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76
외전 226화. 마경(魔經)과 마경(魔境) (1)
“음, 다향이 좋군.”
허성관의 얼굴에 유쾌한 미소가 어렸다.
“근래 들어 차 한 잔 여유롭게 마실 시간이 없었네. 정말이지, 총군사직에 오른 이후 이렇게까지 바빴던 나날이 없었지. 굳이 꼽자면 교주님이 신좌에 오르시기 전, 치열하게 작전을 짰을 때와 비슷하달까.”
가볍게 한숨을 쉬며 손바닥으로 두 눈을 꾹꾹 누르는 모습이 정말 피곤하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백소담은 허성관의 그런 언행에 속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다. 당장 오늘 약한 척을 하다가도 내일이면 쓸 수 있는 모든 병력을 다 동원해서라도 정적을 죽이려 하는 이가 그였다.
진짜로 피곤한지 아닌지는 백소담도 모른다. 나아가, 그가 피곤하든 말든 별 상관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허성관이 혐오스러웠다. 그를 독대하면서도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는 자신에게 놀랄 만큼.
“백 원주.”
“말씀하십시오.”
“근래 많이 섭섭해한다는 걸 아네.”
근래가 아니다. 백소담은 허성관이라는 뱀이 군사부에서 두각을 드러낼 때부터 그를 싫어했다. 허성관도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해 주게나. 신교를 통치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야. 내 비록 교주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어 총군사가 되었지만, 단 한 번도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네.”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해서 휘하에 여러 군사를 둔 것이 아니던가. 아마 본교 역사상 군사부의 군사가 이렇게 많은 적은 처음일 걸세.”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성관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그는 타고난 머리를 협잡질에나 쓰는 소인배였지만, 능력도 없는 주제에 욕심만 많은 똥 덩어리까진 아니었다.
군사부에 군사를 많이 늘린 것은 철저히 허성관 자신을 위해서였다.
고래로 총군사직은 만인지상의 자리이나, 그만큼 엄청난 책임과 쏟아지는 업무로 제 수명을 다 채운 이가 드문 자리이기도 했다.
허성관은 일에 치여 빨리 죽을 생각이 요만큼도 없는 자였다. 오히려 만인지상의 권력을 이용해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는 부패한 권력자였다.
하지만 좋든 싫든 신교는 제대로 굴러가야만 했다. 허성관은 제 일을 대신해 줄 인재들을 유독 많이 뽑았다. 당연히 대신해 주는 일에는 협잡질도 포함되었다.
덕분에 당대 신교의 군사부는 유사 이래 최고의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부족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많지만, 그래도 군사부의 수장인 내가 일을 똑바로 해야 신교도 잘 굴러가고 군사들도 안심하며 일을 할 수 있겠지.”
허성관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간 많이 나태해지기도 했어. 하여, 근래 이런저런 일에 손을 많이 대고 있다네.”
“…….”
“새삼 젊었을 때가 그립더군. 그때는 나도 체력이 좋았거든.”
백소담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체력이라고 한다면, 제 일을 똑바로 안 하며 좋은 영약 처먹고 신교 초일류 마공까지 익힌 지금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설령 체력이 안 좋아졌대도 일을 열심히 해서는 아닐 것이다. 모두가 모르는 아방궁을 지어, 그곳에서 수많은 미녀와 뒹구느라 체력이 떨어졌다고 보는 게 훨씬 더 신빙성 있는 추론일 것이다.
“앞으로는 이렇게 내전의 간부들과 차 한 잔 마시는 시간도 늘릴 생각이네. 뭐, 회의랍시고 한 번씩 호출하기는 하지만, 직접 찾아와 조촐하게 얘기하는 시간도 있어야 신교 통치가 더 원활해지지 않겠나.”
“총군사님.”
“음?”
찻잔을 내려놓은 백소담이 담담히 물었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허성관은 대놓고 섭섭하다는 기색을 비쳤다.
“지금껏 다 말하지 않았는가? 달리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야. 백 원주는 본교의 살림을 쥐고 있는 사람 아닌가. 누구보다도 원주를 먼저 신경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네.”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내가 원주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모양이군.”
허성관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혹시 형법당주 건 때문에 그러시는가? 아직도 그 일을 잊지 못했다면 나도 참 할 말이 없네. 그리고 이 사람아, 그건 지금 생각해도 자네가 너무 나갔어.”
“제가 막 나간 것도 알고, 이미 끝난 일로 사람을 더 좋아하고 미워하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니겠습니까.”
백소담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저는 그저 총군사께서 왜 저를 찾아오셨는지, 그게 궁금할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했던 얘기 다시 들려줘야 하나?”
“왜 오셨습니까?”
가만히 백소담을 보던 허성관이 입맛을 다셨다.
“뭐, 그렇게까지 믿어 주지 않으니 나로서는 더 할 말이 없구먼.”
“…….”
“다만 오해하지는 말게. 그렇게까지 짓궂게 물어보니 목적에도 없는 얘기라도 꺼내 놔야 대화가 원활해질 것 같아, 내 굳이 하나 물어봄세.”
“그러시지요.”
“근래 군사부는 못된 쥐새끼 한 마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네.”
“…….”
“물론, 군사부의 일을 원주에게 말하는 것도 참 부끄러울 노릇이야. 쥐새끼 하나 못 잡아서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꼴, 좋은 모습은 아니니까.”
역시 이거였군.
백소담은 말없이 차로 목을 축였다.
허성관이 은근히 물었다.
“그 쥐새끼가 어찌나 재빠른지 군사부의 눈으로도 잘 보이지가 않더구먼. 한데 어느 순간 구마장이 되었다 해서, 내 크게 놀랐네.”
