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93
외전 243화. 내전(內殿), 내전(內戰) (3)
초절정고수라도 큰 기술을 쓴 직후에는 동작이 느려지기 마련이다.
그건 이천상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는 이 영역에 오른 후, 아직 진득하게 수련하지 못했다. 넘치는 힘을 잘 갈무리했지만, 이 힘으로 어디까지 가능한지 그 한계를 짚어 내지 못했단 말이다.
내 한계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실제로 휘하 야차들을 가르쳤을 때,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만큼 숨 쉴 틈 없이 바빴다는 뜻이었지만, 실전에서는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는 법.
이천상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쩌저저저저정!
열 명의 고수들이 내리친 도검이 이천상의 몸을 때리지도 못하고 튕겨 나왔다.
복면을 쓴 그들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진 순간.
마황갑(魔皇鉀)으로 생존을 도모한 이천상이 곧장 압경장을 펼쳤다.
퍼버벅!
일장(一掌)에 셋의 상체가 담벼락을 뚫으며 처박혔다.
무시무시한 압력이었다. 그 장법을 구사한 이천상조차도 놀랄 만큼 굉장한 무게감이었다.
그러나 놀라움은 잠깐이었다. 예상보다 더 큰 이득을 얻었을 뿐, 적은 아직 일곱이나 있었다.
번쩍! 번쩍!
일곱 복면인이 이천상을 향해 도검을 휘둘렀지만, 그는 신들린 몸놀림으로 그 모든 칼질을 피해 내며 그들을 지나쳤다.
푸화아악!
핏물 터지는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회피와 동시에 반격이었다. 두 명의 복면인이 배가 갈라진 채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피핑! 퍽!
누군가가 지풍을 날렸다.
이천상은 막지 않고 회피했다. 필요 이상의 소음을 일으킬 생각도 없었거니와, 아주 약간의 충격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열 명이나 되는 절정고수를 죽인 값으로 마황갑을 쓸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아무 외상도 입지 않았지만, 내부가 진탕되는 느낌에 순간적으로 토기가 치밀었다.
질적으로는 부족할지언정 열 명의 절정고수가 자아낸 충격파의 내공은 그 양만 초절정고수 대여섯 명에 육박한다. 내공의 질까지 계산하면 초절정고수 두셋이 작정하고 내친 일격을 받아 낸 것과 같았다.
그러고도 속이 울렁거리는 정도에서 끝난 거라면, 마황갑의 내공 방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만약 그에 걸맞은 내공심법까지 익힌다면, 자신보다 몇 수 위의 고수가 구사하는 공격도 충분히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푹! 푹!
최소의 내공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린다.
칠보군림으로 이동해 순식간에 둘의 심장에 칼을 박은 이천상이 사선으로 상반신을 눕혔다.
번쩍!
검이 그리는 궤적이 독특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격식이 있는 검법이었다. 암살자처럼 조용히 이동하며 구사할 만한 무공이 아니었다.
상대 역시 내전 어딘가에 속해 있는 조직원이란 뜻이었다.
이천상의 손목이 금강마권의 발경술에 따라 움직였다.
퍼버버벅!
금강마도 작렬. 회전하는 도격 안에 있던 남은 복면인들의 팔다리가 무처럼 썰려 나갔다.
다른 사람처럼 일격에 목숨이 날아갈 치명상은 아니되, 사지가 절단되었으니 곧 죽을 목숨이기도 하다. 한데도 비명은커녕 신음 하나 흘리지 않는다.
철저하게 단련된 이들이었다. 신교육대 수준의 훈련을 받은 이들이 분명했다.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쉰 이천상이 진마공을 끌어 올렸다. 내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기습이 통했다고는 해도, 무려 스무 명의 절정고수를 해치웠다. 그러고도 내상은커녕 외상조차 입지 않았다는 건 대단하다는 말로도 모자라다.
‘무명무공 덕분이다.’
초반 기습에 혈풍오식을 이용, 절반을 날려 버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쉬운 승부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우웅.
