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18
하남은 정도 무림을 대표하는 성지다.
가장 먼저 정도의 기둥 중 하나인 천년소림이 버티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바로 정도 무림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무림맹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정도 무림맹이 결성된 것은 아주 오래전, 무신의 등장 때문이었다.
정파, 사파, 마교의 개념조차 잡히지 않았던 그 당시, 무신에 의해 피를 흘리고 죽어 가는 무인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있던 이들이.
의(義)와 협(俠)을 내세워 사람들을 모았다.
그것이 바로 정파 무림의 시초가 아닌가 싶다.
이후, 많은 문파와 세가들이 그곳에 참가하여 무신을 토벌하기 위해 나섰고, 무신이 사라진 직후에는 정도 무림을 지킨다는 의협심으로 무림맹이 생긴 것이 바로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천년소림과 마찬가지로 무림맹 또한 천 년 가까운 세월의 흐름 속에 있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 무림맹.
호천각(呼天角).
구파일방의 인물들이 머물고 있는 그 자리에, 늦은 시각이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저마다 각 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며, 어디에 내놓는다 하여도 빠지지 않는 고수들임이 분명했다.
그런 이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운 대사.
천년소림의 한 축이며 무림맹에서도 요직에 앉아있는 자였다.
“정말로 할 셈들이신가?”
“자운 대사! 이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소. 무림맹의 맹주라는 자가 향락에 빠진 것도 모자라 업무조차 보지 않으니 이미 맹 자체가 마비된 지 오래이오.”
말을 건넨 것은 한 중년 사내다.
무당의 도복.
무당칠검이라 불리는 최고수 중 한 명이며, 그들을 이끌고 있는 고담진이라는 자다. 눈빛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기세가 흐른다. 차후 검성 혹은 오황의 경지에 오를 이가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정말 이대로 지켜보고만 계실 겁니까?”
“모용혁문을 뽑은 것은 자네들이라는 걸 명심하게나.”
자운 대사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불호를 외웠다.
본디 차기 무림 맹주는 소림의 선진 대사여야 했다. 전 총사였던 제갈운이 가장 밀어 줬던 인물이니 만큼, 그만한 역량이 있었다는 말이다.
한데, 구파일방은 물론이고 몇몇 팔대세가까지 모용혁문을 추대하여 그를 올려놓고, 이제 와 끌어내린다는 것에 자운은 그리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 그것은…….”
“거, 검황을 잃었으니 정파의 통솔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변명거리를 생각해 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기실 각 파의 이익을 위해 만후량과 뒷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입에 담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만후량이어도 소림은 손을 대지 못했을 테지.’
고담진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무당도 생각을 잘못하였다.
최근 이것저것 들어갈 데가 많아 돈을 받았는데, 설마하니 그것을 걸고넘어질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아마도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대부분이, 알게 모르게 만후량에게 빚을 지고 있는 자들이 태반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거.
이것은 이거다.
모용혁문은 이미 도가 지나쳤다.
정도 무림맹의 맹주가 해야 할 선을 넘어 버렸다. 무림맹 안팎으로 그에 대한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려 무림맹의 힘을 되찾아야 할 시기다.
더군다나 이번 일은 구파일방에게 있어 절호의 기회다.
구파일방이라 하면 오래전부터 이 정도 무림을 수호해 온 곳들. 그러나 남궁세가라는 이름에 밀려 맹주의 자리까지 내주었으니 만큼, 그것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런 이들의 눈빛을 읽었는가?
자운 대사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자네들…… 이 일의 파장이 어떠할지 생각은 해 보았는가? 모용세가와 전면전이 불가피할 것일세.”
“우리가 누구입니까? 의협만을 믿고 정도 무림을 지탱해 온 저희들입니다. 한데, 지금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거늘, 모용세가 따위가 두렵겠습니까?”
자운 대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세가가 무너진 이상 사실상 힘의 추가 팔대세가에서 구파일방으로 넘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이들의 행동이 더욱 거침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을 말릴 수 있겠는가?
자운은 길게 한숨을 뱉으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오랜 친우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왜 그렇게 갔는가…….’
남궁천.
그가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뛰어난 인재였으며 구파일방이라 하여도 따를 수밖에 없는 기백을 지닌 자였으니까.
이제 이들을 멈출 수 없다.
그렇다면 나아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자운은 이들의 눈빛을 가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 소림은…… 빠지겠네.”
그리고 충격적인 소리를 입에 담았다.
* * *
“생각보다 늦는구나.”
하남으로 들어선 남궁천과 사도학은 가면을 쓴 탓인지 여기저기에서 시선을 받으며 객잔 안에 머물러 있었다.
하남 성도, 무림맹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이 객잔은 단우현을 기다리기에 최적의 장소 중 하나다. 더군다나 객잔에서 만나자고 말을 하였으니 금방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이틀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길을 잃었나?”
“설마? 그놈이? 말도 안 되지. 길 잃어도 날아서 찾아올 놈이다.”
사도학이 시큰둥하게 말을 하자 남궁천이 껄껄 웃었다. 얼마나 단우현을 높이 평가하면 저런 말이 나올까 싶었다.
물론 남궁천도 그 생각에 동의는 했다.
단우현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간단히 그것을 넘어 버릴 것 같은 괴물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검성 그놈은 뭔 짓을 하고 다니기에 나보다 더 평이 안 좋아?”
