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26
사천당가, 하북팽가, 진주언가, 황보세가, 광동진가.
팔대세가라 이름 붙은 가문 중 다섯 곳.
현재 그곳을 이끌어 가고 있는 가주 다섯 명이 한자리에 옹기종기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씁쓸해 보이기는 했으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올랐다.
“결국 이리되었군. 모용세가의 몰락이라니…… 쯧쯧.”
“검성께서 도가 지나치셨지.”
“그렇다 해도 구파일방이 맹주를 몰아내는 건 아니 되는 일이었네!”
여기저기에서 말들이 오갔다.
정도 무림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무림 맹주인 검성이 행방불명되었고, 그를 끌어내린 것이 다름 아닌 구파일방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본디 구파와 팔대세가의 사이는 그리 좋다 할 수 없다.
서로 자신들만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렇기에 알게 모르게 힘겨루기를 할 때도 많았다.
하나, 최근 수십 년간 구파에 걸출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고, 결국 남궁세가에 그 실권이 넘어가면서 구파의 힘보다 팔대세가의 힘이 더욱 강해진 것 또한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또한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검황만이 아니라 검성까지 행방불명이라니…… 놈들이 작당을 꾸민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진주언가의 언하평.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들이었기에, 누군가 뒤에서 손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알게 모르게 이 상황에 만족하고 있었다.
남궁세가라는 이름에 가려 있던 것은 비단 모용세가만이 아니니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또한 검황이라는 이름 앞에 고개를 숙이며, 그를 따라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검황과 검성이 사라지니 모든 것들이 자신들의 뜻대로만 돌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표정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이라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한자리에 있는 것이다.
“제갈세가주는 어찌 되었나?”
“그는 아직도 검황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는 듯하더군. 말을 해도 오지 않고. 우리와 뜻을 함께할 생각도 없어 보여.”
광동진가의 가주, 진구악이 조소를 머금으며 찻잔을 들이켰다. 제갈세가가 끼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상한 머리는 꼭 누군가와 마찰을 빚기 마련이니까.
그런 이는 애초부터 없는 편이 낫다.
“어찌 되었든 이것으로 이제는 팔대세가가 아닌 오대세가라고 불려야 할 판국이로군.”
언하평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오대세가.
지금은 팔대세가라 불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 중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정통성을 가진 다섯 가문을 오대세가라고 부른다.
사천당가, 남궁세가, 모용세가, 제갈세가, 황보세가.
이곳에 사천당가와 황보세가가 있기는 하지만, 본디 다른 세 곳은 오대세가 축에는 끼지 못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그 이름을 얼마나 부러워했었나?
언하평의 시선이 당가의 가주 당중악과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원을 향했다.
두 사람은 못마땅한 표정이 가득했다.
하나 차마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지 않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똘똘 뭉치지 않는 이상, 팔대세가 혹은 오대세가의 위치가 크게 흔들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구파일방의 인물들은 우리 팔대세가를 업신여기고 또한 검성까지 끌어내렸네.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다들 동의를 하고 있는 사실이라 생각하네.”
당중악이 진지하게 네 사람을 돌아보며 운을 뗐다.
더 이상 구파일방과 함께할 수는 없다. 서로 앙금이 남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시피 하니 만큼, 이제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헤어지는 것이 맞는 일이다.
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당중악 또한 결심을 굳혔다.
“그럼 다들…… 동의를 하는 것이라 믿고, 오늘 이 자리에서 정식으로 천도회의 시작을 알리도록 하겠네.”
정도 무림맹이 양분되는 순간이었다.
* * *
“도대체 이 일을 어찌하려고 그러는가 자네들은!”
소림의 대사.
권성이라 불리는 자.
소림이 받들고 있는 절대자인 선진은 무림맹을 둘러보며 호통을 쳤다. 그의 눈앞에는 구파일방의 명숙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으며, 하나같이 좋지 않은 낯빛으로 차마 선진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선진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결국 먼저 나선 것은 무당의 장로 배분인 청호다.
그가 포권을 하며 선진 앞으로 나섰다.
“더 이상 그의 만행을 두고 볼 수 없었소이다. 대사께선 그 점을 헤아려 주셔야…….”
“무슨 바보 같은 소리인가! 검성을 뽑아 그 자리에 앉힌 것은 자네들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의 옆에서 보좌를 잘못한 자네들 책임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기에 끌어내린 것입니다.”
“허허. 아미타불…… 아미타불…….”
선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들이 하는 말은 어찌 보면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자신들이 세운 왕을 자신들의 손으로 끌어내린다. 예로부터 역사에서 수차례 되풀이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 본다면 이상하다 여겨지지 않는가?
갑작스런 검황의 부재부터 검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 벌어진 일들. 또한 이제는 그 종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만후량까지.
마치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 의해 처음부터 조작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것을 바로잡을 수는 없는 것인지, 그러한 것들을 차근차근 조사를 해 봐야 할 시기였는데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일을 벌인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구파일방을 위함이란 것을 알고는 있으나…….’
지난날, 구파의 힘은 팔대세가를 넘지 못했다. 그래 봐야 남궁세가나 모용세가, 사천당가 세 곳을 말함이기는 하지만 많은 이들이 구파일방보다는 팔대세가에 엄지를 치켜세운 것은 맞다.
많은 불만들이 있었을 테지.
오늘날 벌어진 이 일은 틀림없이 그 탓이다.
선진은 질끈 눈을 감고 불호를 외웠다.
