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2
* * *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장삼태에게는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비록 집이 가난하여 끼니를 제때 챙겨 먹을 수도 없었고, 옷 대신 넝마를 두르고 다니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는 동생을 키우는 것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고, 그렇게 살다 좋은 곳으로 시집을 보낸 뒤, 그때부터 자신의 인생을 살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한데, 문제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장삼태는 어린 시절부터 도벽이 있었고, 남의 것을 훔치는 것에 있어 죄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좋은 것을 동생에게 주고 싶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옷 한 벌을 훔쳤다.
오랜만에 그가 사는 동네에 찾아온 상인들은 제법 귀한 옷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한 벌쯤 훔쳐도 티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기에 그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고, 결국 일을 저질렀다.
훔친 것을 바로 입히지는 못했다.
상인들 중 누군가가 본다면 바로 걸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입고 나가지 말라 신신당부를 하며 숨겨 놓았다.
그러나 기어코 그 옷을 찾아내어 입고 나간 것 또한 어쩌면 동생의 운명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늦은 밤이 되었어도 동생이 돌아오지 않아 찾으러 나갔다. 온 동네를 뒤지며 이름을 불러 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결국 발견하긴 했다.
좁은 골목, 사람의 인기척조차 없는 곳에 널브러져 있는 동생을.
옷은 훌러덩 벗겨져 있었으며, 온몸에는 멍 자국이 가득했다.
한 사람이 때린 것이 아니라, 성인 남성 몇 명이 연신 발길질을 해 댄 것 같았다. 입과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굳어 있었다.
그때부터 아이가 싫었다.
말을 듣지 않으니까.
하지만, 또다시 자신 때문에 아이가 죽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화소미를 감싸며 사내들의 발길질을 온몸으로 받아 냈다.
“헉헉! 이 새끼 맷집 좀 보소?”
“그만큼 아이가 중요하다는 거겠지. 끄집어내. 눈앞에서 살을 한 점 한 점 도려내 줄 테니까.”
“으아아악! 이 개새끼들아! 애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 컥!”
소리를 지르며 발광을 했다. 억지로 화소미를 끌어내려는 사내들의 손길을 쳐 내며 말이다. 하지만 다시금 발길질이 그의 얼굴을 걷어찼다.
퍼억!
순간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의 아픔이 찾아왔다.
“종 아저씨!”
화소미의 비명이 들렸다.
흐릿해진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한 사내의 품에서 난동을 피우다, 안 되겠는지 이빨로 팔뚝을 물어뜯는 모습이었다.
“아아악!”
사내가 거칠게 소리를 치며 화소미의 뺨을 후려쳤다.
화소미의 몸이 종잇장처럼 땅에 널브러졌다. 하지만 울긴커녕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픔도 꾹 참는 것 같았다.
아이는 장삼태의 앞을 막아서더니 두 팔을 뻗었다.
시뻘겋게 부어오른 뺨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덜덜 온몸을 떨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내가 칼을 쥐고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도…… 도망가!”
“싫어요!”
“도망가라고, 이 멍청한 년아!”
“싫어요!”
“제발 가라! 이러다 너도 죽어!”
그러나 화소미는 말을 듣지 않았다. 여전히 몸을 떨면서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장삼태에게 살짝 웃어 주었다.
“아저씨가 죽으면 우리 밥은 어떻게 먹어요? 그리고…… 소미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요!”
“……이, 시발…….”
어이가 없었지만, 이대로 누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느새 다가온 사내가 화소미를 향해 칼을 휘두른 탓이다.
서걱-!
“끄아악!”
콰다당-!
그대로 몸을 날린 장삼태가 화소미를 끌어안고 쓰러졌다. 순간 칼날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하, 이것들 보소? 너희 장난하냐?”
여기저기에서 사내들이 낄낄거리며 비웃었다.
도둑놈과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멍청한 계집아이.
사내들의 입장에선 그저 우스꽝스러운 촌극이었다.
그와 반대로 장삼태는 이들이 정말로 소미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몸을 날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피 분수가 터져 올랐을 것은 분명했다.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린 애를 죽이려 하다니.
“애를 죽일 필요는 없잖아!”
“네놈과 연관된 모든 이들이 죽을 텐데, 애 하나 죽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미친놈들…….”
장삼태가 그들을 바라보며 이를 가는 순간.
사내의 검이 치켜 올라갔다. 두 사람을 동시에 꿰뚫어 버릴 심산인 듯했다.
사내의 입가엔 그저 잔혹한 미소만이 걸려 있었다.
한데.
“윽!?”
무언가 이상했다.
팔이 마치 바위라도 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돌연 전신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식은땀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돌아가지 않는 눈동자를 억지로 돌렸다.
주위의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듯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한 채 우뚝 서 있었다.
