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28
“운이 좋았군. 안휘에서 이곳까지 도망쳐 온 것을 보면.”
“아하하…….”
남궁소혜는 삐딱한 단우현의 말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중상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세가가 그리되고 가족들조차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 한 몸 살고자 도망쳐 나온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손상된 공력과 몸을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는 하나, 그동안 세가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변치 않는 사실이다.
“그…… 그렇지 않아도 슬슬 나가려고 했어요. 몸도 어느 정도 회복했고…… 세가도 걱정이고…….”
더듬거리며 말을 하는 남궁소혜를 단우현이 지켜봤다. 곧 그가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악!”
털썩 주저앉는다.
세게 찌른 것도 아니었는데, 마치 낫지 않는 상처를 건든 것처럼 옆구리를 부여잡고 한동안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아직 낫지 않은 상처가 있다.
추격자들을 뿌리치는 와중에 암기를 맞은 곳이다.
독이 없어 다행이었지만 다른 곳보다 확실히 아무는 것이 늦다.
“뭐…… 뭐 하는 짓이에요?”
“그 몸으로 가 봐야 도움되지 않는 건 확실해 보이는군. 잘 선택했다. 그대로 무림맹으로 가 봐야 좋은 꼴은 보지 못했을 테니까.”
“으윽……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안휘와 하남 유람을 하고 온 참이다.”
“엣!”
남궁소혜가 깜짝 놀라 휘둥그레 눈을 떴다.
이 호남 밖으로는 웬만해선 나가지 않는 사람이 바로 단우현이다. 마치 세상과 담을 쌓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안휘와 하남을?
믿을 수 있는 소리를 해야지.
남궁소혜는 어이없는 눈으로 고개를 돌려 단소미를 바라봤다.
자그마한 아이가 방긋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소림사의 모습이 담긴 나무 조각이 있었다.
“하남에서 아빠가 만들어 줬어요. 기념이래요.”
“저…… 정말 하남을 다녀왔단 말이야?”
“네! 뭔가 엄청 무서운 사람들도 있고요.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들도 봤어요. 마 아저씨와도 거기서 만났어요.”
남궁소혜가 힐끗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부터 밖에 익숙한 얼굴이 있다고 생각을 하긴 했다. 가만 생각을 해 보니 마장강, 낭왕이라 불리는 백대고수 말단에 올라와 있는 인재이다.
그런 그가 왜 이곳에?
영문을 알 수가 없으니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남궁세가! 남궁세가는 어찌 되었죠?”
“다 무너졌더군. 다시 지으려면 시간 좀 걸리겠어.”
“집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요! 우리 가족 소식을 듣지 못했나요?”`
“사혈단을 궤멸시키고 어디론가 숨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한마디에 남궁소혜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이런 먼 곳에서 편히 살고 있다 하여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오빠까지.
그 밖의 분가의 사람들과 장로들의 얼굴이 새록새록 스쳤다. 죽은 이들도 있었으며 중상을 입은 자들도 있다. 그런 이들을 버려두고 혼자 떨어져 나왔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남궁소혜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부 괜찮은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으이.”
뜬금없이 들려오는 한마디에 남궁소혜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러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가면을 뒤집어쓴 남궁천을 바라봤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언제나 봐 왔던 그 체형과 가면 밑으로 드러난 새하얀 수염. 잔잔한 호수와도 같은 눈동자는 그녀가 애타게 찾고 있던 누구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한쪽 팔마저 없지 않은가?
한순간 동공이 떨렸다.
수개월 동안 보지 못하였다고는 하나, 저 목소리를 잊을 만큼 남궁소혜는 남궁천에 대한 정이 얕은 게 아니다. 손을 뻗은 그녀가 남궁천의 소매를 덥석 쥐었다.
“하, 할아버님?”
“크, 크큼!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허허허.”
당황을 했으나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무마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단박에 눈치를 챌 줄은 생각지 못했던 탓에, 조심스레 남궁소혜의 손을 잡아떼며 두 걸음 물러섰다.
