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902
외전 252화. 승리 속의 살의 (2)
“……!”
광기에 젖은 허성관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이성을 찾았다.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군.’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은 이천상이 허성관을 향해 칠야도를 겨누었다.
허성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폭풍 때문에 발목을 후려친 공격도 강하지 못했다. 그나마 자세를 흐트러트릴 수 있었기에 뇌도일식으로 베어 버리려 했건만, 그 또한 폭풍처럼 거센 기파에 투로가 흔들렸다.
현격한 내공의 차이. 허성관과의 싸움에서 이천상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자, 아직도 그를 공략하지 못한 이유였다.
‘어쩔 수 없지.’
허성관은 반드시 이 자리에서 잡아야 했다.
앞으로 어떤 싸움이 또 벌어질까 싶어 힘을 아꼈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후우우우웅!
이천상의 칠야도 위로 불그스름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허성관의 분노 가득한 붉은 폭풍과는 전혀 다른 바람이었다. 칼에 바람이 서리는 순간, 일대에 진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도상을 입은 옆구리를 매만지던 허성관의 눈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네놈, 정체가 무엇이냐?”
콰쾅!
저 뒤에서 강렬한 충격파가 솟구쳤다. 유이상과 밀마조였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 충격파가, 그 폭음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서로를 반드시 죽여야 하는 두 사람에게는 오직 서로의 심장만이 보일 뿐이었다.
허성관이 버럭 외쳤다.
“도대체 넌 뭐냐! 어디서 튀어나왔기에 벌써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야! 어디서 튀어나왔기에 나를 방해하지? 대관절 어디서 튀어나왔기에……!”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이다.”
이천상이 눈을 감았다.
진마기가 강하게 울부짖었다. 뇌도일식 이후 혈풍오식을 끌어내자 그에 맞춰 전신의 근육이 부풀었다.
“나에게 어떤 과거가 있는지는 네 알 바가 아니다. 내가 사람의 자식이든 괴물의 자식이든 너와는 관계없어. 내가 신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 있을지, 패망의 태풍을 불러올 놈인지도 너와는 상관이 없다.”
“……!”
“지금 이 시간부로 너의 세상은 끝난다.”
허성관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이천상의 말은 더할 나위 없는 진심으로 가득하여 예언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이 천한 것이……!”
결과적으로 허성관은 이 자리에서 도주해야 했다. 마신궁으로 가서 교주와 독대하든, 내전을 빠져나가 잠시 교외로 몸을 숨기든,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따위 망발을!”
하지만 허성관은 그중 어느 쪽도 택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러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손가락질 하나로 수백, 수천 명의 생사를 결정했던 권력자의 자존심이 ‘도주’라는 행위 자체를 용납하지 못했다.
머리가 좋다고 모두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순 없다. 허성관은 두말할 나위 없는 천재였지만, 자존심과 욕망이 그 지성을 압도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콰르르르릉!!
이천상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건?’
한계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했던 마기가 더 강하게 솟구쳤다. 그 기세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땅이 갈라지는 건 물론 천둥소리까지 울려 퍼졌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찌릿찌릿해질 정도의 기파, 초절정의 영역에 올라선 이천상조차도 마주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만큼 사이하고 광기 넘치는 기세였다.
하지만 이천상이 진정 놀란 건 허성관의 증폭된 힘이 아닌, 이 기괴한 기파 자체에 있었다.
‘혈강기(血罡氣)!’
이천상은 다시 한번 허성관의 눈을 바라보았다.
핏발 선 눈. 동공은 이미 완전한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평범한 살기나 마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인간이 지성을 얻기 전, 여느 짐승들과 구분되지 않은 시절에나 보일 법한 원초적인 광기.
마치 병에 걸린 것처럼, 혹은 최초로 극단적인 분노를 경험했던 마인처럼 살벌한 광기를 풍기는 그 모습은 모골을 송연케 할 정도로 위험스러웠다.
‘어떻게 이 자가 혈강기를?’
미완의 절대마공 혈강수(血罡手).
도헌이 건네준 비급으로 이천상 역시 외우고 있던 무공이었다. 외우기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발현이 되어 상단전을 위협하고 방어하기를 반복했던 기괴한 마공.
‘이자 역시 혈강수를 접했군.’
쿠르르릉! 쿠르릉!
