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96
외전 246화. 내전(內殿), 내전(內戰) (6)
“이상하군.”
벽력수(霹靂手)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외전의 구석진 숲이었다. 내전도 엄청나지만, 그보다 몇 배는 더 넓은 외전의 크기를 생각하면 이런 숲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경치가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어두침침하지도 않은, 정말 흔하디흔한 곳인지라 오히려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무언가를 숨겨 놓기에 썩 좋은 장소라 할 수 있었다.
“여기 맞나?”
수하 하나가 지도를 펴고 재차 확인했다.
“그렇습니다. 분명 이곳입니다.”
벽력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모르니 일대를 수색해 봐라. 조금이라도 수상한 게 있으면 즉각 보고토록 해.”
“예!”
벽력수가 이끌고 온 삼십여 명의 마인들은 교주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총군사 허성관의 수하들이었다.
허성관에게는 그렇게 비밀리 운용하는 고수들이 많았다. 숫자만 해도 어지간한 전투 부대 서너 개를 합쳐 놓은 정도였고, 그중 초절정에 이른 고수들도 두 자릿수나 될 만큼 많았다.
비밀리 휘하에 둔 전력만 해도 어지간한 대문파 하나를 섬멸할 정도.
그들이야말로 허성관의 진정한 힘이라 할 수 있었다. 총군사라는 위치도 위치지만, 권력자들이 그를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물론 허성관은 그들을 철저하게 숨겨 두었기에 정적(政敵)들도 그 전력의 크기를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허성관을 건드릴 수 없었다. 적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판국에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반대로 내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중 벽력수는 허성관이 숨긴 칼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검으로, 은퇴한 전대 고수 중 하나였다.
“선배님.”
휘하 마인이 조심스레 말했다.
“아직 수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수색을 계속할까요?”
“…….”
벽력수는 고심했다.
솔직히 그는 이번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후배도 한참 후배인 허성관 밑에서 풀이나 뜯어 먹고 있었던 이유는, 강제로 은퇴한 자신이 다시 날아오를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만 그런 게 아니었다. 허성관 휘하 주축 고수 중 대부분이 은퇴‘당한’ 전대의 인물들이었다.
당연하게도, 권력 욕심 이전에 그들 모두 피에 목말라 있었다. 다시 현역으로 활동하게 되는 그날, 마왕을 제외한 모두를 발아래 두리란 일념으로 오랜 시간 수련을 거듭했던 그들의 욕망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한데 떨어진 명령이 기껏 보물을 수색하여 찾아오는 것이었다. 벽력수로서도 불만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냥 확 접어 버려?’
애초에 올바른 정보를 준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에 더더욱 열이 뻗쳤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서는 안 될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돌아다니는 놈들 모가지를 하나하나 뽑아 피 맛을 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모습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벽력수는 들끓는 욕망을 꾹 누르며 지시했다.
“더 넓게 수색해라. 이곳 숲 일대를 전부 뒤져 봐. 그러고도 뭐가 없으면, 그때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혹시 자네, 왈왈 잘 짖나?”
순간 벽력수는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본능적으로 장력을 뿌렸다.
푸스스.
놀랍게도 그의 장력은 허공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폭음도, 충격파도 없었다. 말 그대로 증발했다.
벽력수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나타난 것도 대단했지만, 백팔마도학(百八魔道學)으로 손꼽히는 뇌정팔수(雷霆八手)의 장력이 순식간에 사라지다니?
“실력이 아주 괜찮은데? 이 정도 실력이라면 자존심도 대단할 거야. 한데도 총군사 밑에서 꼬리나 흔들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구먼.”
기묘한 목소리였다.
가래 끓는 소리 같기도 하고, 쇠를 긁는 소리 같기도 했다. 뭐가 됐든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벽력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장력을 뿌린 거목 위, 굵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한 노인이 보였다.
‘……!!’
