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94
외전 244화. 내전(內殿), 내전(內戰) (4)
치리리링!
칼과 칼이 얽히며 서로의 생명선을 노렸다.
치링! 쩌엉!
칠야도는 빠르고 단호했다. 반면 면도는 자유분방하고 변칙적이었다.
그것이 두 사람이 지닌 무공의 핵심이었다. 이천상이 전력을 내면 한없이 빠르고 막강한 도격을 쏟아 낼 것이고, 모경이 전력을 내면 어디서 공격이 들어올지 모를 만큼 변칙적인 환도(幻刀)를 펼칠 것이다.
두 사람의 무공은 그야말로 뿌리부터 달랐다. 그래서였을까? 오히려 이천상은 상대의 무공이 자신보다 한 수 위임을 깨달았음에도 승부를 마냥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시작부터 지금 이 수준까지, 무도(武道) 위를 걸어온 방식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쩌어어어엉!
물론 쉽지는 않았다.
내공 운용의 섬세함도 그렇지만, 특히 다채로운 병기술에 있어서는 모경이 이천상을 압도했다. 그는 변칙적인 기술만이 아니라 이천상의 강격에도 버티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피슉! 치리리리링!!
이천상의 가슴에 한 줄기 도상이 새겨졌다.
별것 아닌 상처다. 침투하는 마기도 없었다.
하지만 이 하나의 상처가 곧 두 사람의 수준 차이를 증명했다. 더 강한 힘을 쏟아 내는 이천상의 공격에도 모경은 멀쩡했지만, 한결 부드럽고 힘을 뺀 공수 전환만으로 모경은 이천상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할 만했다. 박빙의 승부지만, 때에 따라서는 절대 좁혀지지 않는 차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물며 두 사람 모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경지에 발을 디뎠기에, 그 미세한 차이가 곧 절대적인 차이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훅!
이천상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북천마혜보였다. 서늘한 달빛 아래, 시커먼 어둠을 들고 이동하는 이천상의 움직임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좋구나!”
번쩍!
병기술과 달리 경신술에 있어선 직선적인 움직임을 자랑하는 모경이었다.
단숨에 이천상을 따라잡은 그가 수직으로 면도를 휘둘렀다.
파바바바박!
이천상의 눈에 벼락이 쳤다.
달빛을 에워싸며 쏟아지는 수십 개의 칼날은 산란하는 유리 조각과 같았다. 하나하나의 위력이 내공 방패를 비집고 들어와 뼈까지 절단할 수 있을 것 같은, 실로 예리한 도법이었다.
‘피할 수 없다.’
곧장 판단을 내린 이천상이 또 한 번 마혜보를 밟아 가며 금강마도를 펼쳤다.
쩌저저저저저저정!!
그야말로 돌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회피와 함께 피격 범위 안으로 들어오는 도격을 모조리 막았지만, 그 충격은 어깨까지 치고 들어올 만큼 강했다.
일타, 일타의 위력은 이천상이 위였다. 쌓아온 무리(武理) 자체가 물러섬이 없는 강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경의 연환도(連環刀)는 그 일격의 위력 차이를 무(無)로 돌릴 만큼 빠르고 날카로웠다. 일격에 못 죽이면 이격이, 이격으로 처리하지 못하면 곧장 삼격이 날아오는 기묘한 쾌도술이었다.
쩌저저정! 퍼어어엉!
회전하며 뻗는 금강마권의 발경이 모경의 몸을 뒤로 튕겨 냈다.
‘이놈 봐라?!’
모경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거기서 주먹을 뻗어?’
빈틈 같지도 않은 빈틈을 억지로 쑤셔서 물러나게 한 것도 대단했지만, 사방이 도영(刀影)으로 가득한데도 거침없이 공격했다는 게 더 대단했다.
조금만 비틀렸어도 팔뚝이 걸레짝이 되었을 것이다. 그걸 무시하고 이토록 확신에 차 주먹을 뻗었다는 건, 오감은 물론 기감까지 극도로 예민하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생각한 그대로 몸이 움직여 준다는 뜻이었다. 이 영역에서, 이 속도에서.
감각, 판단력, 육체 모든 부분이 제대로 단련되었다. 이보다 더 강한 사람은 많아도, 이렇게 전투에 특화된 무사는 많지 않다.
모경은 오랜만에 흥분했다.
‘심장이 뜨거워지는군.’
