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920
외전 270화. 음지의 혈전(血戰) (5)
송하의 마안이 번뜩였다.
‘드디어 제대로 싸울 마음을 잡았나.’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방에서 갖은 비명과 곡소리가 난무했다. 혈혼각 전체에 난리가 난 것이다.
그러나 송하의 눈은 철저히 이천상만을 향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마기를 발산하는 이천상은 마치 사냥감을 잡기 위해 몸을 푸는 사냥꾼 같았다.
‘어디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봐라. 네놈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 주마.’
그때였다.
휘이잉!
한 줄기 바람이 시커멓게 올라오는 연기를 동쪽으로 옮겼다.
흩어지는 연기가 송하의 시야를 잠깐 가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
이천상이 사라졌다.
‘어디로?!’
송하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당연히 이천상은 없었다. 후방은 물론 좌우를 봐도, 심지어 하늘 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귀신처럼 사라져 버렸다. 조금 전까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강렬한 마기도 암살자의 기도처럼 잠잠했다.
‘연기가 내 시야를 가리는 순간에 사라졌다. 그 뜻은, 놈도 내가 어디 있는지 대략적으로 유추했다는 뜻.’
설마하니 이 은신술이 들킨 것일까?
송하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조금 전에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지금이라고 알 수는 없다.
‘비수를 던진 방향을 보고 알아챈 것도 말이 안 돼. 나는 매 순간 다른 방향에서 비수를 던졌다. 끊임없이 움직였어. 놈은 절대 내 위치를 잡지 못했을 텐데.’
송하는 긴장하며 주위를 살폈다. 수축하여 인기척까지 완전하게 말살한 폭혈마공을 미세하게 운용, 기감을 더 확장했다.
‘도대체가…….’
여전히 잡히는 곳이 없었다.
‘도망칠 놈은 아니다. 어디에선가 내가 나타나기를 주시하고 있어. 그렇다면…….’
은신술과 신법으로는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 설령 공격이 시작되어도 섣불리 잡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그녀 역시 목숨을 걸어야겠지만.
‘목숨 따위는 진즉에 걸었어. 중요한 건 이기는 거다. 지고 죽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송하는 이내 목표지를 정했다.
‘저기.’
혈혼각 중앙에 가까운 곳.
외곽에서 난리를 피워 봤자 혼란이 크진 않을 것이다. 혈혼각 중심지에서 난장을 피워야 혈혼각 전체가 뒤집힌다.
‘좋아. 저곳도 전장으로 만든다.’
그렇게 다짐한 순간.
‘…….’
송하는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이대로 일을 진행해도 괜찮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놈이 정면 승부를 걸면 거리를 벌려 다시 은신할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그놈 역시 뭔가 생각이 있으니 이렇게 기척을 숨기고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어지간한 놈이라면 이런 생각도 안 했다. 스스로의 파멸과 맞바꿀 정도로 잡고 싶은 놈이라 더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이천상이 어떻게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사라졌는지가 궁금했다.
조금 더 고민한 송하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이대로 숨어 봤자 아무 의미도 없어. 가중되어야 할 혈혼각의 혼란이 잦아들기만 할 뿐이다.’
그녀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훅!
지붕과 지붕 사이, 그림자 진 곳을 절묘하게 타고 이동하는 그녀의 몸놀림은 실로 대단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암살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데도 가장 이상적인 장소를 골라서 움직인다. 심지어 이동할 때마다 바람의 방향과 공기의 흐름까지 염두에 두고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 압권이었다.
본능으로 깨우치는 암살의 재능.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마공보다 암살 교육을 전문으로 받았다면 훗날 세상이 두려워할 살수지왕(殺手之王)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은신에 능한 암살공도 배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후우.’
어느새 그림자 속으로 숨어 호흡을 고른 송하는 폭혈마공을 재점검했다.
‘좋아. 잘 유지되고 있어.’
폭혈마공은 신교의 마공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거칠고 사나웠다.
