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97
외전 247화. 내전(內殿), 내전(內戰) (7)
“빌어먹을…….”
무릎을 꿇은 변풍이 침을 뱉었다.
침에 검붉은 핏물이 잔뜩 섞여 있었다. 심각한 내상이었다.
반면 양백호는 제법 험한 기색이긴 해도 다친 곳은 없었다. 두 사람의 무공 격차가 상당했던 것이다.
“네놈이 왜 이런 판에 끼어든 거냐?”
가늘게 떨리는 변풍의 목소리엔 공포와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양백호가 피식 웃었다.
“그건 내가 할 소리다. 갈 때 다 된 늙은이가 말년에 무슨 욕심이 있어서 이런 판에 끼어들었나?”
“이 좋은 무공을 익히고도 은퇴했단 명목으로 모옥 따위에 처박혀 지내야만 했다! 네놈이 그 심정을 아느냐!”
“그럼 은퇴를 하지 말았어야지.”
“미친놈! 누구는 하고 싶어서 한 줄 알아?!”
한(恨) 맺힌 목소리였다. 그간 억누르고 있던 불만이 모조리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 나는 그저 교에 충성했을 뿐이야! 한데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강제로 은퇴를……!”
“틀렸다.”
양백호의 대검이 변풍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늙은이, 너는 교에 충성한 게 아니라 그저 교에 소속되어 있었을 뿐인 탐욕 많은 벌레에 불과했다. 네놈이 진정 교에 충성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도 없었어.”
“닥쳐라! 설령 내가 죽일 놈이더라도 너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네놈 역시 받아먹을 떡고물이 있으니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이곳에 온 거 아니더냐!”
“그 또한 틀렸다.”
양백호의 눈에서 강렬한 엄기(嚴氣)가 일었다.
“그리고 너 따위 인간에게, 굳이 내 사정을 설명해 줄 필요는 없지.”
변풍의 눈이 잔뜩 충혈되었다.
“그때 네놈을 죽였어야 했어.”
“후회는 언제나 늦은 법이지.”
서걱.
목이 날아간 변풍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차가운 눈으로 시신을 본 양백호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이천상과 서필 앞에 왕길표가 쓰러져 있었다. 칼에 찔린 복부를 부여잡고 헐떡이는 그의 모습은 목이 달아난 변풍보다도 더 처참해 보였다.
왕길표가 다급하게 말했다.
“나, 날 살려 주시오. 살려 주면 당신들 밑으로……!”
번쩍!
이천상의 냉정한 칼질에 왕길표의 목도 떨어졌다.
서필이 담담하게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이제 환희원을 떠나도 되겠습니다.”
“그렇군.”
“아무리 총군사라도 그만한 병력을 또 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애초에 주목적이 환희원주의 자금력이었고 여소홍 소원주의 신병 확보는 덤이었을 뿐입니다.”
“확신하오?”
“확신합니다.”
군사란 족속들의 입에서 확신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서필이 허성관을 잘 알고 있고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읽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현재 십대마왕 중 백골, 광혈, 십검, 흑수, 일도, 자소가 움직였습니다. 백 원주의 자금은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백소담의 비밀 자금에 관한 정보는 서필도 알고 있었다. 이미 그가 부각주였던 시절부터 은밀하게 볼 수 있었던 정보였다.
그래서 그곳으로 마왕들을 파견했다. 정확히는, 백골신마에게 정보를 공유했다. 현재 허성관이 고수들을 파견하여 자금을 노리고 있으니, 수족을 자를 기회라고 알려 준 것이다.
이천상이 눈을 빛냈다.
“백 원주의 자금 정보 출처가 어디요?”
“환희원 내부 인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여태껏 환희원에 속해 있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백 원주의 비밀 자금이 묻힌 장소는 거의 다 거짓된 정보일 것이오.”
서필의 눈이 빛났다.
“어찌 그리 생각하십니까?”
