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98
외전 248화. 내전(內殿), 내전(內戰) (8)
퍽! 퍼억!
“이 개 같은 년! 죽어! 죽어!”
짜아아악! 퍼어억!
“이런 씨…… 우웨엑!!”
과격하게 채찍을 휘두른 허성관이 울컥 피를 쏟아 냈다.
토혈이 땅을 적셨다. 끈적한 핏물 색이 심상치가 않았다. 미세하게 올라오는 아지랑이, 땅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땅을 부식시키는 듯했다.
밀마조장을 제외한 조원들과 군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허성관이 토해 낸 핏물에서 감당키 힘든 독기(毒氣)를 느낀 것이다.
밀마조장이 조심스레 말했다.
“총군사님. 일단 혈혼각으로 가셔서 치료부터 받으심이…….”
“닥쳐라!”
시뻘겋게 충혈된 허성관의 두 눈은 당장이라도 피를 줄줄 흘릴 것처럼 섬뜩했다.
그가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쫘아아악! 쫘아아악!
“이 천한 년! 갈보 같은 년! 네깟 년이 감히 신성한 총군사의 옥체에 독을 퍼부어?!”
바닥에 웅크린 백소담의 몸이 채찍에 맞을 때마다 연신 움찔했다.
그야말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평소 완벽하게 갖추었던 궁장은 채찍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걸레짝이 되었다. 훤히 드러난 어깨와 등, 복부와 허벅다리는 시뻘건 채찍 자국으로 가득했다.
허성관의 힘을 생각하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 그는 일부러 내공을 쓰지 않고 있었다. 내공을 쓰면 상대가 죽을 테니까.
그렇게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허성관은 오늘 끝을 볼 생각이었다.
몇 번이나 채찍을 후려친 허성관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독기에 세상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총군사님.”
“쿨럭!”
그래도 채찍질 좀 했다고 어느 정도 이성이 돌아오긴 했다.
밭은기침으로 재차 독기를 배출한 허성관이 사납게 지시했다.
“의자 가져와.”
“예?”
“의자 가져오라고!”
밀마조장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이성이 돌아왔는데도 혈혼각으로 가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끝을 볼 생각인 모양이었다.
잠시 후, 조원 하나가 의자를 가져오자 허성관은 직접 백소담을 앉힌 후 밧줄로 팔다리를 꼼꼼히 묶었다. 팔걸이에 팔을 단단히 고정하고 양 발목을 하나로 모아 묶었다.
그가 손을 떼자 굳이 고정하지 않은 머리가 축 늘어졌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죄인처럼 묶인 모습이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허성관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어렸다.
“그래, 인정한다.”
그가 허리를 숙였다.
“인정한다고, 네년이 얼마나 독종인지.”
붉게 달아오른 백소담의 손을 움켜쥔 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영광으로 생각해라. 총군사직에 오른 후, 오늘처럼 열받은 날이 없었어.”
“…….”
“앞으로도 이럴 일은 없겠지. 이게 무슨 말인 줄 알아?”
“…….”
“너처럼 천하고 주제 모르는 년이 앞으로 오십 년은 더 살아갈 내 인생에 지워지지 않는 화인(火印)으로 남아 버렸다는 거다.”
우두둑!
백소담의 왼손 소지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그녀는 움찔했지만, 그 외에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허성관이 그녀의 약지를 잡았다.
“나는 그게 용서가 안 돼. 한데 말이지? 지금 그런 나 자신의 상태에 열이 받으면서도 감탄이 나와.”
우둑!
약지 역시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렸다.
다시 중지를 잡는 허성관의 손.
“정말 많이 컸어, 백소담.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뭣도 모르는 천한 잡년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천박하고 멍청했던 년이 여기까지 아득바득 올라오려고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까 생각하면,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단 말이지.”
뚝!
백소담의 어깨가 살짝 떨려 왔다. 아무리 심신이 지쳤어도 멀쩡한 손가락이 하나하나 부러지는 고통은 쉽게 참기 힘든 것이었다.
가만히 그녀를 노려보던 허성관이 이내 주먹을 휘둘렀다.
콰득!
팔걸이와 함께 그녀의 왼팔이 부러졌다.
“그래서 더 용서가 안 돼.”
백소담의 머리채를 쥐고 들어 올린 그가 손바닥을 휘둘렀다.
퍽! 퍽!
뺨을 한 번 갈길 때마다 백소담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볼 안쪽이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졌다.
“본교는 썩을 대로 썩었다. 출신도, 성품도, 능력도 변변찮은 거지 같은 년을 받아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본교가 얼마나 병신 같이 변했는지 알 수 있다. 하물며 외전 일꾼도 아니요, 창녀도 아니고 환희원주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것이냐?”
지켜보던 군사들 몇몇의 얼굴이 붉어졌다. 군사부 소속 인원 대다수는 한미한 집안 출신이거나 고아들이었다. 지금 허성관은 백소담을 욕하면서 자기 부하들까지 싸잡아 욕하고 있었다.
군사들의 분위기를 읽지 못했는지, 허성관이 으르렁거렸다.
“당대 교주님께서 신좌에 오르신 후, 나는 본교를 정화하려 했다. 천한 피, 천한 가문, 천한 외양, 천한 품성을 지닌 놈들을 다 제거하는 것이 내 숙원 중 하나였기 때문이야.”
“…….”
“네년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네년이 이런 식으로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내 정화 작업의 마지막 제물로 화려하게 불태워 주려 했다. 하지만 뭐…….”
허성관이 씨익 웃었다.
“이런 결과도 나쁘지 않지.”
퍼억!
목이 부러질 듯 꺾였다가 돌아온 백소담의 고개가 다시 축 늘어졌다.
허성관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침을 뱉었다.