하지만 송하는 폭혈마기를 정반대로 운용해, 그 강력한 기세를 한 점으로 압축시켜 인기척은 물론 생기(生氣)까지 없애 버리는 기술을 발견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그렇게나 사납고 폭발적인 마공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이런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녀보다 강한 자들은 많지만, 달리 천재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신교 정상급 마공을 스스로 개조해 원작자조차 생각한 적 없는 운용 방식을 몸에 붙여 활용한다는 건 창의성, 굴강한 신체, 압도적인 내공 운용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속적인 가르침 없이도 스스로 발전하여 정상에 도달하는 비인의 존재들.
연등이 그녀에게 자신의 마공을 전수한 것도 당연했다.
‘다시 간다.’
훅!
건물과 건물 사이로 이동하며 순식간에 혈혼각 중앙 인근으로 접근한 그녀가 품에서 엄지손톱보다 큰 시커먼 구체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이게 마지막이군.’
흑마대가 가장 위험한 임무를 나갈 때 지급되는 소형 벽력탄이었다.
인당 하나가 지급되며 심지어 조장 이상만이 관리할 수 있다는 위험 품목이었다.
‘자, 다시 시작이다.’
차갑게 웃은 송하가 두 발의 벽력탄을 강하게 내던졌다.
피이잉!
벽력탄인데도 공기를 찢는 소리가 엄청났다. 허공에서 폭발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쾌속한 투척이었다.
던지자마자 우측 건물로 이동한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터진다.’
하지만.
‘……?’
송하의 눈이 커졌다.
‘뭐야? 왜 안 터져?’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투둑.
섬뜩한 소리와 함께 던졌던 벽력탄이 그녀가 숨은 건물과 그 옆 건물 사이로 떨어졌다.
송하가 저도 모르게 외쳤다.
“빌어먹을!”
파악! 콰쾅!
신법을 펼침과 동시에 폭탄이 터졌다.
강력한 폭발에 건물 두 개의 외벽이 부서졌다. 크기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화력이었다.
송하 역시 멀쩡하지는 못했다. 서둘러 신법을 펼쳤지만, 폭발의 압력으로 등판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미친 듯이 땅을 구르며 충격을 분산한 송하가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등이 엄청나게 뜨거웠지만, 화상이나 골절상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안심할 수가 없었다.
‘온다!’
훅!
고개를 쳐들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한 남자가 보였다.
이천상이었다. 어느새 오 장 앞까지 도달한 그는 칠야도를 들고 있었다.
‘젠장!’
쉬익! 콰릉!
내리친 일도에 땅거죽이 뒤집혔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도격이었다. 범위는 넓지 않았지만, 속도가 빠르고 기세가 압도적이었다.
이 한 수로 송하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아예 없다는 걸. 폭혈마공의 비장혈막(秘裝血膜)으로도 상대를 날려 버릴 수 없을 것이다.
파바박!
혼신의 힘을 다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건넌 송하가 비수를 끄집어냈다.
우우웅!
순식간에 폭혈마기가 담긴다. 폭혈마공 중에서도 내공 소모가 심하다는 수법, 비폭산(飛爆散)이었다.
건물을 무너트려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러기엔 상대가 너무 가까이 다가왔다.
송하가 손목을 짧게 털었다.
피이이잉!
두 자루 비수가 화살처럼 날아갔다.
한 자루는 미간, 한 자루는 가슴이었다. 즉각적인 반응이 힘든 박자에다 부위였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치링.
이천상의 왼손이 순식간에 위부터 아래를 훑었다. 그러자 어느새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부르르 떨리는 비수 두 자루가 있었다.
송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어떻게?!’
비폭산으로 날아간 비수는 타격 지점에서 폭발하는 성질을 지닌다. 당연히 발경의 해제는 불가능했다. 시전자도 막을 수 없었다.
한데도 놈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비수를 낚아챘다. 폭발도 없이!
쿵!
이천상의 발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번쩍!
