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09
“커억!”
다가오는 그림자의 목에 칼을 틀어박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의 앞을 막아설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처럼 거침없는 행보다.
“죽어…… 컥!”
이제는 두려움에 자포자기 심정을 덤비는 자들 또한 있다. 그러나 거리를 좁히면 좁힐수록 오히려 죽어 가는 것들은 그림자들이다.
강신법을 사용한 자들은 이미 대부분이 죽었다.
널브러져 있는 시체의 수를 센다면 서른은 족히 되리.
남아 있는 이들은 고작해야 열 명 남짓하였고, 그들 모두 사기가 떨어져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저 인간은 무엇인가?
강신법까지 쓰고 있는 자신들을 어찌 이리 간단히 가지고 놀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이런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 가장 큰 장점이 되는 상황인데도, 그것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한 채 죽어 나가고 있었다.
콰직!
검봉으로 다가 온 사내의 안면을 후려친다. 괴상한 소리가 들리며 머리통이 산산조각 난 채 쓰러졌다. 이것은 단순한 차이가 아니다.
힘, 내력, 경험, 무공.
한마디로 모든 것들이 차이가 나는 상대다.
단순히 숫자가 많다 하여 어찌할 수 없는 적이라는 것을 인식하니, 그 뒤로 몰려드는 것은 두려움밖에 없었다. 더욱 그들의 공포심을 부추기는 것은, 표정조차 드러나지 않는 저 백색의 가면.
“사…… 살려 줘……! 으아아악!”
한 사내가 그것을 참아 내지 못하고 등을 돌려 달아났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가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살 수 있다면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강호의 생존 법칙이라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말했듯 살 수 있다면 말이다.
남궁천이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 끝에서 뻗어져 나간 검기가 달아나는 사내를 휘감았다.
서걱!
목숨 걸고 도망치는 사내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것을 본 이들이 눈을 부릅뜨며 숨을 죽였다. 조금 전 보여 주었던 그 검기.
이 자리에 모르는 이가 있을까?
“서…… 설마…… 설마……!”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부…… 분명 죽었다고……!”
방금 보여 주었던 그것은 틀림없이 남궁세가의 무공.
현재 남궁소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붙잡혀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검술을 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남궁세가의 검술을 펼치고, 이 자리에 있는 자신들을 압도적인 힘으로 물리칠 수 있는 존재.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한 사람밖에 없다.
검황.
그 무거운 이름이 그들의 뇌리를 짓눌렀다.
“한 놈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검황은 무겁게 말을 꺼냈다.
자신의 가족들을, 남궁세가를 농락하였는데 가볍게 넘길 생각 따위 추호도 없다. 죽이고 또 죽이고, 농락하며 죽이고, 그들 뒤에 있는 자를 붙잡아 이 현세가 지옥임을 증명케 할 것이다.
“으…… 으아…… 으아아아악!”
“저…… 저런 괴물이 온다는 말 못 들었다고!”
곳곳에서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 나갔다.
조금이라도 살기 위해 동료를 내동댕이치는 이들도 보였다. 이미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남은 것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다.
그러나 남궁천은 피식 웃었다.
말하지 않았는가?
한 놈도 놓치지 않는다고.
그가 땅을 딛고 몸을 날렸다.
한순간에 뻗어 나간 남궁천의 몸이 도망가는 이의 머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쩌억!
머리와 몸통이 갈라지며 새빨간 피가 사방을 피어올랐다. 남궁천은 그대로 몸을 날려 진드기처럼 도망치는 이들을 따라붙었다.
퍼걱!
앞선 이의 가슴에 일 장을 후리고, 가슴뼈가 부서지는 것을 확인한 뒤, 빙글 몸을 돌려 격렬하게 칼날을 뿌렸다.
서거걱!
사람의 몸이 양단되고 그 육편이 조각되어 떨어졌다. 동료의 죽음을 눈앞에서 확인한 이들은, 더욱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인지 다리에 힘을 주어 내달렸다.
이곳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이곳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살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퍼걱!
하나 남궁천은 누구도 살려 둘 생각이 없다. 칼날을 거두고 도망치는 이를 향해 발을 놀렸다. 괴상한 소리와 함께 사내의 머리가 벽에 틀어박힌 채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니었다.