“…….”
“듣자 하니 환희원에도 두어 번 다녀갔다는데, 자네도 알고 있나?”
백소담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면 제가 환희원주인데 그것도 모르겠습니까.”
순간 허성관의 눈이 번뜩였다.
“어찌하여 말해 주지 않았나? 본부의 사정은 몰라도 그 녀석이 사고를 쳤다는 것 정도는 자네도 알고 있을 터인데.”
“총군사님.”
“자네만 한 사람이 사적 감정 때문에 그런 우를 범했을 리는 없고…… 혹여 상상하기 싫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먼.”
“총군사님.”
“말씀하시게.”
백소담은 담담한 얼굴로 칼을 날렸다.
“어찌하여 환희원의 일이 아닌 것을 갖고 와서, 그 일을 하지 않았냐고 타박하시는 겁니까?”
허성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은 묵과하기 힘든 발언이라네. 그는 명백히 죄인이었어. 교내에 죄인이 돌아다니는데 그걸 빤히 놔두는 사람이 어디 있나? 이것은 환희원의 업무를 떠나 마인으로서 당연한…….”
“저는 그가 죄인이 되었다는 공표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도 그랬다.
허성관은 이 사태가 군사부 안에서 조용히 해결되기를 바랐다. 하여, 서필을 파면한 후 그의 목을 잘라 휘하 군사들의 믿음을 끌어오려 하였다.
하지만 서필은 기가 막히게 도망쳤다. 심지어 군사부의 치부가 적힌 문서들까지 갖고서.
허성관은 그 사실을 다소 늦게 깨달았다. 나름의 일이 있어서였지만, 뼈아프다는 표현으로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서필을 죄인으로 공표할 수 없었다. 이유인즉, 휘하 군사 중 일부가 서필이 군사부의 기밀문서 몇 개를 훔쳐 달아났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이다. 군사들은 서필을 죽여 총군사의 마음이 단단한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가 무리해서 서필을 잡으려 들면 오히려 능력을 의심할 것이다.
즉, 그가 굳이 형법당 등을 끌어들일 필요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서필을 묻어 버리길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허성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위세를, 권력을 휘하 군사들에게 명확히 각인해 줄 필요가 있었다. 고작 그 쥐새끼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해 형법당을 끌어들인다면 총군사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그런 복잡하고도 단순한, 유치하면서도 그냥 넘기기 힘든 이유로 공식적으로 서필을 죄인으로 몰지 못한 것이다.
나아가 그를 죄인으로 몰게 되면 군사부가 뇌물을 받아먹었다는 사실 역시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군사부로선 서필을 조용히 처리할 이유가 명확했던 것이다.
‘물론 진짜 위험했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지 않았겠지.’
탈취한 기밀문서가 자신의 위치를 뿌리부터 뒤흔들 정도라면 허성관 역시 다급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서필이 훔쳐 간 기밀문서는 군사부와 총군사의 명성에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희미할 것이 분명한 정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서필이 대단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공식적으로 죄인이 되는지, 아닌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백소담 역시 서필이 건넨 기밀문서를 받지 않은 것이다. 괜히 얽히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그 정도로는 허성관의 옷깃을 더럽힐 순 있어도 불살라 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흐음.”
가늘어진 눈으로 백소담을 노려보던 허성관이 이내 양손을 들어 보였다.
“좋네. 내가 졌어. 모양새 좋게 가 보려 했더니만, 자네는 기어이 날 부끄럽게 하는군.”
백소담이 싸늘하게 웃었다.
그간 자신이 저지른 일 중 십분의 일만 사실이라도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부끄러운 짓을 해 놓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가 이따위 말을 하다니, 그 무시무시한 뻔뻔함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탁 터놓고 얘기하세. 자네, 그이를 얌전히 잡아다가 내 앞에 가져다 놓을 수 있겠는가?”
백소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 없군요.”
“나도 자네를 이해할 수 없네. 그 뻣뻣한 자존심, 조금만 내려놓으면 모두가 편해질 수 있는데 말이야.”
“총군사님께서 작정하고 움직이면 쥐새끼 한 마리 잡아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텐데요? 굳이 형법당을 움직이지 않아도, 총군사님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닙니까?”
허성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 사람아. 그게 가능했다면 굳이 날 도끼눈으로 보는 자네에게 찾아와서 앓는 소리를 했겠나? 물론 자네 미모 구경하는 맛은 좋네만.”
“총군사님께서도 불가능한 일을 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네가 그이보다 강하잖나. 무공도, 권력도.”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만.”
허성관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모르는 많은 일이 있어. 그것까지 다 터놓을 수는 없네. 이해하겠지?”
“밀마조만 운영해도 충분할 텐데요? 군사부의 ‘공식적’인 명령을 받들어 움직이는 조직이니까요.”
“밀마조는 현재 교를 나가 있네.”
백소담이 한숨을 쉬었다.
“친분 있는 장로님들도 많지 않습니까?”
“위험한 소리를 하는구먼. 그 늙은이들에게 부탁을 하라고? 공적인 부탁이든 사적인 부탁이든, 내가 그 늙은이들과 접촉하는 순간부터 정치가 되네.”
정확히는, 그가 고개를 한 번 숙이는 것 자체가 군사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백소담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도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알고 있네. 그리고 자네가 어지간해서는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것도.”
“그럼 어찌……?”
“하면 이건 어떤가.”
허성관이 웃으며 깍지를 꼈다.
“근래 자네가 아끼는 인재가 하나 있지?”
“……!”
“향후 삼 년 동안 그를 건드리지 않겠네. 어떤 식으로든.”
“…….”
“어떤가? 거래에 응하겠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