두 배는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간 비수가 송하의 등과 허벅지를 노렸다.
송하는 본능적으로 우측으로 움직였다. 비수를 날리는 동작을 취한 순간 움직인 것이다.
그때였다.
콰아앙!
“크윽!”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자마자 건물 외벽을 뚫고 날아온 도기에 격중당했다.
검으로 막지 않았다면 팔이 절단되고 갈비뼈가 날아갔을 터. 그걸로 승부가 났을 것이다. 송하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힘만 센 무식한 새끼!’
그러나 다행이었다. 건물이 많고 길도 구불구불하며 결정적으로 의원과 환자들이 튀어나와 점점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싸움을 벌이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송하는 폭혈마공을 역으로 운용하며 기척과 생기를 죽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콰앙!
“커억!”
강렬한 폭음과 함께 송하가 땅으로 떨어졌다.
“쿨럭!”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다. 한 움큼 피를 토한 송하는 또다시 우측으로 움직였다. 본능적인 대처였다.
그러나.
‘……!!’
뒤를 쫓아오던 이천상이 어느새 돌아가려던 길목에서 나타났다.
‘이런 미친!’
이천상의 칠야도가 한 줄기 벼락을 그렸다.
송하 역시 폭혈마검의 초식을 펼쳤지만, 몰아치는 파도를 종이 한 장으로 막는 격이었다.
콰앙! 째앵!
검이 부러지고 날아간 송하가 건물 벽에 처박혔다.
은신을 펼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허공에서 맞은 장력, 그리고 이번 도격을 맞으면서 엄청난 내상을 입은 탓이었다.
‘도대체가…….’
송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 이전에, 어떻게 이천상이 자신의 눈에서 사라졌는지, 벽력탄은 어떻게 낚아챘는지, 비수는 물론 자신이 도주할 방향을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다 궁금했다.
“유이상, 그 사람을 봐서 안다. 너는 암살 교육을 받은 적이 없군.”
송하가 창백한 얼굴로 이천상을 노려보았다.
이천상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움직임이 대단히 정석적이었다. 긴가민가했는데, 실력 있는 암살자들이 몸을 숨길 법한 곳으로 절묘하게 이동했어.”
“……!”
“좋은 재능이었다.”
송하의 얼굴에 허탈함이 일었다.
“내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다 알고 있었다고?”
“그렇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혈혼각은 몇 번씩 와 본 곳이다. 어디에 어떤 길이 있는지는 다 알아.”
“……뭐?”
“너와도 한 번 싸워 봤지. 너의 움직임, 버릇, 다급해질 때의 방향 전환을 어디로 하는지도 다 머릿속에 들어와 있다.”
“……!!”
“조건들을 취합해 계산하면 너의 움직임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아.”
송하가 입을 쩍 벌렸다.
어렵지 않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혈혼각의 너비와 복잡함을 생각하면 고작 몇 번 왔다고 길과 건물을 다 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오래전에 싸웠던 자신의 움직임과 버릇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이 미친 괴물이……!”
하늘 위에는 하늘이 있다고 하였다.
천재 위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또 다른 천재가 있는 법이다. 송하의 재능 역시 백년지재라 할 만했지만, 이천상에게는 다다르지 못한다.
타고난 재능이든 후천적으로 얻은 능력이든, 가진 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자야말로 천재라 불릴 자격이 있는 법.
“이년인가요?”
스르륵.
마치 선녀처럼 새하얀 옷을 걸치고 내려온 백소담이 송하 옆에 섰다.
송하의 눈이 부릅떠졌다.
“환희원주?!”
퍼어어억!
백소담의 발길질에 얼굴을 맞은 송하가 바닥에 쓰러졌다.
신음을 흘리면서도 이천상을 올려다보는 송하의 눈동자는 독기로 가득했다.
“이게…… 무슨 비겁한…….”
“싸움이란 쓸 수 있는 모든 패를 써먹는 것이다.”
이천상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 싸움은 내 싸움에 비해 가벼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