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903
외전 253화. 승리 속의 살의 (3)
퍼어어엉!
시원한 폭음과 함께 조원의 팔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다.
손가락질 한 번에 어깻죽지가 폭발한다. 지풍(指風)임이 분명한데도 마치 벽력탄을 터트린 것만 같았다.
‘강하다.’
밀마 이 조장의 얼굴이 공포와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렇게 강할 수가!’
쩌저저정!
조원들이 원형을 이루며 공격하고 있었지만, 저 기묘한 청년은 놀라운 몸놀림과 무서운 마공으로 그 모든 공격을 막거나 회피했다.
더 경악스러운 건 상대가 백소담을 업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고수의 내공은 천 근의 무게도 들 수 있게 하지만, 사람을 업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넘치는 내공의 힘으로 무게를 줄일 수는 있겠으나, 움직임 자체의 섬세함을 크게 줄이는 요인이 된다.
즉, 아무리 경지 차이가 나는 고수라도 사람 하나를 업고 싸우면 전투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심지어 의식이 있어 행동을 돕거나 전투를 보조하는 것도 아니고, 반쯤 기절한 상태로 흔들리는, 송장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
‘한데도 어떻게!’
훅!
유이상의 몸이 순식간에 조원 하나의 뒤로 돌아갔다.
믿을 수 없는 몸놀림이었다. 분명 한 걸음이었다.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았고 적의 인기척이나 특유의 기도가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한데도 놓쳤다. 사람의 인지 능력을 벗어난 움직임, 술법이라 해도 믿을 만큼 기괴한 보법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이상에게는 저 신기(神技)의 보법 외에, 짝을 찾기 어려운 강력한 기공술이 있었다.
콰앙!
뺨을 날리듯 아무렇게나 휘두른 일장(一掌)에 뒤를 잡힌 조원의 몸뚱이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그 잔혹함이 상식을 초월했다. 그리 역동적인 동작도 아닌데 일격을 맞으면 사람의 몸이 흙더미처럼 부서졌다.
이 조장은 밀마조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심마!’
적을 앞에 두고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하물며 이곳에는 충성을 바친 주군도 있다. 못난 주군이라도 한번 충성을 바쳤다면 마땅히 목숨까지 바쳐야 한다.
그가 분연히 외쳤다.
“밀마섬진(密魔殲陣)으로!”
얼마 남지도 않은 조원들이 서로 진기를 공유하며 반월의 형상으로 유이상을 마주했다.
유이상의 눈이 반짝였다.
‘확실히 실력들이 좋아.’
얼핏 봐도 다수를 상대하는 진법이다. 상대 조직의 완전한 궤멸을 목표로 할 때 쓰는 진법임이 분명했다.
당연히 내공과 체력 소모가 극심할 것이다. 그런데도 단 한 명을 위해 저 진법을 썼다는 건, 진세(陣勢)로 상대의 기도를 묶어 어디로도 도망치지 않게 하겠다는 의도였다.
‘보법부터 봉쇄하고 파괴력 넘치는 기공술로 상대하시겠다?’
멋진 판단이었다.
하지만 유이상은 자신이 익힌 무공이, 저 자소대마와 음야신마의 도움으로 연성하게 된 이 절대의 무공이 저깟 진법 따위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곧 현실이 되었다.
유이상이 다시 일보를 밟았다.
지잉!
보이지 않는 진세의 그물이 유이상의 몸 전체를 거미줄처럼 묶었다.
하지만.
파앙!
너무도 쉽게 진세를 깨부수고 밀마 이 조 측면으로 다가간 유이상이 오른손을 들었다.
이 조장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산개해라!”
“늦었어.”
유이상의 손이 고고하게 움직였다.
후우우웅! 콰르릉!
무시무시한 마기가 휘몰아쳤다.
마치 보법처럼, 팔이 움직이는 속도 자체는 그리 빠르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그 손은 끝까지 뻗어 자욱하게 일어난 마기의 먹구름을 퍼트리고 있었다.
천둥 벼락을 동반한 공포스러운 수공(手功).
공간마저 일그러지는 듯했다. 물결치듯 퍼져 나가는 거대한 힘의 흐름이 산개하는 밀마조원들을 한데 묶어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직은 하늘을 능가하지 못한,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능가하고야 말겠다는 마라(魔羅)의 무공이었다. 당대 그 전설을 아는 자가 없지만, 과거 천마의 시대를 살아가던 누군가가 본다면 만압(卍壓)의 힘과 함께 천마의 권위를 상징하는 절대 무공이라며 경배할 극한의 수공이 펼쳐졌다.