하지만 그 역시 백전의 고수였다. 몸은 달아올랐지만, 이성은 여전히 냉정을 유지했다.
모경은 아직 이천상이 절기를 끌어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십여 명의 절정고수를 일격으로 분해해 버린 그 말도 안 되는 무공이, 첫 수로 자신을 향했을 때는 삼 할 정도의 위력으로 줄어들었다.
기습의 묘는 살렸으되 상대가 죽지 않을 거라고 판단해서 위력을 줄인 것이다. 즉, 기습 행위 자체가 응수타진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 들 것이다.’
벌써 세 번이나 베였음에도 침착하게 승부를 이어 가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일격필살. 단 한 방에 끝내 버리는 것.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다. 그걸 아니까 저렇게 인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훅!
모경의 신형이 이천상의 반 장 거리 안쪽으로 들어왔다.
‘틈을 주지 않는 맹공으로 힘을 줄이는 것이다.’
쩌저저저저저정!!
면도에 불이 붙었다.
이천상의 몸에 점점 상처가 늘어났다. 치명적인 상처는 하나도 없지만, 잔 상처라도 칼에 베인 상처다. 날카로운 고통은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어 점점 초조함을 유발할 것이다.
대저 쾌도술(快刀術)이란 일선(一線)의 폭발로 단번에 상대의 명을 끊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순한 동작을 가장 빠르게, 정확한 순간에 펼쳐 일격필살의 묘리를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모경의 쾌도술은 달랐다. 그의 칼은 분명 빨랐지만, 더 현란하고 자유분방한 도격을 쏟아 내기 위해 존재할 뿐이었다.
쾌도술에도 정도(正道)라는 것이 있다면, 모경은 정도를 버리고 좌도의 술수로 제 무공의 특성을 살린 것이다.
그것은 결코 나쁘다고 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파격이 모경의 깨달음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우직하게 정도에 정진하지 않아도 발전 방법은 존재하는 법, 산에 길이 많은 것처럼 무도(武道)에도 길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쩌저저저정! 훅!
희대의 절기 환월도법(幻月刀法)의 맹공을 거의 다 튕겨 내면서도 한 번씩 위협적인 반격이 들어오는 상대의 무공은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벌써 일곱 군데의 절상을 입었다. 깊지는 않아도 충분히 신경을 흐트러트릴 만한 상처였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출혈도 심해질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 잔잔한 호수를 연상케 하는 마기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듯했다.
고요하고 고요하여 파문 하나 없는 시커먼 호수.
‘이거 점점 좋은데.’
사지가 날아가도 저 눈빛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모경의 칼에 탄력이 붙었다.
파바바바바박!
안 그래도 많은 칼날이 더 많아졌다.
최대한 힘을 뺀 채 속도를 올리려면 탈력(脫力)이 필수다. 그러고도 이 넓은 범위를 아우르기는 힘들 터, 심지어 모경은 쉴 새 없이 연환도를 구사하고 있었다.
변화무쌍한 환월도법을 지탱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그 지구력에 있었다. 모경은 무려 한 시진이 넘도록 환월도법을 연달아 구사한 후, 그 무공을 완성할 수 있었다.
미묘한 호흡 조절, 극한의 탈력으로 뻗어 나가는 칼의 감옥.
‘힘들군.’
이천상은 상대의 무공에 빈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겉으로는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것 같지만, 한 번 한 번의 칼질이 상대의 회피와 반격을 막아 내는 투로로 이어진다.
이건 단순히 무공만 대단한 게 아니었다. 숱한 실전과 타고난 감각 없이는 절대 이런 무공을 구사할 수 없을 것이다.
‘힘들지만, 괜찮아.’
쩌저저정! 티잉!
모경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칼의 폭우가 처음으로 멈추었다. 칠야도의 짧은 횡격에 단단하게 고정되었던 면도의 칼날이 휘청거린 것이다.
물론 그 틈은 아주 짧았고, 이천상은 틈을 노릴 수가 없었다. 그 즉시 모경이 우측으로 반보 이동하며 또 다른 환월도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이천상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모경 역시 흔들리지 않는다. 성격이 어떻든 그가 쌓아 온 무공은 진짜였다. 어설픈 자만심으로 승부의 추를 기울게 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슉! 쩌어어어엉!
하지만 모경은 점점 답답함을 느꼈다.
‘저놈이?!’
