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05
“크으윽……!”
남궁세가의 현 가주 남궁용은 신음을 삼키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눅눅하기 짝이 없는 곳, 불어오는 바람은 그들의 체온까지 식혀 버리며, 누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의 돌들은 날카로웠다.
이곳은 어디인가?
안휘 일대 어딘가 있는 동굴인 것 같다.
그러나 정확한 것을 파악할 수 없다. 워낙 정보가 적었으니까. 그리고 상대가 자신들을 왜 살려 놓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괜찮으냐?”
남궁용이 질문을 던졌다.
이 안에 갇혀 있는 이는 그 하나만이 아니다. 격전 탓에 죽은 이들이 절반이 넘어가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자들 또한 있다.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아들인 남궁강이다.
“아, 아버지…… 저, 저는…… 괜찮습니다.”
남궁용은 한쪽 구석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나같이 중상을 입은 몸인데, 이런 곳에 한 달이 넘게 갇혀 있다 보니, 자칫 몸이 곯아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소 기력이 약해진 것이 느껴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 같다.
“다른 이들은 어떤가?”
“가, 가주님. 저희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가주님이 더욱 걱정이 됩니다…… 칼에 맞지 않으셨습니까?”
“하, 하하. 이 정도야 흔한 일 아닌가?”
남궁용은 어색하게 입을 열어 한숨을 쉬었다.
무인이 칼에 맞는 것은 어디서나 흔히 있을 법한 일이다. 지금까지 너무 평화롭게 살아온 탓에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다.
그래, 언제나 무림은 무림인들에게 가혹하고 냉정한 곳이다.
“오오. 아직까지 죽지들 않고 살아 있구나.”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인상을 쓴 남궁용이 그를 바라봤다.
저벅저벅.
동굴 한쪽에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자. 한쪽 팔은 없으나 그 눈빛과 기백만큼은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저자가 바로.
사혈단 단주 강도휼.
“크윽. 네놈……!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느냐.”
“하하, 결과적으로 무사한걸? 남궁세가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팔 하나 떨어진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지 않으냐.”
“…….”
“당장 무림맹이 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도 아닌 것을 보면…… 정파도 썩긴 썩었나 봐?”
“이, 이놈! 함부로 입을 열지 말거라!”
“틀린 말 하나? 어쨌든 잘들 견뎌 보라고. 하나를 더 잡아야 하는데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쯧쯧…….”
그 말에 남궁용과 남궁강이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이는 단 한 사람.
남궁소혜다.
또한 강도휼의 말을 들어 봤을 때 도주를 한 것 같다.
“역시 딸 이야기가 나오니 눈이 돌아가는군. 후후, 곧 만나게 해 주마. 물론 그 뒤에 하나씩 목을 베 주도록 하지.”
“네 이놈! 도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느냐! 무슨 원한이 있어 이런 짓을 벌이느냔 말이다!”
쩌렁쩌렁!
남궁용의 분노 섞인 일갈이 동굴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단전이 봉인당한 상황에서 힘이 퍼져 나갈 리가 없다.
단순한 고함 따위에 위축이 될 강도휼이 아니다.
그가 비릿하게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원한?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저…… 재수가 없거든 네놈들.”
남궁용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물론 저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원한이 없는 것치고는 그들의 행동이 도가 지나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울컥한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들을 가두고 있는 철창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단전만 멀쩡했다면 이런 철 따위 가루가 되었을 거다.
그만큼 남궁용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하나, 강도휼의 비웃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죽이기 전에 보여 주마. 네놈 딸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말이야. 하하하!”
강도휼의 웃음소리가 한없이 퍼져 나갔다.
* * *
“처…… 처참하군.”
남궁세가를 바라본 사도학의 감상은 그러했다. 포탄이라도 맞은 듯한 광경. 아니, 실제로 포탄이 떨어진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 웅장했던 남궁세가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이제는 그 잔재만이 남아 허무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천 년 동안 안휘를 다스렸던 남궁세가의 현판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곳곳에 보이는 핏자국들은 분명 세가에 있던 누군가의 피. 이곳이 정녕 팔대세가의 정점이라 불리던 남궁세가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너무나도 비참하다.
남궁천이 주저앉아 조각이 나 버린 현판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허허허.”
그의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 이렇게까지 처참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없다 하여도 그래도 남궁세가인데, 라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지금 이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사도학은 남궁천에게 어떤 위로의 말조차 해 줄 수가 없었다. 그 또한 마교가 이 꼴이 났다면 무슨 말도 듣고 싶지 않으리.
“흠…….”
그와 반대로 단우현은 침착했다.
이렇게 처참히 무너지고 짓밟힌 것들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의 손에 무너진 세가나 문파들을 세어 보자면 백은 가볍게 넘어갈 거다.
“수가 많았나 보군. 포탄도 포탄이지만 습격한 놈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이것은 다소 놀랄 일이다.
습격한 자들은 사혈단이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상대의 족적과 무공의 흔적을 살펴본다면, 어중떠돌이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흔적이 남아 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니까.