콰드드드득!!
요란한 천둥소리는 시전할 때를 제외하곤 없었다.
폭음을 대신하는 그 소리는 인간의 육신이 빙과처럼 부서지는 파육음이었다.
그 일격은 조원 둘을 제외한 모두를 으깨 버리고 사라졌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무적의 수공, 힘의 흐름 그 자체를 상징하는 천마의 무공이었다.
달려들어 조원들을 도우려던 이 조장조차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유이상을 바라보았다.
‘후욱.’
유이상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빌어먹을, 너무 무리했어.’
군사부에서 자신보다 강한 작자와 합을 나눴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충격이었다.
아주 약간의 내상이었지만, 회복도 못 하고 몇 번의 군림보법(君臨步法)과 극천악마수(克天惡魔手)를 펼쳤다. 군림보법도 그렇지만, 아직 안정적이지 못한 극천악마수는 내공 소모가 극심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지금 백소담을 업고 싸우고 있었다.
내 몸이 상하는 것도 문제지만, 눈먼 칼에 백소담이 당하면 그거야말로 큰일이다. 자신도, 업고 있는 백소담도 모두 무사하기 위해선 이 전투를 조금이라도 빨리 끝낼 필요가 있었다.
훅!
흑마대의 마공을 버리고 새로이 연마한 음야신마의 마공, 신야마공(神夜魔功)의 기파가 파랑을 일으켰다.
멍하니 유이상을 보던 이 조장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놈을 붙들어라! 나는 총군사님을 모시고 가겠다!”
남은 조원 두 사람이 아연실색했다.
이 조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나라도 살아야 한다.’
조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했다. 이럴 바에야 주군을 모시고 도주하는 게 낫다. 말을 안 들으면 뒤통수를 갈겨 기절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도주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너무 늦었다.
적어도 이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결정했어야 할 일을 싸움 도중에 한 것은, 그만큼 그의 정신이 피폐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유이상은 적의 심리를 너무나도 손쉽게 꿰뚫어 보았다.
번쩍!
군림보법의 육보(六步)로 이 조장의 앞에 선 유이상이 강하게 말아 쥔 주먹을 휘둘렀다.
사아아악!
주먹 전체에서 어두운 광채가 휘몰아쳤다.
그가 배운 무명무공 중 하나로, 극천악마수보다 먼저 익혀 훨씬 더 안정적인 출력과 내공 운행이 가능한 마황권(魔皇拳)이었다.
이 조장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본능적으로 칼을 휘두르려 했지만, 이미 상대의 권력(拳力)이 가슴 앞으로 다가온 걸 보았다.
‘안……!’
콰득!
흉골을 부수고 심장과 폐장까지 박살 낸 권력이 이 조장의 육신을 저 멀리 조원들 앞으로 날려 보냈다.
“쿨럭!”
무리한 내공 운용에 피 섞인 기침이 튀어나왔다.
유이상은 개의치 않고 발을 들었다. 이미 기세를 잡았다. 여기서 끝내지 못하면 고작 둘을 상대로 난전을 펼칠 위험이 있었다.
쿵!
강한 진각과 함께 또 한 번 마황권의 권풍이 뿜어졌다.
좌우로 찢어져 흩어지려던 조원들은 순간 누가 잡아끌기라도 한 듯 중앙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상황에 극한의 공포를 느꼈다.
“안 돼!”
퍼억!
중앙에서 폭발한 권풍이 조원 둘의 머리통을 으깨고 사라졌다.
“허억! 허억!”
유이상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짧지만 폭발적인 무공들을 너무 많이 구사했다. 내공 소모가 극심한 탓에 호흡조차 흐트러졌다.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서둘러 호흡을 정리한 뒤, 상체를 일으키던 그때.
후우우우웅!!
섬뜩하기 그지없는 기파에 유이상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때, 그는 보았다. 총군사 허성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마기가 이천상의 모공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을.
유이상의 눈이 흔들렸다.
‘흡정마공(吸精魔功)?!’
마도 무림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괴공(怪功)이 있다고 들었다. 타인의 내공을 빨아들여 자신의 힘으로 뒤바꾸지만, 내력 충돌로 인해 대다수가 폐인이 되어 버린다는 극악한 공부였다.
‘설마 흡정마공을 제대로 익혔나? 그래서 저렇게 강해진……?!’
그때였다.
파아악!