쩌저저저저정! 티링! 서걱!
칼의 폭우를 비집고 들어온 칠야도의 칼날에 모경의 어깨가 붉게 물들었다.
순간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날카로운 통증이었다. 뼈까지 이르진 않았지만, 가히 제대로 찌르고 들어왔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근육 절단으로 움직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떻게!’
파바박!
좌우로 연달아 움직이며 환월도법의 투로를 어지럽힌 그의 칼이 다시 수많은 초승달을 그렸다.
그때, 모경의 귀에 이천상의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해지는군.”
모경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놈!”
쩌저저저저정!
쏟아지는 칼날에 이천상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어디서 감히 개수작을!”
훅!
한층 더 깊게 가라앉는 모경의 마기는 빠르고 폭발적인 연환도를 펼치는 데에 확실한 안정감을 선사했다.
자만은 없지만 분노는 있다. 상대의 중얼거림이 들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화가 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한 환월도법이, 고작 익숙해졌다는 이유 하나로 파훼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쩌저저정! 콰아앙!
“큭!”
무지막지한 일도(一刀)에 모경이 처음으로 다섯 걸음을 물러났다.
빠르고 부드럽게 막아 가다가 결정적인 순간 힘과 속도를 살린 일격을 구사한다. 한데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탈력이라…….”
이천상이 손목을 천천히 돌렸다. 칠야도 역시 손목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돌아갔다.
“괜찮은 수법이군. 덕분에 좋은 걸 배웠어.”
“……뭐라고?”
말인즉, 자신과 싸우며 환월도법의 무리(武理)를 즉석에서 훔쳐 냈다는 소리다.
모경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미친 새끼가 뭐라고 하는 거야!”
파아앙!
그 짧은 거리를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다가, 일순간 그림자 하나만 남겨 두고 측방으로 물러난다.
전신 근육이 엄청난 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근육을 갖고 있어야 환월도법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번쩍!
면도가 무시무시한 섬광을 뿜으며 휘둘러졌다. 지금까지 보여 주던 도초보다 더 빠르고 날카로운, 오직 단 한 번의 일격이었다.
지금껏 숱한 경쟁자의 허리를 토막 냈던 환월도법의 극도일섬(極刀一閃)이었다. 변화의 궁극은 무변(無變)인 법, 그의 최고 절기는 곧 무변의 일 초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모경은 볼 수 있었다. 상대가 들고 있던 시커먼 칼날에서 소름 끼치는 뇌광(雷光)이 번뜩이는 걸.
동시에 깨달았다.
상대가 원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음을.
한순간의 빈틈을 노리려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최고 절기가 날아오는 그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는 걸.
번쩍!!
하늘에서 내려온 번개가 땅을 치고 원형의 횡참으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반경 삼 장 안의 모든 것을 베고 지나가는 단 하나의 칼날.
무명무공의 도법이자, 단 일 초로 구성되어 있는 궁극의 반격 쾌도술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고 사라졌다.
치리링.
반듯하게 잘려 나간 면도가 저 멀리 십여 장 밖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모경이 날 선 눈으로 이천상을 노려보았다.
“무슨 무공이지?”
이천상은 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담벼락 너머, 숨어서 이곳을 주시하는 또 다른 고수들을 주의할 뿐이었다.
설령 말해 준다 한들 제대로 된 이름도 아니었다. 구결의 글자를 따와 뇌도일식(雷刀一息)이라 불렀지만, 이 무공의 진짜 이름은 아니었다.
모경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퍽! 퍼버버벅!
역류하는 마기가 폭발하며 그의 눈과 코, 귀와 입으로 시뻘겋게 쏟아졌다.
“이것만큼은 답해 다오.”
이천상이 모경을 힐끔거렸다.
모경의 눈이 회색빛으로 변했다.
“내 무공은…… 어땠나?”
“배울 가치가 있었다.”
모경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이런 곳에서, 너 같은 목석 놈에게 죽을 줄이야…….”
툭.
그전, 그의 칼에 죽은 무수히 많은 고수와 같이.
뇌도일식의 무자비한 참격에 팔과 허리가 통째로 갈라져 죽은 모경의 시체는 놀라운 무공의 소유자답지 않게 비참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파바박!
은신하고 있던 두 명의 고수가 어둠을 뚫고 날아왔다.
이천상의 자세가 낮아졌다.
“동료라는 개념이 없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