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82
외전 232화. 마경(魔經)과 마경(魔境) (7)
그날 저녁.
황무담이 적어 준 경전들을 다 읽고 정리한 이천상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역시 마경각의 경전은 마공의 성취를 올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아니, 큰 도움 정도가 아니었다.
천마신교의 경전들은 그 자체가 깨달음의 보고였다. 정통 마공을 익히는 자들이 무학의 이치만을 논하고 경전을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팔 하나로 권법의 최강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파순의 경전은 경전대로, 무학은 무학대로 궁구하고 익혀야 진정 마공의 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많다. 따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시간이 나면 또 와서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장소다. 이번에 얻은 지식을 마공에 접목하고도 걸리는 게 있다면 한 번 더, 아니 열 번 스무 번이라도 더 찾아와 경전을 읽을 것이다.
마경각에서 나가려던 이천상은 문득 주변이 어두워졌음을 깨달았다.
입구 쪽을 살피니 황무담이 아닌 다른 이가 한옆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이보시오.”
“헉! 아, 깜짝이야.”
사내가 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이제 나가십니까?”
“황무담이라는 사서가 올 시간 아니오?”
“아, 황무담 말씀입니까.”
사내가 투덜거렸다.
“그놈, 사서 관뒀답니다.”
고작 일곱 시진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사이에 사서직을 관둔 것이다.
자신이 한 말 때문인지, 다른 일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조언 때문이라면 추진력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만날 날이 있겠지.’
그 소년에게는 큰 도움을 받았다. 언제고 다시 만난다면 응당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마경각에서 나온 이천상은 자미루 거처로 들어왔다.
‘어디 갔나.’
서필이야 정보를 캐내기 위해 분주하다지만, 유상천도 자리에 없는 걸 보니 나름대로 수련 중인 모양이었다.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이천상은 마경각에서 얻은 지식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굳이 쓸 필요는 없었다. 다 기억하기도 하거니와, 경전마다 해석을 다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괜스레 적어 두면 시야가 닫힐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잠시 후.
‘역시.’
경전의 해석 중 열여덟 가지를 따와, 그가 아는 모든 마공에 접목해 본 이천상은 결론을 내렸다.
‘진마공이 중심이다.’
경전 해석을 생각하면 할수록, 마공들을 탐독하면 할수록.
이천상은 느꼈다. 진마공이 얼마나 대단한 마공인지.
수준 높은 마기를 생산한다고, 강력한 위력을 자아내는 구결이 있다고 더 대단한 게 아니다.
진마공이 진짜 대단한 건 완전하고 안전하며 파격적으로 타 신공을 마로 물들이는 전염성, 그리고 극한의 난이도를 지닌 무명무서의 외가무공들까지도 펼칠 수 있게 만드는 범용성에 있다. 고작 삼백육십 개의 구결로.
즉, 모든 것이 완벽하다. 마공의 출력이 아쉽다며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있지만, 본인의 깨달음만 출중하다면 마공 자체의 출력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하나 더.
‘진화가 가능하다.’
이 부분은 경전의 해석을 보며 깨달은 것이었다.
‘진마공 자체의 진화가 가능해. 전염과는 달라. 굳이 다른 무공에 덧씌우지 않아도 그 자체로 발전할 수 있다.’
무공 스스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주인의 깨달음에 따라 구결 변화 없이 마공 자체를 진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궁극의 무(武)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바로 이런 부분이 대단한 것이다. 파고 또 파도 진마공은 천마신교에서 가장 깊고 완벽한 무공이야.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으며 입문자에게는 입문자에게 맞는, 고수에게는 고수에게 맞는 길을 제시해 준다.’
크게 놀라면서도, 이천상은 한 가지 오류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지나치지 않았다.
진마공을 이렇게까지 해석하고 위대하게 보는 것 또한 자신의 깨달음일 뿐이었다.
동일한 재능의 소유자라도 진마공을 가벼이 여길 수 있다. 깨달음이 다르면 바라보는 시각도, 해석도 다른 법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걸 떠나 진마공이 그 어떤 마공보다 완성도가 높다는 것, 그리고 강력한 전염 능력을 지녔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것만으로도 위대하다는 말을 들어도 손색없었다.
‘경전 중 실사(實史) 편에 적혀 있기로, 초대천마는 진마공으로 교도들을 가르쳤고 이후 기본공으로서 뿌리를 내리게 하였다.’
진정 실제 역사인지는 교차 검증을 해 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진마공은 거의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을 신교의 기본 토대로서 존재했다는 뜻이다.
삼백육십 자 구결의 기본 마공이 일체의 변화도 없이 천 년 동안 살아남았다? 믿기 어려운 일이다. 고작 십 년 사이에도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무공이다.
즉, 진마공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완벽했다는 의미다.
‘사실이라면 초대천마 역시 진마공의 위대함을 알고 있다는 뜻. 하지만 그처럼 위대한 무공을 기본공이 아닌 비기로 삼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의문이 듦과 동시에 답이 나왔다.
‘마공에 입문하기에 마환공과 진마공만 한 무공은 없다. 하지만 진마공은 제대로 파헤쳐 보지 않은 이상 그 대단함을 알기 힘들어. 오히려 비기랍시고 떠받들다가 유실되면 복원조차 힘들 것이다. 반면 기본공으로 널리 퍼트린다면, 신교가 무너져도 복원이 어렵지 않다.’
교묘한 선택이었다.
이천상은 경전 내용을 떠올려 보았다.
– 마(魔)의 본질은 욕망이며, 욕망은 선악을 아래로 둘 만큼 고차원적인 영역에 거한다. 욕망은 근본이고 근본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동시에 마는 확장이다. 한 번이라도 마에 닿은 자, 그 누구도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며 파순 그 자체로 가는 길이다. 마인(魔人)이란 곧 인간으로서 신(神)의 영역을 넘본다는 뜻과 같다.