칠야도에서 일던 붉은 바람이 점점 어두워지며 사나운 악마의 기세로 돌변했다. 혈풍오식에서 지옥도(地獄刀)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아아아앙!
허성관이 질풍이 되어 날아왔다.
조금 전보다 더 빨라진 속도다. 포악하다는 느낌마저 드는 동작으로 달려드니, 기세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천상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번쩍!
보이지 않는 마귀들이 함성을 지르며 도풍을 일으켰다.
콰앙!
처음으로 허성관이 뒤로 물러났다. 돌진하던 속도를 생각하면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크아아아!”
이제는 숫제 짐승이었다. 입을 쩍 벌리며 포효하는 허성관의 얼굴을 보면, 신교의 총군사라는 직책을 거머쥐었던 천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파아앙! 쾅!
지옥도의 도풍을 뚫고 돌진한 허성관의 손이 땅에 박혔다.
콰드드득!
이천상이 있던 자리에서 시작된 충격이 거대한 지진을 일으켰다. 쭉쭉 이어진 실금이 숲을 흔들고 성벽 일부에 흠집을 냈다.
초월적인 힘이었다. 광양혈조의 투로에 혈강수의 힘을 더했다. 알고 그런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렇게 운용한 듯했다.
콰르릉!
휘몰아치는 칠야도에서 지옥도의 초식 세 개가 튀어나왔다.
진마공의 힘을 받아 펼쳐진 지옥의 도풍. 보이지 않던 악귀들이 점차 안개와 같은 모습을 드러내며 허성관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허성관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콰앙! 콰드득!
양손으로 도풍을 뚫고 좌우로 찢어 버린다.
그 잠깐 사이 완전히 혈강기에 잠식된 것 같았다. 신교팔대마공 중 하나인 혈염돌풍마공(血染突風魔功)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자욱하게 퍼져 나가는 핏빛 구름이 혈강기의 온전한 재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파팡!
허공에 폭음을 내는 각법까지 튀어나왔다.
문사 출신이라, 발기술 따위는 천박하다며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가 각법을 사용했다. 그것도 일정한 투로가 깃든 각법이 아닌, 짐승처럼 본능적으로 휘두르는 공격이었다.
콰쾅!
금강마권으로 각법을 막은 이천상이 뒤로 튕겨 나갔다.
밀려 나가는 속도보다 허성관이 접근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천상의 다리가 처음으로 다급하게 움직였다.
훅! 쾅!
칠보군림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나니, 허성관의 광양혈조가 허공에 다섯 줄기의 핏빛 벼락을 새겨 넣었다. 지옥도든 혈풍오식이든, 방어는 가능했어도 이천상 역시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을 만큼 막강한 공격이었다.
서걱!
측면에서 나타난 이천상이 허성관의 어깨를 베었다.
제대로 들어간 일격이었다. 팔을 절단하진 못했지만, 근육의 결을 쪼갰으니 움직임 자체가 봉해져야 맞았다.
하지만.
치이이익!
베인 상처에서 허연 아지랑이가 뿜어지며 절단상이 아물어 갔다.
‘초고속 재생!’
극에 이른 마기가 선보이는 회복력이었다. 인성이 말살되고 원정지기를 건드려 생명력까지 마기로 변하고 있었다.
허성관이 왼팔이 크게 휘둘러졌다.
이건 피할 수 없다. 칠야도를 거꾸로 잡은 채 팔까지 교차한 이천상이 마황갑을 일으켰다.
콰아앙!
잠시 허공에 떠 날아갔지만, 십여 걸음 물러난 이후 곧장 자세를 바로잡는다.
마황갑의 위력이다. 강력한 반탄력으로 상대에게도 피해를 주는 탄력 넘치는 기공술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허성관이 또 한 번 달려들었다.
눈에 보이는 게 없다. 공격이 한번 들어갈 때마다 눈빛이 바뀌었다. 오염되지 않은 상단전의 마지막 부분까지도 혈강기가 들어차고 있었다.
콰앙! 쩌저저정!
두 사람의 손과 칼이 미친 듯이 부딪쳤다.
이천상의 코와 입에서 기어이 핏물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대로는 안 되지.’
자신의 목숨도 위험하지만, 그전에 허성관을 잡지 못한다. 어차피 혈강기에 오염되어 정신이 나가 버린 이상 파멸은 확정이지만, 허성관은 미친 마인이 아닌 총군사 직책을 거머쥐고 폭정을 저지른 죄인으로 죽어야 했다.