조용히 앉아 명상을 하고 있던 남궁용은 머지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싸움이라도 난 것인지 검격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사람의 비명이 끊이지 않고 퍼져 나갔다.
“일어나거라.”
남궁용은 제일 먼저 남궁강을 깨웠다.
부스스한 몰골로 다친 곳을 부여잡고 남궁강이 일어섰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남궁세가의 사람들 또한 심상치 않은 소리에 하나둘씩 눈을 뜨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요?”
“토벌대인가?”
“그것치고는 소리가…….”
남궁강은 고개를 저었다.
토벌대라면 필시 상당히 시끄러웠을 거다. 지금 또한 못지않게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일방적인 비명만이 동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토벌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일이 생긴 것 같다.
“경계를 늦추지 마라.”
남궁용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사태를 대비하여 몸 상태를 점검했다. 단전이 막혀 있기는 하지만, 호신술 정도라면 능히 소화해 낼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런 것이 통할 상대라면 말이다.
퍼걱!
그때,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상당히 가깝다.
하나둘씩 긴장 어린 시선으로 그곳을 돌아봤다.
“끄아악! 사…… 살려 줘!”
몇몇 무리의 사내들이 그들이 갇혀 있는 곳을 지나 무작정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굴은 누렇게 뜬 것이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행색이었다.
그것을 주시하고 있던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가면을 쓴 누군가가 나타났다.
단숨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거침없이 상대를 죽여 갔다. 칼을 휘둘러 머리를 쪼개고 발을 휘둘러 사내의 뼈를 아작 냈다.
넘어진 이의 목을 가차 없이 지르밟고 도망치는 이의 안면을 후려쳐 벽에 처박았다.
그야말로 난장판
그자의 손속이 얼마나 잔학무도한지, 바라보고 있는 남궁세가의 이들 모두 숨을 삼킨 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모든 이들이 쓰러진 채 이제는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뚝뚝.
전신에 피를 묻힌 그 가면을 쓴 사내는, 호흡을 고르는 듯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잠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알 게 모르게 두려움 마음이 들었던 것인가?
어느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는 자들이 없었다.
“이런 이런, 한 놈 정도는 살려 두었어야 했는데…….”
가면을 쓴 자는 그런 말을 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간에 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또 한 번 공포를 안겨 주었다.
하나, 몇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시선을 보냈다.
오랫동안 들어 왔던 목소리다.
아무리 중상을 입고 이런 동굴에서 들은 목소리라 하여도, 그것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특히, 가장 지근거리에서 그를 모셔 왔던 남궁용은 더욱 그러했다.
그가 뇌옥의 창살을 손으로 붙잡았다.
“서…… 설마……!? 아, 아버지!”
남궁용의 한마디에 남궁세가의 인물들이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있지만, 이 느낌과 말투, 저 체형은 틀림없이 검황을 보는 것만 같았다.
두려움 가득했던 이들의 표정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검황이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무너진 남궁세가는 언제든지 재건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생기기 시작한 거다. 그들 중 몇몇이 눈물을 흘렸다.
그간의 서러움이 터져 버린 것이다.
챙!
그때.
남궁천이 검을 뻗어 창살을 잘라 냈다.
가볍게 내지른 일격에 무슨 짓을 해도 나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곳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남궁용이다.
“아버지! 아버지 맞으시지요?! 틀림없으시지요?”
남궁용은 대답조차 하지 않는 남궁천을 붙잡고 소리를 쳤다. 얼마나 애타게 찾았던가? 죽은 줄로만 알았고 이제 모든 것을 가슴에 묻어야 한다고만 생각을 하며 속으로 눈물짓던 나날들이었다.
“크흑…… 파…… 팔이…… 흐…… 흐흑…….”
또한 사라진 팔을 붙잡고 울먹이며 소리쳤다.
지켜 주지 못했다는 그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나는 군자검이라는 자일세.”
“아…… 아버지? 지금…… 무슨 말을…….”
남궁용은 부정하는 남궁천을 가만 바라봤다.
한쪽 팔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 느낌, 이 말투,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심지어 남아 있는 그의 오른손의 감촉 또한 자신의 아버지 것이 틀림이 없다.
한데 군자검이라니?