“할아버님! 맞지요?”
“무…… 무슨 소리인지 도통…….”
고개를 돌리며 어색함을 감추려 했다.
하지만 날카롭게 쏘아져 오는 남궁소혜의 눈빛만큼은 피할 수가 없었다. 냅다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지만, 문 앞에 멀뚱히 서 있는 단소미 탓에 그러지도 못했다.
“이 목소리, 틀림없어요. 할아버님! 도대체 어떻게 되신 거예요! 여긴 왜 와 계시고…… 그 가면은 또…….”
남궁소혜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소매를 움켜쥐었다. 도망을 치려면 그녀의 손을 뿌리쳐야 하는 상황인데, 손녀딸에게 차마 그런 짓을 하지 못하니 난감할 따름이다.
주변에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내 보지만 단우현과 사도학은 애써 외면했다.
이것은 가족의 일.
두 사람이 알아서 해결을 봐야 하는 일이다.
결국 두 손을 든 것은 다름 아닌 남궁천이다.
그가 허허 웃음을 짓고는 가면을 벗었다.
오랜만에 그의 생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살아 계셨어요! 저는 믿었다고요!”
“허허허, 인석아. 달라붙지 말거라. 덥다 더워.”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달려드는 남궁소혜를 가까스로 떼 내었다.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에,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애교가 많고 남궁천에게 많이 기댔던 탓에, 그만큼 혹독하게 가르쳤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대체…… 왜…… 연락을 안 하셨어요…….”
남궁소혜는 또다시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모든 이들이 죽었다고 생각했고 연락조차 오지 않는다. 끝까지 살아 있음을 믿고 찾아보려 하였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느닷없는 남궁천의 부재 탓에 세가는 크게 흔들렸고, 결국 사혈단이라는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한 곳에 무너지는 사태가 되어 버렸다.
복받쳐 오른 감정이 쉬이 주체되지 않았다.
그녀가 엉엉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단우현은 단소미의 손을 이끌고 방을 나섰다.
오랜만에 만나는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것도 이유이기는 하였으나, 저 곤란한 상황에 끼어 있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밖으로 나오니 단소미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마치 조금 전 남궁소혜가 보인 것처럼 어떤 감정이라도 느낀 모양이다.
단우현이 작게 웃으며 물었다.
“왜 우느냐?”
“흑…… 그게, 언니가 너무 울어요.”
자그마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남궁소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어리기는 하지만 단소미 또한 가족을 잃은 슬픔이 있으니까. 만약 죽었다고 생각한 가족들이 다시금 눈앞에 나타난다면, 저런 감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빠도 나빠요.”
“내가?”
느닷없이 들려오는 말에 단우현이 깜짝 놀랐다.
나쁘다니?
도대체 뭐가?
의아한 표정으로 단소미를 바라보자, 붉어진 눈을 한 번 더 닦아 내곤 쌍심지를 켜며 쏘아봤다. ‘단단히 화가 났어요.’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동그란 눈이 더욱 커졌다.
“언니한테…… 말해 주면 좋았잖아요! 그럼 언니도 저렇게까지 안 울 텐데.”
“하하하, 그건 그렇다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알려 주는 것도 웃기지 않으냐?”
“그래도…….”
“세상에는 숨길 수 없는 일이 있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있는 법이다. 언젠가 걸린다면 지금이 그 시기였던 거지.”
“……네.”
단소미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단우현이 하는 말이니 일단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는데, 알려 주면 알려 주는 거지 인연이 어쩌니 저쩌니 하니 그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단우현이 하는 말이니 알아들은 척이라도 해야지.
“응응!”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할아버지는 집에 가는 거예요?”
단소미는 다소 아쉬운 표정으로 물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고작해야 수개월이기는 하지만 그간 많은 정이 들었던 남궁천이다.
진짜 할아버지가 있다면 남궁천 같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멋대로 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런 남궁천이 집으로 돌아간다.
단소미의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씁쓸함이 묻어났다.
기왕이면 함께 살았으면 좋을 텐데…….
