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918
외전 268화. 음지의 혈전(血戰) (3)
송하의 눈을 본 이천상은 생각했다.
‘위험하군.’
붉게 충혈된 눈동자는 숨 막히는 마기로 가득했다.
저런 마안(魔眼)을 갖고서 어떻게 이리도 기척을 잘 숨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살기를 넘어 광기로 얼룩진 두 눈은 분명한 의도를 비치고 있었다.
‘분명 강해지기도 했지만.’
처음 싸웠을 때보다 더 강해졌다. 초절정의 영역까지 몇 걸음 남겨 두지도 않았다.
그 몇 걸음이 고수들 사이에서는 정말 크다. 실전에서는 모든 것이 변수로 작용하지만, 순수한 실력만으로 보자면 한 수 차이로도 승패의 간격이 급격하게 벌어지는 게 고수들의 싸움이다.
하물며 이천상은 초절정의 영역에 올라, 내전의 어떤 고수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무공을 얻었다. 실력적인 부분에서야 아직 백소담이나 서필보다 아래일 수는 있어도 무명무공을 드러내면 그 이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도 있으며, 실제로 허성관을 그렇게 이겼다.
지금의 송하로서는 어지간히 큰 변수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이기기 힘든 상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천상은 송하와의 싸움에 제대로 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넘어서기 힘든 실력 차이를 줄일 만한 변수 없이 이곳에 왔을 리가 없다. 자신의 실력을 알고 있으니, 그 차이를 줄일 방법을 다 갖고서 이곳에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천상은 한 번 더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싸우고 싶다면 내 일부터 처리하고 얼마든지 싸워 주겠다. 그러니 지금은 얌전히 물러나 줬으면 한다.”
“허, 그래?”
송하가 잡은 검을 빙글빙글 돌렸다.
검집째로 쥔 검이었다. 위험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것참 고맙기 짝이 없는 제안이네. 그런데 말이야.”
송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너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지?”
“…….”
“그냥 너는 너 할 일을 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테니까. 그럼 되잖아?”
“그런가?”
결국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자신보다 분명한 하수라고는 하나, 혈혼각에서 송하가 미쳐 날뛰기 시작하면 죄 없는 마인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제 몸이 거의 다 회복된 백소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이천상은 그럴 수 없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시간, 그 잠깐 새에라도 관련 없는 사람이 다친다면 결국 그의 잘못이다. 여기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거기까지 가지고 가는 셈이니까.
“알겠다.”
이천상의 눈빛이 바뀌었다.
“시작하지.”
번쩍!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천상이 돌진했다.
북천마혜보로 질주하며 매섭게 칠야도를 휘둘렀다. 송하가 반응하기 힘든 박자로 치고 나가 구사한 일참(一斬)이었다.
일격에 끝낼 작정으로 내친 일도는 상상하기 힘든 힘을 담고 있었다. 송하의 표정에 놀라움이 어렸다.
그때였다.
송하의 코앞에 투명한 무언가가 올라왔음을 본 이천상은 본능적으로 마기를 더하고 관절에 힘을 풀었다.
콰앙!
폭음과 함께 이천상의 몸이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칠야도를 쥔 손바닥에 강한 충격이 올라왔다. 마치 소형 화탄을 내리친 것 같은 충격이었다.
“역시!”
파박!
또다시 송하가 숲으로 모습을 숨겼다.
다른 걸 떠나 저 신법은 정말 골치가 아플 것 같았다.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쫓아가 죽이려 할 때는 칠보군림으로도 소용이 없었다. 거리가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기습을 날릴 줄 알았지. 네놈은 합리적인 성격이니까.”
숲 전체에서 송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게 무슨 폭발이지.’
이천상은 송하의 목소리 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중요한 건 송하의 몸을 둘러싼 투명한 막이었고, 그 막이 칠야도의 일격을 막아 냈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칠야도를 막아 낸 게 아니었다.
‘먼저 터졌다.’