“백 원주는 총군사를 시작부터 경계하고 있었소. 나아가 휘하 사람에 대한 신뢰도 확실하지. 내가 본 백 원주는 자기 사람을 관리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이가 아니오.”
이천상이 환희원 건물을 돌아보았다.
“그만한 정보가 새어 나갔다면 필시 측근 인사일 터. 철저하게 충성을 바치지도 못할 사람을 곁에 둘 만큼 빈틈 있는 사람이 아니었소.”
“그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해 보긴 했습니다만.”
서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의 말씀을 들어 보니 그럴 법하군요. 초기에 흘렸던 정보를 토대로 창고를 확인해 본 결과 상당한 자금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정보는 일부러 흘린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주군의 말이라도 동의와 비동의를 분명히 구분하는 그였다. 그런 그가 이천상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백뇌각 부각주로서 봤던 백소담과 밑바닥까지 떨어진 연후에 본 백소담의 인상과 능력이 워낙 달랐기 때문이었다.
‘뭐가 되었든 정말 대단한 여자다.’
서필은 백소담의 무지막지한 배포와 치밀한 심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금 부분을 떠나, 원주 자리를 정리하고 총군사와 한판 붙으러 가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범한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내일 없이 돌진할 수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환희원에 병력을 남겨 두는 것이 좋을 듯한데.”
그때였다.
“걱정하지 마시게.”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인 이후임에도 양백호는 차분했다.
“야차사령 다섯 개 조가 이곳으로 오고 있네.”
서필은 깜짝 놀랐다.
“그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할 게 뭔가?”
“사령은 외전 조직입니다. 공문이 떨어지지 않은 이상 내전으로 출입할 수 없을 텐데요? 게다가 몇 명도 아니고 무려 다섯 개 조라면…….”
“아, 이거 말인가?”
양백호가 품에서 문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서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진짜 공문서였다. 하지만 군사부나 마신궁에서 나온 공문서가 아니었다.
이천상이 말했다.
“여소홍 원주 대리 성명으로 야차사령 다섯 개 조를 물품 지원조로 소환했소.”
양백호가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소환에 령주인 나는 즉각 응했지. 그래도 보는 눈이 많지 않은 게 좋을 듯하여 나만 먼저 왔네. 다섯 개 조는 내전이 한창 소란 중인 지금 이동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어.”
서필은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이 사람들은 정말이지…….’
생각의 차원이 다르다.
서필은 내전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 여러 준비를 해 두었다. 하지만 외전 부대를 건드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내전만 해도 혼란스러운 판국에 외전 부대까지 소환하면 그야말로 난장판이 된다.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주군은 물론 자신도 뇌옥에 처박힐 가능성이 있다.
서필은 이번 작전에서 확장보다는 축소를 택했다. 최소 인원으로 최대 효과를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였다. 실제로 그래야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후 뒤처리도 깔끔할 터였다.
반면 이천상과 양백호는 서슴없이 확장을 택했다.
“주군, 어째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나도 안 지 얼마 안 되었소. 물론, 설령 미리 알았다고 해도 말해 주진 않았을 것이오.”
이천상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사건에 목이 걸린 사람이 수도 없이 많소. 서 군사는 나름대로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가져왔을 터, 거기에 외전 부대까지 경우의 수로 넣게 되면 일이 너무 복잡해지지 않겠소?”
“……?!”
“서 군사는 서 군사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최선을 다해 움직이는 것. 설령 작전에 공백이 생긴다 한들 충원할 수 있는 인원이 생기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오.”
이천상이 눈을 빛냈다.
“이번 일을 그리는 사람은 서 군사요. 그것을 잊지 마시오. 우리는 그저 붓 몇 자루 보태고 있을 뿐, 마무리까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오.”
서필의 얼굴에 격동이 일었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가져오면서도 으스대지 않고, 오히려 자신감을 심어 주는 주군.
