅! 쾅!
이천상은 이미 한계를 넘어가고 있었다.
육신과 내공, 모든 것이 한계를 넘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공격을 가했다. 몸과 진기는 더 이상의 무공 구현이 불가능하다고 외쳤지만, 한계를 초월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천상의 정신.
그의 혼이, 정신이, 본능이 한계를 초월하고 있었다.
백골신마만큼 강력한 마인이 있기에 무명무공을 끝까지 다 펼칠 수 있었다. 한 번도 무명무공을 극한까지 구사해 본 적 없는 이천상에게, 지금 이 모든 내상과 외상은 곧 깨달음이 되었다.
그 깨달음들이 모이고 모여 소모되었던 내공을 끄집어냈고, 솟구친 내공은 그의 내상 하나하나를 무서운 속도로 고쳐 나갔다.
치이이익!
하지만 이천상 역시 인간의 육신을 지닌 이상 한계가 있었다. 백골신마는 그것을 민감하게 깨달았다. 앞으로 다섯 수, 아니 일곱 수만 지나면 이천상의 힘이 다 소진될 것이다.
황홀한 꿈을 꾸다가 현실을 자각한 그는 슬슬 끝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천상이 그것을 거부했다.
파사사사사삭!
깨진 도자기 조각처럼 비산하던 지옥의 바람이 이천상의 강렬한 의지에 흩어지지 않고 모여들었다. 모인 바람 조각은 피처럼 시뻘건 돌풍을 그렸다. 순식간에 후원 전체에 지독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백골신마의 눈이 커졌다.
‘또!’
지옥도법에서 혈풍오식(血風五式)으로.
칠야도가 겨누는 허공 곳곳에서 송곳처럼 회전하는 다섯 줄기의 핏빛 돌풍이 백골신마의 전신을 노리고 쏘아졌다.
도법이 아닌 검법이다. 하지만 이천상의 칼질에는 그런 구분이 없었다.
백골신마가 천마백골수(天魔白骨手), 백조균천(百爪均天)을 펼쳤다.
콰콰콰콰쾅!!
다섯 줄기의 혈풍이 모조리 증발했다.
증발하는 그 순간, 이천상의 왼손이 백골신마를 겨누었다.
타아아앙!
중지와 엄지의 탄력으로 쏘아 내는 마선탄지공이었다.
백골신마는 깜짝 놀랐다. 그것 역시 파순무의 한 가지라는 것을 알았지만, 무명무공에 실린 무공 같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또 다른 파순무였다. 현실로 돌아왔던 백골신마의 정신이 다시 꿈결 속으로 들어갔다.
퍼퍼퍼펑!
원거리에서 쏘아 내는 마선탄지공, 근거리에서 몰아치는 지옥도, 중장거리를 담당하는 혈풍오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신의 발걸음, 칠보군림까지.
이천상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 바닥을 박박 긁어, 한 줌의 힘이 남아 있다면 그것까지 실어 백골신마의 오감을 황홀하게 했다.
백골신마는 볼 수 있는 모든 걸 보고 있었다. 그가 보는 것은 파순무였지만, 나아가 파순의 점지를 받은 천재의 재능과 흐릿하기만 했던 미래의 신좌(神座)를 볼 수 있었다.
쾅! 콰르르릉!!
천지가 신음하고 어둠이 놀라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
이천상은 눈을 끔뻑였다.
‘언제……?’
어느새 그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두 발로 설 힘도, 고개를 들 힘도 없었다. 그야말로 모든 걸 쥐어짠 극한의 증명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진마공을 끌어 올렸다.
‘……?!’
이천상의 눈이 흔들렸다.
단전에는 한 올의 마기도 없었다. 한데 단전의 상태가 묘했다.
더 깊고 넓어졌다. 나아가 하단전의 상태에 맞게 정육면체의 형태를 지닌 중단전도 커졌으며 상단전 역시 점점 하나의 형상을 그려 내고 있었다.
“하늘이 인간에게 허락한 경지라 하여 절정(絶頂)이라 한다.”
이천상은 안간힘을 쓰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야가 어지러웠다. 그래도 알 수 있었다. 백골신마가 터럭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궁구하고 또 궁구하면, 갈아 대고 또 갈아 대면 인간은 언제고 그 벽을 넘을 수 있다. 초월할 수 있어. 인간에게 허락한 경지를 초월했다 하여 사람들은 초절정이라 한다.”
“자…….”
백골신마를 부르려던 이천상은 짧게 기침했다. 목소리가 갈라져서 잘 나오지 않았다.
“천명(天命)을 어기고 초월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 보이는 것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육신부터 내공까지, 모든 것이 달라져야만 하지.”
“……?”
“채우기 위해선 일단 비워 내야 하는 법. 네 녀석의 하단전이 그리 공허한 것도, 커진 하단전에 맞춰 중단과 상단의 변화를 느끼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이천상의 눈이 점점 더 흐려졌다. 정신도 멍해졌다.
그러나 정신을 잃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백골신마의 말을 해석하려 애썼다.
‘내 단전이, 몸이 이 지경이 되었다는 건 무언가를 채우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풀썩!
이천상이 그대로 쓰러졌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백골신마의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가 어렸다.
“파순무를 손에 넣었다 하여, 그만큼 스스로를 던지기란 힘들 것이다.”
주르륵.
백골신마의 소매를 붉히며 내려온 핏물이 중지 끝에서 대롱거리다가 땅에 떨어졌다.
피로 염색된 손. 백골신마는 그 손이 마음에 들었다.
“훌륭한 무공이었다. 그 춤사위를 더 보기 위해서라도 신좌(神座)가 탈환될 때까지는 기어이 살아야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