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900
외전 250화. 내전(內殿), 내전(內戰) (10)
“어이쿠, 이건 또 오랜만이구먼.”
태사의에 앉은 노인의 방정맞기까지 한 음성에 백골신마는 눈을 감았다.
마주할 때마다 느낀다. 저자에게 교주의 자격이 없음을.
동시에 또 하나 느낀다. 우리 모두 실패했음을.
만약 그때, 누구 하나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저자가 신좌에 앉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당장 자신부터가 문제였다. 자식 잃은 슬픔에 폐인이 되지만 않았어도 저 뱀 같은 자의 행보를 어떻게든 막으려 들었을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살아가려 하지만, 볼 때마다 과거가 후회스럽고 원통했다.
백골신마가 다시 눈을 떴다.
노인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얼마 만인가? 이렇게 마왕들이 싹 모여서 마주하는 게. 와중에 네 명은 빠졌구먼.”
허허허, 웃는 소리가 참으로 소탈하게 들린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저 노인은 백 가지 얼굴을 지닌 자였다. 만약 자신 혼자 왔다면, 혹은 두셋이 왔다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을 것이다.
“서로 공사가 다망하여 이렇게 모이는 게 참 쉽지는 않지. 가끔은 섭섭할 때도 있지만, 내가 자네들 사정 모르는 게 아니잖은가. 또 이렇게 한꺼번에 모이면 기쁨은 배가 되니 다 이해하고 넘어감세.”
여섯 마왕이 말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노인, 조백천이 턱을 괴며 물었다.
“해서, 이 야밤에 어인 일로 자네들이 본좌의 궁을 찾았는가?”
“교주님.”
먼저 입을 연 것은 뜻밖에도 백헌이었다.
“야심한 시각에 기별도 없이 찾아온 늙은이들의 무례를 넘겨 주셔서 감읍할 따름입니다.”
“허허, 나야 반갑다니까 그러네. 기분도 좋고. 다만 궁금할 뿐이니, 책잡는다고 오해하지는 마시게.”
조백천이 눈을 끔뻑였다.
“큰일이라도 있으신가?”
백헌의 눈이 깊어졌다.
이미 조백천은 교내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내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을 게 뻔했다.
‘능구렁이 같은 건 여전하군.’
아는데도 모른 척, 모르면서 아는 척.
예전에도 가끔은 허허실실의 계책을 즐겨 사용했던 사람이지만, 교주가 된 이후로는 정말이지 대화할 맛이 안 나는 괴인으로 변해 버렸다.
백헌이 입을 열었다.
“죽여 주십시오.”
“죽여 주십시오!”
백헌의 말에 모든 마왕이 더더욱 고개를 조아리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조백천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보시게들. 반가운 건 반가운 거지만, 본론으로 들어가자마자 느닷없이 죽여 달라 말하면 내 기분이 어떻겠는가? 마왕 여섯이 모여서 절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압박감이 대단하다네.”
또 한 번 껄껄껄 웃는 조백천의 모습은 참으로 경박했다.
백헌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현재 내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교주님께서도 알고 계시온지요?”
“바깥이 다소 소란스럽긴 하더구먼.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또 아주 없었던 일은 아니니까.”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였다. 백헌은 인내심을 끌어모았다.
“현재 총군사가 환희원주를 겁박하고 있습니다.”
“환희원주가 먼저 선을 넘은 건 아니고?”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아무렇지 않게 선공을 날린다.
백헌이 말을 이었다.
“백 원주의 성격이 강단이 넘치고 딱딱하다는 거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옵니다. 하나, 백 원주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죄를 지은 적 없던 사람이며 오히려 신교를 위해 오랫동안 애를 쓴 인재이옵니다.”
“백 원주 일 잘하고 열심히 하는 거야 알지.”
“하나, 총군사가 그런 백 원주를 압박하고 하극상을 유도하여 정치적으로 말살시킬 생각인 듯합니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군사부 내에서 폭행까지 벌어지는 중이라 하옵니다.”
“오호?”
“부디 본교의 귀한 인재를 위하여 교주님께서 은총을 내려 주신다면, 만민이 교주님의 자애로움을 칭송할 것입니다.”