이 모든 것들이 부덕한 자신의 탓만 같았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무림맹이 되기 위해서는 대사께서 맹주 위에 오르셔야 합니다.”
고담진이 앞으로 나와 포권을 취하며 단호히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안 된다. 인망이 두터운 선진이 아니라면 무림맹은 이전보다 크게 출렁이게 될 것이다.
선진의 입에서 한숨이 터졌다.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꼬…….’
그가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묻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선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고담진을 향해 돌아가며 입이 들썩였다.
“그러고 보니…… 모용혁문, 그자를 데리고 갔던 자들을 찾긴 하였는가?”
“현재 수소문 중에 있습니다. 이른 아침 하남을 벗어났다 하여 길목 길목에 거지들을 보내고 정보력을 최대한 동원하고 있습니다.”
고담진은 당시를 회상하며 침을 삼켰다.
고작해야 세 명이기는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이 가진 힘은 어쩌면 이 무림맹보다 더욱 커 보였다. 눈앞에서 보았던 그 압도적인 무력들이 결코 머릿속에서 잊힐 리가 없을 것 같았다.
하여 찾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그들과 인연을 쌓아야 한다.
“그러한가…….”
선진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이들은 없다. 하지만 곧 다시 보인 그의 눈빛에는 단호한 의지가 서려 장내에 있는 모든 이들을 긴장시켰다.
“이 노승이 필요하다 하니 받아는 들이겠네만…… 그것이 결코 그대들의 사익에 도움될 것이라 생각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네.”
돌아보는 선진의 시선이 날카롭다.
이미 검성을 무림맹주로 올리는 과정에서 만후량과의 거래가 있었음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몇몇 이들이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밖에서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곧 끼익 하며 문이 열리고 퀴퀴한 냄새가 흘러들었다. 그러나 그 냄새보다 안으로 들어온 이의 얼굴을 보고 놀라워하는 시선들이 더욱 많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헝클어진 머리카락, 넝마라 해도 과언이 아닌 누더기 옷을 입고 허리에는 옥으로 만들어진 봉 하나를 끼워 놓고 있는 자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저자를 안다.
심지어 선진까지 놀라워했다.
걸황.
개방에서 나온 걸출한 인물. 비록 검황보다는 못하다는 평가가 많기는 하나, 구파일방에서 나온 오황 중 한 명이다.
이미 은거를 한 것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어째서 이곳에?
“끅!”
걸황 방노백은 딸꾹질을 하며 문에 기댄 채 호리병을 들어 올렸다.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고 꿀꺽꿀꺽 술을 목 넘김 하던 그가, 기분이 좋은지 작은 신음을 흘리며 방 안에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네놈들도 참 쪽팔린 짓을 했다만, 그놈들도 생각이 이렇게 없어서야…….”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내 방노백이 품에서 서찰 한 장을 꺼내 내던졌다.
그것은 허공을 훨훨 날아 조심스레 탁자 위로 내려앉았다. 겉면에 보이는 것은 틀림없이 개방의 표식, 이것은 개방이 직접적으로 모아 온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는 뜻이다.
“봐라. 네놈들이 해 놓은 짓들을.”
고담진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들이 망설이며 손을 뻗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걸황 방노백이 던져 준 서찰이다.
누군가를 콕 짚어 보라 말을 하지 않았으니, 누가 먼저 그것을 봐야 할지 난감한 모습들이다.
결국 선진이 나섰다.
그가 손을 뻗어 서찰을 쥐었다. 접혀 있는 그것을 천천히 풀고 안에 새겨진 글자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한참을 읽은 그가 조심스레 서찰을 내려놓았다.
“하아.”
짧은 한숨이 새었다.
그의 얼굴에는 낭패감이 역력했다.
“이것이 정녕 사실인가?”
“내 정보를 못 믿는 거냐, 늙은이? 노땡중이 되더니 판단력도 흐려졌구나.”
“허허허, 아미타불…….”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저러는가?
많은 이들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알려 주어야 할 두 사람이 입을 굳게 다물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동안 눈치를 보고 있던 이들 중 한 명, 무당의 장문 허공이 서찰을 집어 읽었다.
그가 한참 동안 그 종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몇 번이고 같은 내용을 머릿속에 새겼다.
아무리 봐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쾅!
이윽고 그 화를 다스리지 못했는가?
거칠게 서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언성을 높였다.
“이것이 정말입니까?”
“내 한 말을 두 번 하리?”
걸황의 시선에 허공의 몸이 움찔했다.
걸황의 성격을 모르는 이가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먹질부터 나가는 것으로 유명한 탓에,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또한 어린 시절부터 걸황에게 많이 맞은 기억들이 있었다.
모두들 그의 싸늘한 시선에 기가 죽어 고개를 돌렸다.
“하…… 하지만, 이건…… 정파를 둘로 나누겠다는 뜻 아닙니까? 천도회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곳곳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천도회는 또 무엇이고 정파를 둘로 나눈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만 들려오니 혼란은 극을 더했다.
웅성웅성.
장내가 시끄러워졌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로 소란스러워졌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걸황이, 호리병을 쥐고 가볍게 벽을 두들겼다.
통!
그 소리는 가볍고 경쾌했지만 파급력은 엄청났다.
한순간, 모든 이들이 정신을 차린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걸황과 선진을 향해 모여들었다.
이것이 바로 오황이라 불리는 자의 공력.
선진이 할 말을 잃고 어이없이 웃었다.
“진정들 해 주시게. 이 일에 관하여 누군가 사천당문의 가주를 만나 보고 와야 할 것 같네.”
선진의 목소리가 조용히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