폭발의 압력으로 칠야도부터 자신의 몸뚱이까지 튕겨 나간 것이다. 진짜 벽력탄이었다면 이천상도 멀쩡할 순 없었을 테다.
‘폭약 등의 외물 따위가 아니야. 이건 기공(氣功)이다.’
폭약 특유의 냄새나 흔적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퍼져 나간 기운에서 강렬한 마기가 느껴졌다. 그 마기가 어느 정도냐면, 순간적으로 초절정고수가 뿜는 발경술에 필적할 정도였다.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나도 그랬으니까.’
경지는 그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어떠한 요인으로 인해 무공의 위력이 폭증할 때가 있다.
그 또한 상대에게 변수라면 변수일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그러한 변수를 일으킨 게 자신이었다면, 지금은 적이 변수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이천상은 아무런 유감도 느끼지 못했다.
“이번의 대화, 그리고 첫 일격으로 확신했다. 내가 가지고 온 방법이 네놈에게 충분히 통하리란 걸.”
여전히 숲을 울리는 목소리.
기척도 기척이지만, 이 목소리 때문에 송하가 어디에 있는지 추적이 안 된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은신술과 기묘한 음공(音功)을 배워 왔는지 모르겠다.
숲 전체를 모조리 날려 버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너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지. 너, 혈혼각에 아끼는 사람이 있다며?”
“……!”
“네 일 때문에 관련 없는 사람이 피해 보는 것도 싫어하는 것 같더군. 참 의외야.”
순간 이천상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번쩍! 콰르릉!
휘두른 일도에 혈풍오식의 힘이 담겼다.
강렬한 피비린내와 함께 쏘아진 다섯 줄기 도풍이 거목 다섯 그루를 산산이 박살 냈다.
당연히 그곳에 송하는 없었다. 숲 자체가 제법 크고 깊었다.
송하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이제부터 혈혼각을 폭파하러 갈 거야.”
이천상이 혈혼각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의 마안(魔眼)이 어느새 하나의 점으로 변한 송하의 육신을 포착했다. 그토록 멀리 떨어졌는데, 어찌 이곳에서 그녀의 음성이 들리고 있을까?
“그곳을 우리의 전장으로 삼겠어.”
파아아아앙!!
폭발하는 진마공.
이 경지에 오른 후, 그야말로 있는 힘을 다해 경공을 펼치는 이천상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그토록 빠른 속도로도 송하를 추월하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겨우 비슷한 속도를 내는 정도다. 최고 속도는 어느 정도 비등하지만, 송하는 평상시 신법 속도 자체가 이천상보다 우위에 있었다.
점에서 살짝 커진 송하의 모습, 그러나 그 이상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진심이군.’
송하가 향하는 방향에는 혈혼각이 있었고, 그녀의 경공이 의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혈혼각에 뛰어들어 싸울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관계없는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아무 죄책감 따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이제 사람의 감정에 대해 충분히 아는 이천상으로서도 자신을 향한 송하의 광기 어린 집착을 알기 힘들었다.
오히려 과거, 감정을 모를 때라면 이런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나를 괴롭히기 위함은 아니다. 저 여자의 목표는 날 죽이는 것. 혈혼각을 전장으로 삼은 건 나의 빈틈을 끊임없이 찾아서 철저히 죽이겠다는 작전이다.’
이 싸움이 설령 상대의 승리로 끝난다 해도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송하는 잡힐 테고, 아무런 이유 없이 혈혼각의 의원들과 환자들을 죽인 죄를 물어 중형에 처해질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는다.’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나의 목숨에 인생을 걸었는가.’
물론 이천상은 동준 등, 송하가 누군가와 손을 잡고 자신을 공격할 거란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파파파팡!!
더더욱 출력을 올리니 안 그래도 빨랐던 경공에 불이 붙었다.
이천상은 속이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한계를 넘어선 내공 운용으로 경공의 속도를 강제로 올렸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진마공을 익힌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마공을 익혔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불가능했을 것이고, 설령 가능했다 한들 내상으로 그 자리에서 피를 토했을 것이다.