벽력수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다소 마른 체격에 팔다리가 길쭉한 노인이었다. 얼굴은 누가 봐도 긴장할 만큼 날카로운 인상이었으며, 유독 하얀 손과 뾰족하고 날 선 시커먼 손톱이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설마?!’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공을 익히지 않은 게 아니라, 마공의 깊이가 너무 대단해서 자신의 감각으로도 잘 읽히지 않는 것이었다.
“……흑수대마(黑手大魔)?!”
“끝에 님 자를 붙여야지. 안 그런가?”
클클클 기묘한 웃음을 흘리는 것이, 지금 상황을 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벽력수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왜 당신이 여기에?”
“이유를 묻는 것이냐?”
번열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유가 궁금했다면 장력은 날리지 말았어야지.”
“…….”
“뭐, 이해하네. 나도 손버릇 안 좋기로는 누구 못지않거든.”
사사삭.
수색에 나갔던 마인들이 벽력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번열의 입꼬리가 심술궂게 올라갔다.
“충성심이 좋구먼. 보통 뒤꽁무니에 숨겨 둔 놈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적인데, 어째 너희는 그럴듯해 보이는구나.”
벽력수는 직감했다. 번열이 자신들을 다 죽이리라는 걸.
그가 애써 담담하게 물었다.
“서로 그냥 지나칠 수는 없겠소?”
자존심 강하기로는 누구 못지않은 그였지만, 십대마왕 앞에서 고개 빳빳이 들 정도의 자존심은 아니었다. 애초에 마왕 면전에 대고 쌍욕을 퍼붓는다면 그건 자존심이 강한 게 아니라 그냥 정신이 나간 것이다.
번열이 피식 웃었다.
“그냥 지나친다……. 뭐, 그런 선택지도 있지.”
“정말이오?”
“그렇고말고.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잔혹한 사람이 아니야. 어지간하면 분란을 피하고자 하는 쪽이지, 싸워서 다 죽이는 쪽은 아니란 말이지.”
벽력수의 얼굴에 일말의 희망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만…….”
“한데 궁금한 게 있는데, 대답해 줄 수 있겠는가?”
“말씀하시오.”
“첫째.”
번열이 반대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는 것이 버릇인 듯했다.
“내 분명 언젠가 자네 얼굴을 본 적이 있는 듯한데……. 그 연배에 그 실력이라면 분명 기억이 날 법도 하네만, 정체를 모르겠군.”
“…….”
“이름이 뭔가?”
“벽력수요.”
“별호 말고 이름.”
“이름은 버렸소.”
“……흐음.”
턱을 쓰다듬던 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름 따위 중요한 게 아니지. 대개 이름은 희망하는 미래를 뜻하지만, 별호는 살아온 역사를 말하잖나? 다가오지 않을 미래보단 지금의 나 자신을 중시한다…… 괜찮은 태도야.”
꽤나 거창한 해석이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게 또 재미있는 점이다.
“은퇴한 지 얼마나 됐나?”
“십 년이 넘었소.”
“그렇구먼. 어쨌거나 오가다 한 번씩 봤을 사람이었구먼.”
“…….”
“둘째. 은퇴했으면 은퇴한 대로 살지, 어째 총군사 밑에 기어들어 갔나? 그이가 미래를 약속하기라도 했나? 이름을 버린 사람답지 않은 태도인데?”
벽력수의 눈이 깊어졌다.
“선배에게 말해 줄 내용은 아닌 것 같소.”
“허허, 그런가?”
의외로 번열은 벽력수의 말투에 별로 화가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 무섭다. 벽력수는 보이지 않는 시커먼 밧줄이 점차 발목을 휘감아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이거 위험한데.’
번열이 짧게 손뼉을 쳤다.
“이래저래 질문할 게 많았는데 다 치우고 하나만 더 물어봄세.”
“말씀하시오.”
“선배 앞에서 건방 떠는 것까지야 그냥 넘어가 줄 수 있는데……. 설마하니, 먼저 살수를 날려 놓고 멀쩡히 살아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나?”
벽력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죽여라!”
파바바박!