조백천이 피식 웃었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하면, 지금은 자애가 없어서 칭송을 안 하는 거고?”
“……!”
되지도 않는 말꼬리 잡기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천마신교의 교주다.
교주는 곧 신의 대리인이다. 조백천 말마따나 존재 자체가 귀하고 성스러운 신심의 대상인 법, 신이 꼭 자애로워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백헌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장 말을 이었다.
“교주님의 자애를 칭송한다는 말이었을 뿐, 누구도 교주님을 칭송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사옵니다. 소신의 충언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허허허!”
조백천이 손을 휘휘 저었다.
“농담일세, 농담. 오랜만에 만나서 농담 몇 마디도 못 하는가. 광혈 자네, 예전보다 많이 딱딱해졌구먼.”
농담이나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백헌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디 보자…….”
마왕들을 둘러보던 조백천이 턱으로 백골신마를 가리켰다.
“그래, 백골. 자네가 한번 말해 보게나. 자네가 보기에도 총군사가 백 원주를 이유 없이 압박하고 있는 것 같은가?”
백헌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필이면 자신과의 대화 직후 백골신마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행위가 마치 광혈은 믿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백골신마가 담담하게 말했다.
“환희원주 백소담은 출중한 인재요, 교를 향한 충성심이 지극한 자로 자격만 갖춘다면 능히 신교의 백년대계를 맡겨도 될 만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대단한 평가군.”
“그러나 그녀에게 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순간 마왕들이 놀라서 백골신마를 바라보았다.
조백천의 얼굴에 흥미가 일었다.
“백소담에게도 죄가 있다?”
“그렇습니다.”
“어떤 죄인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죄입니다.”
기묘한 대답이었다.
조백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죄? 그게 무슨 뜻이지?”
“소신이 보기에 환희원주 백소담은 어느 일을 시켜도 잘 수행할 만능의 인재입니다. 적어도 원주와 어느 정도 사적 친분이 있는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한데?”
“해서 더더욱 냉엄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환희원주 백소담은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다 펼치지 않고 있습니다. 환희원주로서 본교의 살림을 도맡아 여태껏 큰 탈 없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만, 동시에 그 이상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검증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하물며 조직이 돌아가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그것을 죄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조백천은 순수한 흥미로 물었다.
“죄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군. 한데도 자네는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시는가?”
“그렇습니다.”
“어째서?”
“위정자가 가하는 한 푼의 노력이 아랫사람들의 인생에 일 할의 행복을 준다는 걸 백소담은 알기 때문입니다.”
순간 대전이 섬뜩한 침묵으로 휩싸였다.
백골신마의 말은 마치 백소담을 빗대어 교주를 비판하는 것처럼 들렸다. 마왕들은 그 드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순간적으로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을 맛보았다.
조백찬의 눈빛이 대번에 냉정해졌다.
“한 푼의 노력이 일 할의 행복을 담보한다?”
“때로는 그 이상의 행복을 담보할 수도 있지요.”
“그것을 알고도 행하지 않은 위정자는 위정자의 자격이 없다는 뜻인가?”
“소신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군.”
조백천이 씨익 웃었다.
기분이 좋아서 웃는 건지 나빠서 웃는 건지 모를, 정말 묘한 웃음이었다.
“하면 백골 자네가 생각하기에, 나는 어떠한가? 위정자로서 자격을 상실했다고 보나?”
백골신마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백헌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백골, 자네!”
“교주님께선 위정자가 아니라 신(神)이며, 동시에 신의 대리이기도 합니다. 그런 분을 우리는 위정자라고 부르지 않지요.”
백헌의 얼굴이 뻣뻣해졌다.
조백천의 미소가 짙어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하면 신은 어찌해야 하는가?”
“송구하옵니다만, 저를 필두로 마왕들 모두 범부에 불과한지라 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흐음.”
“다만.”
백골신마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신이 진정 신답다면, 추종자들은 그를 위해 부정하지 않은 신심을 보낼 것이며 존재 자체만으로 축복인 신 아래에서 큰 자부심과 맹렬한 의지로 치열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옵니다.”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는가?”
백골신마가 고개를 조아렸다.