더군다나 알게 모르게 어딘가 익숙하다.
단우현은 미간을 좁혔다.
기억이 날 듯하면서도 나지 않았다.
“사혈단이라 했던가? 짚이는 곳은?”
“없다네.”
남궁천 또한 이곳으로 오는 도중 들었던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되새겨 보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이들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원한을 품은 자들 중 하나라 생각을 하지만, 본디 무림이란 그렇고 그런 사이들이 얽히고설키는 곳이 아니었던가?
하나하나 전부를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살아남은 이들을 잡아갔군.”
“어떻게 아는가?”
“흔적이 있으니 알지.”
단우현이 피식 웃으며 바닥을 가리켰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이미 안다. 하지만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상당한 수준에 오른 고수들이라면, 그 흔적이 깊어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면 뭐라도 남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손님이 왔구나.”
그리고 사혈단이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면, 응당 남궁세가를 방문하는 자들에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누구도 접근을 하지 않았으니, 자연스럽게 이 안으로 들어온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사삭!
일련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사혈단?”
하나같이 붉은 복면을 쓰고 있다. 사혈단이라는 자들을 알지 못하지만, 저 복면이 그 표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의아함에 그들을 주시했다.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이냐.”
한 사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남궁세가에 왔다는 것은 인연이 있다는 말.
어쩌면 그들이 찾고 있는 남궁소혜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기백을 드러내며 검을 쥐었다.
“하면 네놈들은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이더냐?”
스윽 하며 앞으로 나선 것은 다름 아닌 남궁천이다. 가면을 쓰고 있는 탓에 그의 기세가 더욱 이질적으로 변한 것 같다.
움찔.
복면인들이 몸을 움츠렸다.
스르르릉!
남궁천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날카로운 금속음이 귀를 크게 자극했다.
동시에 퍼져 나가는 거센 기세는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압박감을 그들에게 안겨 주었다.
흉흉하다.
그래, 지금 남궁천의 몸에서 흐르는 기운은 흉흉하기 짝이 없다. 과거 검황이었을 때 보였던 그 부드러움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복면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느껴지는 살기조차 담담하게 받아넘겼다. 이들에겐 두려움이란 감정이 없는 것인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기수식을 취했다.
“호오!”
사도학은 물론이고 단우현까지 놀랐다.
상대는 기량 차이를 볼 줄 모르는 머저리인 것인가?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도 이미 압도된 상황이거늘, 그럼에도 검을 겨누는 것은 그저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지나지 않다.
하나, 재미있다.
단우현이 주위를 둘러보다 마침 앉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그곳에 주저앉자 사도학 또한 곁에 앉았다.
“재미없는 싸움은 하지 마라.”
“그래그래, 기왕 할 거면 신명나게 해야지.”
단우현과 사도학이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남궁천이 다소 어이없는 시선을 보냈다. 이쪽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상황인데, 저 둘은 마치 구경꾼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상황이었으나 이내 피식 웃었다.
날카롭게 피어오르던 살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그제야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재미없는 싸움이라니? 이건 일방적인 싸움이다. 당연히 재미가 없지.”
“일방적이라도 재미있게 하면 되는 거다. 죽여 봐야 득될 것 없으니 살살 하면 될 거다.”
“허허허.”
단우현의 말에 남궁천이 실소를 흘렸다.
일방적인 싸움이 될 거라는 걸 알면서 그러는가?
한 손으로 검을 쥐고 상대를 노려봤다.
오랜만에 하는 실전이다.
그의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미쳤군.”
반대로 복면인들이 가늘게 눈을 떴다.
저 자신감은 무엇인가?
웃기지도 않는다. 이쪽은 수도 많고 무공 또한 고강하다. 고작해야 한 팔밖에 없는 이상한 놈에게 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비록 기세만큼은 대단하지만 기세만으로 모든 싸움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죽여라.”
이윽고 대장으로 보이는 자의 입이 열렸다.
그 순간, 단우현과 남궁천, 사도학이 반짝 눈을 빛냈다.
이제야 이들 중 가장 높은 놈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거다.
복면인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빠르게 땅을 딛고 그대로 남궁천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어둠과 동화된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했다.
“암영보?”
사도학은 그 무공을 파악했다.
그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한 마디에 복면인들이 깜짝 놀라 하는 것이 보였으나, 그들은 아무리 놀랐어도 사도학을 바라보지 말았어야 했다.
서걱!
순간 달빛과 함께 무언가가 번뜩였다.
가장 먼저 남궁천을 향해 다가갔던 그는 돌연 풍경이 뒤집히고 하늘을 올려다봐야 볼 수 있는 달빛을 보았다. 뭐가 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또 한 번 세상이 뒤틀렸고, 동시에 어디선가 익숙한 몸뚱이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촤아아악!
“팔이 하나라 하여도 개미 정도는 짓이기는 법이라네. 조심들 하게나.”
이윽고 남궁천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