기묘한 소리와 함께 이천상이 비틀거렸다.
붉은 마기 특유의 사악하고 거친 기세는 모조리 사라진 뒤였다.
‘아, 흡정마공이 아닌가?’
빨아들인 상대의 마기를 한순간에 잠재우는 것은 누구라도 불가능하다. 극마에 이르렀다면 또 모를까.
유이상은 이천상의 모종의 방법으로 허성관의 마기를 모조리 흩어 냈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혈강기의 기묘한 기질을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후우.”
가볍게 숨을 몰아쉰 이천상은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흡수했다. 아니, 알아서 흡수되었어.’
처음 몸으로 들어오는 순간에는 몰랐지만, 빨려 들어온 혈강기가 순식간에 상단전으로 들어와 또다시 불그스름한 성벽을 만들어 내자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미완성의 마공이라지만, 정말 기묘하군.’
혈강기는 그 어떤 마공보다도 독존(獨存)의 성질이 강하다.
혈강기를 지닌 두 사람이 싸우면, 보다 더 약한 혈강기가 강성의 혈강기를 품은 그릇으로 스며든다. 그것은 의도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렇게 되는, 혈강기만의 순리였다.
울컥, 울컥.
놀랍게도 상단전으로 올라와 또 한 번 성벽을 만든 혈강기는 서서히 무색투명한 마기로 변해 중단전과 하단전으로 내려갔다.
혈강기가 진마기로 변하고 있다. 극미량에 불과하지만, 성벽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만의 깨달음으로 혈강기를 완전히 자신의 힘으로 바꾼 전력이 있는 그였다. 새로운 혈강기 역시 그 흐름에 따라, 새 육신의 주인이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분해하여 새로운 터전의 힘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도저히 미완의 무공이라고 볼 수가 없군.’
마치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이천상은 알 수 없는 껄끄러움을 느꼈다.
‘나중에 살펴봐야겠어.’
또 한 번 숨을 고른 이천상이 허성관을 내려다보았다.
“하악, 하악.”
허성관의 호흡은 지극히 약해져 있었다.
혈염돌풍마공의 진기는 그대로지만, 원정지기가 깨져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빠져나가는 과정을 돌풍마기가 막고 있었다.
어느새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해 푸석푸석했고, 살도 조금 더 빠진 것 같았다.
툭.
혼혈을 짚어 허성관을 기절시킨 이천상이 고개를 돌렸다.
유이상이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이오.”
“도와줘서 고맙소.”
“고맙긴 뭘. 나도 명령받고 움직이는 처지인데.”
이천상은 그가 누구에게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 묻지 않았다.
“원주님을 이리로.”
유이상이 조심스레 줄을 풀어 백소담을 눕혔다.
그녀의 몰골은 끔찍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당한 건 아니지만, 평소 워낙 미려하고 깔끔한 외양이라 상대적으로 더 처참하게 느껴졌다.
“원주님.”
백소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천상은 서슴없이 그녀의 맥문을 쥐고 진마기를 쏟았다.
유이상은 깜짝 놀랐다. 성질이 다른 마기를 쏟아부으면 내력 충돌로 위험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천상의 능력을 믿었기에 일단은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후우.”
백소담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피 냄새를 진득하게 머금은 한숨이었다.
“정신이 듭니까?”
“……이천상.”
“예, 접니다.”
힘없이 눈을 뜬 백소담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왜 이런 짓을 했어요. 당신도 위험한데.”
“술 마시면서 했던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지켰으니, 다음에 당신이 나를 지켜 주라는 그 말.
농담처럼 뱉은 그 말을, 진짜로 이행하려고 왔다는 것이다.
백소담은 백골신마의 말을 떠올렸다.
– 나는 말일세, 이 나이 먹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봐 왔네. 하지만 전대 교주님께서 살아 계셨을 때도, 혈육도 아닌 내 사람을 위해 조직을 이 정도로 뒤집어 놓은 사람을 본 적이 없네.
– 그놈의 행동은 곧 그놈의 가치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야. 그래서 내, 그놈을 가만 놔둘 수가 없네.
그녀의 시야가 일순 뿌옇게 흐려졌다.
“나도 그대 사람인가요?”
이천상의 대답은 놀라우리만치 무뚝뚝했다.
“돈줄이십니다.”
“……킥.”
“다음 술은 원주께서 사십시오.”
“이번 일이 잘 처리되면요.”
백소담이 눈을 감았다.
“우리가 모두 무사해지면, 꼭 사지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