그렇게 이천상은 점점 송하와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가까워질 듯 끝까지 공격 범위에 닿지 않은 송하는, 어느새 혈혼각의 외벽 앞까지 도달했다.
파아아아앙!
외벽 끝을 밟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송하가 검집째로 뽑은 검을 쳐들었다.
“우리만의 폭죽을 울려 볼까.”
그녀가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검집이 혈혼각 중앙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이천상의 왼손이 전방으로 향했다.
타아아아앙!!
급하게 쏘아 낸 마선탄지공 두 줄기가 벼락이 되어 검집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늦었다. 검집은 이미 혈혼각 중앙, 아무도 없는 땅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콰아아앙!
폭발과 함께 폭심지와 가까운 건물 하나가 부서지며 화마(火魔)가 치솟았다.
“으아아악! 뭐, 뭐야?!”
“불! 불이다!”
“이런 빌어먹을! 물 가져와!”
이천상의 눈이 흔들렸다.
‘폭약!’
자신의 칼을 막은 기공술은 폭약이 아니었지만, 검집 안에는 폭약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도 그냥 폭약이 아니라 벽력탄 두세 발에 준하는 위력을 지닌 폭약이었다.
어디서 그런 물건을 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도 아니었다.
파아아아악!
서둘러 외벽을 넘어간 이천상은 어느새 송하가 또 기척을 숨긴 채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기감을 열어 송하의 기척을 찾으려던 이천상은 문득 무너진 건물 뒤, 누군가가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았다.
이제 스물도 안 된 젊은 의생이었다. 특히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부러져서 꺾인 방향을 보니 다 나아도 똑바로 걸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훅!
재빨리 의생에게 달려간 이천상이 의생의 다리를 살폈다.
“사, 살려 주세요.”
“기다리시오.”
그때였다.
피이잉!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쏘아진 비수 하나가 이천상을 향해 날아왔다.
본능적으로 비수를 쳐 내려던 그는 순간 드는 생각에 의생을 안고 뛰어올랐다.
콰앙!
역시나 그러했다. 비수가 박힌 곳이 폭발하며 건물의 기둥 하나를 부숴 버렸다.
이천상의 눈에 살벌한 마기가 실렸다.
‘폭혈마공.’
자소대마 연등의 마공이었다. 그 얼마 안 된 사이에 폭혈마공의 수준도 상당히 끌어올렸다.
일대일 승부라면 별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차별 학살에 있어 폭혈마공의 힘은, 어떤 의미로는 신교 최고를 논할 만했다.
“역시 감이 좋아. 빨리빨리 몇 방 맞으면 다치는 사람도 줄어들 텐데.”
이천상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대일 승부로 이길 생각이 아니라, 어떻게든 날 죽이면 그만인 거로군.”
“결국 살아남은 놈이 이기는 거지.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그게 싸움이라는 거잖아?”
콰앙!
또다시 건물 하나가 화마에 휩싸였다.
도대체 몇 개의 화약을 갖고 왔는지, 몇 자루의 비수를 들고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화약이 터지며 또 비명이 울렸고 의생들은 물론 그곳에 있는 환자들도 피를 토하며 죽어 나갔다.
초절정고수의 기감으로도 잡히지 않는 놀라운 은신술, 그리고 따라잡기 힘든 신법.
그 두 가지 무공만으로도 수준 차이가 심하게 나는 적을 농락할 수 있다. 맞서 싸우는 게 아닌 죽이는 게 목적이라면, 적의 심리까지도 이용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러나.
이천상은 이런 것을 승부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동시에, 자신이 이런 승부 같지도 않은 승부 속에 던져졌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깨달았다.
“생사를 가르는 싸움이라…….”
이천상이 의생을 내려다보았다.
폭발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의생의 얼굴에는 허무함만이 가득했다.
탁 트인 안전한 곳에 의생을 내려놓은 이천상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어울려 주지, 이 싸움.”
입장료로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으니, 저승으로 가는 입장권은 그녀의 목으로 끊어야 할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