남궁세가의 인물들 또한 휘둥그레 눈을 떴다.
“저…… 저를 못 알아보십니까? 보, 보십시오. 태상 가주. 제가 제일 장로 남궁견중입니다.”
제일 장로 남궁견중이 떨리는 두 손으로 남궁천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기억이라도 잃은 것인가?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저 눈빛은 완벽히 자신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그런 시선이 아닌가?
“허허, 미안하네. 나는 군자검이라는 자네. 우연찮게 이곳에 와 그대들을 구한 것 같구려.”
남궁천은 지그시 눈을 감고 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남궁용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광경에 모든 이들이 눈을 부릅떴다. 말은 그리하지만 틀림없이 자신은 남궁천이라고. 그리고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
“되었네. 나는 자네의 아버지가 아니라네. 군자검이라 하지 않았는가. 허허허.”
“…….”
남궁용과 남궁세가의 인물들은 무언가 눈치를 챘다.
지금 남궁천은 남궁세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을.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그의 뜻이라 한다면 마땅히 따라 주어야 한다.
‘아버지는…… 평생을 남궁세가의 몸 바쳤던 분이시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남궁용이다.
검황이라는 이름 또한 남궁세가를 더욱 빛내겠다는 의지 하나로 세운 업적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이 결국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앉았다.
무림에 대한 회의라도 느낀 것인가?
남궁용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잡으려 해 봐야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이는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한데…… 딸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구려?”
“……잘 도망친 것 같습니다.”
“허허허.”
남궁천은 그래그래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누구 손녀딸인데 쉽게 잡히겠는가? 그렇게 호되게 키웠으니 응당 이런 조무래기들에게 잡혀서는 아니 되는 법이다.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등을 돌렸다.
“어디를 가십니까!?”
“다리가 없는 것이 아니니 중원 어디든 가지 않겠나.”
“……저희와 함께 남아 계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이 노부와 그대들의 인연은 끝나지 않았네. 언젠가 또 볼 터인데 그런 슬픈 얼굴은 하지 말게나.”
남궁천은 슬쩍 등을 돌려 남궁용을 바라봤다.
어느새 지척까지 따라온 그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틀림없이 남궁천이 모든 인생을 다 바쳐 반석에 올려놓았던 남궁세가를 단 한순간에 무너트린 죄의식 때문일 거다.
이는 남궁용만이 아니다.
곧이어 남궁강까지 무릎을 꿇었고 그곳에 있던 남궁세가 전원이 고개를 숙이며 자신들의 죄를 청하듯 주저앉았다.
‘이런 이런…… 허허허.’
남궁천은 한숨을 쉬었다.
이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거늘…….
죄의식 같은 것 갖지 않아도 되거늘.
“일어들 나게나. 이 자리에 검황께서 있었다면 호되게 혼을 냈을 것이네. 그대들은 잘하였네. 잘 살아남아 주었네. 그것만으로도 검황은 만족할 것이야.”
“……정말 그렇습니까? 저는…… 세가를…….”
“무너진 곳은 수리하면 그만이고, 잃은 것은 새로 쌓으면 그만이네. 또 이것이 괴롭고 힘든 일이라 한다면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노력하면 될 것이네.”
부드럽게 이야기를 하며 남궁용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또다시 느껴지는 아비의 따스한 손길에 남궁용은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대들을 믿네. 검황이 없다 하여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검황 또한 그대들을 언제나 지켜보고 있음을 기억하게.”
그 한마디가 천금 만금처럼 그들에게 다가왔다.
남궁용은 웃었다.
멀어져 가는 아비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웃었다.
그래, 무너지기는 하였지만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간 너무 많은 이들이, 검황의 이름에 기대었다는 것 또한 사실.
그렇기에 이번 실책이 나온 것이다.
남궁용이 작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로, 이곳을 벗어나 안가로 갈 것일세. 그곳에서 몸을 추스르고 소혜를 찾아…… 남궁세가를 이리 만든 이들을…… 칠 것이네.”
남궁견중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검황은 없다.
자신들이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은 틀림없이 이 가주다. 모든 것을 새로이 하나부터 쌓아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의 눈빛은 벌써부터 활활 타올랐다.
“명 받들겠습니다. 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