휘이이잉!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한껏 뜨거워진 몸을 차갑게 식혔고, 흐르는 피마저 얼려 버릴 것 같다.
입으로 들어가는 공기 또한 달라졌다. 숨을 쉴 때마다 마치 칼날을 집어넣은 듯 폐부를 찌르는 고통마저 느껴졌다.
‘이건 대체 뭐야!’
두려움에 벌벌 떨 때.
사박사박-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조금 전까지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던 고개가 돌아갔다.
뻣뻣해진 고개가 돌아가자 이내 마른침이 넘어갔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 사내가 보였다.
표정조차 없이 다가오는 그는 마치 귀기(鬼氣)를 머금은 듯, 시뻘건 홍염의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사내의 주위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인세에 강림한 수라를 보는 것 같았다.
덜덜-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신음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엉망이로군.”
어느새 장삼태와 화소미 앞에 선 사내가 중얼거렸다.
장삼태는 이 태산과도 같은 무게를 주는 이가 누구인지 단박에 눈치를 챘다.
단우현.
눈앞에 있는 이는 틀림없이 단우현이었다.
“자…… 장주님…….”
말을 내뱉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단우현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보아 왔던 무림인들과는 격이 달랐다.
이게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일어나지 못하겠으면 함께 죽어라, 장삼태.”
그 한마디가 뜻하는 바를 눈치챘다. 단우현은 지금 화소미를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러지 못할 것이라면, 더 이상 쓸모가 없으면 함께 묻어 버리겠다는 뜻이었기에 장삼태는 결국 일어서야 했다.
상처나 두려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서 일어서야 한다.
도망을 가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소미를 데리고 가야 한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혼절한 화소미를 들쳐 업었다. 당장 한 발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이 드는 상황이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가라.”
이내 들려오는 단우현의 스산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며 내달렸다. 어느 누구도 장삼태의 앞길을 막는 이가 없다.
검을 쥐고 있으나 그것을 휘두를 마음이 꺾여 버렸으며, 시퍼렇게 질려 버린 눈빛으로 그저 단우현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뒤로한 채 장삼태는 몸을 날렸다.
이내 단우현의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너희들은……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 * *
장삼태는 울먹이며 내달렸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나약할 줄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경공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다고? 도둑질과 경공밖에 할 줄 모르니, 이런 자그마한 아이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달리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떠올랐다.
고작해야 일곱 살배기 어린아이. 그 아이가 자신을 지키겠답시고 물러서지 않았던 그 모습을 말이다. 죽은 동생과는 너무나도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괜스레 미안한 마음과 정이 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장삼태는 눈물을 흘렸다.
메말라 버렸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마터면 자신 때문에 또 다른 아이가 희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울음이 가시지 않았다.
도둑질을 잘하면 뭐 하는가.
곁에 있는 아이 하나 지키지 못하는데.
자신이 이 아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나약함에 몸부림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기에 더욱 값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장삼태는 장원에 도착했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텅 빈 공간이 보였다.
고작해야 세 명밖에 살지 않는 커다란 장원. 웅장하나 그만큼 초라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하나, 발을 딛고 안으로 들어가자, 따스한 기운이 온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안도감에 한숨을 쉬며 움직였다.
방으로 들어가 제일 먼저 소미를 침상에 눕혔다.
발갛게 부어 있는 뺨을 매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멍청한 게…… 왜 나서, 나서기는…… 도망가면 되지.”
그때, 파르르 화소미의 눈동자가 떨렸다.
슬그머니 눈을 뜨며 똑바로 장삼태를 주시했다.
그러고는 눈을 돌려 주변을 살피더니 싱긋 웃었다.
“집이에요?”
“그래, 이 멍청아, 집이다.”
“헤헤, 괜찮아요?”
“나보다 네가 더 문제지.”
“소미는 괜찮아요. 죽지 않았는걸요. 분명 아저씨가 지켜 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가.
도망가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지켜 준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이 아이는 정녕 모르는 것 같다.
애초에 단우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정말로 죽었을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말로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장삼태는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마라. 다른 사람보다 본인의 목숨이 소중한 거다.”
“아니에요.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그러니까 소미는 앞으로도 똑같이 그럴 거예요. 두 번 다시 그런 일 겪고 싶지 않으니까.”
화소미는 눈물을 글썽였다. 죽은 부모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철갑을 입은 이들의 손에 죽어가는 부모님의 눈동자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했을 때의 비명, 핏자국.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악몽으로 남아 소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때문에 누군가 죽는 것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더욱 악착같이 장삼태를 지켜내려 했으리라.
장삼태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그 감각이 기분이 좋은지 화소미가 또다시 웃었다.
정말이지 우스운 아이다.
하지만 진심 어린 따스한 마음이 느껴졌다.
드디어 장삼태에게 이 장원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래, 내 반드시 너를 지켜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