이런 사람은 또 없다. 허성관은 말할 것도 없고 당대 교주라 한들 이만한 용인술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실수 없이 이번 일을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힘내시오.”
그때였다.
환희원 대문이 열리고, 수많은 마인이 들어왔다.
“여어!”
앞장선 사람은 양건이었다.
“오랜만에 보네, 천상이?”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군.”
“허어, 거 딱딱한 건 여전하네? 오랜만에 봤는데 웃지도 않고.”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댄 그가 냅다 달려와 이천상을 와락 안았다.
생각지도 못한 양건의 행동에 이천상은 당황했다. 양건과 친분은 있었지만, 지금껏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백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말조심해라. 이제는 이십이마장이다.”
“엇! 뭐야? 너 언제 그렇게 승진했냐?”
칠십이마장이 받는 대우에 대해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이렇게 말한다. 그만큼 이천상이 반갑고 반가운 만큼 믿는 것이다.
“실력이 늘었군.”
“새 마공이 착착 몸에 감겨서 말이지. 그것도 다 네 덕분 아니겠냐?”
활짝 웃던 양건의 얼굴이 점점 잠잠해졌다.
“고생했다.”
“그래.”
“……이럴 때는 ‘너도 고생 많았다, 친구!’
하면서 한 번 안아 주는 거야, 인마.”
그때, 주연교가 양건의 목덜미를 잡았다.
“나와.”
“아악! 이 여자가?”
양건을 옆으로 치운 주연교 역시 이천상을 안았다.
“오랜만입니다, 각주님.”
그야말로 이해되지 않는 행위의 연속이었다. 왠지 사람들이 말하는 어색함이라는 게 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천상이 주연교를 살짝 떼어 냈다.
“나 각주 아니다.”
“알아. 그래도 뭐, 떠나기 전까지는 각주였으니까.”
피식 웃은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랜만이구나.”
환희원 출신이었던 그녀다. 아무래도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으리라.
그 뒤로도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일 조장 허필, 허필을 업고 갔던 홍산, 삼 조장 단리우와 수많은 야차.
그들을 둘러보던 이천상이 허필을 바라보았다.
“몸은 괜찮나.”
허필이 피식 웃었다.
“언제 입은 부상인데요. 나 없이 재미는 있더이까?”
“재미로 싸운 적은 없다.”
“그러시겠지요.”
허필이 입맛을 다셨다.
“기다리십시오. 조만간 내전으로 올 겁니다.”
“그런가.”
“예. 그때는 전부 개방하려고요.”
숨기고 있던 힘을 드러내겠다는 소리였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절정에 든 지금 보는 허필의 힘은 예전과 또 달랐다. 숨기고 있는 내력의 밀도가 굉장했다.
저 내공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누구보다 빨리 초절정의 영역으로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미있게 사는군.”
팔짱을 낀 홍산의 얼굴은 생각보다 밝았다. 헤어지기 전 시큰둥하고 떨떠름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사령에서 지내며 마음의 평온을 찾은 듯했다.
“나도 마장이었는데 말이야. 이참에 다시 들어갈까 싶은데.”
“마음대로 해라.”
“나중에 찾아오면 술이나 한잔 사.”
“그러지.”
그들을 보며, 서필은 격동을 느꼈다.
누구보다 무심하고 무감한 주군이었지만, 정작 그런 주군을 보고 싶어 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
감정적으로 공감해 주고 친근하게 대한다고 친분이 생기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천상처럼 무뚝뚝해도 자신의 능력과 책임감을 보여 주면, 이렇게 사람들이 따르는 법이었다.
서필의 눈에는 보였다. 훗날 이천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되는 광경이.
손가락질 한 번으로 수많은 마인을 움직이는, 내로라하는 권력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예감할 수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회포는 나중에 푸는 게 좋겠군.”
양백호의 말에 서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주의 말이 옳습니다.”
“그래.”
이천상이 천천히 어깨를 풀었다.
“이제 군사부로 가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