진마기가 나직이 울부짖었다.
‘오는군.’
이름 모를 초절정고수가 담벼락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습이 통할 만한 강자가 아니다. 아직 한계를 모르지만, 결코 쉽게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은 자였다.
“놀랍군.”
목소리가 낮고 둔중했다.
달빛을 등진 그의 얼굴이 흐릿했다. 번뜩이는 두 눈만이 확실히 보였는데, 검은 동공과 흰자위 색이 역전된 섬뜩한 안광이었다.
“환희원주…… 만만치 않은 사람이지. 나름대로 수를 썼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하니 너만 한 고수를 불러들였을 줄이야.”
대단한 착각이었다.
이천상과 서필은 사태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예측했다. 그래서 이천상이 이곳에 온 것이며, 서필은 내전 돌아가는 상황을 전부 알아낸 후 합류 지점으로 올 것이다.
‘옮겨 놨군.’
서필은 백소담이 절대 자신의 후계자를 환희원에 묶어 두지 않았을 거라 자신했다.
그것은 당연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군사와 싸우러 가는 길이다. 백소담 자신이 죽는 거야 상관없지만, 자식처럼 키운 여소홍을 내버려둘 정도로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실제로 여소홍은 이곳에 없었다.
이천상이 놀란 것은, 그 외에 환희원에 상주하는 여러 고수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록 전투 조직은 아니라지만, 신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조직이라 신교육대 이상의 전력이 상주하는 곳이 환희원이었다.
그들 대다수가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불과 몇 명만이 자리를 지키며 지금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비밀 통로라도 만들었나.’
싱거운 생각이지만 정확한 안목이었다. 백소담이라면 분명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환희원에 비밀 통로 한두 개쯤 만들어 놨을 것이다.
어디 환희원만 그러할까. 군사부도, 장로들의 거처에도 그런 곳이 많으리라.
“그건 그렇고, 참 대단한 실력일세그려. 어중이떠중이도 아닌데 순식간에 스무 명이나 없애 버리다니, 정말 대단해. 기습이라도 단시간에 놈들을 제거하긴 힘든데 말이지.”
목소리에서 여유가 묻어난다.
이천상은 확신했다. 이놈은 앞서 담을 넘은 스무 명과 같은 소속이 아니다.
말하자면 일시적으로 손을 잡은 놈이었다. 그래서 저렇게 여유로울 수가 있으며, 싸움이 벌어질 때 참전하지 않은 것이다.
“뭐, 샅샅이 수색한다면야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겠지만…… 환희원주 그 여우 같은 년이 제 새끼 대충 숨겼을 리도 없고, 발품 좀 팔아야겠지.”
“…….”
“이 야밤에 그러긴 싫은데.”
혼잣말인 양 중얼대고 있지만 이천상의 귀에는 다 들리는 목소리였다. 실제로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여유롭군.’
강자다.
아무리 본인과 상관없는 고수라도 일시적으로 한 조가 되어 움직였다면, 그리고 그런 고수들이 눈 깜짝할 새에 죽었다면 조금이라도 당황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는, 그만한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림자 속에 숨어 있을 건가? 이만 나오지, 서로 물러날 것 같지도 않은데.”
어차피 싸워야 할 운명이라면 낯짝이라도 보자.
다분히 의도된 언행이다. 그 정도 고수가 그림자 속에 숨었다고 이천상의 얼굴을 못 볼 리가 없었다.
너무나도 부드럽게 주도권을 가져가려 한다. 싸움에 능한 자였다.
이천상은 천천히 그림자를 벗어났다.
“오? 잘생겼구만? 좀 딱딱해 뵈는 게 흠이지만, 그간 소저들 여럿 홀렸겠어.”
“…….”
“그래, 말수도 적고 차분해 뵈는군. 그래서 더 매력을 느끼겠지. 여자들 다 거기서 거기더라고. 몇 명이나 사귀어 봤나?”
“…….”
“알겠네. 농담은 이쯤 하지.”