즉, 이천상은 허성관을 이겨야 했다.
폭주하는 짐승을 사냥한 사냥꾼이 아닌, 신교의 죄인을 때려잡은 마장이 되어야만 했다.
‘설마하니 이 정도 위치에 오른 자가 혈강기에 손을 댈 줄은 몰랐지만.’
이천상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래도 이긴다.’
서걱! 퍼억!
허성관의 가슴을 베자 동시에 좌측 어깨에 일격을 맞았다.
어깨가 쑥 빠졌다. 허성관의 주먹이 꽂히기 전에 스스로 마기를 이용, 어깨뼈를 탈골해 버린 것이다.
탈골되지 않았다면 근육이 충격을 흡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섬뜩한 기지였다.
이천상이 발이 수직으로 솟구쳤다.
빠각!
초근접 거리에서 올려 친 각법에 허성관이 피를 토하며 뒤로 튕겨 나갔다. 강인한 하체 근육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유연성이었다.
이빨 몇 개가 날아가고 턱 전체에 금이 간 허성관이 고개를 내리는 순간, 이천상의 좌측 어깨도 본래대로 돌아왔다. 근육과 신경이 조금 다쳤지만, 충분히 참을 만했다.
훅!
칠보군림의 삼보로 허성관을 스치듯 지나가니, 어느새 그의 복부에 깊은 도상이 새겨졌다.
도상이 새겨짐과 동시에 빠르게 아물어 버린다. 내장이 튀어나올 새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혈강기의 방어력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부족해.’
이러다간 한도 끝도 없다.
저 무시무시한 내공이 다 떨어질 때까지 베고 또 베면 이길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버틸 자신이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목을 치는 것이지만, 가슴 위의 방어와 회피만큼은 철저했다.
허성관이 다시 한번 손을 휘둘렀다.
이제는 광양혈조가 아니라 혈강수였다. 혈수신마의 악명 높은 전설을 그대로 구현하는 허성관, 광마(狂魔)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천상이 빠르게 칠야도의 도첨으로 허성관을 겨누었다.
퍼퍼퍼퍼펑!
지옥도에서 혈풍오식으로.
다섯 줄기 핏빛 돌풍이 허성관의 몸뚱이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이천상의 좌측 손가락이 움직였다.
타아아아앙!
마선탄지공의 지풍이 허성관의 우측 무릎 관절을 그대로 관통했다.
달려들던 허성관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왼 다리에 강한 힘을 주고 날아오는데, 그 속도가 조금 전과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자세가 무너졌기에 투로 또한 뒤틀렸다. 할퀴듯 휘둘러진 허성관의 손에서 뿜어진 경력이 이천상의 어깨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거다.’
공격이 뚫린다는 것.
그리고 상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
‘평범한 적을 다루듯 공격하면 안 된다.’
칠야도가 다시 허성관을 향해 겨누어졌다.
지이이이이이잉!!
혈풍오식의 연환.
다섯 줄기의 돌풍이 꿈틀거리며 또 다른 돌풍을 만들어 냈다. 총 열 발의 혈풍도(血風刀)였다.
퍼버버버버벅!!
양어깨와 양 무릎, 양 발목과 양 손목, 그리고 고관절 두 곳을 뚫고 들어간 혈풍도격이 씻은 듯 사라졌다.
쾅!
관절이 파괴되니 움직일 수가 없다. 바닥에 처박힌 허성관이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초고속 재생으로 이내 살과 뼈가 아물었다.
‘그 전에 머리를!’
벼락처럼 빠르게 다가온 이천상이 허성관의 목을 향해 칠야도를 휘둘렀다.
그때였다.
푸스스스스!
허성관의 몸에서 솟구친 붉은 마기가 구름처럼 변하며 이천상의 몸을 휩쓸었다.
서걱!
떨어진 칠야도가 허성관의 귀 하나를 잘랐다.
이천상의 눈이 번쩍 뜨였다.
느닷없는 혈강기의 기습으로 자세가 틀어져 목을 베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후우우우우웅!!
허성관의 몸에서 뽑혀 나온 혈강기의 마기가 이천상의 모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강물이 거대한 바다로 흘러드는 것처럼.
마치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어미의 젖을 찾는 것처럼.
허성관의 수준 낮은 혈강기가 이천상의 압도적인 신기(神氣)의 근간이 된 혈강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