‘초대천마가 직접 남긴 글이라고 했지.’
이 구절이 초대가 진마공의 위대함을 깨달은 구절이라고 하면, 그가 진마공을 기본공으로 지정한 이유 또한 알 수 있다.
마의 본질을 깨우치는 공부로 교도들을 인간답게 만들고자 하려는 의도다. 나아가 진마공은 세상 어떤 마공보다도 안정적이기 때문에 작은 그릇에 담겨도 필요 이상의 욕망에 잠식당해 광인(狂人)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환공도 마찬가지였다. 진마공보다 유연하지 못한 대신 출력 부분에서 강점이 있는 마환공 역시 안정적인 마기로 인간의 중단전을 자극, 적당한 욕망을 끌어내 진취적인 성향으로 바꾸는 데에 일조한다.
초대천마가 보기에 진마공이야말로 마인(魔人)을 만들기에 가장 뛰어난 공부이며 마인은 곧 인간의 육신으로 파순의 경지를 넘보는 것을 이른다.
즉 진마공을 익히는 자 모두에게 천마(天魔)의 길이 열려 있다.
‘천마.’
진마공(眞魔功).
진짜 마(魔)의 공부라는 담백하기 그지없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뜻에 진마공의 모든 의미가 다 들어 있다.
이천상의 눈이 번쩍였다.
화아아악!
머리 어딘가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뜨거운 열기를 단숨에 식혀 주는, 어딘가 무디고 딱딱했던 부분을 단박에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또 한 번의 깨달음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절정의 길, 그 거대한 사막에서 이천상은 어느새 수백 걸음 전진했음을 깨달았다.
여전히 갈 길은 멀었지만, 경전 없이 궁구했다면 얼마나 걸릴지 몰랐던 길을 하루아침에 주파했다.
푸스스스.
이천상의 몸 곳곳에 남았던 미세한 탁기가 체외로 방출되었다.
한 번의 깨달음으로 손끝, 터럭 하나까지 진마기가 들어찼다가 다시 단전으로 돌아왔다. 그 잠깐 새에 쌓인 탁기마저 불사르니 이틀 밤을 새운 피로는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우우우웅!!
진마기가 나직이 울음을 토했다.
상중하, 모든 단전에 진마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몸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살점 하나하나까지 몽땅 마기로 가득 찬 듯했다.
그간 느껴 본 적 없는 충만함.
이 순간 이천상은 깨달았다. 자신이 진정한 초절정을 향한 여로에 올랐다는 걸.
채우기 위해 비어 있던 육신이 유연하고 평온한 마기로 꽉 찼다. 폭발적인 힘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차분한 자신감이 치솟았다.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이천상은 자신의 두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금강야차마공, 혈화마공, 포천금마공의 마기를 끌어 올렸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고요하고 또 고요했다. 이런 마기로 제대로 된 위력의 무공을 구사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천상은 알 수 있었다. 이 부드럽고 대책 없이 자유로운 힘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강철의 성문도 뚫어 버릴 만큼 튼튼해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올랐다.’
이천상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별로 안 지난 것 같은데, 어느새 또 새벽 아침이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어떤 권력자들과의 싸움에서도 최소한 목숨 부지는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 다소 과격하게 움직여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이천상은 문득 익숙한 기감을 느꼈다.
‘서필.’
백소담의 기척을 느꼈을 때보다 감지 범위가 증가했다.
몸 자체가 마공화(魔功化)된 듯한 기분이었다. 무(武)와 신(身)의 완벽한 합일이었다.
스륵.
창틀에 발을 딛고 몸을 날리자 어느새 후원 중앙이었다.
잠시 후.
“주군, 계십니까?”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고 서필이 들어왔다.
그간 정신없이 움직였는지 상당히 험한 모습이었다. 심력 소모도 상당했는지 두 눈이 살짝 충혈되어 있었다.
“주군을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마경각에서 큰 성취를 이루신 모양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서필은 한눈에 이천상의 변화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진마기 자체가 워낙 자유로운 기운이라, 비슷한 경지의 고수라도 수준을 읽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 자체는 분명했고 서필은 주군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확신했다.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나보다는 서 군사가 고생했겠소.”
“그저 명령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해서, 결과는?”
고개를 든 서필의 얼굴은 묘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서필이 성공했다는 걸, 하지만 그 내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추측이 맞았습니다. 백 원주님은 총군사 허성관과 갈등이 생겼고 그로 인해 환희원 내의 모든 업무를 소원주에게 돌린 것입니다.”
“군사부의 인맥을 동원해 알아냈소?”
“그렇습니다.”
“하면, 총군사 역시 그 사실을 알았겠군.”
“이 시점에 후계자에게 일시적으로 업무를 맡겨 본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겁니다. 허성관은 능력이 좋은 자입니다. 필시 백 원주가 승부수를 던질 거라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
“총군사는 무엇을 빌미로 백 원주를 압박하였소.”
“그 또한 예상대로였습니다. 그는 주군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가로 백 원주에게 저를 잡아 오라 시켰습니다.”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역시.”
백소담은 말했다. 서필을 믿냐고.
이천상은 대답했다. 서필의 능력은 믿는다고. 그의 진심을 믿었다고.
그 말을 들은 백소담은 서필을 잡아갈 생각 자체를 접은 것이 분명했다.
“환희원 쪽 상황은?”
“조용합니다.”
“위험하군.”
“예. 조용해서 위험하지요.”
이천상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서 군사.”
“말씀하십시오, 주군.”
“광혈신마 백헌에게 기별을 넣으시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