껄껄껄 웃음을 터트리지만, 이천상은 볼 수 있었다. 상대의 차가운 눈동자가 줄곧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훑고 있음을.
쉽게 방심하지 않는 자였다. 설령 이천상의 실력이 이보다 낮았어도 얕보지 않았을 것이다.
“자네 실력이라면 내 뒤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놈 하나 있는 것도 알지?”
둘이다. 일부러 하나라고 속이는 것, 마인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화법이었다.
이천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웃으며 그를 내려다보던 사내, 모경(毛硬)의 얼굴이 점점 무표정하게 바뀌었다.
“이거, 오늘 쉽지 않겠는데.”
“…….”
“달 좋은 밤에 여기저기서 난리들이 났군.”
그 말 그대로였다.
환희원은 물론 내전 조직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발생하고 있었다. 게다가 형법당주의 집무실은 불탔고 고수 당원 이십여 명이 토막 난 채로 죽어 나갔다.
군사부의 수장과 환희원의 수장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판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이, 각 조직의 권력자들이 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백소담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허성관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있고, 나아가 그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이곳저곳 찔러보는 자들도 있다.
관계자들 간의 숨죽인 악다구니가 내전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아우성으로 변할 때가 머지않았다.
“묻겠다.”
모경의 눈이 깊어졌다.
“이름이 무엇이냐?”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이번에도 이천상은 말이 없었다. 그저 칠야도를 까딱거릴 뿐이었다.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강렬한 도발이었다. 너 따위와는 굳이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의도가 진하게 배인 행동이었다.
모경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미있군.”
스륵.
한 발 떼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땅에 도달했다.
경신술의 조예가 대단했다. 천근추를 발휘해 엄청난 속도로 내려왔음에도 정작 바닥에 발을 디딜 땐 깃털처럼 가볍다.
순간적인 내공 조절 능력이 대단했다. 지금의 이천상보다 내공 운용의 섬세함은 더 뛰어난 것이 분명했다.
“나는 모경이라 한다.”
너무나도 순순히 본인의 이름을 밝힌다.
당연히 이천상은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모경. 칠십이마장 서열 팔 위.’
일흔두 명의 마장 중 십 위권 안에 들어가는 엄청난 강자가 출현했다.
팔마장(八魔將) 모경. 별호는 냉심참요(冷心斬腰)다. 필살의 의지를 불태워도 될 만한 상대라면 반드시 허리를 두 동강 내기에 붙은 피비린내 가득한 별호였다.
오히려 알아채지 못할까 싶기라도 했는지, 모경이 대놓고 물었다.
“어떠하냐? 네놈은 내가 허리를 반듯하게 잘라 줘도 될 만한 실력을 갖고 있느냐?”
“…….”
“그놈 참, 정말 어지간히 낭만 없는 놈이로군.”
스르릉.
엉덩이 위에 걸쳐진 칼을 뽑는 동작이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섬뜩했다.
그의 손에 들린 칼은 도신이 얇은 면도(緬刀)였다. 누르면 누르는 대로 휘어질 만큼 부드러워 다루기가 극히 어렵다는 기병(奇兵)이었다.
그런 종류의 병기가 으레 그렇듯, 제대로 다루기만 한다면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롭기도 했다.
저 부드럽고 얇은 칼로 고수들의 허리를 동강 내고 다녔으니,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저 뒤에서 숨어 보는 놈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말이야. 우리 중 누군가가 죽으면 그제야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너무 나만 떠들었지? 그럼 슬슬…….”
그 순간, 벼락처럼 솟구친 시뻘건 돌풍이 칠야도의 움직임을 따라 모경의 중단으로 뻗어 나갔다.
“실전의 묘미를 아는 놈이로고!”
콰릉!
절묘한 회피로 혈풍오식을 흘려보낸 모경이 벼락처럼 면도를 휘둘렀다.
빠르고 예리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쾌도술(快刀術)이었다.
칠야도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쩌저저정!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두 고수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