주변에 도열해 있던 마인들 모두가 번열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마신교의 장로라는 걸 알고도, 십대마왕이 천외천의 강자라는 걸 알고도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움직였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 내진 못했지만, 그보다 명령이 우선인 것이다.
번열이 하얗게 웃었다.
“재미있는 아해들이로고.”
그의 좌수가 횡으로 휘둘러졌다.
번쩍!
다섯 줄기 섬광이 번뜩이자, 날아오른 서른 명의 마인들이 모조리 찢기고 토막 났다.
퍼버버벅!
조각난 수십 개의 살덩이가 나무와 풀을 붉게 물들였다. 하지만 번열의 몸에는 피 한 방울, 살점 한 조각 묻지 않았다.
벽력수가 이를 악물었다.
‘흑살마조(黑殺魔爪).’
흑수대마의 이대 절기 중 하나로 백팔마도학 몇 개를 조합해 창안해 낸 번열의 독문무공이었다.
당금 천마신교가 보유한 조법(爪法) 중 최강이라 평가받는 절대마공이었다. 첫 시작부터 흑살마조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곧, 이들을 절대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빌어먹을.’
함께 공격하려다 순간 섬뜩한 살기를 느끼고 주춤한 덕에 벽력수는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이승에 머무는 시간이 아주 조금 늘어났을 뿐이었다.
벽력수가 버럭 소리쳤다.
“개 같은 늙은이! 머리통을 뭉개 주마!”
콰르릉!
벽력수의 두 주먹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성관 휘하로 들어가며 얻은 선물이자, 신교에서 손에 꼽힌다는 권법 절기 천마벽력권(天魔霹靂拳)이 펼쳐졌다.
동시에 번열의 하얀 손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 흑수대마라는 별호를 만들어 준 흑살마장(黑殺魔掌)이었다.
콰쾅!!
단 일격에 벽력수는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 * *
“사, 살려……!”
푸화아악!
깔끔한 검격 한 번에 허성관 휘하 삼대고수 중 하나인 마검혈자(魔劍血子)의 목숨이 날아갔다.
검법의 경지가 뛰어난 그였지만, 신교 최강의 검객인 십검신마(十劍神魔)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흐음.”
검에 묻은 피를 떨쳐 낸 왕인걸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수풀이었지만, 그의 기감은 사방팔방으로 뻗어 수많은 마인의 기척을 읽어 냈다.
“너무 멀어서 모르겠구먼. 뭐, 잘들 해냈겠지.”
허성관의 명령으로 출동한 수많은 고수가 내전과 외전 각지에 숨겨 놓은 백소담의 보화들을 탈취하려 했다.
물론 그들 대다수가 실패를 거듭했다. 애초에 그 장소들을 정보부에 흘린 사람이 백소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서필이 탈취했고, 탈취된 그 정보는 그대로 백골신마에게 날아갔다.
백소담은 자신의 자금을 지키려고 했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십대마왕 중 여섯이 움직이며 허성관의 수족들을 모조리 도륙하는 꼴이 됐다.
번쩍!
일을 마친 왕인걸이 가장 가까운 싸움터로 향했다.
푹!
왕인걸이 도착한 그때, 백헌은 허성관 휘하 고수인 설풍마도(雪風魔刀)의 심장에 손을 박고 있었다.
“커헉!”
한 사발 피를 토한 설풍마도가 그대로 절명했다.
“끝났구려.”
“이쪽은 그렇지.”
백헌이 소매를 털어 핏물을 날려 보냈다.
“슬슬 마무리가 됐겠구먼.”
“그랬을 것이오.”
“하면, 이제 어디로 모이면 되겠는가?”
“그걸 어찌 나한테 물으시오?”
“백골 그이가 자네에게 장(長) 노릇을 넘겼잖은가.”
왕인걸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장 노릇이 아니라 그냥 기획자로 삼은 것이지.”
“그래서 어디?”
왕인걸이 마신궁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의 죄를 교주님께 고하러 가면 되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