“늙어서 봐야 할 것을 못 보고, 들을 것을 듣지 못한 자의 얄팍한 신념에 불과합니다. 부디 교주님께서는 이 늙은이의 말에 큰 의미를 두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크하하하하!!”
조백천의 웃음이 대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파지지지직!
동시에 대전 벽과 천장에 수많은 전광이 번뜩이다가 사라졌다.
밀폐된 공간을 꽉 채우는 조백천의 마기. 그 기운은 실로 막강하여 마왕 모두의 가슴에 섬뜩한 잔상을 남겼다.
백헌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강하다.’
원래 조백천은 강한 사람이었다. 그가 연성한 자전마공은 천마지학(天魔之學)을 제외, 신교 무공 중 수위를 다투는 절대마공이었다.
하지만 마왕들이 연성한 마공 대부분도 그러했다. 단순 파괴력으로는 자전마공이 수위를 다투겠지만, 마공 자체의 수준만 보자면 그에 모자람 없는 공부를 모두가 익히고 있었다.
그런데도 압도당한다.
모두가 한 발 더 강해지고 있을 때, 조백천은 두세 걸음을 앞질러 가고 있었다. 심지어 여색과 술을 탐하고 산다는데도 그러했다.
자연스레 흘러나온 자전마기(紫電魔氣)의 강렬함.
마왕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백천의 무공이, 이제는 자신들과 다른 경지에 도달했음을.
같은 극마라도 차원이 달랐다. 목숨 걸고 싸운다 해도 마왕 하나로는 어림도 없을 터, 족히 서넛은 모여야 저 강렬한 마기를 감당할 수 있을 듯했다.
한참 폭소를 터트리던 조백천이 웃음기가 남아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보게, 백골.”
“예, 교주님.”
“내가 마왕이었던 시절, 나는 자네를 정말 싫어했네. 자네의 올곧음이 미련스러워 보였고 솔직함이 과격함으로 보였거든.”
“…….”
“하지만 지금은 다르군. 자네의 그 강단 넘치는 성격, 교주로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를 것이네.”
“영광이옵니다.”
말과는 달리 고개를 숙인 백골신마의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조백천이 팔걸이를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총군사의 횡포를 막고 환희원주를 용서해 달라는 의도였다면 굳이 마왕 여섯이서 예까지 오진 않았겠지.”
“…….”
“자네들이 진짜 원하는 게 무언가?”
백골신마가 입을 열었다.
“허성관 총군사는 그 직위를 남용, 그간 교주님의 이름을 팔아 교내 마인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죄 없는 이들을 잡아 가두거나 죽인 파렴치한 역적입니다.”
“그런가?”
“교주님께서 그를 많이 위하시는 듯하여, 소신들 역시 그간 아무 말씀 드리지 않고 있었으나 이번 사태로 인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사옵니다.”
“그래, 참아서는 안 되지. 그러라고 장로들이 있는 거니까.”
“…….”
“해서, 원하는 것은?”
백골신마가 고개를 들었다.
“대역죄인 허성관을 총군사 직위에서 폐하신 후, 능력 있는 자를 그 자리에 맡기시어 신의 엄격함과 자애를 보여 주신다면 만마(萬魔)가 교주님의 판단에 또 한 번의 감격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환희원주는?”
“부디 교주님과 신교를 위해 영혼을 바칠 수 있도록 엄히 꾸짖어, 본인의 재능을 만개할 수 있도록 다스려 주심이 어떠할까 하옵니다.”
“하하하! 그렇단 말이지?”
기분 좋게 웃던 조백천의 얼굴이 서서히 무표정하게 변했다.
“백골.”
“예, 교주님.”
“형법당주가 죽었다더군.”
“……?!”
“자, 받게.”
조백천이 탁자 위에 놓인 철패 하나를 허공섭물로 던져 주었다.
철패를 받은 백골신마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것은?!”
“내부감찰대리(內部監察代理) 특수조사원주(特殊助詞院主), 쉽게 말해 내사감찰(內査監察) 권한을 지닌 감찰사패라네.”
조백천이 깍지를 끼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자네가 한번 총군사를 탈탈 털어 볼 텐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