“개만도 못한 년 같으니. 성공했구나, 백소담. 총군사가 직접 손을 더럽히게 했으니, 죽어도 억울하진 않겠어.”
그가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누가 이년을 조리해 보겠느냐? 쓰레기 같은 년이라도 한때나마 환희원주였던 년이다! 그 이름값 하나만으로도 품을 가치가 있을 터!”
군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금 총군사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고 있었다.
그냥 죽여도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일이었다. 한데 부하를 시켜 능욕까지 시키려 한다.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허성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런 병신 같은 놈들.”
“…….”
“내가 왜 너희를 다 모아 놓은 줄 아느냐? 군사부 소속으로서, 총군사의 팔다리로서 다시 한번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이다. 그는 그저 자신의 권력에 취했을 뿐이고 백소담의 비참한 꼬락서니를 모두에게 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군사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 그 생각이 맞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무공이 강하면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강호는 원래 그랬지. 하지만 그 강한 무사들을 다스릴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샌님처럼 비실대면서 살 것이냐!”
허성관이 군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들 모두가 고개를 푹 숙였다. 누구 하나 당당하게 고개를 들지 않았다.
허성관은 기가 막혔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들을 지금껏 수하로 두고 살았단 말인가. 정말이지 본교가 개판이 된 이유가 달리 있었던 게 아니구나.”
그때였다.
“이만 죽이시지요.”
군사들 뒤로, 한 명의 중년 사내가 걸어왔다.
허성관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뭐라고 했는가?”
백뇌각주 문흠기(汶欽起)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총군사님, 그녀는 환희원주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녀를 죽이면, 지금까지 벌어졌던 일들을 모두 무(無)로 만들 수 있습니다. 총군사님께는 그만한 힘이 있으시잖습니까?”
“…….”
“하지만 여기서 선을 넘게 되면…… 그때는 이 얘기가 반드시 외부로 새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허성관이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한번 폭발한 그는 자신의 욕망과 성격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누구냐? 나는 총군사다! 당대 신교에서 가장 권위 있고 막강한 권력 집단이 군사부의 수장이야! 누가 있어 나를 끌어내리겠느냐! 누가 있어 나를 지탄할 수 있단 말이냐!”
“모두가 그럴 수 있습니다.”
“뭣이?”
재차 한숨을 내쉰 문흠기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교주님은 본교의 신이고, 우리는 모두 그분을 따르는 종입니다.”
허성관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꾹꾹 눌러 놓았던 오만함을 스스로 터트린 지금 이 순간 당신 역시 누군가의 종이 아니냐며 책하는 문흠기의 말이 너무나도 거슬렸다.
하지만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수하들이라고 해도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정말 문제가 커진다.
“종이라고 다 같은 종놈은 아니지.”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계급이 있고 책임이 있지요.”
문흠기가 고개를 저었다.
“권력은 곧 책임입니다. 권력이 강한 사람은 책임질 일도 많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본교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 계신 총군사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을 이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
“침착하셔야지요. 침착하고 냉정하셔야지요.”
허성관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침착하고 냉정하라.
흔한 말이지만, 그 말을 제 귀에 인이 박이도록 해 왔던 사람을 자신은 알고 있었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사태를 주시해라, 지식이 모자랄 수는 있어도 지혜가 모자라선 안 된다, 느려도 수습은 가능하지만 급하면 수습이 안 되니 어떤 일도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된다…….
허성관 이전, 총군사직을 맡았던 황인악의 말이었다.
전대 교주가 죽고 새 교주인 자전신마 조백천이 권좌에 앉은 후 사라져 버린 비운의 군사.
그는 문흠기의 스승이었으며 허성관의 상관이었다. 아니, 군사부에서 일하는 모두의 스승이자 상관이었다.
그리고 허성관이 가장 증오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문흠기는 지금 그런 사람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을 뱉은 것이다.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백 원주는 상급자를 향해 독까지 썼습니다.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죽어 마땅한 죄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그녀를 죽이시고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합니다.”
무시무시한 눈으로 문흠기를 노려보던 허성관이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자네, 이 천한 년과 제법 친분이 있었지?”
“그랬었지요.”
문흠기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친분 좀 있었다고 더 망가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로군.”
“냉정하게 사태를 관망한 후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솔직히 안타까움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흠기가 미소를 지었다.
“총군사님 말마따나 저나 여기 이 친구들 모두가 천한 놈들이거든요.”
발작적으로 미친놈이라고 말하려던 허성관은 순간 움찔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군사들이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한데 그 눈빛이 곱지 않았다. 실망, 분노, 착잡함, 서글픔 등등 온갖 감정이 엿보였다.
그제야 허성관은 자신이 과하게 흥분했음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본능적으로 그게 아니라고, 그저 말실수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하려 했던 그는 또 한 번 움찔했다.
‘내가 왜?’
신교 최고의 권력자인 자신이 왜 아랫놈들의 눈치를 봐 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화아악!
허성관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의지를 읽은 밀마조장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밀마조원들 역시 조장을 따라 허성관의 뒤로 붙었다.
군사들의 얼굴에 충격이 일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허성관은 흥분해서 자신들을 다 치워 버릴 생각이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군사들은 아연실색했다.
문흠기가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이렇게 되고야 마는군요.”
“문흠기!”
허성관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알고나 죽어라. 이놈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은 네놈이 주제도 모르고 나섰기 때문……!”
그때였다.
“총군사님!”
군사부 대문을 부술 듯 열고 들어온 정보원 하나가 부복하며 외쳤다.
“큰일났습니다! 환희원주의 자금 창고로 향했던 모든 고수가 전멸했습니다!”
“뭣이!!”
기겁한 허성관은 순간 백소담을 돌아보았다.
흔들리는 머리카락 속, 그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