사도학이 들리지 않게 귀를 후벼 파며 입을 열었다.
객잔에 잠깐 앉아 있는 사이 들려오는 말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천하의 검성이 향락에 빠졌다. 어린 계집들이 맹주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밤낮으로 술이 들어가고 나오며 여인들의 교태 어린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던가?
“……글쎄. 소문은 소문일 뿐이지 않은가?”
남궁천이 가면을 고쳐 잡으며 실없이 웃었다. 자신의 친우이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이의 나쁜 소문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모용세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야?’
또한 현 가주인 모용관천에게도 화가 났다.
아비가 잘못을 하면 응당 그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바로 자식된 도리다. 한데, 모용세가는 오히려 무림맹의 권력을 이용해 세가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있다 하니 통탄할 노릇이었다.
“다녀왔습니다.”
그때, 어느새 그들이 있던 자리로 다가온 권무진과 장삼태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곁에는 단소미가 우물우물 무언가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남궁천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단소미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혔다.
“그래 어찌 되었는가?”
“딱히 이렇다 할 것은 없어 보입니다. 여전히 조용하고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도 없었습니다.”
“그렇군…….”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권무진은 가만히 남궁천에게 시선을 주었다.
사실 조금 전부터 시선이 따갑다.
다름 아닌 권무진을 알아본 정파인들의 눈빛 탓이다. 기이한 가면을 쓰고 있는 두 사람 때문에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 싸움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
단소미를 이렇게 자신의 곁에 놔두어야 하는지 심히 고민되는 상황이었다.
“단 장주가 속히 와야 할 텐데 말이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곳에서…….”
“권무진!”
쾅!
느닷없이 객잔 문이 부서지며 한 무리의 일행들이 우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살기 가득한 시선으로 객잔을 둘러보더니, 이내 권무진의 모습을 확인하고 검을 뽑았다.
“네놈! 이런 곳에서 보게 되다니 운이 다했구나!”
쩌렁쩌렁!
그의 목소리가 객잔 안을 가득 울렸다.
그 탓인가?
사파의 소쌍도 권무진이 아닌가 하며 긴가민가했던 이들 또한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제야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곳곳에서 검을 쥔 자들이 권무진을 노려봤다.
“원한을 산 놈들이 조금 많습니다만…… 말하는 게 조금 늦었습니다.”
“허허허.”
“웃기는 놈 같으니라고.”
남궁천이 웃고 사도학이 콧방귀를 뀌었다. 사람들의 살기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두 사람은, 단소미를 끌어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어디 가요? 권 아저씨가!”
“걱정하지 마라. 다칠 놈은 아니니.”
“그게 아니라 위험한 거 같아요. 권 아저씨 죽으면 어떡해요?”
단소미가 남궁천의 품에서 아등바등하였다.
내려 달라 떼를 써 보지만 남궁천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단소미가 앙 하며 손가락을 깨물었다.
“어이쿠!”
남궁천이 어이없이 웃으며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어린아이가 문 것이다. 아프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지만 단소미의 의기가 제법이기에 일단 상황을 보고자 했다.
쪼르르 앞으로 나간 단소미가 양팔을 힘차게 뻗으며 권무진과 그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리고 곧 두 볼을 가득 부풀렸다.
“우리 아저씨한테 왜 그래요!”
“뭐……? 아저씨? 너 저놈이 누구인 줄 알고 지키려 하는 것이냐!”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아요! 권 아저씨는 권 아저씨인 걸요!”
권무진은 휘둥그레 눈을 떴다.
단소미의 간덩이가 조금 부어 있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 죽어 가는 자신의 피를 보고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적도 있었으며, 장삼태에게 듣기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를 지켜 내려 한 적도 있다 했던가?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이, 이 망할 꼬맹이 년이!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빠각!
한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언성을 높이며 당장이라도 단소미를 향해 칼을 휘두를 것 같았던 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콰다다당!
이윽고 들려오는 소리에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날아갔다.
사람이.
객잔의 탁자와 집기를 때려 부수고 벽에 처박혔다.
부들부들 몸을 떨며 게거품을 물고 있는 몰골이 심상치가 않다. 당장 의원에게 데려가지 않는다면 삶을 보장하지 못할 것 같았다.
“누구 딸 앞에서 큰소리냐?”
이내 들려오는 소리에 객잔 전체가 싸늘해졌다.
쓰러진 사내의 동료들조차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그만큼 싸늘하고 송곳처럼 그들의 전신을 꿰뚫는 것 같았다.
“아빠!?”
단소미가 깜짝 놀라 휘둥그레 눈을 떴다.
언제 나타난 거지?
그리고 눈앞에 서 있던 남자는 왜 저기서 쓰러져 있는 걸까?
영문을 알지 못하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허허, 이제야 오는가?”
“늦었나?”
“아니네. 때마침 잘 왔다네.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이 났을 테니 말이네.”
스릉!
어느새 칼을 반쯤 뽑았던 남궁천이 착검하며 웃었다.
그대로 조금만 더 단소미를 건들려 했다면 저자들 모두가, 두 다리로 멀쩡히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흥…….”
사도학조차 손을 거두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의 손끝에 맺혔던 마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그럼 이들을 어찌한다?”
단우현이 슥 하며 주위를 둘러보곤 얼어붙은 채 꿈쩍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