“글쎄다. 어찌할지 모르겠으니 두고 보자꾸나.”
“아! 이러면 돼요!”
짝!
단소미가 손뼉을 쳤다.
이 이상 좋은 생각은 없다 하며 환한 웃음마저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걷고 있는 단우현의 앞을 막아서며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빠랑 언니랑 혼인을 하면 돼요! 그럼 할아버지도 진짜 할아버지가 되는 거잖아요. 여기서 나가지 않아도 되고…… 언니도 얻을 수 있고. 일석이조죠?”
“하하하! 그렇게까지 저 할아버지가 좋더냐?”
“네! 남궁 할아버지는 소미를 너무너무 귀여워해 주세요. 그리고 군자검 가면도 멋있고요!”
어린아이의 생각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단우현이다. 귀여워해 주는 것은 단우현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텐데, 그런데도 남궁천을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
왠지 모를 질투가 났다.
“내 입장에선 가 버렸으면 좋겠는걸?”
“엣?”
깜짝 놀라 하는 단소미를 보며 단우현이 웃었다.
이 아이도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아는구나 생각했다.
짓궂은 장난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울먹거리는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이 약해졌다. 단우현이 단소미의 볼을 꾹 잡아당기며 말했다.
“우리 소미가 아빠보다 할아버지를 더 좋아하니 질투가 나는구나.”
“아…… 아앗! 아, 아니에요! 저는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좋은걸요!”
“하하, 그것 참 고맙구나. 하지만 할아버지도 좋지?”
“에…… 네…….”
“아빠랑 할아버지, 누가 더 좋으냐.”
“그, 그건…… 당연히 아빠죠!”
단소미가 주먹을 움켜쥐며 앙칼진 소리를 냈다.
잠시 망설이는 것 같기는 했지만 뭐 어떤가?
씩 웃은 단우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그래, 아빠 앞에선 아빠가 좋다하면 되는 것이고, 할아버지 앞에서는 할아버지가 좋다 하면 되는 거다. 그게 세상 편히 사는 방편이지. 어린 데도 좋은 것을 깨달았구나.”
“저, 정말인데! 소미는 진심에서 우러나서 하는 말이에요.”
“하하, 그래그래.”
오랜만에 크게 웃음을 지은 단우현이 소미를 이끌고 본 각으로 향했다. 저녁 식사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그동안 다소 쉬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 두 사람을 멀리서 가만 지켜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장삼태, 권무진, 마장강.
세 사람은 조금 전 단우현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순간 오한이 들 정도로 몸을 떨었다.
“저…… 저 인간도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아네.”
장삼태가 소름이 돋았는지 팔을 문지르며 부르르 떨었다. 조금 전 그 표정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으니까.
그들이 알고 있는 단우현은, 주변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무거워지고 또한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얼어붙는 자다.
“크큼! 우…… 우리 주군도 사람이라는 거겠지.”
마장강이 다행이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또한 단우현을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여기 있는 세 사람 말고 이 장원에 인간이 있기는 한가?
군자검이라 말하는 늙은이와 마천군이라 말하는 늙은이. 이 두 사람만 보더라도 이미 천외천 수준에 올라와 있는 이다.
거기에 단우현까지.
‘괴물 집합소지 여긴.’
마장강은 다시 한 번 단우현을 따라와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림에서 서로 만나 칼질을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니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두려움이 치솟았다.
“아무래도 좋지만…… 이렇게 태평하게 있어도 되는가 모르겠군.”
그때, 권무진이 입을 열었다.
장원으로 돌아온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또한 이 장원에 있는 사람들의 실력을 생각해 본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받아칠 인간들이다.
하지만 세상은 알아 버렸다.
이 정도의 실력자들이 모여 있음을.
또한 무황성도 움직이게 될 것이다.
권무진이 살아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마독진은 뱀처럼 교묘하고 질기다. 틀림없이 권무진의 목을 치기 위해 또 한 번 움직일 거다.
가늘게 눈을 뜬 권무진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평화를 깨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등을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툇마루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사도학이 있었다.